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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으로 탄탄해진 일본 성년후견제 

 

배정식
성년후견제도는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준비물이었다. 제도 취지는 좋았으나 악용 사례도 꽤 보고됐다. 일본에선 ‘신탁’을 성년후견제도의 부작용을 해결해줄 대안으로 삼았다.

지난 10월 한국에서 주목할 만한 행사가 열렸다. 법무부와 대법원, 한국후견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세계성년후견대회(World Congress on Adult Guardianship, ‘WCAG’)다. WCAG는 성년후견 및 의사결정지원 제도에 관해 논의하는 국제적인 포럼으로서 UN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30여 개국에서 정부 관계자, 법조인, 후견활동가 등 500여 명이 참석하는 행사다. 한국이 개최지로 선정된 건 일본, 호주, 미국, 독일에 이어 다섯 번째고, 아시아에선 두 번째 개최국이 됐다.

10월 한국에서 세계성년후견대회 열려

필자가 속한 은행도 ‘후견과 신탁’ 세션에 참여했다. 그만큼 성년후견제도는 한국뿐 아니라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국가를 중심으로 글로벌한 이슈가 되고 있었다. 성년후견제도는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피후견인의 복리를 위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해 피후견인의 신상과 재산을 보호하는 제도다. 하지만 모르는 이가 훨씬 많다.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UN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이 총인구 중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aging society), 14% 이상이면 고령사회(aged society),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post-aged society)로 정의한다. 한국은 이 비율이 이미 2017년에 14%를 넘어섰다. 통계청은 앞으로 10년 안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이 늙으면 질병에 걸리기 쉽고, 판단능력은 저하된다. 그래서 이들을 도와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성년후견제도다.

물론 부작용도 많았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1999년 민법을 개정해 성년후견제도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친족후견인에 의한 업무상 횡령 사건이 끊이지 않았고, 전문직후견인에 의한 횡령·배임까지 발생했다. 일본 최고재판소에 따르면 부정행위나 직무태만 등으로 해임된 성년후견인은 2000년 37건에서 2010년에는 538건으로 급증했다.

일본은 이 문제가 자금관리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신탁’에 주목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지 못한 후견인이 비위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고 피해 복구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2012년 2월부터 후견제도 지원신탁제도를 도입했다. 신탁은행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게 하고 매달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일반 계좌로 받는 식이다. 각종 다툼을 예방하는 확실한 방법은 신상보호 주체와 재산관리 주체를 분리한다는 취지에서다. 재산관리 주체가 공적기관이면 더 확실한 방법이 된다.

부작용의 원흉 ‘재산관리’, 신탁에 맡겨

이른바 ‘후견과 신탁의 컬래버레이션’이다. 그래서 최근 성년후견지원신탁이 뜨고 있다. 성년후견지원신탁이란 피후견인의 재산상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신탁으로 재산을 관리하는 상품이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을 위해 은행과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피후견인의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 피후견인에게 필요한 생활비, 의료비 등을 지급하는 동시에 법원에 그 내역이 정기적으로 보고된다.

법원은 계약 체결과 변경, 해지에 대한 허가를 통해 후견인을 감독하고, 후견인은 은행을 통해 재산을 관리함으로써 재산관리 부담을 덜었다. 피후견인의 재산을 신탁 설정하면 피후견인의 판단력이 감소 또는 상실하더라도 해당 재산이 경솔하게 처분하거나 사기를 당할 염려가 사라진다. 신탁계약과 함께 후견을 개시하는 경우 신상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재산의 보호, 관리, 수익 등을 도모할 수 있는 셈이다. 고령자가 이미 보호상태에 있다면 안전한 노후생활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은 2012년 2월부터 후견지원신탁제도를 도입했다. 성년후견인은 신탁계약에서부터 많은 지출이 일어나는 경우까지 모두 신탁으로 처리했고, 가정재판소가 사전심사를 맡았다. 이로써 성년후견인의 횡령 사건이 크게 줄었고, 피후견인의 재산상 피해도 예방할 수 있게 됐다. 일본신탁협회에 따르면 후견제도지원신탁의 수탁건수는 2013년 1048건에서 2017년 2만927건으로, 수탁고는 2013년 350억 엔에서 2017년 6173억 엔으로 증가했다. 후견재산관리를 신탁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증거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한국에도 귀감이 되는 사례다. 한국이 앞서 본 포럼 개최국이 된 것도 성년후견제에 쏠리는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의 예를 봐도 단순히 성년후견제도만 실행하면 상당한 부작용이 초래된다. 이를 신탁으로 풀어가면 피후견인의 재산관리를 후견인에게 전적으로 맡겨 생기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일본 사례에서 입증됐다. 이번 포럼에서도 신탁은 중요한 이슈이자 논제였다.

한국에도 ‘성년후견지원신탁’ 상품이 있다. 2016년 12월 KEB하나은행이 은행권 최초로 관련 상품을 출시해 2017년 1월 첫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로써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은 하나의 사회적 기능을 맡게 됐다. 앞으로 신탁을 활용해 피후견인의 복리가 더 개선되리라 기대해본다.

-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201901호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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