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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여성 CEO 65인] 윤영미 하이랜드푸드 대표 

“지속가능한 공급처 확보가 매출 4300억원 비결” 

하이랜드푸드는 지난해 국내 수입고기 시장에서 물량 1위, 매출 2위를 차지했다. 17개국 해외 공급자와 신뢰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공급망과 품질관리 체계를 구축한 것이 성장의 원동력이다. 부산경제자유구역에 합작투자로 식자재 수출입 허브를 추진하고 있는 윤영미 대표는 ‘한국의 시스코(SYSCO, 북미 최대 식품유통기업)’를 꿈꾼다.

▎1969년 거제 출생, 동아대 무역학과 졸업. 1992년 성도물산 입사, 1999~2002년 캐나다 로날드A. 치즘 한국지사장, 1999년~ 하이랜드푸드 대표, 2011년~ 서울경인육류도소매업협동조합 대표
2008년 1월 경기도 이천의 한 냉동창고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다수의 인명 피해와 함께 창고에 물건을 맡겼던 기업들도 큰 손해를 봤다. 당시 재고 물량의 90%를 이 냉동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하이랜드푸드는 재고가 모두 타 버려 사업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 은행에서는 도산을 우려해 기존 대출금 회수를 압박했고 국내 업체들 중 몇몇은 회사의 부도를 기다리며 외상대결재를 하지 않아 회사경영을 더욱 힘들게 했다. 회사의 상태를 확인하는 해외 공급처의 전화가 빗발치듯이 오는 상황이었다. 이때 회사의 손을 잡아 이끈 이들은 오랜 인연의 해외 파트너였다. 그들은 “사고다. 당신 회사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대금 결제를 연기해주었고, 물량을 더 밀어주었다. 구사일생이었다.

이는 10년 동안 구축한 신뢰관계 덕분이었다. 하이랜드푸드는 육류식품 수입·가공·유통업계에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으로 이름난 기업이다. 현재 전 세계 17개국 47개 파트너사와 제품 100여 종을 거래 중이다. 1999년 직원 5명, 매출 30억원의 작은 기업에서 20년 만에 직원 200명, 매출 430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자인 윤영미(50) 하이랜드푸드 대표는 이번 포브스코리아 선정 ‘파워풀 여성 CEO’에서 17위에 올랐다.

9월 10일 서울 둔촌동 하이랜드푸드 본사에서 만난 윤 대표는 “가격 부담이 큰 국내산 우육과 돈육을 대체할 수 있는 양질의 수입 축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게 우리 비즈니스”라며 “소비자는 품질이 좋으면서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할 ‘제3의 누군가’를 기다린다. 하이랜드푸드는 ‘제3의 누군가’를 위한 허브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이랜드푸드는 식육 가공을 전문으로 하는 웰본, 육가공 제조업 및 이천복합제조물류센터 개발계획의 주관사인 하이랜드이노베이션, 외식업과 식자재유통기업 모아 F&B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우연한 독립과 탄탄대로, ‘대형화재’로 큰 위기


‘냉동탑차와 캐나다 기업 로날드A. 치즘’.

윤영미 대표가 하이랜드푸드를 창업하게 된 단초이자 기반이다.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윤 대표는 무역상사에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지방대 출신,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업이 쉽지 않았다. 고육지책으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중 1992년 선배 권유로 창업회사에 합류했다. 수입차 부품을 유통하는 회사였는데 자동차정비소를 함께 운영했다. 어느 날 냉동탑차 하나가 정비소에 들어섰다. 차주는 “태국에서 오리를 수입하고 있는데 벌이가 괜찮다. 여기도 무역회사니 도전해 봐라”며 권했다. 윤 대표는 오너를 설득해 태국 최대 기업 CP그룹의 식품계열사인 CPF(CP FOOD)에서 오리를 수입해 국내에 유통하기 시작했다.

윤 대표는 “이때 축산물 수입유통 시장의 가치와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당시 국내 농장에선 영국종 오리를 키워 시장에 내놓았는데 생산비용이 높아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태국산은 일본 기업이 기술 이전과 생산관리를 해온 터라 제품의 품질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저렴한 인건비, 사료에서 가공까지 수직계열화해 가격경쟁력도 뛰어났다. 그는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생산된 축산물은 가격이 비싸 서민들에겐 부담이었다. 국내 소비자에게 질 좋고 값싼 고기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브라질, 중국 등에서 농장을 사들여 식량자원 확보에 성공한 일본의 사례도 사업에 큰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1997년까지 사업이 급성장했지만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이에 놀란 오너가 손을 떼려 했다. 무역업에 재미를 붙인 데다 총책임자였던 윤 대표는 이때 독립을 결심했다. 마침 캐나다의 로날드A. 치즘이라는 회사가 한국지사를 만들겠다며 지사장 자리를 제안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외국기업이 한국지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1999년 한국 독점 수입사로 하이랜드푸드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2000년 들어 한국의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자 해외의 팩커(생산자조합)들이 직접거래를 제안했다. 종합상사였던 로날드A. 치즘은 사업권을 윤 대표에게 넘기며 20만 달러 신용보증까지 해주었다. 로날드A. 치즘이 후원한 ‘우연한 독립’이었다.

