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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동 라이온그룹 신규사업개발 이사 

서른셋 한국 청년이 꿈꾸는 동남아 ‘경제 한류’ 

라이온그룹은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대기업이다. 최근 동남아에 부는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라이온그룹은 국내 기업과의 사업 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를 진두지휘하는 이는 올해 나이 서른셋인 한국인 청년 오효동 이사다.

▎오효동 라이온그룹 이사는 말레이시아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과의 협업을 주도하는 등 그룹 차원의 신사업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주요국과 중국에서는 ‘팍슨(Parkson)’이란 브랜드가 곧 ‘백화점’이라는 뜻으로 통한다. 팍슨은 말레이시아 대기업 라이온그룹이 운영하는 백화점 브랜드다. 지난 1987년 백화점 사업에 뛰어든 라이온그룹은 이후 중국과 인도네시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등지에 120여 개 매장을 보유한 유통기업으로 성장했다. 팍슨은 이미 매장 수 기준으로 동남아 최대 유통 체인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선 이후 처음 외자를 유치한 해외 기업도 바로 팍슨(중국명 百盛)이었다.

팍슨의 모기업인 라이온그룹은 말레이시아를 기반으로 유통, 패션, 철강, 에너지(천연가스), 부동산, 금융, 농업 등 주요 비즈니스 영역에서 전방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대기업이다. 최근에는 글로벌 한류 붐을 계기로 국내 패션·화장품 기업과의 협력도 활발하다. 한국산 의류와 화장품이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는 가운데, 근래 국내 재계에서 라이온그룹이 더욱 주목받는 건 그룹 내 신규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고위 임원이 한국인이라는 것도 한몫한다. 오효동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대구 출신의 한국 토박이, 올해 우리나이로 33살 청년이 동남아를 대표하는 대기업의 신규사업개발 이사(제너럴 매니저)로 활약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이채롭다.

말레이시아 경제 이끄는 라이온그룹


오 이사의 라이온그룹 입성기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캐나다에서 대학을 마친 후 귀국해 마이스(MICE) 사업에 뛰어들었다. 말레이시아와 아무런 인연이 없던 그가 라이온그룹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 2015년 무렵이다. 국내 굴지의 화장품 대기업이 라이온그룹을 비즈니스 제휴차 제주도로 초청했고, 이 행사의 전반적인 진행과 의전을 맡은 곳이 바로 오 이사가 이끄는 외주 업체였다.

“제주에 중팅선(鍾廷森) 라이온그룹 회장 등 오너 경영진이 총출동했어요. 한국화장품 기업의 재고 현황이나 제주도 관련 사업 등을 설명하는 행사였죠. 최고경영진 간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기도 했고요. 당시 중 회장은 한국 브랜드에 관심이 많았어요. 전반적인 행사 조율과 진행에 나섰던 제게 호감이 갔다고 하시더군요.”

며칠 후 오 이사는 라이온그룹 관계자에게서 뜻하지 않는 전화를 받았다. “한국 관련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키우려 하는데, 우리와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입사 제의였다.

오 이사가 그룹 관계자의 영입 제안을 직접 받고 말레이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건 2015년이다. 청운의 꿈을 품은 한국 청년은 면접 후 입사 결정이 날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중책을 맡게 될 거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사실 당시 오 이사 영입을 지시했던 건 그룹의 수뇌부, 즉 중 회장과 부인인 천추샤 라이온팍슨재단 주석이었다. 천추샤의 한국식 발음은 진추하(陳秋霞)다. 홍콩 출신의 가수 겸 배우인 천 주석은 1970년대 활동했던 빅스타로, 국내 중장년층 팬들에게 ‘원 서머 나이트(One Summer Night)’라는 노래로 유명하다. 라이온그룹 입사 후 오 이사는 더욱 파격적인 제안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중 회장 부부가 그를 ‘양자’로 들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홍콩을 비롯한 중국 남부에는 예부터 양자 풍습이 있어요. 한국처럼 직접 호적에 올리는 게 아니라, 일종의 대부·대모 같은 개념이죠. 아들이 없는 집안이 가까운 지인의 자제를 양자로 들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제 경우에는 어머니(천추샤)께서 먼저 제안하셨죠. 두 분이 딸만 셋 두셨거든요. 나중에 들은 얘긴데, 입사 과정에서 제 생년월일은 물론 시까지 알아보셨다고 하더군요.(웃음)”

중 회장 부부는 이후 한국을 직접 찾아 오 이사의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드렸다. “당신의 아들이자 우리 아들을 최고의 비즈니스맨으로 키워보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그로부터 4년여가 흐른 현재, 오 이사를 소개하는 명함에는 팍슨백화점을 비롯해 부동산, 철강, 광업, 금융 등 그룹 내 웬만한 주요 사업군이 모두 인쇄돼 있다. 라이온그룹의 신규사업 전반을 총괄하는 그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다.

