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장애인 음악가들 

매년 4월 20일은 법정기념일인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유명한 장애인 음악가들에 대해 알아보자. 모두가 더불어 잘 살려면 이해가 필요하다.

▎하일리겐슈타트에 있는 베토벤 하우스 전경. / 사진:김진호
장애인은 심신의 장애로 장기간에 걸쳐 직업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는 선천적 장애인과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가 생긴 후천적 장애인으로 나눌 수 있다. 위험한 현대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후천적 장애를 얻을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장애인 음악가는 베토벤이다. 대략 27세에 그에게 찾아온 청각장애는 40세에 이른 베토벤으로 하여금 음악을 전혀 들을 수 없게 만들었고, 50세의 악성(樂聖)에게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하는 상황을 가져다주었다. 원인이 무엇일까. 1827년 아직 쌀쌀한 3월, 한 어린 음악가가 사망한 그의 머리카락 일부를 잘라 가져갔다고 한다. 거장의 머리카락은 이후 이 음악가의 후손들에게 전해지다가 1994년 런던 소더비 경매소에서 세상에 공개된다. 이 머리카락을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Argonne National Laboratory) 연구원들이 분석했다. 보통 사람의 100배가 넘는 납수치가 확인되었고, 이로써 베토벤의 청각장애와 평생 그를 괴롭혔던 여러 질병의 원인이 납중독이라는 설이 유력해졌다.

베토벤은 장애를 딛고 성공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어떻게 귀가 안 들리는데 작곡을 할 수 있는지에 놀라워한다. 놀라운 일 맞다. 그런데 귀가 안 들려도 작곡을 할 수는 있다. 선천적 청각장애를 겪음으로써 태어날 때부터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다면 모를까, 어려서부터 음악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던 27세 젊은이가 그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작곡의 길이 원천 봉쇄된 것은 아니다. 27세 이전의 음악적 경험을 바탕으로 베토벤은 강력한 청각적 심상 능력을 키웠을 것이다. 심상(mental imagery)은 물리적 세계나 자신의 신체적 운동에 대해 인간이 가지는 정신적 이미지다. 눈을 감고 반려견이나 가족의 특정 모습을 떠올려보자. 시각적 심상이다.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를 떠올릴 수 있다면 당신은 후각적 심상 능력을 갖췄다. 미각, 촉각의 심상 능력도 있다. 심상은 사진과 같은 모습일 수도 있지만, 동영상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당신은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 경치 좋은 필드에 나가 골프를 치는 당신의 동작 하나하나를 떠올리고 연습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는 피아노 연습 상황을 떠올릴 수 있었고, 심상 연습만으로도 충분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아란후에즈 궁전의 왕궁. / 사진:KMUG
작곡가들을 비롯한 전문적 음악인들은 예전부터 알고 있는 음악을 심상으로 떠올릴 수 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가끔 50분 수업시간 동안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나 브람스의 [교향곡 4번] 같은 음악을 머릿속에서 틀어놓은 채 수업하시던 선생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내 옆의 친구는 나에게 “야, 그 음악 같이 좀 듣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향곡 9번]의 연주시간은 50분이 넘는데, 나는 수업 막바지 시간에 내 머릿속 레코드플레이어를 빨리 돌려야 했다. 그리하여 내 머릿속에서 음악은 2배속 혹은 3배속으로 연주되기도 했다.

전문적 작곡가들은 처음 보는 악보를 보고서도 그것이 연주될 경우 발생하는 음향을 예측할 수 있다. 이 경우 심상 능력은 추론적이기도 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코슬린(S. M. Kosslyn)은 심상이 한 단위의 능력이 아니라 특수화된 능력의 무리로 구성된다고 말했다. 코슬린의 이 주장에 부응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전문적 음악인들은 처음 보는 악보를 보고서 그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광경을 떠올릴 수 있다. 여기에는 카라얀의 지휘 및 연주자들의 연주 동작과 같은 시각적 요소들과 그들에 의한 음향이 있다. 화려하게 편집된 카메라 앵글을 따라가는 카라얀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다.


▎노래 부르고 있는 안드레아 보첼리. / 사진:위키피디아
음악적 심상 능력은 음악가가 아닌 이들도 가지고 있다. 어떤 가수가 노래하는 장면을 기억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청각적 심상과 시각적 심상 모두를 가지고 있다. 여러분은 이 상황을 통제할 수도 있다. 앞의 상황에서 시각적인 것만 빼보자. 여러분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한 번도 라디오로 들은 적이 없다. 항상 동영상으로 그 가수의 노래를 접했음에도, 이제 여러분 마음속에서 그 가수의 노래를 라디오를 통해 듣는 것처럼 순전히 청각적인 것으로 떠올릴 수 있는가? 가수 이문세의 노래를 이선희 혹은 아이유가 부르는 것으로, 혹은 테너 파바로티가 부르는 것으로 떠올릴 수 있는가? 이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음악가가 아닌 여러분도 음악적 심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것을 통제할 수도 있다.

