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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선의 ‘셀럽 심리학’ 

당신의 팔로어는 몇 명입니까? 

조지선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전문연구원(심리학 박사)
SNS에서 팔로어가 누르는 ‘좋아요’엔 설득의 6요소 중 상호성, 호감, 합의가 담겼다. 순식간에 쌓이는 댓글과 ‘좋아요’ 숫자는 비즈니스 성공의 레시피다. 팔로어를 회사의 공식 사이트로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잠시 상상력을 동원해서 당신이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화장품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다. 2016년 립스틱 단일 제품으로 사업을 시작해 3년이 채 안 된 현재까지 매출 6억 3000만 달러(약 7085억원)를 올렸다. 전통적 기업 에스티로더가 10년간 번 돈보다 더 많은 액수다. 당신의 나이는 만 21세. 얼마 전 포브스의 커버스토리 ‘자수성가한 여성 부자’로 표지에도 등장했다. 내년엔, 23세에 억만장자가 된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를 제치고 당신이 최연소 기록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꿈에서나 가능할 듯한 성공 스토리다. 당신은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대단한데! 그런데 이게 가능해?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지?’ 이야기의 주인공은 카일리 코스메틱 CEO 카일리 제너. 리얼리티 쇼로 유명해진 ‘카다시안 패밀리’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SNS에서 인기를 끌었다. 기적 같은 제너의 성공을 구현한 마법 지팡이는 1억1000만 명에 이르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다. 인구수 세계 랭킹 10위권에 있는 나라, 예를 들면 일본의 전 국민 숫자만큼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살펴보면 ‘제너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내 딸은 TV에 전혀 관심이 없다. 매일 노는 건 아니구나 싶어서 내심 다행스러웠는데 실상 노는 물이 다른 것뿐이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몇십 초짜리 영상으로 친구를 사귀고 세상 공부도 한다. 쇼핑도 마찬가지. 핸드폰의 기능을 비교할 때 SNS에서 유명한 ‘나름 전문가’들을 찾는다. 최소한 팔로어 수만 명을 보유한 이들은 매일 깨알 정보와 꿀팁을 제공해주는 친구 같은 사람들이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social media influencers)’ 혹은 ‘마이크로 셀레브리티(micro-celebrities)’라고도 불린다.

패션 관련 노하우를 소개하는 유튜브 슈퍼스타 조엘라, 게임 방송 전문 대도서관, 한국을 알리는 영국 남자 조쉬. 한 번쯤 들어봤을 ‘인플루언서’들이다. 이젠 사진과 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파워 블로거 시대가 가고 영상으로 승부하는 인플루언서 시대가 왔다. 구글 트렌드 분석에 의하면 인플루언서의 검색 빈도는 전 세계적으로 5년 전보다 약 20배 증가했고, 2016년 이후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인플루언서의 마케팅 파워를 인식한 기업들은 이제 톱스타가 아닌 이들을 통해 고객에게 접근한다.

카일리 제너는 기업과 협업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CEO로 변신한 대표적인 사례다. 회사의 풀타임 직원은 고작 7명. 이 비현실적인 효율성은 제너가 인스타그램에서 뭐든 혼자 다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는 거의 한 시간에 한 번꼴로 등장한다. 욕실을 배경으로 ‘생얼’로 나와 눈 화장법을 10분도 넘게 조곤조곤 가르쳐준다. 어린 시절 보았던 엄마 화장대 이야기도 하고 판매원처럼 손등에 립스틱을 발라서 보여주기도 한다. PR 담당자가 되어 제품 스케줄도 알리고 문제가 생기면 사과도 한다.

제너에게 있고 기업 CEO에게 없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영상을 올리면 팔로어이자 팬인 고객들은 즉각 ‘좋아요’ 수백만 개로 응답한다. 이 한 장면에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가 제안한 설득의 6요소 중 ‘상호성’, ‘호감’, ‘합의’가 모두 들어 있다. 제너는 개인적 일상, 감정, 소망 등을 공유하는 데 적극적이다. “제너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구나!” 호감 상승의 순간이다. 매일 볼 수 있으니 제너가 어떤 사람인지 좀 아는 것 같다. 이름도 모르는 CEO와는 매우 다르다.

팔로어는 모든 것이 ‘리얼’이고 실제로 제너와 소통하고 있다고 느낀다. “여러분을 위해 섀도 팔레트를 만들었어요. 이걸로 여러분이 어떤 얼굴을 연출할지 기대돼요!” 제너가 말을 걸면 팔로어는 상호성 원칙에 의해 ‘좋아요’를 클릭하고 ‘구매’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그에게 응답한다. 순식간에 쌓이는 댓글과 ‘좋아요’의 숫자는 합의의 상징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원하는 걸 봐. 이건 사야 해!”

