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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옥 오스템임플란트 회장 

‘자동차왕’ 포드가 일깨워준 ‘맨파워’ 

오스템임플란트, 명실상부한 국내 1위 임플란트 회사다. 하지만 영업이익이 신통치 않아서인지 최근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 최규옥(59) 오스템임플란트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앞으로 더 성장하려면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스템임플란트는 매출액 기준으로 아시아·태평양에서 1위, 세계 5위의 기업이고, 2017년부터 임플란트 픽스처 판매량 기준으로는 세계 1위다. 격전지로 꼽히는 최대시장 중국에선 이미 2010년부터 세계 1위 기업 스트라우만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 자리에 올라섰다.
“직원 3만 명과 함께하는 게 목표다!”

최규옥 오스템임플란트 회장의 말이다. 의외였다. 다수의 경영인이 미래 목표 하면 신제품, 신기술, 매출액부터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9월 초 서울 가산 디지털단지 내 오스템임플란트 본사에서 만난 최 회장은 직원 수를 늘리고 싶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실제 이 회사는 매년 적게는 300명에서 많게는 500명 정도(국내외 합산)를 뽑고 있다. 임플란트 사업이 본격화됐던 2001년 100명이었던 직원은 현재 3700여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최 회장은 앞으로도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채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증권업계 시선은 엇갈린다. 한쪽에선 7분기 연속 최고 매출액을 경신했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다른 한쪽에선 매년 늘리는 채용 탓에 어닝쇼크가 난다고 우려한다. 시장은 ‘우려’에 더 민감한 법이다. 지난 7월 1조1000억원을 넘어섰던 시가총액은 9월 들어 6400억원 밑으로 빠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2010년부터 중국 임플란트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해외 매출이 가파르게 상승 중인 건 사실이다. 자연스레 채용도 25개국 현지법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사실 오스템임플란트는 한국을 임플란트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꿔놓은 주역이다. 국민 80%가 임플란트 시술을 알게 됐고,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치과의사와 환자들이 사용하는 임플란트를 생산한다. 농촌에서 서울로 온 고학생에서 서울대 치대를 나와 병원장을 했던 박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 창업한 최고경영자(CEO)에 이르기까지. 최 회장의 성공 스토리도 유명하다.

올해 창립 22년 차를 맞는 이 회사는 매출액 기준으로 아시아·태평양 1위, 세계 5위(판매량 기준 세계 1위)의 임플란트 전문 기업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최 회장은 “도약을 앞두고 선 투자가 꼭 필요한 시기”라며 일자리 얘길 이어갔다.

일자리 3만 명 창출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2034년까지 매년 20%씩 성장하려면 꼭 필요한 인력이다. 막연한 일이겠나. 현재 기준으로 따져보자. 전 세계에 치과가 100만 개다. 대략 60~70여 개 치과의 교육과 영업·납품 등을 관리할 인력이 1만5000명, 이에 따르는 지원부서 인력이 7000명, 전체 인력의 10% 수준으로 유지하는 연구개발 인력 3000명, 생산 인력 5000명. 총 3만 명이다. 스스로 경영평가를 할 때 매출액 신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래처가 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익은 10~15% 수준을 유지하면 된다. 나머진 사람 투자다.

도약하려면 사람 투자가 우선


▎오스템임플란트는 건강보험청구프로그램인 ‘두번에’와 치과경영 통합관리프로그램인 ‘하나로’ 및 교정 전문프로그램인 ‘V ceph’으로 국내 치과 소프트웨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규옥 회장은 “디지털 덴티스트리 분야가 주목받으며, 하드웨어를 아우를 수 있는 소프트웨어(SW) 개발이 시급하다”며 “22개 중점 관련 프로젝트에 관련 인력을 육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맞물려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사람 투자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당연하다.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포함해 연구 인력만 350여 명이다. 이들이 영업이익을 깎아 먹었으면 먹었지 매출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늘리는 이유는 시장의 ‘제2라운드’를 열 인재기 때문이다. 내년 4월 완공될 마곡중앙연구소에도 연구 인력 700여 명이 입주할 예정이다. 물론 직원 중 덜 중요하고 더 중요한 사람은 없다. 영업, 지원, 연구개발, 생산부서 인력이 모두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성장할 수 있다. 경영자로서 일을 제대로 주는 것도, 평가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핵심평가지표(KPI)를 폐지했고, 성과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개발 중이다.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기업 대다수가 인건비 걱정부터 하지 않나.

