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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과 전문가들 모여 ‘건강100세회의’ 준비위 출범 

평생현역사회 열쇠 쥔 직장의 ‘건강경영’ 

직장에서 직원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증진하는 ‘건강경영’ 정책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세계 각국에서 앞다투어 도입하는 정책 트렌드다

▎건강경영 원탁회의 참석자들. 강준호 서울대 교수, 한창수 고대 의대 교수, 변웅재 변호사, 강석곤 국민은행 경영지원그룹 대표, 주호영 의원, 김세연 의원, 이종구 의원,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안민석 의원, 원혜영 의원, 양선희 대기자, 김지영 국민건강보험공단 부장, 박세정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책임연구원, 조재기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사진 왼쪽부터)
지난 10월 23일 국회에선 보기 드문 원탁회의가 열렸다. 안민석(더불어민주당)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이종구(자유한국당)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김세연(자유한국당) 보건복지위원장 등 여야 3개 상임위원장이 공동으로 ‘건강경영문화 정착을 위한 국회 원탁회의’를 주최한 것이다.

이 회의엔 원혜영(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주호영(자유한국당) 의원 등 여야 의원들도 참관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건강경영운동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민관정 협력 실천그룹인 ‘건강100세회의’를 만들자는 데 합의하고, 건강100세회의 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여야 의원들이 힘을 합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이날 원탁회의를 제안하고, 주도한 사람은 안민석 위원장이었다. 안 위원장은 “건강경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장님이 눈을 뜬 듯이 답답했던 시야가 확 뚫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스포츠를 통한 건강증진 관련 의정활동을 해오면서도 이것만으로는 국민 건강증진에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직원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증진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국가가 이를 촉진하고 지원한다는 ‘건강경영’을 알게 되면서, 이거야말로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우리나라의 건강정책으로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됐어요.”

‘인간의 수명연장은 축복인가, 재앙인가?’ 변웅재(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왜 지금 건강경영인가’는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실제로 한 세기 전만 해도 이런 질문은 성립할 수가 없었다. 장수는 무조건 축복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도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 고령자가 될 초고령사회로 달려가고, 세계가 같은 길로 가면서 이는 심각한 질문이 되었다. ‘재앙’의 조짐이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어서다.

첫 재앙의 조짐은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간극’이다. 우리나라에선 이 차이가 17.8년(2016년 기준)이나 된다. 평균적으로 65세 전후로 병을 앓기 시작해 17.8년 동안 병상을 지키다 82~83세에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병동 장수사회’다. 여기에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다. 지금 이대로라면 6년 후 도래할 초고령화 시대 우리 사회의 모습은 ‘가난하고 병든 노인의 사회’로 그려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평생현역사회’만이 초고령화 시대의 해법


‘건강’과 ‘경제력’. 결국 장수사회가 재앙인가 축복인가는 바로 이 두 가지 요건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수명연장에 따른 노인의 빈곤과 질병 문제는 대략 국가가 재정 자원으로 최소한의 보호를 해주는 정책으로 진행됐다. 노인의 최저생계비, 기초노령연금, 노인건강보험 보장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노인 인구가 되는 사회에서 이런 대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평생현역사회’. 초고령사회가 목전에 도달했거나 진입한 세계 각국 정부들이 정책적 목표로 지향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사회의 과제는 고령자의 건강 수준을 끌어올리고, 고령자들의 속도에 맞는 ‘느린 직업’을 개발하는 것이다. 여기서 고령자 맞춤형 직업 개발보다 앞서 진행되고 있는 게 건강정책이다. 일단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면 경제적 문제 등 많은 것이 해결된다.

세계의 건강정책은 과거 ‘질병치료’ 지원에서 ‘건강의 유지와 증진 투자’로 바뀌고 있다. 현재 평생현역사회 정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건강경영’(Worksite Wellness) 정책이다. 건강경영이란 기업 등 직장에서 직원들의 비만·고혈압·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의 예방과 관리뿐 아니라 건강증진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국가가 이를 촉진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정책을 말한다. 직원의 건강관리는 단순히 산업 재해의 예방 차원을 넘어 건강습관 들이기와 체력관리 등 일반적인 건강관리, 정신적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적 프로그램으로 확대한 것이다. 건강증진은 고령기에 갑자기 할 수는 없다. 결국 사람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이 건강증진운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직장에서부터 건강관리를 시작하면 건강수명이 늘어날 수 있을까. 윤영호(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분석한 건강결정요인을 보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WHO는 건강결정요인으로 유전(5%)이나 의료(10%)보다 사회조건(55%)과 건강습관(30%)의 비중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건강경영은 사회 조건과 건강습관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건강을 관리하고 건강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편이다.

