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백남준과 존 케이지, 음악적 창의성에 도달하는 대조적 방식 

세상의 어떤 대상도 꼼꼼히 살펴볼 수 있고 연구할 수 있다. 체계적이며 이론적인 수준에 이른 연구가 학문이다. 예술도 학문적 수준에서 연구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예술에 관한 학문은 미학(美學, aesthetic)이다. 미학은 독일 철학자 바움가르텐이 내린 ‘감성적 인식의 학문’이라는 정의와 함께 1750년 세상에 등장했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질적인 것들을 연결해 새로움을 창조했다. 하이브리드 창조성은 3만5천 년 전의 사자 인간상에서 이미 발견된다. 프랑스에서 발굴되었다.
바움가르텐의 미학 이전에 학자들은 예술을 논했을까.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시학』(詩學)이라는 저서에서 예술에 관해 체계적 이론을 정립했다. 시학은 시에 관한 학문일까. 그것은 시를 짓는 방법에 관한 학문으로 출발했다. 오늘날 시학은 모든 예술의 창조에 관한 이론이다. 예술 분야마다 시학이 있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음악시학, 무용시학 등이 생겨났다. 한 분야에서도 다시 여러 하위 분야가 생겨났다. 소설시학의 이름으로 소설을 어떻게 쓸지 알려주는 시나리오 작법이 연구될 수 있으며, 유명 소설가가 그의 어떤 걸작을 써내려갔던 일상의 과정을 복기함으로써 그가 어떤 생각에 빠져있었고 그의 성격과 기질은 어떠했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예술가들이 세상에 없던 어떤 것들을 구상해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창조적이라면 그런 예술가들이 창작하는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시학의 이름으로 연구할 수 있다. 창작된 결과가 전에 없이 새로운 것이라면 창의성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시학은 예술가의 창의성에 관해 연구할 수 있다. 그런데 창의성은 예술가만의 것이 아니다. 과학자는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창의적 존재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창조적이라면, 그들의 이론 창조 과정과 그 과정의 기저에 존재하는 창의성을 연구할 수 있다. 이 연구를 시학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예술적 창의성과 과학적 창의성의 유사성, 두 분야의 내부를 관통하는 모종의 연속성을 생각할 수 있다면, 이 모두를 같은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이 이 연구를 한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심리학에 인지과학 혹은 신경 과학이 결합되는데, 이렇게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융합적인 인지과학은 모든 인간의 창의성을 연구할 수 있다. 새로운 제품을 고안해내는 기술자 혹은 기업인도 창의적이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의 표본이다. 그 역시 연구할 수 있다.

창의성은 창의적 사고의 산물이다. 창의적 사고는 특별한 사고, 즉 일상생활에서 보통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사고이거나, 평범한 사고를 잘 이용해 얻어진다. 평범한 사고를 혁신을 일으키는 데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창의적 사고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적 혹은 과학적 혁신을 가져오는 창의적 사고는 냉장고에 있는 여러 식재료를 기발하게 결합해 맛있는 샐러드를 만들어내는 사고와 다르지 않다. 분명 장삼이사가 보기에 특별한 사고를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잘 따져보면 그 특별한 사고는 평범한 사고의 은폐된 변주이거나 평범한 생각들의 결합일 수 있다.

창의적 사고와 그로 인한 창의성이 통찰이나 직관으로 얻어지는 것일지, 꾸준한 인지적 학습과정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일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다. 통찰이나 직관으로 얻어진다면, 창의성을 원하는 우리는 노력하기보다 여유를 갖고 삐딱해져야 한다. 꾸준한 인지적 학습과정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범생이 되어야 한다.

“세계의 역사는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고 말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예술 장르로서의 비디오 아트를 창시했던 백남준은 놀랍게도 ‘일종의 아카데믹한 삶을 살았다.’ 백남준은 1956년부터 1963년까지 독일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혁명적 예술가의 실험적 새로운 시도를 접하고 그 시도의 기저에 있는 생각을 읽고 이해하며 고민했다. 그는 부유한 한국 가정에서 태어난 성실한 아들로서 우선 순수하게 아카데믹한 진로를 밟으려고 노력했다. 작곡, 음악학을 넘어 철학과 예술사까지 포괄하면서 경계를 넘나드는 이론적 기초를 수립했다. 요컨대 혁명가로서의 본색을 드러내기 전의 백남준은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그것도 받아 적고 외우기 바쁜 동양적 의미가 아닌 서구적 의미였다. 열심히 공부해 잘 이해했고, 이해에 기초해 문제의식을 가졌다. 당시 혜성같이 떠오르고 있던 혁명가 슈톡하우젠과 그를 지지하는 철학자 아도르노에 비판적 입장을 가졌던 것이다. “슈톡하우젠에게 미쳐서 망가지고 있는 젊은 작곡가들을 보고 있자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라는 평은 공부를 꽤 한 사람이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백남준은 수많은 당대 최고 예술가를 만나 소통했다. 그들로부터 귀중한 생각과 정보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백남준이 가졌던 비판적 문제의식은 이후 그로 하여금 이질적인 것들을 연결하게 해주는 지적 토양이 됐다. 백남준은 예술과 일상의 통합, 종합예술, 예술의 장르들을 뒤섞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범생이 어느덧 삐딱한 창의적 반항아가 되기 시작했다.

