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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기업에서 배운다] 루프트한자그룹 

최고에 최선을 입힌 유럽 최대 항공사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기업. 저가항공이 강세일 때 ‘프리미엄’ 전략으로 브랜드를 전면 개편하고, 경기가 불황일 때 새 기체를 도입한다. 전사 디지털 혁신을 도입해 4차 산업혁명에 실제 뛰어들었다. 루프트한자(Lufthansa) 그룹은 최고가 아니면 용납하지 않는 특유의 깐깐함으로 똘똘 뭉쳤다.

▎루프트한자그룹은 지난해 학(crane)로고 100주년을 맞아 전사적으로 브랜드 CI를 바꿨다. 프리미엄 항공사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 사진:루프트한자그룹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에선 느려도 꾸준한 거북이가 빠르지만 게을렀던 토끼를 이긴다. 항공업계에선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 부지런한 토끼만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항공산업은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라 유가, 환율, 금리 등 외생변수에 민감도가 높기 때문이다. 예측 불허의 악재를 견디기 위해 전 세계 항공사들은 구조조정, 항공기 주문 축소 등 움츠린 경영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업은 전 세계 최초로 기내 인터넷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젠 중장거리 전 기종에 깔렸다. 전자 수화물 체크인, 챗봇 서비스, 휴머노이드 로봇 등 여객기에 디지털 혁신을 적극 반영했다. 프리미엄 차별화도 높였다. 섬세한 서비스로 지난해 항공업계 전문조사기관 스카이트랙스가 선정한 ‘2018 유럽 최고 항공사’로 선정됐다. 160여 개국 2000만 명 승객의 평가로 얻은 결과다.

유럽 최대 글로벌 항공사 루프트한자그룹(이하 루프트한자)은 ‘꾸준히’ 과감한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석유 파동 때도 꿋꿋이 버텨냈다. 남들이 주춤할 때 적극적으로 기체 도입과 투자에 나섰다.

“루프트한자그룹은 고객 만족도를 최우선으로 달려왔습니다. 포트폴리오를 정비하기 위해 투자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습니다. 개별 시장 매력, 경쟁력, 성공을 위한 잠재력 등 그룹 네트워크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검토합니다.”

3월 8일 강남의 사무실에서 만난 알레한드로 아리아스(Alejandro Arias) 루프트한자 한국 지사장은 성장 요인을 이렇게 정리했다. 실적도 뒷받침됐다. 루프트한자의 2018년 총매출은 358억 유로(약 46조원)로 전년 대비 6% 증가했다. 조정된 영업이익 28억 유로는 전년 대비 1.7% 감소했지만 이마저도 호실적이다. 카르스텐 슈포르(Carsten Spohr) 루프트한자그룹 회장은 “연료비 상승의 악재와 파산한 에어베를린 인수 비용을 상쇄하고도 기록한 성과”라며 “루프트한자그룹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이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 기내 인터넷, 디지털화 선두


▎알레한드로 아리아스 루프트한자 한국 지사장은 ‘디지털화’와 ‘혁신’을 그룹 키워드로 꼽았다. / 사진:김현동 기자
아리아스 지사장은 루프트한자의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디지털화’를 꼽는다. 루프트한자는 전사적으로 디지털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0년까지 5억 유로(약 7000억원)를 투자해 디지털 서비스도 강화하기로 했다. 세계 최초 도입한 기내 인터넷은 승객들이 가장 반기는 서비스다. 지금은 모든 장거리 노선에 인터넷망을 깔았다.

2014년엔 독일 베를린에 디지털 연구소도 설립했다. ‘루프트한자 이노베이션 허브’라고 이름 붙인 이곳에서 사업가, 벤처투자가, 항공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과 함께 여행·운송 분야의 디지털 사업 모델, 파트너십, 투자 전략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곳은 독일 경제 잡지 ‘캐피털 매거진’에서 독일 최고 혁신 연구소로도 선정한 바 있다.

