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한일 경제의 애증 설명서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었던 구로다 가쓰히로는 현재 일본의 나이 든 세대가 한국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대변한다.

일본 아베 정권이 한국 반도체 등 최첨단 산업에 영향을 줄 경제보복에 열중할 즈음 한국과 일본에서 생각해볼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이 된 방탄소년단(BTS)이 일본 오사카와 시즈오카에서 7월 14일까지 4차례 공연을 하면서 21만 명을 동원한 점이다. 일본 10대와 20대들 사이에서 “몸은 일본에 있어도 마음은 한국에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에서 한류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같은 시간 한국에서는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었던 70대 구로다 가쓰히로의 생각이 미디어에 보도됐다. 그는 “풍요로워진 한국은 과거 일본이 자신들을 도와준 걸 잊고 있다. 현대차는 미쓰비시, 기아차는 마쓰다가 도왔다”며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섭섭한 마음을 대변했다. BTS 현상은 현실이다. 그러나 구로다 가쓰히로의 생각은 현재 일본의 나이 든 세대가 한국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대변한다. 현대차가 1980년대 말 미쓰비시의 기술을 가져와 ‘포니’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면서 지금의 현대차로 성장하는 발판이 된 것은 맞다. 그러나 구로다 가쓰히로는 당시 대우자동차가 미국 GM의 기술을 가져와 ‘르망’을 만든 것을 잊고 있다. 즉 1980년대 말 글로벌 자동차시장은 ‘다국적 협업으로 싸고 좋은 차’를 만들려는 전략이 유행하던 때였다. 마침 한국의 위치가 이 전략을 수행하기에 적합해 현대차와 대우는 미쓰비시와 GM에 기술사용료를 기꺼이 지불하고 포니와 르망을 만든 것이다.

1993년 봄 일본 경제가 세계를 지배할 당시 초년병 기자였던 필자는 첫 해외 출장으로 일본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시골까지 도로가 닦여 있고 ‘마이카’시대를 맞아 중심지에서 벗어난 시골 마을에도 자동차 판매점이 있었다. 그날 일본을 부러워하는 필자에게 함께 저녁을 먹은 도쿄 특파원은 “한국은 죽어도 일본을 못 이긴다.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초등학교 교육부터 깡그리 뜯어고쳐야 한다”며 울분 섞인 목소리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19년 한국과 일본의 위상은 어떻게 바뀌었나? 한국과 일본의 10대와 20대는 한국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선진국임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50대 후반이 넘은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은 애증의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단 하나 확실한 건 일본 지식인들은 1998년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위기에 몰렸다 살아난 한국의 저력을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처럼 역사의 흐름을 애써 무시한 대가는 결국 큰 역풍을 부른다. 이웃 나라 일본의 이번 선택이 안타까운 이유다.

-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

201908호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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