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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로버트 에팅거 대표 

영국의 품격을 원할 때 

조용탁 기자
로버트 에팅거 대표는 “누구나 가진 제품은 명품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글로벌 명품 기업들이 대량 생산한 제품을 면세점과 온라인에서 유통하는 것을 꼬집는 말이다. 에팅거는 영국에서 수작업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결코 할인행사를 하지 않는다. 믿고 제품을 구매한 고객과의 신뢰를 위해서라 한다.

▎에팅거는 영국 왕실에 납품하는 명품 기업이다. 로버트 에팅거 대표는 “대단히 명예로운 일” 이라고 말했다. / 사진:에팅거 제공
영국 명품을 확인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제품 한편에 새겨진 깃털 문양 세 개를 찾으면 된다. 영국의 왕위 계승자인 웨일즈 공의 문장이다. 왕실에 납품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만 사용할 수 있는 문양이다. 1934년 설립된 영국의 가죽 명가 에팅거도 그중 하나다. 에팅거를 이끌고 있는 로버트 에팅거 대표는 “왕실 인증은 5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는 20년째 왕실 납품 업체 자격을 지켜가는 중이다”며 “문양을 사용할 권리를 받는 건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 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방한한 로버트 에팅거 대표를 만났다. 배려와 친절이 깊이 배어 있는 영국 신사였다. 그에게 영국 명품의 특징과 글로벌 시장 전망, 한국 시장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 가죽 명품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제품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영국산 가죽만 사용한다. 무두질하는 방법이 이탈리아와 달라 가죽 재질이 다소 두껍고 무겁다. 날씨의 영향이 있다고 본다. 겨울에 춥고 비가 많이 오는 습한 날씨라 가죽을 더 강하게 다룬 것 같다. 가죽 가방 이음새에 금속 피팅이 있는 점도 영국식이다. 해리 포터 여행 가방 모서리에서도 금속 재질을 볼 수 있다.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아한 멋을 중시한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품격 있는 제품이라 말하고 싶다.

한때 스키 선수를 꿈꿨다고 들었다. 가업에 합류한 계기는?

부모님은 내가 다양한 경험을 쌓기 원하셨다.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를 다니며 성장했다. 그 덕에 5개 국어를 구사한다. 독일과 캐나다에서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았다. 스키를 즐겨 프로 스키 선수의 길도 고민했었다. 25살 즈음에 아버지가 부르셨다. 가업을 이을지 스키 선수로 살지 선택해야 했다. 나는 가업을 선택했다. 늘 가죽과 함께 살았고 어려서부터 내 운명이라고 믿어왔다. 어린 시절에도 용돈이 필요하면 공장에서 일을 했다. 가죽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다. 다양한 업무를 배웠고, 서른 살이 되어서 경영에 참여했다.

에팅거를 경영하며 꼭 지켜온 사업 철학은 무엇인가?


▎에팅거는 1934년 설립된 영국의 가죽 명품 기업이다.
수작업으로 완성한다. 영국에서만 만든다. 할인행사는 결코 하지 않는다. 뭐 이 정도인 것 같다. 에팅거 제품은 버밍엄 공장에서 직원 100여 명이 만들고 있다. 명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뢰가 중요하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한 해외 공장은 절대 반대다. 반드시 영국에서만 만들어야 한다. 블랙프라이데이에 아마존에서 제품을 돌리면 매출이 당장은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제품의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며 사업이 흔들릴 수 있다. 한 번 할인하면 고객이 할인만 기다린다. 제값을 주고 산 고객의 불만도 커진다. 에팅거에서 이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글로벌 명품업계에선 지금도 인수합병이 활발하다. 에팅거는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에 관심이 없는가?

일본을 자주 방문한다.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자리에 앉은 여성들이 모두 명품 백을 가지고 있다. 내가 묻고 싶다. 모두 가지고 있는 제품을 명품이라 할 수 있을까? 명품이란 내 개성을 표현해주고, 나를 더 돋보이게 해주는 제품이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매출을 늘리기 위해 대량 생산한 제품을 면세점과 온라인에서 유통한다. 에팅거는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며, 천천히 성장할 것이다. 명품은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만큼만 만들어야 한다. 장인이 만든 제품은 다르다. 사람을 키워내려면 시간이 든다. 글로벌 기업과의 인수합병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에팅거의 정체성이 더 중요한 가치다. 우리를 믿고 제품을 구입한 고객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게 우리의 길이다.

에팅거에선 어떤 장인들이 가죽을 다루고 있나?

가죽은 손이 많이 가는 재료다. 제품 크기와 종류에 따라 제작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버밍엄 공장에서 파트별로 수많은 직원이 함께 일한다. 최고급 가죽을 찾고, 제품 크기에 맞게 자르고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모서리를 처리하고 가죽에 광을 낸다. 재택근무를 하는 여성 직원도 있다. 아이를 키우며 회사에 다니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죽 조각을 가져가 풀칠을 해서 이어 붙이는 작업은 집에서도 할 수 있다. 나중에 공장에서 조각을 모아 작업을 마무리하면 된다. 오래된 기업이라 직원들도 대를 이어 일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출근하는 가족도 있다. 나는 이들이 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시장만의 특징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보는 한국 시장은 어떤가?

모든 시장은 다르다. 고유의 특색이 있다. 한국 시장에선 동전지갑이 안 팔린다. 하지만 이웃인 일본에서는 아직도 동전지갑이 인기다. 일본에서 에팅거는 잘 알려진 브랜드지만 한국에서는 시작 단계다. 한국 시장에서 다른 전략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이따금 한·중·일을 같은 문화를 가진 동북아시아 국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전혀 다른 화성과 금성 같은 행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문화가 다르다. 사람들이 사는 방식, 서로 대하고 생각하는 방향에 큰 차이가 있다. 한국 시장의 특성을 열심히 파악하며 시장에 접근 중이다. 가죽 잡화 마켓에도 고급스러운 제품이 많았다. 한국 고객들에게 오랜 기간 사랑받는 제품을 소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에팅거를 한 문장으로 소개해달라.

영국에서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브랜드다!(Go to brand for England!) 최고의 영국 제품을 원할 때 우리를 기억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명품을 고를 때는 시간을 오래 들인 다음 선택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명확해질 것이다. 내가 어떤 제품을 가장 원하는지. 가장 좋아하는 제품을 고르면 된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201812호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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