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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혁신 아이콘’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조득진 기자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지난 연말 인사에서 유임됐지만 새로운 시험대에 섰다. 현대카드는 수년째 점유율 정체 늪에 빠졌고, 순이익은 떨어졌으며 이 때문에 인력 감축을 계획 중이다. 한때 ‘혁신 아이콘’으로 불리던 정 부회장의 위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가 쥔 반전 카드는 무엇일까.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12년 만의 최저 순이익, 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인력 감축이라는 난관에 처했다. 롱런을 이어갈 수 있는 반전 카드에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정태영 부회장에게 아주 긴 겨울이 찾아왔다. 점유율 정체, 순이익 감소 등 실적 악화에 가맹점 수수료 인하 정책까지 겹쳐 현대차그룹 금융사업의 미래가 어둡기만 하다. 이제 그의 자리마저 위태롭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업계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지적이다. 정태영(59) 부회장이 대표를 맡은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등은 카드업계에 부는 불황과 모기업 현대차의 어닝쇼크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 구조조정까지 각종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카드 실적이 가장 심각해 2018년 3분기까지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0%나 추락했다. 12년 만의 최저치다. 현대라이프생명은 부실 경영 끝에 최근 최대주주가 대만의 푸본생명으로 바뀌며 간판도 ‘푸본현대생명’으로 교체됐다. 급기야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는 인력 감축을 계획 중이다. 지난해 11월 보스턴컨설팅그룹은 400명 감축을 제안했다. 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다.

무엇이 문제일까. 2003년 현대카드 대표에 취임한 정 부회장은 디자인 경영과 문화 마케팅 등을 주도하며 금융계에서 ‘혁신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취임 당시 시장 점유율 1.7%로 업계 꼴찌였던 현대카드는 2017년 기준 점유율 13.1%, 업계 2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최근 매출과 점유율이 답보 상태를 보이면서 경영 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업계에선 최근 정 부회장에게서 신선하고 파격적인 행보를 찾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CEO가 성공의 단맛에 취해 옛것을 답습하는 순간 조직의 혁신은 사라진다”는 매서운 질책도 있다.

우선 실적.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현대카드 실적을 보면 2018년 3분기까지 매출 2조2470억원, 영업이익 1616억원, 순이익 1278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5% 늘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3%, 30% 급감했다. 현대커머셜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639억원으로 전년 동기(2627억원) 대비 75.5%나 줄었다. 2017년에 현대카드의 지분 매입에 따른 일회성 요인(1740억원) 등을 감안해도 28%가량 감소했다.

실적 악화, 인력 감축에 거세지는 ‘무능론’


▎정태영 부회장의 문화 마케팅 ‘약발’이 다했다는 평가다. 서울 이태원에 있는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전경.
현대캐피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 2조3217억원, 영업이익 2842억원, 순이익 2597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 동기(매출 2조2828억원, 영업이익 2368억원, 순이익 2268억원)와 비교하면 각각 1.7%, 20%, 14.5%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2016년 실적과 비교하면 매출은 비슷한데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2.1%, 6.3% 감소했다. 2017년 실적이 저조해 나타나는 기저효과일 뿐 완전한 실적 회복을 이루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현대카드의 레버리지(부채성) 비율은 지난해 1분기 5.6배로 늘어나 제한수치에 근접하기도 했다. 같은 기간 삼성카드의 3.5배와 비교하면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다. 금융당국은 건전성 강화를 위해 레버리지 비율을 6배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부진한 실적과 과도한 부채비율은 고스란히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말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는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의 글로벌 신용등급을 각각 BBB+에서 BBB, A-에서 BBB+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신용평가도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실적 악화는 결국 인원 감축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정 부회장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경영체질 개선 컨설팅 작업을 통해 총 400명 인력을 축소해야 한다는 안을 제시받았다. 감축 규모는 현대카드에서 200명, 현대캐피탈과 현대커머셜에서 각각 1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의 정규직 규모는 각각 1692명, 1809명, 460명. 3개사 정규직 3961명 가운데 10% 이상을 정리하라는 것이다. 현대카드는 ‘창업지원’과 ‘미충원’ 등의 방식으로 인력 감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현대카드가 ‘무노조 경영’을 하고 있어 손쉽게 감축 카드를 꺼낼 수 있다”며 “경영진이 경영 실패 책임을 지지 않고 구조조정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대카드의 순익은 하락세를 면치 못한 반면 정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의 보수는 급등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특히 정 부회장의 보수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14억8200만원이다. 전년 상반기 9억7900만원에서 50% 이상 치솟았다. 현대커머셜에서는 상반기에 7억6900만원을 받았다.

