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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카 알 마야사 카타르 공주 | 연 10억 달러 투자하는 ‘문화 여왕’ 

세계 미술시장의 ‘큰손’들(1) 

박지현 기자
이제 고가의 미술품은 중동으로 날아가야 볼 수 있게 됐다. 왕실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아트 파워’로 활용하는 여인이 있다. 화끈하게 ‘고가(古歌)’ 작품만 골라 자신의 나라로 들여오는 그는 이제 ‘카타르의 문화 여왕’으로 불린다. 셰이카 알 마야사 카타르 공주다.

▎사진:카타르국립박물관협회(QMA) 제공
# 2007 마크 로스코 ‘화이트 센터’ 7284만 달러(약 800억원): 전 후 미술 경매 최고가

# 2007 데미안 허스트 ‘봄의 자장가’ 2280만 달러(약 170억원): 생존 화가 경매 최고가

# 2011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2억5000만 달러(약 2750억원): 역대 경매 미술 최고가

# 2015 폴 고갱 ‘언제 결혼하니?’ 3억 달러(약 3300억원): 스위스 바젤 사상 최고가

‘오일머니’가 미술시장을 휩쓸고 있다. 미술품 거래 가격에서 속속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큰손은 중동 왕실에서 나왔다. 2022년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는 고가의 작품들을 무섭게 빨아들인다. 왕가에서도 거물급은 30대의 젊은 여성이다. 셰이카 알 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Sheikha Al-Mayassa bint Hamad bin Khalifa Al-Thani, 35. 이하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 세계 경매시장을 돌아다니며 고가의 미술품을 거침없이 사들인 결과 10년간 미술계의 최고 실세로 떠올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공주가 연간 미술품 구매에 쓰는 비용은 약 10억 달러(1조1200억원)에 달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30배가 넘는 규모다. 그는 2조70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 고갱, 언제 결혼하니, Oil on canvas, 101×77㎝, 1892. 2015년 구입(약 3300억원)
‘아트 리뷰(Art Review)’는 2013년 알 마야사 공주를 ‘미술계 파워컬렉터 100’ 1위로 선정했다. 이 리스트에서 중동 출신이 1위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포브스는 2012년 ‘파워풀한 여성’ 100위에 그를 선정하기도 했다.

1983년생인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는 카타르의 현재 국왕인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의 여동생이다. 하마드 빈의 14번째 자손으로 두 번째 부인인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네드에게서 태어났다. 사촌 셰이크 빈 압둘 아지즈 알사니와 결혼해 세 아들을 두었다.

알 마야사 공주는 정통 해외유학파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예술계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미국 듀크대에서 정치학과 문학을 전공했고, 재학 중 국제학생연합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 파리 소르본대와 파리정치학교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Oil on canvas, 97×130cm, 1892~93. 2011년 구입(2750억원)
활동 반경도 넓다. 졸업 후 아시아 자연재해 피해자 교육 비정부기구 ‘Reach out to Asia’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아시아 자연재해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교육을 제공하는 고무적인 노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평소 그는 유학파다운 개방적인 모습과 이슬람 문화의 조화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패셔너블한 슈트 차림의 세련된 사업가 모습을 하고 있는가 하면, 전통 블랙 망토인 아바야를 걸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두루 갖췄다. 2012년 히잡을 두르고 공개석상에서 연설한 그는 “빠르게 현대화되어가는 젊은 카타르의 전통문화를 기억하기 위해 쓰고 나왔다”고 말했다.

알 마야사 공주는 문화예술의 사회적 영향력을 수차례 강조했다. 자신의 목표가 세계적인 미술품을 ‘지역(local) 컬렉션’으로 들여와 카타르의 정체성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확인하기도 했다.


▎파블로 피카소, 비둘기를 안고 있는 아이, oil on canvas, 54×73㎝, 1901. 2013년 구입(870억원)
알 마야사 공주는 현재 카타르국립박물관협회(QMA) 의장이다. 2006년 당시 카타르 국왕이었던 아버지가 임명했다. 공주의 직책은 QMA 산하의 아랍현대미술관, 아랍박물관, 카타르국립박물관 등을 총괄하는 무게 있는 자리다. 이 직함은 아트 컬렉터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을 줬다. 특히 전(前) 크리스티 회장 에드워드 돌먼(Edward Dolman)이 자문역으로 일했다니, 최고의 조언을 얻은 자신감도 이해가 될 만하다.

마야사 공주는 막대한 예산을 주무르며 점당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했다. 마크 로스코, 리히텐슈타인, 프랜시스 베이컨, 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 거장들의 유작들만 골라 사들였다.

