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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THE FEUERLE COLLECTION 

베를린 역사와 중국 예술의 만남 

박은주 전시 기획자
2017년 컬처트립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 작품을 수집하는 세계 10대 컬렉터 중 비아시아인이 절반에 이른다. 데지레 퓨에를르도 아시아에 특별한 애정을 쏟는 컬렉터다. ‘Global Private Museum Network’ 창립 멤버인 데지레 퓨에를르는 2016 아트넷 뉴스가 발표한 100대 컬렉터에 선정된, 독일의 10대 컬렉터다.

▎Désiré Feuerle in front of Anish Kapoor, Torus, Steel, diameter 110㎝. Photo: defimage © The Feuerle Collection / 사진:copyright The Feuerle Collection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컬렉터 중 아시아인이 아닌 컬렉터로는 벨기에의 기&미리엄 울렌스, 스위스의 울리 지그, 모니크&막스 버거, 호주의 커&주디스 닐슨, 프랑스의 도미니크& 실뱅 레비다. 2017년 컬처트립(Culture Trip) 발표에 따르면 서양인들의 아시아 문화를 향한 동경과 호기심이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전시 장소도 2차 세계대전 통신 벙커


▎The Feuerle Collection Photo: def image © The Feuerle Collection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데지레 퓨에를르(Désiré Feuerle)도 아시아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컬렉터다. 그는 아시아와 베를린을 오가며 컬렉터, 아트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컬렉터로서 모던아트, 컨템퍼러리 아트와 역사 깊은 아시아아트를 병합하는 특별한 컬렉션을 하는 것이 다른 수집가들과 다른 점이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피노 회장과 베르나 아르노 회장은 자신의 개인 박물관을 책임지고 있는 디렉터에게 소장품 전시 큐레이팅을 맡긴다. 데지레의 또 다른 점은 Zeng Fanzhi, Anish Kapoor, Nobuyoshi Araki, Rosemarie Trockel, James Lee Byars, Per Kirkeby, Sigmar Polke, Gilbert & George 등의 작가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직접 자신의 컬렉션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다.

덴마크인과 독일인은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듯하다. 데지레도 전시장 벽을 빼곡히 메우기보다는 작품들이 저마다 파동을 전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배려해준다. 베를린 비엔날레 기간 동안 자신의 박물관을 비엔날레 작품 전시장으로 바꿔놓을 때도 큰 공간 안에 전시된 작품 수는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작품이 그의 수장고에서 언젠가 돌아올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Installation view of The Feuerle Collection. Head of Young Make Divinity, Khmer, Baphuon Style, 11th Century, Stone. Photo: Nic Tenwiggenhorn © Nic Tenwiggenhorn / VG Bild-Kunst,Bonn
퓨에를르 컬렉션 전시 장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통신 벙커로 사용했던 곳이다. 이곳을 발견한 데지레는 아시아 골동품과 고가구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고 다양한 시대의 서로 다른 문화 간 소통을 이끌어내기에 이상적인 장소라고 직감했다. 일반 박물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과 달리 혁신적인 관점을 창조해 관람객의 공감각적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장소였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도시, 베를린의 벙커에는 외부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또 다른 우주가 창조됐다.

미니멀리즘 미학 창조한 공간으로 건축


▎Installation view of The Feuerle Collection. Khmer Deities from 10th to 13th Century with Chinese Platform, Han Dynasty, China, 2nd Century BC - 2nd Century AD. Photo: def image ©The Feuerle Collection
그는 벙커를 박물관으로 용도변경 하기 위해 베니스에서 도쿄까지 개성 있는 여러 도시를 방문하며 건축가를 찾아다녔다. 마침내 그가 선택한 건축가는 영국인 존 포슨이었다. 존이 추구하는 미니멀리즘 미학은 단번에 그를 매료시켰다. 요크셔 출신인 존 포슨은 20대 중반에 일본으로 떠났는데 일본 체류 마지막 기간에 도쿄에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시로 쿠라마타를 만났다. 쿠라마타는 MoMA와 파리 현대미술관 등 대형 박물관에서 소장하는 미니멀한 가구를 제작한 건축가다. 영국으로 돌아온 존 포슨은 1981년 런던건축협회(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에 입학해 사업을 시작했다. 존 포슨은 이후 공간, 비율, 빛과 재료의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었다. 뉴욕 캘빈클라인 컬렉션 스토어, 홍콩 캐세이퍼시픽 공항 라운지, 런던 마이클 휴 윌리엄스 갤러리, 체코 ‘The Abbey of Our Lady of Nový Dvůr’, 런던 디자인 뮤지엄, 일본 오키나와 하우스가 그의 작품이다.