성공 모델 답습하느라 혁신 기회 놓쳐


업계에서는 금융계 ‘혁신 아이콘’의 몰락을 과도한 현대·기아차 의존에서 먼저 찾는다. 현대카드는 그동안 모기업의 자동차 판매와 연계한 영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펼쳐왔다. 현대차나 기아차를 구입할 때 소비자가 현대카드로 결제하면 할인 혜택을 주는 식으로 고객을 확보한 것이다. 이는 현대차뿐 아니라 삼성, 롯데 등 대기업 카드사의 경영 방식이다.

현대캐피탈은 더 심각하다. 할부금융과 리스 수익이 전체 수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캐피탈은 매출의 80% 이상을 현대·기아차에서 얻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캐피탈은 현대·기아차의 캡티브 파이낸싱(전속 금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회사인 만큼 의존도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실적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2017년 3분기 영업이익 1조2042억원을 기록한 이후 내리막길을 걸어 좀처럼 영업이익 ‘1조 클럽’에 재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현대차가 지난해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어닝 쇼크’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현대라이프생명 매각 과정에서 정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2012년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정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아온 현대라이프생명은 부실 경영으로 6년간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결국 지난해 9월 대만 푸본생명에 매각됐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등 여신 위주의 사업을 하던 정 부회장이 수신이 주된 업무인 생명보험사에도 같은 마케팅 전략을 도입한 것이 패착”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과 현대카드 출신 경영진은 대형 마트에 상품을 진열하고, 자판기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등 획기적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 관계자는 “권유와 설득에 의해 가입하는 보험의 속성을 무시하고 카드사처럼 상품만 좋으면 성공할 줄 알았다가 시장에서 외면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부회장이 실적 부진의 해결책으로 꺼낸 것은 영업점포 폐쇄, 설계사 감축, 내근직원 50% 해고안 등 인적 감축이었다.

‘이미지 마케팅’이 또 다른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취임 초기 후발주자였던 현대카드를 키우기 위해 획기적인 혁신과 아이디어가 필요했던 정 부회장은 카드에 색, 디자인, 정체성을 입히는 것부터 시작했다. 강렬한 색상을 입혔고, 그 색상에 맞춰 소비 패턴, 타깃 소비자 층을 구분했다. 이어 음악과 연극, 미술, 무용,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문화 아이콘을 선별하여 소개하는 문화 마케팅을 진행했다. 이 같은 시도는 큰 호응을 얻으면서 많은 충성 고객을 보유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관습처럼 굳어진 기존 기업문화를 타파하는 혁신적인 행보도 선보였다. 승진 연한을 기존 4~5년에서 2년으로 낮추고, 승진 심사도 1회에서 3회로 확대했다. 연차 상관없이 실력을 평가해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취지였다. PPT 금지와 점심시간 폐지, 단정한 캐주얼을 입을 수 있게 한 ‘뉴 오피스 룩’도 그의 작품이다. 일각에서는 ‘보여주기식 혁신’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멀어지는 금융계열사 독립 경영의 꿈

핵심은 그의 답습되는 혁신이 기업과 직원의 성장으로 연결되느냐다. 최근엔 경쟁 카드사들이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현대카드의 과도한 마케팅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게다가 현대카드 측이 강조하는 ‘현대카드=문화 마케팅’이라는 인식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자리 잡았는지, 그것이 지갑을 열어 현대카드를 꺼내는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수치화할 수 없다는 평가다. 지난해 12월 현대카드는 7개 전업 카드사 중 휴면 신용카드 수가 1년 새 가장 큰 폭(43.6%)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평균 증가율은 4.6%였다.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의 ‘반전 카드’로 디지털화를 꼽았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동 공유오피스 스튜디오블랙에서 연 ‘입주기업 타운홀 미팅’에서 “지갑 속 다른 카드를 제치고 지속적으로 현대카드를 꺼내게 하려면 분석이 필요하다”며 “카드에 들어 있는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5년 뒤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 동력으로 빅데이터 확보와 분석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해 8월 삼성카드의 18년 독점 체제를 깨고 미국 대형 유통업체인 코스트코와 10년간 독점계약을 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선보인 ‘더 그린(the Green)’ 카드의 가입자 급증세는 단기적 호재다.

관건은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 내에서 추락하고 있는 자신의 영향력을 높여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느냐다. 그동안 재계에선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를 독립 경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오히려 현대차그룹이 현대카드를 비롯한 비주력 금융계열사를 매각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정태영 부회장의 혁신 경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201902호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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