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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기업에서 배운다] 명품 주방용품 기업 휘슬러 

170년간 주방 문화를 바꾼 기술력 

박지현 기자
지금도 한 집 걸러 소장한다는 휘슬러의 명품 압력밥솥은 174년 장인정신의 상징이다. 알렉산더 셀치(Alexander Selch) 휘슬러 본사 CEO가 포브스코리아와의 이메일 인터뷰에 응했다.

▎휘슬러는 한국에서 특히 인기 있는 독일 명품 주방용품 기업이다. 올해 출시된 한국형 ‘솔라임’. 요리가 완성되면 하모니카 소리가 난다. / 사진:휘슬러 제공
1977년까지 독일로 건너간 한국 광부는 7932명, 간호사 1만226명. 이들은 흩어지는 현지 밥알이 영 입에 맞지 않았다. 우연히 휘슬러 압력솥에 밥을 지었는데 밥이 찰졌다. 한국에 들고 들어오니 ‘정부미도 햅쌀밥으로 만드는 기적의 압력솥’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주부들 사이에선 밥솥을 단체로 구입하기 위한 ‘휘슬러 계’도 생겨났다. 독일 프리미엄 주방용품 휘슬러가 처음 아시아 시장에 발을 들인 계기다.

“우리가 이 압력솥을 개발할 때만 해도 서구에서는 고기나 채소를 찌는 용도라, 매일 쓰는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파독 한국 간호사와 광부가 우리 제품을 밥 짓는 용도로 쓰며 한국에 전파한 것입니다. 서구와 다른 한국의 식문화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연 것이죠.”

알렉산더 셀치 휘슬러 CEO는 한국 시장에서 휘슬러 제품의 인기가 들불처럼 번진 시대적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셀치 CEO는 “휘슬러는 주부들의 오감을 충족하는 최고의 기술력을 전해왔다”며 “휘슬러 제품의 진화는 수백 년간 이어온 각 나라 식문화를 담은 시대상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사업가 아닌 발명가 마인드, 기술력


▎1951년 세계 최초로 바닥을 엠보싱 처리한 노보그릴 발명.
휘슬러는 1845년 칼 필립 휘슬러가 독일 이다어오버슈타인에서 창립했다. 발명가였던 창립자는 주방에 ‘공학’을 접목했다. 각 나라 조리 패턴, 사용자(주부)들의 손 크기 등을 연구하며 창의적인 기술들을 선보였다.

주방기구 역사에서는 휘슬러의 혁신적인 모멘텀이 두드러졌다. 생산라인에 처음으로 증기기관을 도입해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1890년 세계 최초로 주방기기에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했다. 전쟁 중에도 혁신적인 제품이 나왔다. 1892년 ‘굴라시 대포’라 불린, 바퀴 달린 이동식 주방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야전 식당으로 활용되며 약 120인분의 음식을 만들 수 있어 지금도 구호단체 활동 및 대규모 행사에 사용된다.

휘슬러는 20세기 중엽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냈다. 멀티 레벨 밸브가 달린 최초의 압력 조리기를 개발한 것이다. 조리 시 스팀으로 산소를 방출해 식재료 본연의 맛과 영양소를 지키고, 조리 시간을 70%나 단축했다. 건강하고 경제적인 변화. 이것이 세계 주부들을 사로잡은 휘슬러 압력솥의 시작이다.


▎1970년대 솔라 제품의 포스터 이미지.
사소해 보이지만 주부들에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기술들도 이들의 자랑이다. 조리 시 진공 상태로 영양소를 유지하는 유로매틱 시스템, 바닥을 올록볼록 엠보싱 처리해 열 보존율을 높인 노보그릴, 기름기나 수분이 있는 음식을 따를 때 냄비 외벽에 내용물이 묻지 않고 꽈배기 모양으로 떨어지게 하는 푸어링 림 등은 휘슬러만의 전매특허 기술들이다.

‘이 정도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수천, 수만 번을 진행한 제품 테스트도 기술력을 보증했다. 1.5kg 냄비에 1만5000번이나 진행한 손잡이 중량 변형 테스트를 비롯해, 자동차 타이어 실험보다 2배 이상 강력한 조건에서 폭발 압력 테스트를 한다. 또 5분 동안 3.6바 압력을 견디는 압력솥 변형 테스트 등은 시간과 자본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술력에 자부심이 있는 만큼 보안도 철저하다. 셀치 CEO는 “본사와 공장을 174년간 옮기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기술 누출 방지’”라며 “특허등록도 이제 매우 심사숙고한다”고 말했다. 60년간 휘슬러가 보유한 특허는 200여 개가 넘지만, 등록을 의도적으로 멈췄다. 특허등록이 한편으론 신기술 공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휘슬러의 모든 제품은 독일 본사와 공장이 있는 이다어오버슈타인에서 100% 현지 제작된다. 세계 대부분 기업이 손쉽게 선택하는 OEM 방식이 아니다. 한곳에서 이뤄지는 생산과정은 완벽한 품질관리를 추구한 휘슬러 장인정신의 상징이 됐다.


