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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럭셔리 산업의 리더들(11)] 나인범 로저드뷔 코리아 지사장 

“전문성과 경험적 가치 제공이 명품 성장의 지름길” 

오승일 기자
로저드뷔는 한국 진출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다. 지난 2013년부터 로저드뷔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나인범 지사장과 함께 한국 명품 시장을 전망하고 성장에 필요한 해법을 모색해봤다.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로저드뷔 부티크에서 만난 나인범 지사장.
1995년 탄생한 로저드뷔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하이엔드 시계를 제작하고 있는 워치메이커다. 역사는 짧지만 세계 3대 시계 브랜드 파텍필립에서 시계 제작을 총괄하던 창업자 로저드뷔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유명 시계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카본과 메탈, 고무 등 다양한 소재를 시계에 적용하고 아주 작은 부품까지도 장인들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로저드뷔는 시계 하나에 600개에 달하는 부품이 들어갈 정도로 정교한 테크닉을 자랑한다. 특히 무브먼트의 역동적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스켈레톤 시계로 단숨에 신흥 명품 브랜드 대열에 합류했다.

로저드뷔는 최고급 기계식 시계에 부여하는 ‘제네바실’ 인증을 모든 제품이 받은 유일한 시계 브랜드다. 제네바실은 시계에 탑재된 기계식 무브먼트가 제네바의 매뉴팩처에서 일일이 장인의 손으로 직접 제조 및 조립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잡한 기술을 정교하게 구현해낸 로저드뷔의 기술력은 다양한 세계 최초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스프링 밸런스 4개를 장착한 시계를 세상에 처음 내놨다. 2015년엔 메탈 소재의 베젤 위 고무 몰딩에 다이아몬드를 결합한 시계를 최초로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2016년엔 카본 소재에 희귀 보석을 세팅하는 기술을 시계업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로저드뷔의 제품들은 현재 전 세계 200개 이상 매장과 23개 직영 부티크에서 만날 수 있다. 직원수는 총 355명이고 그중 본사 직원과 워치메이커가 180명, 매장 직원이 155명이다. 한국에는 2013년 4월 지사를 설립하고 직진출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리테일만 전개하고 있으며 현대백화점 본점, 에비뉴엘 본점, 에비뉴엘 월드타워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이엔드 시계의 고정관념 깬 이단아


▎비스포크 서비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난 10월 12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로저드뷔 부티크에서 나인범(39) 지사장을 만났다. 그는 “진정한 럭셔리는 미술품이나 조각품처럼 나만이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며 “1년에 시계를 4000개만 생산하는 로저드뷔는 그 조건에 충족하는 브랜드”라고 말했다.

“로저드뷔는 하이엔드 시계의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난 브랜드예요. 한마디로 하이엔드 시계의 이단아라고 할 수 있죠. 하이엔드 시계가 클래식하고 점잖고 보수적인 반면 로저드뷔는 본능에 충실하죠. 남들의 이목이나 명성에 따르기보다 마음에 들어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고객들에게 팔로어가 되지 말라고 정중하게 권유합니다. 로저드뷔와 다른 유명한 시계를 비교하면서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본능에 충실하라고 얘기하죠. 자동차에 비유하면 람보르기니나 페라리와 비슷해요. 이들 브랜드에는 흰색이나 검은색 같은 일반적인 색상보단 노란색이나 빨간색 같은 튀는 색상이 많고 엔진음도 무척 크죠. 이는 모두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로저드뷔에도 그런 DNA가 있어요. 로저드뷔는 기존 시계들과 완전히 달라요. 러그도 일반적인 시계가 2개인데 반해 3개나 되고, 베젤 부분에 칼 표시가 있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죠. 물론 호불호가 갈리지만 개성 강한 젊은 분들이 많이 구매하는 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없는 것이에요. 미술품이나 조각품처럼 나만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로저드뷔는 생산량이 매우 적습니다. 1년에 4000개만 만들죠. 이는 리치몬트 그룹에서도 가장 적은 양이에요. 대부분 시계가 8개, 28개, 88개로 리미티드 에디션이고, 나머지 2000개도 한 모델당 200개 이상은 만들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서 200명만 로저드뷔 시계를 찰 수 있다는 얘기죠.”

미국에서 호텔 경영학을 전공하고 쉐라톤 와이키키와 로열 하와이안 호텔에서 2년간 호텔 비즈니스를 경험한 나 지사장은 로저드뷔를 한국 시장에 안착시킨 주인공이다. 2007년 한국에 돌아온 나 지사장은 비엔에프통상에서 약 8년간 일하며 코스메틱(프레쉬, SK-Ⅱ), 주류(헤네시 와인), 패션(캠퍼 슈즈) 등 여러 브랜드에서 매니지먼트 경험을 쌓았다. 또 국내 사업권 계약 체결 및 오픈을 준비하는 태스크포스에 합류해 안나수이, 랄프로렌 등 다양한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했다.