청년 사업가에서 라이온그룹 양자로


▎지난 2015년 8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던 팍슨그룹과 이랜드의 도심 복합쇼핑몰 및 백화점 조인트 벤처 조인식 장면. 사진 아랫줄 왼쪽부터 차례로 천추샤 라이온팍슨재단 주석, 중팅썬 라이온그룹 회장, 박성경 이랜드 부회장. 윗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오효동 이사.
“회장님께서 기회를 열어주신 덕분에 이만큼 온 거죠. 주요 계열사 CEO들과 협의와 논의를 거쳐 시작한 여러 비즈니스에서 운 좋게 성과도 내고 있습니다. 입사 이후 한국 기업과의 협업에 힘을 쏟았어요.”

라이온그룹 입사 후 오 이사의 첫 작품은 이랜드와 팍슨의 상하이 합작법인 설립이다. 지난 2016년 상하이 천산에 문을 연 팍슨뉴코아백화점 1호점이다. 이듬해에는 한국 패션 브랜드 스파오, 미쏘, 후아유, 슈펜 등을 팍슨백화점에 론칭했다. 말레이시아 대기업이 한국의 패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들여온 첫 사례다.

최근에는 화장품과 부동산 비즈니스에 주력하고 있다. 화장품의 경우 코트라나 무역협회 등과 협업해 우리 중소기업 브랜드의 현지 진출에 힘을 쏟는다.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등 백화점에 입점한 고급 브랜드 외에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중저가 브랜드가 주요 협업 대상이다. 이를 위해 오 이사는 화장품 전문 소매망인 ‘플레이업’을 오픈했다. 현재 40여 개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화장품 전문 매장인 플레이업에 입점해 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중심가에 자리한 팍슨 파빌리온(Parkson Pavillion) 백화점 매장.
“말레이시아에서도 뷰티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없어도 실력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곳이라면 대환영입니다. 한국 코스메틱 산업 경쟁력은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죠. 적은 자본으로 해외 유수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이 바로 말레이시아입니다.”

오 이사는 한국 기업의 동남아 시장 진출에 관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우리 기업들이 해당 지역과 시장에 대한 이해가 태부족한 상태에서 ‘묻지마’식 해외 진출에만 목을 맨다는 지적이다.

“요즘 동남아에선 패스트패션이 유행입니다. 한국에선 중저가로 통하는 브랜드일지라도, 같은 값이면 동남아에서 부티크 브랜드로 통하게 마련이죠. 그만큼 가격이 높게 책정된 경우가 많다는 뜻이에요. 말레이시아만 해도 대형 쇼핑몰이 300개가 넘을 정도로 유통망이 발달해 있어요. 당장 큰 이윤을 노리기보다 유통망을 활용해 비용을 줄이는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오 이사는 의류와 신발 사이즈 같은 작은 부분에서도 우리 기업의 오해가 많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여성들의 평균 신발 사이즈가 한국보다 크고, 여성의류의 경우 가슴과 엉덩이 사이즈 역시 국내 평균보다 훨씬 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온다습한 기후 특성상 고무나 가죽 재질 신발은 거의 쓸모가 없어요. 헝겊 재질의 편한 신발이 동남아 사람들에게 먹히는데, 이런 기본적인 시장조사조차 없이 현지에 진출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지난 4년여간 한국 기업과 협업을 이어온 오 이사는 동남아 시장을 바라보는 국내 업체들의 인식 변화도 주문했다. 본원적인 제품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현지 시장과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존중하는 자세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많아서인지, 동남아에서도 중국식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동남아 재계를 화교들이 장악하다보니 그저 ‘셰셰(谢谢)’나 ‘꽌시(關係)’면 다 되는 줄 아는 거죠. 말레이시아만 해도 영국 식민지 시절 영향으로, 하층 노동자까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나라예요. 포털에 뜬 정보에 국한된 우리에 비해, 영미권 고급 문화에 이미 익숙한 게 말레이시아 사람들입니다. 관광지에서 만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말레이시아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건 대단한 착각이죠.”

오 이사는 경제지표 같은 숫자에 매몰돼 현지 경제 사정을 은근히 눈 아래 두는 우리 기업인들의 자만심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사람들은 모든 걸 숫자라는 카테고리에 집어넣는 경향이 강해요. 이를테면 GDP 같은 거죠. ‘한국 GDP의 3분의 1 수준인 나라에 뭐 있겠어’ 하는 선입견은 스스로의 폐쇄성과 자만을 드러낼 뿐입니다. 현지인과 직접 교류하며 문화를 이해할수록 성공 확률도 높아집니다.”

오 이사는 실력과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라면 “애니타임, 애니플레이스에서 팍슨과 함께할 수 있다”며 우리 기업들을 향해 러브콜을 던졌다.

“최근에는 레저산업을 중심으로 동남아 진출을 원하는 기업과 투자자를 찾고 있어요. 라이온그룹은 이미 말레이시아에 최고급 리조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에서 레저·부동산 개발을 함께할 합작사와 투자사를 찾고 있습니다. 한국의 건실한 파트너들과 함께 동남아 경제의 한류를 함께 만들고 싶어요!”

- 장진원 기자 jang.jin@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910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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