데지레 퓨에를르는 존 포슨이 벙커 내부를 박물관으로 개조한 후 2016년 4월에 자신의 이름은 딴, 퓨에를르 컬렉션 전시장을 개장했다. 그의 컬렉션은 돌, 청동, 나무로 된 7~13세기의 크메르(Khmer) 조각뿐만 아니라 한(Han)에서 청 왕조(Ching dynasties)에 이르는 중국(기원전 200년~18세기)의 황실 가구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중국의 골동품과 조각, 가구들이 쩡판즈와 아니쉬 카푸어, 아담 푸스 등 생존 작가들의 작품들과 나란히 배치된 광경은 모던아트와 컨템퍼러리 아트를 나누어 두 층에서 각각 전시하고 있는 퐁피두센터의 전시에 익숙한 습관에서 탈출하게 해주었다.

돌, 청동, 황실 가구 등 아시아 컬렉션 선보여


▎Cristina iglesias, Pozo Xii(Desde dentro), 2016 bronze, pietra serena, electric material and water Photo: Nic tenwiggenhorn © Nic tenwiggenhorn / vG bild-kunst, bonn
수백 년 된 아시아 골동품들이 아시아가 아니라 독일의 특별한 역사를 지닌 벙커에서 국제적인 생존 작가들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 것은 늘 남다른 아이디어를 가진 데지레의 과감한 도전이며 전 세계 컬렉터들에게 모범이 된다. 수집 작품들이 어떤 관점에서 새롭게 보이는가는 절대적으로 수집가의 결정에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베를린처럼 거친 역사를 지닌 도시에서 중국 골동품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우아함을 지닌 작품들이 전시되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데지레는 이 대조적인 두 가지를 공유해 베를린의 역사도, 중국의 가구들도 모두 새롭게 인식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관람객들은 많은 아시아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파리의 기메 박물관에서 감상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압도된다.

데지레 퓨에를르가 아시아, 특히 중국에 강한 호기심을 가졌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다. 유럽인으로 태어나 유럽보다는 중국에 더 민감한 자극을 받았던 그는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아시아에 살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생활을 했다. 즉 그의 초기 수집에 가장 큰 동기가 된 것은, 자신에게 이색적으로 다가왔던 새로운 문화에서 느끼는 일상의 즐거움들이었다. 그의 수집 배경은 중국의 역사를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지키고자 개인적인 선호도를 뒤로한 스위스 컬렉터 울리 지그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데지레는 어려서부터 수집에 열정을 보였다. 첫 수집은 열쇠로 시작했다. 투박하고 오래된 열쇠를 주로 사용하는 농부들에게 열쇠가 있는지 물어보러 갔고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성과 수도원의 열쇠를 구하러 다녔다. 그 후 새로운 수집 취미가 이어졌는데 그것은 은찻잔과 은 커피포트였다. 그는 왜 그토록 실버에 매혹됐을까? 그는 미국의 주얼리 회사 티파니와 독일의 바우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매료시킨 실버 오브제들을 구해 소장했다. 그는 지금도 은제품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outside view of the Feuerle incense room. Female Divinity, khmer, baphuon, 11th Century, stone. khmer sculptures reflections. Photo: def image©the Feuerle Collection
다른 시대, 다른 성격의 예술을 병치하는 그의 즐거움은 30년 역사에 이른다. 그는 모던아트의 마스터 작품들과 컨템퍼러리 작가들의 작품들 중 인상 깊었던 작품들의 엽서를 모았고, 그것들을 함께 보았을 때 작가에 대해 더욱 깊이 깨닫게 됐다. 그것은 마치 중국 골동품 의자 하나만 있을 때는 관심이 덜 가다가 모던한 현대식 의자와 함께 있을 때 그 둘의 가치가 더욱 드러나는 것과 같다. 이브 클라인과 플럭서스 아티스트, 조지프 보이스, 독일 표현주의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 미국의 브라이스 마던의 타피스리는 그의 기획 아래 하나가 됐다. 그가 갤러리를 시작했을 때도 길버트&조오즈의 사진은 골동품 시계와 나란히 전시됐다.

수집가들에게 작품 한 점 한 점은 자신의 직감이며 느낌이고 지식의 결과물이다. 데지레 퓨에를르는 평생 간직해온 두 대륙에 대한 관심과 서로 다른 두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이토록 이색적인 재단을 설립하게 됐다. 디아예술재단, 베이에를재단, 메닐 컬렉션, 지추아트뮤지엄 등에 감동한 그는 담백하게 컬렉터의 삶을 전한다. “예술은 내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늘 눈을 크게 뜨고 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Global Private Museum Network 창립 멤버인 데지레 퓨에를르는 2016 아트넷뉴스가 발표한 100대 컬렉터에 선정된, 독일의 10대 컬렉터다. 그리고 그의 컬렉션은 LARRY’S LIST COLLECTOR AWARD 2016에서 New Private Museum of the Year로 뽑혔다.

※ 박은주는…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1902호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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