사회가 발전하고 선진국으로 갈수록 인건비가 오르는 건 당연하다. 실제 선진국일수록 자본수익률, 이자율이 제로(0)에 수렴한다. 돈만 굴려서 남는 게 없다는 뜻이다. 품질 개선 앞에 머티리얼 코스트(재료비)를 마냥 줄일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생산방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한 지 십수 년이 흘렀다. 사업 초기 인공 치아용 임플란트 하나를 생산하는 데 10분 정도 걸렸다면 지금은 1분 30초면 된다.

생산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계기가 있었나.

물론이다. 2000년대 초 임플란트 제품을 생산하는 고속·고정밀 CNC 장비가 3대밖에 없었다. 글로벌 1위 임플란트 회사 스트라우만은 수백 대를 돌리는데 말이다. 종일 고민하다 서점에서 『도요타 웨이(번역서: 도요타 방식)』란 책을 발견했다. 1953년부터 구축된 TPS(도요타 생산 시스템·Toyota Production System)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대략 기억나는 일화가 이랬다. 미국 포드의 수백여 대 CNC(컴퓨터수치제어) 장비가 2시간 세팅(준비) 후 6시간 생산했다면, 도요타는 장비도 몇 대 없는 데다 똑같이 세팅하고 1시간밖에 생산할 수 없었다. 설비 규모만 보면 절대 포드를 이길 수 없는 구조였다. 도요타는 CNC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덧씌우는 방법으로 세팅 시간을 3분으로 줄였다. 이거다 싶었다.

도입과 적용은 다른 문제 아닌가.

그렇다. 내가 프로그래머도 아니니 똑똑한 직원들의 힘을 믿기로 했다. 그래서 경연대회를 열었다. 한 상품을 가공하기 위해 준비하는 세팅 타임(시간), 제품 한 개를 만드는 데 드는 사이클 타임. 두 파트로 나눠 대회를 진행했다. 물론 연구 진행비도 대회 전에 줬고, 1등에게는 상금을 별도로 줬다. 모든 생산영역으로 확대한 덕분에 생산량을 대폭 늘릴 수 있었고, 매출이 크게 늘었다. 지금도 하고 있다.

지금도 연구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나?

연구개발에 가이드를 주는 편이다. 어버트먼트(Abutment, 지대주) 개발 사례가 그렇다. 환자 맞춤형 어버트먼트 ‘원핏’ 얘기를 해보자. 통상 가공할 때 원형이 기준이지만 치아는 앞니(원), 송곳니(타원), 어금니(사각) 등 모양이 제각각이다. 모양이 균일하지 않아서 치과에선 환자의 어버트먼트만 다른 곳에서 주문 제작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었다. 원래 기성품이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맞춤형 품질에 준할 정도는 돼야 한다. 당장 최적치를 찾자고 했다. 하지만 다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보느라 난항을 겪었다. 변수 하나를 임의대로 잡고, 편차를 줄이자고 제안했다. 수개월 걸릴 것 같던 일이 한 달 미만으로 줄었다. 물론 연구개발에 정답은 없다. 수많은 변수 중 하나를 상수로 잡고 파고드는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단순한 연구개발 가이드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 내게 최적의 변수를 찾아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경영자로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서 의문을 품었기에 가능했다. ‘왜 어버트먼트 주문량만 떨어질까’, ‘왜 오스템이란 브랜드 구축에 노력해야 할까’, ‘왜 인력을 뽑아야 하나’, ‘치과의사와 환자들은 뭘 원하나’, ‘가격을 왜 낮춰야 하냐’ 등 끊임없이 직원들과 소통하고,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인 덕이 크다.

일각에선 성장에만 집착한다는 지적도 있다.

내가 아니라 세상이 변했다. 우린 그 변화의 흐름에 발을 맞췄을 뿐이다. 한국에서 임플란트 시술을 시작한 게 1996년, 개당 가격이 400만원이었다. 당시는 대기업 초임 월급이 100만원 남짓하던 시절이었다. 몇 개만 시술해도 연봉을 다 털어 넣어야 했다. 게다가 외국산 임플란트는 정말 너무 비쌌다. 환자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분명 우리가 더 잘 만들 수도 있다고 봤다. 당시만 해도 환자에겐 국산, 외국산 선택권은 딱 둘이었다. 품질도 중요했지만, 뭔가 차별화해야 했다. 기술개발과 생산방식을 개선해 가격을 낮추면서도 수입산 못지않은 매력적인 브랜드가 필요했다.

TV 광고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인가.

그렇다. 2006년쯤이었을 거다. TV 광고를 하자고 했더니 재무팀 직원들이 다 뜯어말렸다. 지상파 방송 광고가 확실히 비쌌다. 그래서 케이블 방송만 조금 해보기로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때라 대다수 기업이 광고를 빼던 시절이었다. 덕분에 한 지상파 방송에서 골든타임 ‘1+1’ 광고를 제안받을 수 있었다. 기회였다. 평소 같으면 비싸서 엄두도 못 낼 골든타임을 차지할 수 있었고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차별화 위해 브랜드 키워


다른 경쟁사는 왜 TV 광고를 해도 어려울까.