아리아스 지사장은 디지털 도입 사례를 몇 가지 더 들었다. 먼저 디지털 수하물 체크인 시스템인 스마트 백 태그(Smart bag tag)다. 독일 가방 브랜드 리모와(RIMOWA)와 협업해 만든 전자 시스템이다. 라벨이 장착된 여행 가방으로 정보를 전송하면 내장 데이터 모듈로 종이 라벨과 동일한 바코드가 나온다. 아리아스 지사장은 “승객들은 전자 태그를 활용해 집에서나 이동 중에 발권과 수화물 체크인을 할 수 있다”며 “공항에서 기다리거나 체크인을 하지 않아도 돼 간편해졌다”고 말했다.

화물(cargo)사업부도 세계 최초로 전자 위험물품 신고(eDGD) 발송물을 처리했다. 운송 포털을 이용해 선적 전 동봉된 문서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전자 시스템이다. 그동안 위험물품 신고는 종이로만 가능했고 운송업체가 보낸 세관신고 절차도 복잡했다. 이로써 루프트한자는 전자화물 운송계획을 위한 글로벌 표준을 수립하고 지원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항공사가 됐다. 선적이 거부되는 출하 물량도 줄일 수 있고 신속한 프로세스로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항공 모바일 앱과 온라인 서비스에서 AI 도입도 조만간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루프트한자는 챗봇 ‘마일드레드’과 뮌헨 공항에 배치한 휴머노이드 로봇 등 혁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016년 공개한 챗봇은 페이스북 메신저 기반 서비스로, 사용자들과 대화식 인터페이스로 항공요금 정보를 제공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공지능을 탑재해 길 안내와 공항 상점 위치 등 승객 편의를 돕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제 루프트한자의 디지털화는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루프트한자는 싱가포르와 중국에 아시아 디지털 허브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비아시아권 항공 그룹에선 최초다. 아시아 디지털 허브는 여행과 운송 분야 혁신 투자로 가교 역할을 할 계획이다.

한국에서도 기업들과 디지털 혁신에 동참했다. 자회사 루프트한자 테크닉(Lufthansa Technik AG)은 LG와 손잡았다. 기내 전자기기 시스템 개발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이 목표다. 독일 함부르크에 설립하는 법인은 공공장소나 상업공간 등에 설치되는 디스플레이를 공동 개발한다.

“이제 카카오톡에서 직접 루프트한자 항공권을 살 수 있습니다.” 아리아스 지사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항공권 바이 카카오(by kakao)’는 승객들이 실시간 항공권 가격비교와 예약, 결제까지 가능한 서비스다. 루프트한자는 카카오와 ndc 표준을 적용한 항공권 ‘직접판매’ 기술제휴를 맺었다. 항공사 최초로 해당 플랫폼에 직접 입점한다. 고도의 항공기술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결실이었다.

달라진 프리미엄의 얼굴


▎루프트한자는 세계 최초로 기내 인터넷을 도입했다. / 사진:루프트한자그룹
로고는 항공사의 얼굴이다. 브랜드 이미지와 직결되기 때문에 기업은 로고 디자인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루프트한자는 지난해 대대적인 브랜드 개편 작업을 감행했다. 루프트한자를 대표하는 ‘학(crane)’로고 100주년을 맞는 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건 30년만에 변한 이미지(CI)였다. 트레이드마크인 남색·노란색 로고에서 노란색은 거의 빠진 남색으로 통일했기 때문이다. 폰트도 모바일 기기 등에 최적화된 서체로 바꿨다.

루프트한자가 노란색을 뺀 이유는 ‘프리미엄 항공사’를 표방하기 위해서다. 저비용 항공사들의 강세 속에서 한 가지 색으로 통일해 확실히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기존의 ‘실용성 높은 항공사’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기도 하다. 아리아스 지사장은 “그렇다고 승객들에게 친근한 노란색이 다 빠진 것은 아니니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며 웃었다. 공항 표지판이나 디지털 서비스에는 여전히 노란색이 사용된다.

외관만 바꾼 게 아니다. 루프트한자의 프리미엄 서비스도 한층 고도화됐다. 퍼스트클래스와 비즈니스클래스의 차별화도 주목할 만하다. 퍼스트클래스는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발레파킹 서비스와 전용 도로변 체크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개인 수행원이 여행 절차를 대신 처리해준다. 공항 대기 시간에 포르쉐나 벤츠로 부근을 드라이빙할 수 있는 건 루프트한자만의 독특한 서비스다. 라운지와 기내에서도 최고급 서비스만 제공한다. 인체공학적 설계로 만들어진 좌석과 온도조절 이불까지 갖춘 침대를 마련해뒀다.