이런 심상 능력이 있었기에 청각장애인인 베토벤도 작곡을 할 수 있었다. 오늘날 많은 평범한 작곡가도 실제의 귀를 이용해 작곡하지 않는다. 자신의 악상을 피아노로 쳐보지 않는다. 마음속 귀로 들으며 작곡하는 이가 많다. 베토벤은 잘 듣지 못하는 것보다는 귀 울음 증상과 청각과민증으로 더 큰 고통을 받았다. 귀울음은 귀가 계속해서 심각하게 울리는 증상이며, 청각과민증을 가진 이들은 옆에서 들을 수 있는 자극적인 소리, 이를테면 옆 사람의 기침소리를 듣고선 심한 통증을 느낀다. “내 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울립니다. 정말 무섭습니다”라는 베토벤의 고백이 남아 있는데,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이런 상황에 처한 이들은 자신이 귀신 들린 것이 아닐까 의심할 것이다. 심각하게 피폐해져 있었을 베토벤의 심신 상태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다.


▎2003년 마지막 콘서트 중인 레이 찰스. 레이 찰스의 여러 노래 중 ‘Georgia on My Mind’는 특히 애절하다. 조지아(Georgia)는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은 여동생의 이름이다. 앞이 안 보여 동생을 구할 수 없었던 레이 찰스의 참담한 마음이 애절하게 표현된 노래다. / 사진:위키피디아


연주가들에게 치명적이었던 청각장애


▎하일리겐슈타트에 있는 베토벤 하우스 내 베토벤의 유서. / 사진:김진호
청년 베토벤은 이 상황에서 자살을 생각했는데, 오스트리아의 빈 근교 하일리겐슈타트라는 소도시로 요양을 간 후 한동안 머물러 있으며 유서를 썼다. 빈에서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이 도시에 베토벤 박물관이 있고, 그곳에서 유서를 볼 수 있다. 어떤 이유로 그가 삶을 다시 살겠다고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쨌든 다시 빈으로 온 청년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뛰어넘으려고 노력했다.

베토벤 말고도 청각장애인인 작곡가가 더 있었다. 오늘날의 체코 보헤미아 지역에서 태어나 활동했던 스메타나, 프랑스의 가브리엘 포레, 영국의 랠프 본 윌리엄스는 유명하다. 덜 유명한 작곡가들까지 뽑아보면 청각장애를 가진 작곡가가 꽤 있다.

청각장애는 작곡가들보다는 연주가들에게 치명적이다. 베토벤도 지휘자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지휘나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과거의 클래식 작곡가들에게는 시각장애가 더 심각하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악보를 적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말년의 바흐와 헨델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존 테일러라는 안과의사에게 안과 수술을 받은 후 모두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메시아]와 같은 유명 오라토리오를 포함해 다수의 작품을 작곡했던 헨델은 1751년 이 영국인 기사(chevalier)에게 수술을 받고 1752년 67세에 완전한 시각장애인이 되었고, 1759년 75세로 타계할 때까지 거의 작곡을 하지 못했다. 바흐의 상황도 비슷했다. 18세기 대표적 돌팔이 의사였던 테일러는 이후 계속 안과시술을 해 100여 명의 시각을 빼앗았다.

유명한 [아란후에스 기타 협주곡]을 작곡한 스페인의 호아킨 로드리고(1901~1999)는 3세 때 디프테리아를 앓고 시각을 잃었다. 8세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고 16세 때 작곡을 배운 로드리고는 이후 브라유(Braille) 점자(點字) 타자기를 이용해 악보를 만들 수 있었다. 브라유는 1821년 점자를 고안한 프랑스인인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의 성이며, 브라유의 점자는 이후 수학과 과학 기호용, 음악 기호용, 속기용 등으로 활용되었다. 그 결과, 1892년에는 브라유 타자기가 고안되었다. [아란후에스 기타 협주곡] 2악장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기타 선율과 극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인다. 중년의 어른들은 이 선율을 과거 모 방송사의 [토요명화] 시그널로 많이 들었을 것이다. 아란후에스는 스페인의 한 도시이자 이 도시 속 궁전이기도 하다. 이 궁전은 스페인 최전성기의 통치자 펠리페 2세가 지었다.

점자 악보의 등장으로 인해 시각장애인 클래식 연주가들은 예전보다 훨씬 좋은 환경을 맞았다. 팝페라 가수로도 알려져 있지만, 어쨌든 클래식 성악가로서는 드물게 음반 수천만 장의 판매 실적을 보여준 안드레아 보첼리는 대표적인 시각장애인 음악가다.

짧고 상대적으로 단순한 대중가요를 작곡하고 부르는 가수들의 경우 시각장애가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걸로 보인다. 레이 찰스나 스티비 원더 등 흑인영가나 블루스, 재즈 분야에서 활약한 시각장애 음악가들이 있다. 영국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에 따르면 어떤 음악가들은 영광의 의미로 자신의 이름에 ‘눈이 먼’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Blind’를 갖다 붙이기도 한다. 블라인드 레먼제퍼슨, 블라인드 보이스 오브 앨라배마, 블라인드 윌리 맥텔, 블라인드 윌리 존슨 등등. 이들은 머릿속에서 떠올린 후 악보에 적지 않고 바로 부를 수 있을 선율들을 작곡했다.

다른 장애도 많다. 이를테면 오른팔을 잃고 왼팔만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간 사람도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언어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인 파울 비트겐슈타인 같은 이다. 파울을 비롯한 다른 장애인 음악가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다룬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1904호 (2019.03.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