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조지선의 ‘리더 습관’(4) 

당신의 습관을 만드는 ‘단서’ 

습관은 견고해질수록 보상과 분리되고 목표나 의도가 사라져도 존재한다. 습관의 역설이다. 습관 행동을 만들기 위해서 팝콘을 부르는 영화관, 영어 단어를 외우는 출근길 등 행동 지휘의 ‘단서’를 찾아내야 한다.

주례회의에 대한 지인의 푸념은 한참 이어졌다. “그 회의에 들어가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에요. 세 시간 회의가 말이 돼? 알 필요도 없는 얘기를 매주 듣느라 정작 그날 할 일을 못 해요.” 금요일 오전이면 모든 부서가 한자리에서 시시콜콜한 보고를 하는데, 그걸 다 듣는 게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우리 보스는 표정이 맑아요. 그 회의에 대한 ‘회의’를 못 느끼는 거죠. 주례회의를 할까 말까? 형식을 바꾸면 어떨까?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그의 상사는 업무 역량이 의심스러운 저성과자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 시간 회의를 도입한 배경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효율성보다는 협업, 원 팀(One Team) 정신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지금 눈총을 받는 관행도 한때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였다.

행동을 지배하는 습관의 역설

‘리버스 벤치마킹(reverse benchmarking)하라!’ 런던경영 대학원의 프릭 버뮬렌이 2017년 그의 저서 『나쁜 습관 깨기(Breaking Bad Habits)』에서 제안한 것이다. 최고에게 배우는 벤치마킹 대신에 늘 고수하던 전략이나 정책, 관행을 그만두면 무슨 일이 생길지 고민하라는 것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습관 깨기를 통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냈다. “비행기에서 밥을 안 주면 어때? 기내식을 안 먹는 대신 항공권을 싸게 살 수 있다면 고객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어느 조직이든 오래된 관행의 비효율성 문제를 가지고 있다. ‘조직 습관’이다. 하던 대로 긴 문서를 작성하고, 동일한 비품을 여러 부서가 중복 구매하고, 익숙한 고객 집단에만 집중한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 개인이 가진 습관도 마찬가지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만들려면 습관의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아니,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습관의 자동성을 이해할 때 습관과 싸워 이기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습관을 어떻게 정의할까? 학문적 정의를 천천히 곱씹어보면 정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습관이란 단서와 행동 사이의 연합을 학습한 결과로서, 상황적 단서에 의해 행동이 자동적으로 유발되는 현상이다. 역시 뭐든지 학자들의 손을 거치면 아주 건조하게 변한다. 이것을 말랑하게 풀어보자.

어떤 단서(cue)가 주어질 때마다 특정 행동이 반복되면 단서와 행동 사이에 연결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이 뇌에 기억으로 저장된다. 일단 연결이 형성되면 단서에 반응해서 의식적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행동이 유발되는데 이를 습관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출근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 하는 습관을 생각해보자. 매일 아침 단서(카페)가 주어지고 행동(커피 마시기)이 반복되면 둘 사이에 연결이 형성된다. 카페를 보면 자동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행동을 지속할 때 생기는 반응 성향, 이것이 습관이다.

습관은 어떻게 시작될까? “이 집 커피는 향이 깊어. 기분이 좋아.” 보상은 습관이 시작되는 첫 번째 방법이다. 강렬한 보상이 있을 때 노력을 투입하지 않아도 행동이 반복되고 습관이 형성된다. 그런데 만약 커피 향이 주는 즐거움이 예전 같지 않다면, 즉 보상의 가치가 낮아진다면 습관이 사라질까?

어린 딸의 영화 관람에 팝콘이 빠지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팥빙수에 찹쌀떡이 빠진 것은 참아도 팝콘이 없는 영화는 단호히 거부했다. 고소한 버터와 달콤한 캐러멜 이 두 가지 맛으로 가득 찬, 커다란 팝콘 통을 옆구리에 끼고 행복해했다. “그렇게 좋으니?” “너무 맛있어요!” 입안에 퍼지는 즐거움. 이것이 영화-팝콘 습관이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을 의심할 필요가 있나 싶다.

그런데 심리학자 데이비드 닐 등의 연구를 보면 이 공식이 깨진다. 누구나 전 내 나는 일주일 묵은 팝콘에는 손을 대지 않고 바삭하고 고소한 팝콘만 먹을 것이라는 평범한 기대가 무너진다. 습관이 쓰는 반전 드라마.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다.

딸처럼 강한 팝콘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퀴퀴하든 신선하든 상관하지 않고 같은 양의 팝콘을 먹었다. “이 팝콘은 맛이 없네요.” 더 충격적인 것은 팝콘에서 묵은내가 난다는 사실을 그들이 매우 잘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반적 믿음과 달리 즐거움이 아닌, 습관 때문에 먹은 것이다. 습관의 정도가 약한 사람들은 정상적인 미각을 가진 사람처럼 맛있는 팝콘은 많이, 맛없는 팝콘은 적게 먹었다.

