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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THE BOROS COLLECTION 

전쟁 벙커를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독일 컬렉터 

박은주 전시 기획자
독일에서 벙커는 참혹한 역사의 잔해인 동시에 미래다. 독일인에게 괴로운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벙커들은 전쟁 이후 버려졌다가 감옥, 과일과 채소 저장소, 나이트클럽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가장 흥미로운 용도 변경은 단연코 현대미술 전시장이다. 독일 컬렉터들의 심도 깊은 열정과 작품을 선택하는 혜안은 예술가들만큼이나 탁월하다. 그중 대표적인 컬렉터는 크리스티안 보로스(Christian Boros)다.

▎Christian und Karen Boros Foto: © Wolfgang Stahr / 사진:copyright The Boros Collection
독일 총통으로 게르만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전 세계에 드러낸 아돌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인이었다. 가난과 연속된 비운으로 불행했던 조국을 뒤로하고 독일 뮌헨에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자 지원병으로 입대했다. 실업학교 이후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고 화가로서도 실패했던 히틀러는 독일군으로 무공을 세우며 군인으로서 뛰어난 기질을 지닌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게다가 그는 웅변에 능했다. 히틀러는 나치스라는 반유대주의 정당에 가입했고 뛰어난 웅변술로 정치인으로 거듭나 민중의 지지를 얻게 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베를린에 있는 지하 벙커(Fuhrerbunker)에는 하루 전날 결혼했던 에바 브라운과 함께 1945년 4월 30일에 자살했던 방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지하라 습도가 높았던 히틀러의 방 한구석에는 산소호흡기와 소화기가 있고 그가 사용했던 책상과 소파가 있었다. 그가 죽은 지 70년이 지난 후 벙커는 박물관으로 바뀌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베를린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베를린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에 대비해 독일인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벙커가 곳곳에 남아 있다. 2000명가량 수용할 수 있었던 벙커에는 화장실이 없고 공기조차 부족할 듯한 작은 창문이 있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1만3000명이 빽빽이 서서 하루 종일 대피해야 하는 순간들도 자주 있었다. 독일인에게 괴로운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벙커들은 전쟁 이후 버려졌다가 감옥, 과일과 채소 저장소, 나이트클럽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가장 흥미로운 용도 변경은 단연코 현대미술 전 시장이다.

히틀러 지시로 만들어진 벙커 구입


▎Yngve Holen Foto: © NOSHE
독일에서 벙커는 참혹한 역사의 잔해인 동시에 미래다. 벙커를 부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며 역사와 묵묵히 직면하는 독일은 현재 유럽연합 국가들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과거는 독일인들이 더욱 숙고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고 게르하르트리히터, 안젤름 키퍼, 게오르그 바젤리츠, 마르쿠스 루페르츠 등 대가들을 배출했다. 이런 특별한 분위기에 이끌려 영국 작가 토니 크라그, 한국 작가 양혜규,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 미국 국적을 가진 아일리쉬 작가, 숀 켈리 등 수많은 나라의 작가들이 독일로 모여든다. 때론 “독일은 예술가들의 나라다”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독일 컬렉터들의 심도 깊은 열정과 작품을 선택하는 혜안도 예술가들만큼이나 탁월하다. 그중 대표적인 컬렉터는 크리스티안 보로스(Christian Boros)다.

1964년 폴란드 자브제에서 태어난 크리스티안 보로스는 공산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독일 서쪽에 있는 쾰른으로 이주했다. 독일에서는 18세 성인이 되면 부모님이 자동차를 선물해주는 문화가 있다. 여유 있는 프랑스와 벨기에 부모들도 같은 선물을 한다. 크리스티안이 18세가 되어 자동차 면허를 따자 부모님이 차를 살 만한 돈을 주었고 그는 자동차 대신 그의 첫 예술품을 선택한다. 예술을 향한 그의 열정을 그 당시 부모님과 친구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크리스티안은 독일의 부퍼탈(Wuppertal)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학위를 받았다. 문화 도시 부퍼탈은 크리스티안에게 더욱 큰 영감을 부어준 특별한 곳으로, 애초부터 지닌 예술을 향한 열정과 호기심에 불을 지핀 곳이었다. 문화와 예술의 접목은 그에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과 능력을 부여해주었고 결국 부퍼탈에서 광고 회사를 설립했다.