▎1845년 휘슬러 창립 당시 휘슬러 하우스.
지리적 이점도 있다. 인구 3만5000명 정도인 작은 고장은 광산에 인접해 있어 보석, 귀금속 세공업으로 유명하다. 독일에서도 대를 이어 내려오는 장인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휘슬러 직원 중에도 2대째 ‘직업을 계승’하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

신제품 개발 속도나 회전이 빠르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새 제품 출시에 평균 4~5년이 걸린다. 시장 진출도 신중하다. 프리미엄 A/S 관리와 10년 이상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곳에만 진출한다. 더딘 신제품 개발이 약점이 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셀치 CEO는 “비즈니스 전략 중 하나는 사업가 마인드가 아닌 휘슬러 가문의 전통인 발명가 관점”이라며 “유행에 맞춰 색만 바꿔 신제품을 내놓는 등 세일즈를 위한 제품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제품의 개선을 넘은 혁신이 우리의 업무 스탠더드”라고 덧붙였다.

직원 수도 많지 않다. 전 세계 80여 개국에 진출한 근로자 수는 전체 1000명 미만이다. “사업적 확대보다 제품과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는 게 중요해 앞으로도 무리한 확장 계획은 없다”는 게 휘슬러의 공식 입장이다.

이는 직원에 대한 투자가 더 집약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휘슬러는 직원들의 R&D를 위한 컨설팅, 소프트웨어, 필요한 장비 등에 꾸준히 투자한다. 셀치 CEO는 “구체적인 수치로 말할 수는 없지만, 냄비 하나 개발에 6자리(유로) 단위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고 언급했다.

지역 맞춤형 기술, ‘글로컬라이제이션’


휘슬러가 지역 맞춤형 기술개발로 잘 알려진 건 나라마다 식습관과 문화가 다른 걸 이해해서다. 지금도 국가별 히트 아이템이 있다. 전 세계 부엌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조리 패턴을 지속적으로 분석, 연구하는 데서 기인했다. 바로 세계 속 지역화로 불리는 글로컬라이제이션(글로벌+로컬라이제이션)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 전용 제품도 별도로 출시된다. 독일 공장에 한국 주부 전용 생산라인이 있을 정도다. 올해 나온 한국형 제품 ‘솔라임’은 5년 만에 출시됐다. 독일에서 73가지 품질 검증 과정을 거쳤다. 휘슬러 R&D팀은 한국 조리 문화와 주부를 오랫동안 관찰해 한국 요리에 직화열을 이용해 ‘센불’에 ‘오래’ 끓이는 국과 찌개 요리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한국 전용 제품은 기존 유럽 제품보다 냄비 바닥이 두껍다. 뚜껑도 돔 모양으로 설계해 조리 시 스팀 구멍으로 음식물이 쉽게 끓어 넘치지 않게 했다.

특히 솔라임 제품은 ‘보고’ 요리하는 조리 패턴을 ‘듣고’ 요리하는 걸로 바꿨다. 제품 뚜껑에 하모니카 리드를 탑재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품의 기능적인 차별화가 돋보인다. 한국 주부들이 유럽에 비해 부엌에 머무는 시간이 1.5~2배 정도 많다는 점에 착안해 주방에서 해방 시켜줄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한 것. 요리가 완성되면 조리 중 뚜껑을 열어보지 않고도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 연주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하모니카 제조사 세이델(Seydel)사와 컬래버레이션을 했다. 특히 사람이 듣기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이 제품엔 한국 주부들의 손 크기에 맞는 손잡이, 계량 눈금, 노보그릴 등 한국 조리 패턴에 맞는 기능들이 있다. 출시 6개월 만에 신제품은 입소문으로 재주문을 요청해야 할 정도다.

한편 현대의 식문화 변화로 휘슬러도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직화열이 아닌 전기열로 바뀌는 추세인 데다 외식문화와 간편조리문화로 변화해서다. 그럼에도 셀치 CEO는 자신감이 넘쳤다. “전반적으로 달라지는 식재료에 비해 도구나 용품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린 영양학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단 여러 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인기있는 상품에 집중하는 접근법이 아니라 치밀한 타깃 연구로 제품을 출시한다”고 덧붙였다.


▎알렉산더 셀치 휘슬러 본사 CEO. / 사진:휘슬러 제공
“소비자 중 가장 까다로운 타깃층이 바로 주부”라는 알렉산더 셀치 휘슬러 CEO의 언급은 ‘언제나 완벽하라(Perfect Every Time)’는 브랜드 철학이 엿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소비자들과 함께 볶고 삶고 찌면서 쌓아온 정서적 유대관계가 우리의 경쟁력”이라며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부들에게 ‘아름다운 애장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던 이유다”고 말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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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호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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