제너와 팔로어의 상호작용은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s)다. 한 사람은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상대방은 그 사람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는 상상의 관계를 의미한다. 팬과 스타의 관계가 전형적인 예다. 팬은 양방향 소통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스타가 대화의 내용을 통제하는 일방향 소통이다. 제너가 일상의 디테일을 공개할수록 팔로어는 제너가 그들의 실제 삶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를 ‘이해’하고 그와 삶을 ‘공유’한다고 생각하면서 마치 진짜 친구인 것처럼 상상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 관계가 카일리코스메틱 성공의 레시피다. 이 때문에 팔로어는 언제든 기꺼이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기업의 CEO나 고위 임원은 이 현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한편으로 너무 쉽게 시장을 ‘거저 먹는’ 현장을 목격한 것 같아 허탈감이 밀려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해묵어 낡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동시에 복잡한 생각이 스친다.

“이 나이에… 괜히 주책없게 나섰다가 역효과만 나지.” “회사 차원에서 SNS 마케팅을 하는데, 내가 또 뭘 해야 해?” “말꼬투리 잡혀서 입방아에 오르고… SNS는 멀리하는 게 정답이야.”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을까? 밀레니엄 세대를 상대로 장사하려면 ‘듣보잡’ CEO는 면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지난 십수 년 동안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사회적 파워를 지렛대 삼아 적극적으로 판을 키워온 반면,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최고경영자는 온라인 활동에 소극적이었다. CEO.com의 조사에 의하면 2016년 글로벌 500대 기업 CEO 중 61%가 소셜미디어 존재감 제로의 상태였다. 이 현상의 기저에는 두려움이 있다. 사생활 노출도 마음에 걸리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회사의 평판에 악영향을 줄까 염려스럽다.

소셜미디어의 핵심은 진정성이다


▎포브스는 지난 8월호에서 카일리 제너를 표지에 내세웠다. 그는 SNS를 잘 활용해 억만장자가 됐다.
경영학자 매슈 헤이워드 연구팀의 제언에 따르면 일리 있는 걱정이다. CEO가 유명해지면 회사와 한 몸이 되어버린다. 테슬라와 일론 머스크가 잘 구별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마디로 회사와 CEO 개인이 운명을 같이하는 위험성이 발생한다. 최근 온라인 팟캐스트 생방송에서 마리화나를 피워 구설에 오른 일론 머스크 때문에 테슬라의 주가는 9%나 하락했다.

SNS 활동이 리스크를 수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CEO가 소셜미디어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이젠 위험 요소다. 존 레저 티모바일 CEO의 말을 들어보자. “SNS에 누가 있습니까? 우리의 고객들이 거기에 있고 직원들이 있습니다. 경쟁사의 고객들도 모두 그곳에 있어요. 제가 어디에 있어야 하나요?”

소셜미디어에서 롤 모델이 될 만한 최고경영자로 꼽히는 이는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다. 1200만 트위터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는 그에게 온라인 소통은 중요한 경영 활동의 일부다. 매일 글과 사진을 직접 올리는데 소탈한 인간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점이 눈에 띈다. 개인적인 일상이나 유용한 팁, 어린 시절 경험했던 실패도 공유하면서 신뢰를 구축하고 때로는 팔로어를 회사의 공식 사이트로 자연스럽게 유도하기도 한다.

소셜미디어 활동의 묘미는 다음 사례에도 잘 드러난다. 2016년 말,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CEO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에어비앤비가 내년에 서비스를 새로 론칭한다면 어떤 서비스가 좋을까요?” 실현 가능한 제안부터 기상천외한 생각까지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체스터의 짧은 질문으로 시작된 트위터 대화는 몇 시간이나 이어졌다. 아이디어가 실제 서비스로 이어졌는지 상관없이 이 리얼한 현장 대화가 체스키와 팔로어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음이 분명하다.

두 이야기의 공통분모는 진정성(authenticity)이다. 소셜미디어 활동의 핵심 규칙은 이 진정성에 기반을 둔다. 첫째, PR팀의 전담 직원이 대신 게시물을 올리는 대리 활동은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티가 난다. CEO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둘째, 오프라인에서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면 된다. 팔로어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한다. Just be yourself !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

201810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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