냄새나는 팝콘을 계속 먹지 않으려면 ‘영화(단서)-팝콘(행동)’의 자동적 연결을 깨는 개입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영화관이 아닌 회의실에서 먹거나 오른손잡이가 왼손을 사용하도록 했을 때, 강력한 팝콘 습관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오래된 팝콘을 외면했다.

습관이 견고해질수록 보상과 분리된다. 이것이 습관의 역설이다. 커피 맛이 예전 같지 않아도, 팝콘이 눅눅해도 습관은 계속된다. 보상 가치의 변화에 둔감하다. 그래서 강하다.

습관이 시작되는 두 번째 방법은 목표다. 상식적으로 습관은 목표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들다. 영어 점수를 올리고자 출근길 지하철에서 단어를 외우는 습관을 만든다. ‘시험 잘 볼 거야!’ 내면의 소리, 목표의식과 의도가 나를 성실하게 안내할 때 ‘단어 외우기’ 행동을 반복할 수 있다.

그런데 ‘견고한 습관이 견고한 목표를 전제하고 있다’는 논리적인 판단도 사실이 아니다. 심리학자 웬디 우드에 따르면 굳은 습관은 목표와 분리된다. 이 점이 습관의 또 다른 역설이다. 목표나 의도가 사라져도 습관은 남는다.

좋은 습관은 에너지를 절약한다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면서 종이 신문을 읽는다. 약간의 허전함을 달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 첫 학기를 시작하기 전 5개월간 달콤한 휴식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런데 열흘도 못 돼 보석 같은 아침 여유에 지루함이 슬쩍 끼어든 것이다. 한 시간만 종이를 만지면서 소식을 업데이트 해볼까?

커피와 신문 읽기 패턴이 반복되면서 신문은 아침 루틴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오전 여유에 깃든 희미한 무료함을 달래고자 시작된 습관은 무료할 새가 없는 날에도 지속되었다. 갓 내린 커피를 들고 식탁에 앉는 순간 자동적으로 신문에 손을 뻗는다. 바쁜 날엔 머그잔을 들고 선 채로 제목을 훑는다. 신문 읽기 습관과 허전함 달래기 목표 사이에 분리가 생긴 줄 모르고 있었다.

즐거움과 원대한 꿈, 소소함 바람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습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유는 자동성 때문이다. 신경생물학적 수준에서 살펴보면 더 명확해진다. 단서(아침 커피)와 행동(신문 읽기)의 패턴이 반복되면 둘 간의 인지적 연결이 신경 네트워크에 부호화되고 기억의 일부가 된다. 단서를 지각하는 순간 기억에 있는 ‘연결’이 활성화되고 행동이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덕분에 의식적인 의도를 가지고 애쓰지 않아도 빠르고 효율적인 행동이 가능하다. 생각할 필요가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습관은 다른 행동 대안들을 떠올릴 틈을 주지 않는다. 아침 커피를 손에 들었을 때, 신문을 읽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안 분석과 의사결정에는 자기조절력이라는 연료가 필요한데, 습관은 그 분량의 에너지를 절약하게 해준다. 고마운 일이다. 단 이것이 좋은 습관이라면 그렇다.

나쁜 습관이라면? 자동성은 내 의지에 반해 나를 지배하는 주인이 된다. 세 시간 주례회의를 하는 상사는 이 습관이 어떤 목표에서 시작되었는지 잊었을 것이다. 단서(금요일)가 주어지면 행동(회의)이 자동으로 실행된다. 습관은 최고의 하인이자 최악의 주인이다(Habit is a good servant but a bad master). 『나는 오늘부터 달라지기로 결심했다』의 저자 그레첸 루빈이 뽑아낸 습관의 핵심 속성이 참으로 절묘하다.

습관 행동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보상이나 목표가 아니라 단서다. 자동성을 이해하면 습관의 세계에서 은밀한 주인공이 ‘단서’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단서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내 행동을 리드한다. 마에스트로의 작은 몸짓이 없으면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지휘봉을 한 번 휘젓는 단서가 제시될 때, 비로소 연주자들은 활을 켜고 악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나의 행동, 혹은 조직의 행동을 지휘하는 단서들은 무엇인가?

습관을 만들 때도 적절한 단서를 설치해야 하고 습관을 멈출 때도 단서를 파악해야 한다. 내가 혹은 나의 조직이 의심 없이 자동적으로 입에 넣고 있는 묵은내 나는 팝콘은 무엇일까? 세 시간 주례회의일까? 마치 영화관처럼 이 행동을 유발하는 단서는 또 무엇일까? 오른손만 사용해왔다면 이제 왼손으로 일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

201907호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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