이후 하이랜드푸드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로날드A. 치즘 파트너 당시 구축한 공급망이 워낙 든든해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했다. 안정적인 공급은 국내 대형마트, 호텔,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음식점, 온라인숍, 도· 소매 등 2000여 개에 이르는 다양한 채널을 확보하는데 일조했다. 윤 대표는 호주산 프리미엄 와규, 스페인산 이베리코 등 고품질 상품도 국내에 선보이면서 소비자들의 다양한 기호를 창출하기도 했다. 2003년엔 축산가공 전문회사인 웰본을 설립했다. 윤 대표는 “가만히 있어도 해마다 매출이 25%씩 성장하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호사다마였을까. 잘나가던 기업은 2008년 냉동창고 화재로 다시 밑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화재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면서 소송가액 기준 280억원의 상품을 날렸다. 2008년 1240억원이던 매출은 이듬해 780억원으로 크게 떨어졌다. “참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고 말하자 윤 대표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당시엔 울지 않았어요.”

윤 대표는 “하이랜드푸드의 역사는 2008년 화재사고를 기준으로 전반 10년과 후반 10년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화재사고는 윤 대표와 하이랜드푸드에 전환점이 됐다. 윤 대표는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사업이 잘되던 ‘자동성장 시기’엔 회사 전반적으로 안일함이 존재했다. 위기감과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며 “신은 공평하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언제까지 이런 행운만 따를 것인가, 위기 대응 능력은 있는가 하는 우려가 있긴 했었다”고 말했다.

기업가에게 시련이란 ‘혁신의 시작’이다


▎소상인을 위한 맞춤 유통 R&D 채널로 활용하고 있는 하이랜드그릴과 서가연 매장. / 사진:하이랜드푸드
윤 대표는 화재사고를 분위기 반전의 기회로 삼았다. 냉동창고 화재사건이 터진 날 영업파트를 맡고 있는 남편과 손을 잡고 각오했다. “다시 맨바닥이다. 그러나 또 시작하면 된다.” 우선 윤 대표 자신부터 몸에서 금붙이 등 액세서리를 떼어냈다. 스스로 2년 동안 월급을 반납하고 재건 의지를 보였다. ERP 구축 등 내부시스템 보강 작업에 속도를 가했고, 외부에서 인재도 영입했다. 그는 “시련과 위기가 혁신을 불러왔고, 연구개발 투자로 이어졌다. 다행히 직원들이 잘 따라와주었다”고 말했다.

2016년 손실을 모두 털어내고 본격적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우선 해외 공급자인 팩커들을 대상으로 직간접 투자를 진행했다. 이 역시 하이랜드푸드의 강점인 직소싱 능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이다. 윤 대표는 “축산물 유통의 성공 여부는 공급자와 직거래를 얼마나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 공급자(목장) 입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안정된 판로가 필요하다. 직소싱으로 목장-에이전시-국내업체로 이어지는 수입유통 과정을 목장-국내업체로 줄이면서 가격경쟁력 제고는 물론이고 품질관리도 철저해졌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해외 팩커에 대한 투자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농가에서도 누군가 내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사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설비를 투자하고 꾸준히 개발합니다. 그게 바로 파트너십이죠. 우리가 강소기업으로 살아남은 비결은 그들과 신의를 지킨 것입니다.”

직소싱 발굴은 윤 대표가 직접 나선다. “사장부터 말단직원까지 항상 대리의 마음으로 실무에 뛰어든다”는 그의 말처럼 매년 출장길만 30만㎞가 넘는다. 그의 첫 번째 소싱 원칙은 ‘남과 다르게 선택한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대표는 “윤 대표는 해외 팩커에 가면 먼저 쓰레기통부터 뒤진다”고 말했다. 생산자 대부분은 시장에서 잘 팔리는 부위의 상품화에 주력하고 나머지는 부실하게 처리하는데 윤 대표는 거기에서 상품화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는 말이다. 윤 대표는 “수요가 없어 버려지는 원료를 상품으로 개발하면 공급자에겐 새로운 수익을, 소비자에겐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다”며 “이미 시장이 형성되고, 시장에서 인기 있는 원료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을 시장에 접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소싱 원칙은 ‘7부 능선 법칙’이다. 윤 대표는 원료 가격이 상품 가격의 7부 능선에 다다르면 원료 구입을 중단한다. 대신 대체재를 찾아 시장에 유통시킨다. 상품 가격이 오르는 맛에 취해 원료를 비싸게 취급하다 보면 결국 모든 피해는 소상인과 소비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는 “공급자와 거래처를 보호하는 전략이다. 이런 예측을 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노하우”라고 말했다.