▎람보르기니 자동차에서 영감을 받은 엑스칼리버 아벤타도르 S.
2013년 리치몬트 그룹에 합류한 나 지사장은 로저드뷔의 브랜드 매니저로서 국내 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브랜드 전략으로 리테일 네트워크를 빠르게 발전시켰고, 올해 지사장으로 발탁되면서 로저드뷔의 성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나 지사장은 “대학 졸업 후 하와이에서 호텔리어 업무를 하던 중 명품업계에 종사하던 지인의 도움으로 명품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며 “그동안 국내 명품 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15년 전만 해도 유럽인과 달리 아시아인은 명품에 대해 보수적인 면이 강했어요. 특히 한국인은 네임 밸류에 매우 집착했죠. 유명한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로고만 있으면 무조건 구매하는 분위기였으니까요. 예를 들어 과거엔 위스키 하면 무조건 발렌타인, 코냑 하면 헤네시였죠. 좋은 술이 너무나 많은데도 무조건 따라가는 분위기였던 거죠. 요즘은 그런 추세가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점점 자신한테 맞는 것을 찾아가는 추세라고 할 수 있죠. 젊은 고객들을 중심으로 개성과 취향에 어울리는 제품에 지갑을 여는 경향이 자리 잡고 있어요. 또 다른 변화는 전문성이에요. 예전에는 전문적인 지식 없이 유명 브랜드를 한 공간에 모아놓고 판매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죠. 최근 명품업계 트렌드 중 하나가 단독 리테일 숍을 만드는 것인데요. 백화점이든 스트리트 숍이든 단독으로 부티크를 열고 있어요. 한국에서도 그런 트렌드를 따라가는 분위기인데요. 명품의 여러 조건 중 하나는 고객들에게 최상의 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에 발맞춰 판매하는 직원들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고객들을 응대하는 추세죠. 명품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고객들에게 알리는 분위기죠. 고객층도 달라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4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 명품을 많이 구매했다면 요즘은 2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이 메인 고객층이죠. 이제 한국에서 명품이 유지되려면 젊은 고객들을 잘 관리해야 해요. 그렇지 못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어요.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과 소통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재미없고 고루한 브랜드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항상 트렌드를 따라가고, SNS에서 브랜드를 알리고, 고객들이 브랜드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해요.”

브랜드 혁신 DNA 각인시킨 일등 공신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로저드뷔 매뉴팩처. / 사진:로저드뷔 제공
2013년 한국에 공식 진출한 로저드뷔는 최근 3년간 30% 이상씩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로저드뷔가 국내 시장에서 이런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나 지사장의 공이 컸다는 것이 명품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나 지사장은 여러 가지 참신한 행사를 진행하며 로저드뷔의 혁신 DNA를 국내 고객들에게 알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6년 11월 열린 로저드뷔 추신수 에디션 론칭 행사다. 나 지사장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추신수 선수를 위한 스페셜 모델을 선보이며 그가 속한 텍사스 레인저스 야구장을 행사장에 그대로 구현했다. 3면에 벽을 세우고 야구장에서 직접 찍어온 사진을 붙이는가 하면 경기장 함성과 아나운서 코멘트까지 모두 따와 참석자들이 야구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나 지사장은 “올해로 스물세 살이 된 로저드뷔는 에너지가 넘치는 브랜드”라며 “다른 브랜드에는 없는 젊은 감성으로 앞으로도 고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같은 리치몬트 그룹에 속해 있는 100년 넘은 브랜드에는 긴 시간 동안 축적돼온 틀이 있습니다. 그 틀을 벗어나면 본사에서 결코 용납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런 브랜드니까 이런 행사를 해야 된다’는 식으로 마케팅 활동에도 가이드라인이 있는 거죠. 로저드뷔에는 이런 가이드라인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이 역사가 되는 셈이죠. 행사를 할 때마다 항상 재밌게 하려고 노력해요. 하이엔드 시계들의 점잖고 보수적인 면을 탈피해 새로운 것을 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죠. 1년에 한 번씩 큰 행사를 치르는데 행사 때마다 참석자들이 놀라워해요.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이렇게 해도 되냐’며 반문하죠.”

로저드뷔를 명품 비스포크 시계 브랜드로 각인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나 지사장은 한국의 명품 산업이 지금보다 더욱 성장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전문성과 경험적 가치 제공을 꼽았다.

“국내 명품 시장의 성장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중국의 명품 소비량이 전 세계 30~40%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해요. 규모 면에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수준이죠. 우리 명품 시장이 성장하는 데 한계는 있지만 명품 브랜드들의 투자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봐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 스타들의 활약 덕분에 한국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니까요. 브랜드 측면에선 고객들의 구매 패턴이 점점 양극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브랜드들이 상당히 고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위로 올라갈지 아래로 내려갈지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봅니다. 아울러 국내 명품 산업의 성장을 위해선 프로페셔널한 직원 교육을 통해 브랜드와 제품을 고객들에게 알려나가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전문성을 갖춘 단독 리테일숍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죠. 이를 통해 브랜드의 DNA를 잘 전달하는 것이 명품 산업 성장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험적 가치도 중요해요. 고객들이 브랜드를 직접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면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811호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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