시학과 심리학, 창의성을 연구하다

백남준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은 존 케이지(John Cage)였다. 케이지는 지난 호에서 잠깐 소개했듯이, 삐딱한 인물로 일생을 시작했다. 모범생 백남준과 달리, 그는 대학을 자퇴했고, 작곡가라면 누구나 배워야 하는 화성학을 끝내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룬 현대음악상의 혁신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케이지는 우선 새로운 소리를 추구했다. 1938년 그는 ‘조작된 피아노(prepared piano)’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정상적 피아노의 현들 사이에 고무나 금속성의 오브제들을 끼워 넣었다. 조작된 피아노를 치면 일종의 타악기 관현악단, 특히 인도네시아의 전통음악 연주 형태인 가믈란이 내는 음색을 들을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1938년 케이지는 [바쿠스의 술잔치]를 작곡한다. 이 작품은 원래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 무용음악이었다. 그런데 무대가 작아 다수의 연주자와 그들의 많은 타악기가 전부 들어갈 공간이 없었고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악기가 피아노였다. 잠깐 고민하던 케이지는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후 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바쿠스의 술잔치]가 만들어졌고 이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 ‘조작된 피아노’를 사용했다.

1939년부터 케이지는 자동차 브레이크와 통조림통, 조개껍질 등 길거리에서 얻을 수 있는 오브제들을 사용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자동차 브레이크와 통조림통 등을 사용하면서 케이지는 음악적 음과 소음의 구분을 부정하게 됐다. 새로운 소리에 대한 관심은 이제 전기적 도구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1942년 [상상적 풍경 3번]에서 케이지는 전기발전기, 전축, 금속성 롤러 등을 이용한다. 1951년의 [상상적 풍경 4번]에서는 연주자 한 명이 소리를 방출 중인 열두 개 라디오를 조작해 소리를 만들어낸다.

1951년 케이지는 제자를 통해 『주역』을 접한다. 이 책은 잘 알려진 대로 점괘를 위해 사용되지만, 우연적 사건들의 질서를 묘사하는 우주철학서이기도 하다. 케이지는 이 책을 읽고 그 원리를 작곡 전략으로 채택했다. 작곡을 위해 케이지는 이 책에 질문을 던졌고, 책은 케이지의 질문에 대답을 주었다. 케이지에게 이런 작업은 자연의 작동 방식을 모방하는 일이자, 작곡가의 주관적 의지에서 벗어나는 음악을 만드는 일이었다.

자연을 보듬고 인간의 주관을 거부하는 태도는 케이지에 따르면 동양적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아무런 수정이나 처리 및 통제를 가하지 않은,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그저 귀를 기울이라는 주장으로 발전했다. 유명한 작품 [4분 33초]는 주어진 순간에 연주회가 열리는 장소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들을 것을 주장한다. 연주자는 연주가 이루어질 무대에 올라 4분 33초 동안 어떤 일도 하지 않다가 다시 들어간다. 사람들은 그 덕분에 자신의 주위에서 발생하는 소리들을 주의 깊게 듣게 된다.

모범생 백남준 vs. 반항아 존 케이지

청중은 자기가 듣는 것에 모종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스스로 작곡가가 된다. 어떤 한 작곡가가 주어진 음들을 조작하고 통제해 그들에게 인위적 질서를 부여해 만들어낸 ‘구성주의적 작품’ 개념과 그런 작품을 작곡하는 작곡가 개념이 사라진다. ‘작품을 대면했던 청중’의 자리에 ‘작곡가의 반열에 오른 청중’이 들어선다. ‘연주’는 아무나 할 수 있으며 모든 곳이 연주 장소가 될 수 있다. 이 작품을 오늘날에는 관현악단이 연주하기도 한다. 누가 연주하든 어떤 음도 연주되지 않은 채 4분 33초가 흐른다.

케이지는 자연에 반하는 인위적 노력의 산물인 음악과 그것이 아닌 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케이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귀를 기울이라. 그대 주변의 모든 것이 음악일지어니. 귀 기울이는 자가 곧 작곡가다.” 이말은 곧 음악은 항상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음악을 듣기 위해 우리 주변의 모든 소리를 멈추면 우리는 음악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의 이러한 새로운 ‘철학적이며 개념적인 음악’은 이후 백남준과 플럭서스 운동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반항아 케이지가 전혀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는 거인이 가득했고, 그들의 어깨 위에 쉬이 오를 수 있었던 케이지는 그렇게 하기 어려웠던 백남준에 비해 훨씬 쉬엄쉬엄 공부했지만, 혁명가가 될 수 있었다. 창의성은 상황과 주체에 따라 달리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백남준은 어렵사리 창의성을 얻는 우리 한국인의 모습이다. 우리는 케이지처럼 쉽게 살아가지 못할 운명인 것 같다.

- 김진호 안동대 음악과 교수

※ 김진호는…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1812호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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