선점 효과 때문이다. 우리가 광고를 빨리 시작했기에 오스템 이미지가 각인될 수 있었다. 후발주자 입장에선 광고로 뭔가 효과를 내려면 더 좋은 골든타임을 더 많이 잡아야 한다. 하지만 광고는 비용이기에 무턱대고 늘리면 적자로 이어질 수 있다. 대대적으로 광고했는데 매출이 안 오르면 수십억원에 달하는 돈을 광고비로 날린 셈이 된다. 우리도 꾸준히 할 뿐이지 마구잡이로 늘리진 않는다. 조언한다면 광고는 어느 정도 비용을 감내할 수 있는 매출 체력을 기른 후 집행하는 게 현명하다.

후발주자가 여럿 생겼다. 임플란트 분야는 카피가 쉽다는 얘기가 많다.

베끼기 쉽다는 얘기가 아닐 거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 판도가 한번 바뀌면 그때부턴 유사 업종에서 차별화해가며 발전하는 법이다. 지금도 모든 임플란트 회사가 나름의 장점을 갖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쌓아가고 있다. 더 설명하라면 미국 자동차 왕 헨리 포드 얘기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1920년대 최초로 5분에 한 대씩 완성차를 만들어낸 포드 신화는 내게 꽤 인상적이었다. 당시는 자동차와 마차가 시장에서 경쟁하던 시기였고, 자동차 제조사도 500여 곳이 넘었다. 포드는 파격적인 임금 인상, 작업 시간 단축, 주 5일 근무제 도입, 이익 공유제 등을 도입해 생산 대수를 확 늘려 시장 판도를 바꿔버렸다. 물론 당시 마차 회사와 경쟁력 없던 자동차 회사는 모두 망했다. 지금도 그때처럼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기다.

어떻게 달라질 거라 보나.

디지털 시대다. 정보가 제한된 세상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요구하는 시대도 아니다. 명의(名醫) 한 사람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환자가 그의 ‘실습 상대’가 되어 피해를 봐야 하는 세상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디지털 덴티스트리에 집중하는 이유다. 3D 컴퓨터단층촬영(CT)과 구강스캐너로 환자의 구강을 촬영한 뒤 컴퓨터 모의시술로 최적의 임플란트 식립 경로를 찾는다. 의사는 그걸 택하기만 하면 끝이다. 다른 회사들도 같은 얘기를 할지 모른다. 우린 더 나아가 모든 프로세스를 소프트웨어로 엮을 참이다. 의사가 모니터를 보고 300여 번 클릭할 일도 4번으로 줄어드는 시대가 곧 온다.

종합 헬스케어 회사가 되고픈 욕심은 없나.

당장은 임플란트에 집중할 생각이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1위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엔 최고 두뇌를 가진 인재도 많고, 개인 자산만 5000조원이나 될 정도로 국내에 자금도 풍부하다. 외국까지 갈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소프트웨어 인력만 200여 명을 뽑았다. 디지털로 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시도를 해보고 있다. 앞으로 인력을 더 충원해 임플란트 분야뿐만 아니라 조직관리, 생산공정, 경영관리 등 한 기업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툴까지 개발해볼 생각이다.

SW 개발 인력만 200여 명, 더 늘릴 예정


▎2020년 4월에 완공 예정인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있는 중앙연구소 조감도. / 사진:오스템임플란트
한동안 최규옥 오스템임플란트 회장은 피터 드러커, 잭 웰치와 같은 경영 구루 얘기를 이어갔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고는 했지만, 수없이 쏟아지는 경영학 도서 속 그들의 경험과 하루가 멀다고 변하는 세상은 오히려 그에게 힘이 되는 듯했다. 이순(耳順)을 앞둔 그가 ‘2034년, 직원 3만 명’이라는 십수 년 후 목표를 자신 있게 꺼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0년, 20년 후 오스템이 종합 헬스케어·바이오 회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10년 후 제가 이 자리에 있을지는 또 모르는 일이죠. 분명한 건 제가 나이가 들어도 기업은 계속 가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변할 거라고 장담하는 기업을 믿기보다 점점 사람을 늘리는 기업의 편에 서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변화의 선택은 앞으로 함께 일할 3만여 명의 몫이죠. 남들은 인력을 너무 많이 뽑는다 뭐라 하지만, ‘사람’은 기업이 10년이 아니라 20년 후 제2, 제3의 전성기를 맞거나 그에 걸맞게 변신하려면 꼭 필요한 체력 그 자체입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910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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