비즈니스클래스도 달라졌다. 장거리 노선 승객에게 제공되는 ‘드림 컬렉션’엔 프리미엄 침구를 마련했다. 독일 브랜드 ‘반락(Van Laack)’, ‘파라디스(Paradies)’와 함께 만든 수면 셔츠, 순면 소재와 논슬립 테리 원단을 사용해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했다. 좌석도 넓어졌다. 약 2m 길이의 평면 침대로 쾌적한 시설을 마련했다.

승객 맞춤형 지역화 전략도 루프트한자의 자랑 중 하나다. 루프트한자는 올해도 한국 출항 35주년을 맞았다. 보잉 B747이 1984년 처음 날아오른 뒤 단항 없이 하늘을 오갔다. 승객들 의사소통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한국 승무원을 배치했고, 비빔밥, 닭갈비, 잡채밥, 갈비찜, 김치, 컵라면 등 다양한 한식을 제공한다. 다른 항공사에서는 인천발 비행기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한국 음식을 독일발 비행기에서도 만날 수 있다.

지난해엔 인천-뮌헨 노선에 최신 기종인 A350-900을 배치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아 선수단과 관광객들의 한국행에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아리아스 지사장은 “역동적인 한국은 디지털화와 자동화, 현대화 등 모든 조건에 최적화된 중요한 시장”이라며 “주요 취항지인 만큼 한국 승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루프트한자의 현재를 보면 승승장구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번번이 위기가 찾아왔다. 루프트한자는 그때마다 과감한 시도를 단행했다.

처음은 전쟁이었다. 1951년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연합군은 루프트한자를 강제로 해체했다. 1953년 독일 쾰른에서 일어선 기업은 지금의 루프트한자가 됐다. 2년 만이었다. 재기를 시도했다. 1954년 비행기 기술 유지 보수를 위해 조직과 인프라를 전면 수정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55년 함부르크와 뮌헨에서 두 개 컨베이어 비행편으로 공식적인 항공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유럽, 미국,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을 오가는 항공편도 추가했다. 1960년 루프트한자는 최초로 보잉 B707을 인수해 제트기 시대를 열었고, 장거리를 운항하며 화물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위기는 기회

1973년과 1979년,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폭등했다. 항공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문을 닫고 운항을 중지하는 곳도 생겼다. 루프트한자는 오히려 효율적인 연료와 조용한 제트엔진 개발을 주도했다. 또 경제 리스크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76년, 루프트한자는 중거리 비행을 위해 에어버스 A300 대신 최초 와이드 보디 트윈 엔진 제트(Wide-body twin-engine jet)를 운영하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 도전이 없는 건 아니다. “비행기가 대중교통 수단으로 발전하면서 항공교통(air traffic)도 복잡해졌습니다. 우린 항공기 현대화로 대응하며 빠른 연결과 적은 기착으로 다양한 경로 네트워크를 마련했습니다.” 아리아스 지사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루프트한자는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 알레한드로 아리아스 루프트한자 한국 지사장은 “모든 과정에는 ‘장기적인 안목’이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항공산업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지만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특히 기체 도입이 그렇습니다. 고객 중심을 목표로 서비스 고도화는 상수로 두되, 긴 플랜으로 접근하는 게 루프트한자의 철학이었습니다.”

이 덕분일까. 지난해 루프트한자는 유럽 항공사 최초이자 유일한 ‘5스타 항공사’로 선정됐다. 또 하나의 기록을 더한 셈이다. 루프트한자는 지금도 정해지지 않은 ‘최고’를 향해 순항 중이다.

※ 루프트한자그룹은… 540여 개 자회사와 투자처를 소유한 유럽 최대 항공 그룹이다. 독일 쾰른에 본사를 두고 있다. 여객·화물·정비·기내식·기타 총 5개 영역으로 각 분야 선두를 이끈다. 핵심 사업은 여객 부문이다. 루프트한자 독일항공, 스위스 항공, 오스트리아 항공, 브뤼셀 항공 및 유로윙스가 소속돼 있다. 전 세계에서 직원 13만5000명이 일한다.

201904호 (201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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