지금은 베를린에 거주하는 크리스티안 보로스는 광고업계에서 성공한 사업가로서 부퍼탈에 거주했었던 2000년부터 자신의 방대한 컬렉션 전시 기획 포부를 실현할 베를린의 역사적인 장소를 물색했다. 당시 베를린에는 수영장, 영화제작소 등 소장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지만 그는 역사적인 장소를 선호했다. 결국 2003년에 미테(Mitte) 지역에 위치한 Reichsbahnbunker를 구입했다.

크리스티안이 구입한 벙커는 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43년에 히틀러의 명령으로 건축가 카를 보나츠가 설계했다. 다른 벙커들과 마찬가지로 이 벙커도 과일 저장고와 테크노 나이트클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나이트클럽으로 사용될 때는 ‘most hardcore club in the world’로 불렸던 명소였다. 크리스티안은 벙커 외부와 내부를 보자마자 자신이 그토록 찾던 공간임을 인지했다. 곧바로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위해 런던의 화이트 큐브, 도쿄의 G6, 서울의 청담에 위치한 CELINE, 베를린의 Jewish Museum, 베를린의 Bauhaus Archive, 쾰른의 Museum Ludwig 등을 책임졌던 건축가 캐스퍼 뮐러 니어에게 위임했다. 총면적 2800㎡로 크리스티안의 30년 컬렉션 작품(1990년부터 구입)들을 전시할 갤러리와 꼭대기에 있는 펜트하우스는 릴아키텍투(Realarchitektur) 디자인의 결실이다. 직원 30명이 일하는 펜트하우스를 포함한 보로스 재단을 방문하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 보로스 부부는 예술 애호가들이 차세대를 위해 부부가 구입한 개념미술 작품들과 직접 소통하길 원한다. 그에게 예술작품은 다음 세대에 남길 문화 자산이며 역사이고 소통의 한 방법이다.

현대미술 필수 방문지 된 보로스 재단


▎Katja Novitskova Foto: © NOSHE / 사진:copyright The Boros Collection
2008년에 첫 전시를 한 보로스 재단은 2012년에 이미 관람객 12만 명을 기록했고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총 20만 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보로스 부부는 2006년 ARTnews에서 TOP 200 collectors로 선정됐다. 컨템퍼러리 아트 애호가들의 필수 방문지가 된 보로스 재단은 이미 전 세계로 알려져 두 달 전 예약은 필수다.

꼭대기 층에 있는 펜트하우스에서 생활하는 보로스 부부는 데미언 허스트, 올라퍼 엘리아슨, 볼프강 틸만스, 안젤름 레일, 코시마 본 보닌 등의 작가들에게 벙커라는 공간을 염두에 둔 특별 제작 작품을 주문했다.

꼭 닫힌 두꺼운 문을 보면 어디가 정문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입구를 찾기 위해 건물 사면을 돌고 있었는데, 방문 예약 시간이 되니 누군가 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그곳이 입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막상 건물 내부에 들어가니 예전에 여러 용도로 사용되면서 남겨진 흔적들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동시에 작품들이 그 공간에 훌륭히 배치되어 마치 아트 바젤의 Unlimited 전시관을 축소해놓은 듯했다. 공간마다 각기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해 독립적인 구조를 이룬다. 페인팅, 조각, 설치, 비디오, 사진, 드로잉 등 다양한 개념미술 작품들이 전시되는 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벙커로 사용되었을 때 이 미로에서 대피하다가 출구를 찾아 나오기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2대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 회장과 베르나 아르노 회장은 모두 아트 어드바이저 장자크 아야공(Jean-Jacques Aillagon), 수잔 파제(Suzanne Page) 등 여러 명의 조언을 참조하며 컬렉션을 한다. 그러나 보로스 부부는 1차 선별을 해주는 큐레이터나 어드바이저 없이 스스로 작품을 선택한다. 그야말로 컬렉터의 온전한 결정으로 선택된 작품들이다. 그래서인지 보로스 부부의 취향이 더욱 돋보였다. 그들은 우선 벙커를 개인 소장품 전시장으로 혁신적으로 구상했을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열정을 지녔다. 보로스 부부는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여러 국적의 개념미술 작가들과 독일의 젊은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큐레이터나 어드바이저 없이 직접 작품 선별