도·소매업자와 상생하는 ‘물류·유통 허브’ 목표


▎첫 언론 인터뷰에 나선 윤영미 대표는 변화와 노력을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그를 버티게 하는 힘이자 경쟁력으로 보인다. 그는 “매출 성장만큼 상생경영, 일자리 창출 등 사회 기여에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랜드푸드의 국내 파트너는 전국 2000여 도·소매 유통 사업자다. 이들 대부분은 자체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영세사업자로, 하이랜드푸드와 직접 거래해 안정적인 가격으로 상품을 매입하고 있다.

해외 공급자가 많은 하이랜드푸드는 글로벌 시장의 축산물 소비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런 정보를 국내 소상인들과 공유하고 있다. 윤 대표는 “합리적인 판매와 소비를 돕는 것이 우리 유통업자들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 허브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이에이징(Dry Aging) 스테이크가 비싼 이유를 예로 들었다. 이유는 국내 시장의 경우 아직 수작업에 머물고 있으며 유통단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료가 어느 지역에서 들어온 것인지도 몰라 소비자의 우려도 크다. “축산물은 원산지가 상당히 중요해요. 이 소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풀과 물을 먹고 어떤 공기를 맡으며 자랐는지 정보가 필요하고 국내에 들어오는 유통 이력도 중요하죠. 여기서 품질과 위생이 좌우되기 때문이에요. 이런 유통과정의 통로, 허브 역할을 우리가 하려는 것입니다.”

하이랜드푸드는 국내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다양한 스펙의 제품을 개발해 판매처에 공급하기도 한다. 윤 대표는 “스페인의 이베리코 돈육을 국내시장에 적합한 부위(구이용)와 포장방식(소량포장)으로 현지에서 가공해 수입하고, 국내 소비자 판매 단계에서 선별·제거되는 지방과 뼈를 현지에서 제거해 공급하면서 로스(loss) 비율을 10% 이상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부부나 가족이 매장을 운영하는 소상인들에겐 아주 유효한 상품 형태다.

외식매장 하이랜드그릴(이탈리안 스테이크 레스토랑), 서가연(한식, 구이 전문), 육대쌈(육류 무한리필)도 같은 맥락이다. 윤 대표는 “소비 트렌드를 모르면 구매와 직결할 수 없다”며 “가공공장을 하면서 소고기를 어떻게 패키징해야 수율은 높이고, 인건비를 아끼는지 알게 됐다.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어떤 형태로 고기를 가져다주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파악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종의 테스트 키친으로, 연구개발(R&D)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윤 대표의 최종 목표는 ‘한국의 시스코(SYSCO, 북미 최대 식품유통기업)’다. 이를 위해 복합 제조·물류센터를 경기도 이천에 추진 중이며,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6만6000㎡(약 2만 평) 부지에 식품 물류센터·제조공장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30조원 규모 국내 식자재 시장에서 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이 중 부산 프로젝트 속도가 빠르다. 캐나다, 호주 파트너사와 MOU를 체결하고 투자에 나섰다. 윤 대표는 “최근 아시아와 남미에서 불고기 등 한국 음식의 인기가 높지만 현지에서는 양념을 만들기가 어려워 제맛이 나지 않는다”며 “육우 유통업자에게서 원료를 수입해 부산에서 가공 후 아시아나 남미에 수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메이드 인 코리아’ 상품을 생산하는 기지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식재료 업체와 주변 농가의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 대표는 최근 국내 축산업에서 2세 경영이 하나둘 등장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얼마 전 미국 몬타나주의 2억2400만㎡(6800만 평) 대목장에 견학을 다녀왔다. 연간 육우 10만 두를 출하하는 곳이다. 30대 안팎의 두 젊은이가 소를 몰고 있었는데 이 목장의 3세였다고 한다. 그들은 흙먼지를 마시며 가업을 잇고 있었다. 그는 “시장을 길고 넓게 볼 수 있는 것이 오너경영의 장점이다. 소 한 마리를 키워 상품화하려면 3년을 투자해야 한다. 전문경영인을 앞세운 대기업이 농수축산업에서 고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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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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