마크 로스코, 리히텐슈타인, 프랜시스 베이컨, 앤디 워홀 등 사들여


▎마크 로스코, 화이트 센터, Oil on canvas 206×141㎝, 1950. 2007년 구입(800억원)
작품을 고르는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11년 그리스 선박왕 조지 엠비리코스로부터 사들인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약 2750억원으로 당시 역대 경매 미술 최고가였다.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폴 세잔이 여러 명이 카드놀이 하는 모습을 그린 연작 다섯 작품 중 하나로, 완숙기인 50대에 그린 작품이다. 소장한 곳은 메트로폴리탄뮤지엄, 파리 오르세뮤지엄, 런던 코톨드 미술관, 필라델피아 반즈파운데이션, 그리고 그리스 재벌 조지 엠비리코스였다. 바로 이 마지막 한 점이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그림은 희소가치 덕분에 어디에 걸려도 ‘모나리자’와 같은 인기를 모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작품 하나로 메이저급 뮤지엄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고갱 작품 ‘언제 결혼하니?’도 오랫동안 개인 소장품이었다. 알 마야사 공주는 경매를 통하지 않고 개인 간 거래로 사들였다. 할아버지가 이 작품을 구입하여 100년 가까이 보유하고 있던 스위스 컬렉터 루돌프 슈테린이 박물관 무상 대여를 그만두고 판매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고갱이 타히티섬에 머문 2년간 그린 60여 점 중 초기에 그린 작품이다.

최근 몇 년간 미술시장에서 중동이 화제가 된 것은 이런 고가 작품을 거래할 수 있는 산유국의 재력 덕분이다. 카타르는 작은 규모에 비해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와 152억 배럴의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자원 부국으로 GDP가 10만 달러가 넘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1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이지만, 한낮이면 50℃에 이르는 열기로 정류장까지 걸어나갈 수조차 없는 뜨거운 사막의 나라다. 아직 카타르에는 지하철도 없다. 버스도 간간이 다닌다.


▎카타르 국립 박물관 공사 중 카타르 왕조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 사진:Doha news, QMA
정작 중동 미술시장의 성장은 기대만큼 크지 않다. 국제적인 아트페어 ‘아트 두바이’나 ‘아부다비 아트’도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2005년 두바이에 지사를 연 경매회사 크리스티도 두바이 경매를 런던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알 마야사 공주의 미술품 수집도 국가적인 행위에 가깝다.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현대미술 시장에서 개인이나 기업 차원의 컬렉터는 자주 등장하지만, 이렇게 국가를 대표하는 컬렉터가 화제가 되는 경우는 중동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

카타르 왕실은 2008년 새로운 발돋움을 시도했다. “우리는 터키, 이집트 같은 화려한 문화유산이 없으니 세계가 주목하는 미술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해 문화강국이 되겠다”는 기치를 내세웠다. 국가 경제 다변화 플랜인 ‘Vision 2030’은 문화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뮤지엄 왕국 프로젝트’의 책임은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가 맡고 있는 셈이다.

카타르국립박물관협회는 미술관을 연달아 개관했다. 유명 건축가들이 투입됐다. 2008년 루브르 피라미드 건축가 I.M.페이가 디자인한 이슬람아트뮤지엄을 열고, 2010년에는 장 프랑수아 보댕의 설계로 아랍현대미술관을 선보였다. 또 장 누벨을 기용해 카타르국립박물관을 개조하고, 글로벌 아트포럼을 개최해 엘리트들을 끌어모았다.

큰 전시도 개최했다. 2012년과 2013년엔 카타르 내에서 무라카미 다카시와 데미안 허스트 전시회를 열었다. 자국민들에게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대외적으로는 카타르 이미지 제고에 확실한 효과를 거두었다. 2015년부터는 뉴욕타임스와 손잡고 매년 ‘내일을 위한 예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자국 예술가들을 양성하는 건 물론이다. 소방서를 개조해 만든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는 올해부터 카타르 예술가들을 파리에 파견한다. 2022년 월드컵을 앞두고 카타르 왕조는 소프트 파워를 높이는 국가 차원의 자본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부(富)는 베풀어야 한다는 중동 산유국 왕실 문화가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들에겐 ‘신이 선물한 석유’로 이룬 부를 국민에게 베푼다는 일종의 시혜의식이 있다. 중동이 대부분 ‘지대국가(Rentier State)’인 것과도 관련 있다. ‘지대국가’는 세금을 걷지 않고 천연자원으로 벌어들이는 부로 국가를 운영하고 복지 정책을 편다. 따라서 고가로 구매한 유명한 작품을 자국 국민이 마음껏 감상하게 하고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게 이들에겐 자연스러운 문화다.


▎카타르 국립 박물관.
산유국 왕정국가 협력체인 걸프협력이사회(Gulp Cooperation Council·GCC)에서는 문화 경쟁이 뜨겁다. 막대한 돈을 투입해 현대미술의 맹주(盟主)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혈안이 돼 있다. 회원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이다. 예컨대 아랍에미리트는 수도 아부다비에 루브르 박물관 제2관, 구겐하임 미술관, 자이드 국립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을 짓고 있다.

지난해 서울은 알 마야사 공주 때문에 떠들썩했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에 알 마야사 공주가 방문한다는 소문이 돌면서였다. VIP 오프닝 날 갤러리 관계자들이 부스에서 가장 잘 보이는 바깥쪽 벽에 무엇을 걸면 공주의 눈에 들까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그가 일정상 방한을 취소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알 마야사 공주의 방문은 갤러리계 초미의 관심사임을 입증했다.

카타르 로열 패밀리의 힘은 여전히 막강해 보인다.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초고가의 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석유 파워 못지않은 아트 파워다. 해외 경험을 두루 갖춘 젊은 지도층이 예술을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어 공주의 행보에 더 주목할 수 밖에 없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810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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