▎Außenansicht Bunker Foto: © NOSHE
갤러리들을 돌아보면서 2018년 아트 바젤에서 대형 달걀판을 금색으로 제작하고 달걀 한 개를 중앙에 세운 작품을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던 구안 샤오(Guan Xiao), 파리의 팔레 드 도쿄에서 거미들이 만든 거미줄 설치작품과 먼지를 소재로 한 드로잉과 영상 작품으로 호응을 얻고 있는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 푼타 델라 도가나 박물관과 구겐하임 박물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감동을 선사했던 댄 보(Danh Vo), 자연에서 옮겨온 흙을 브론즈로 제작한 페인팅 작가 안드레아스 에릭손(Andreas Eriksson) 등의 작품들을 반갑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특히 2002년 35세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요절한 전설적인 룩셈부르크 작가 미셸 마제루스(Michel Majerus)의 대형 작품 여러 점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개념미술 작가 조지프 코시스의 제자로 베를린에서 활동했던 미셸 마제루스는 디지털 미디어와 페인팅을 결합한 대형 작품을 제작한 작가다. 페인팅은 미셸 마제루스가 선호하는 표현 매체였지만 컴퓨터 게임, 디지털 이미지, 영화, TV, 팝 음악에서부터 상표와 기업 로고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의 여러 분야로 확장됐다. 가장 전성기를 이루던 시기에 요절한 작가에 대한 보로스 부부의 경이로운 존경심을 느꼈던 방이다.

그들은 첫 번째 전시 기간을 4년으로 잡았다.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전시하는 박물관이나 아트 재단이 없다. 이 기간은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의 요청에 따라 보로스 부부가 결정한 시간이다. 전시 작품들도 오래전에 구입한 작품들과 최근에 구입한 작품들을 함께 선정한다. 오로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작품들을 선정한다. 올라퍼 엘리아슨, 볼프강 틸만스, 토마스 루프, 엘리자베스 페이톤 등은 부부가 합의해서 구입한 소장품이라기보다는 크리스티안의 취향과 카린의 취향, 부부가 함께 결정한 작품들로 구성했다.

독일은 유럽에서 영국, 프랑스와 더불어 가장 많은 수집가가 있는 나라다. 크리스티안처럼 19991년 이전에 수집을 시작한 수집가가 72%나 된다. 독일 수집가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들은 시그마 폴케, 조지프 보이스, 게르하르트 리히터, 게오르그 바젤리츠, 볼프강 틸만스 등이다. Larry’s list는 [Top 10 Most Impressive Private Art Museum Buildings]에 Sammlung Boros(Berlin, Germany)를 으뜸으로 선정했다. 2018년 AXA 보험회사의 연구에 따르면 40세 미만인 영 컬렉터들은 전체 컬렉터의 15~25% 를 차지하며 그중 94%가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다. 벙커라는 역사적인 공간에 설립된 보로스 재단은 영 컬렉터들과 예술 애호가들의 순례길이 되어 그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Installationsansicht mit Arbeiten von Michel Majerus Foto: © NOSHE / 사진:copyright the Boros collection



▎He Xiangyu Foto: © NOSHE



▎Yngve Holen Foto: © NOSHE
※ 박은주는…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1901호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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