강준호(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미국은 1980년 대부터 기업 웰니스라는 개념으로 건강경영을 도입했는데, 이는 건강보험 정책과 상당히 관련이 깊다”고 말했다. 사회주의적 건강보험 체계를 도입한 한국은 기업의 건강보험 부담이 일정한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은 의료비를 사보험으로 처리하다 보니 기업들도 직원들의 건강보험료를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방편을 생각하다 건강경영을 도입하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1980년대부터 건강증진 투자를 통해 얼마나 비용절감 효과가 있는지를 실험하는 각종 연구가 시작됐다. 미국건강증진행위위원회가 1980년대 초 직장의 건강관리서비스 효과성을 평가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1달러 투자로 3달러 회수 효과가 있으며 2년간 결근율이 14% 감소하는 등 생산성 증대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건강경영 투자가 이익이라는 확신 줄 정책 필요

각국의 건강경영 정책은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경제적 이유로 도입되는 경우가 흔하다. 일본은 2015년 경제산업성이 ‘건강경영표창제도’를 실시하고, ‘일본건강회의’를 설립하는 등 본격적인 정책으로 론칭했다. 다른 산업국가들에 비해선 좀 늦었지만 빠른 속도로 다양한 제도를 실험하고 있다. 도입 주체가 복지 관련 부처가 아니라 경제산업성이라는 것도 특징이다. 건강경영을 초고령사회와 청년층 감소에 따른 재정과 노동력 관련 정책으로 도입하고 있어서다.

경제산업성 보고서(2018)에선 사회보장비 감소에 따른 재정 압박, 생산연령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저하, 간호이직에 의한 노동력 추가 저하로 ‘평생현역사회 구축’을 전제로 한 경제사회 시스템 재구축 정책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새로운 경제사회 시스템의 두 정책 줄기는 ‘건강경영’과 ‘느슨한 경제활동과 사회공헌형 새 비즈니스 창출’이다.

한국의 초고령화도 일본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지만 평생현역사회 구축을 위한 경제사회 시스템의 복안이나 그 기초가 되는 ‘건강경영’에 대한 개념은 없다. 중앙 SUNDAY와 서울대 의대가 최근 152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건강경영지수(Worksite Health Index:WHI)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균 총점이 100점 만점에 36.3점으로 낙제점이었다. 대분류로 보면 건강경영을 위한 구조와 조직(38.7), 수요와 현황 조사(38.4), 실행(36.4), 평가와 피드백(27.5) 순으로 점수가 낮았다. 이를 12개 항목으로 소분류해서 살펴보면 직원 건강 관련 예산확보(66.8) 점수가 가장 높았다. 예산은 있지만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중앙SUNDAY-서울대 의대 건강경영기획팀이 조사한 국내 대기업 제조업체 A사의 건강경영 정밀진단 결과는 의외였다. 이 기업은 적극적으로 건강 투자를 하고, 전문팀도 운영하는 등 모범적인 업체로 꼽힌다. A사는 기업의 건강철학, 정책, 예산, 가이드라인, 산업안전 등에선 만점을 받았다. 하지만 직원들의 고혈압·당뇨·비만 등 성인병 유병률은 매년 높아지고 있었다. 조사 결과 각종 좋다는 건강 프로그램들을 도입하고 있지만, 정작 직원수요조사(33점)와 정책에 대한 평가나 피드백(42.9점) 등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단-계획-실행-평가-보완계획…’의 사이클을 통한 과학적 프로세스에 따르지 않은 하향식 건강 투자는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례다.

국내 기업들의 건강경영에 대한 인식과 의지는 높지 않다. 국회 원탁회의 참석자들은 현재 기업들은 건강경영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난제로 꼽았다. 실제로 그동안 한국의 기업 건강 관련 정책은 규제정책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건강경영도 규제와 추가비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경영 정책의 세계적 추세는 ‘인센티브 정책’이다. 정부가 금리우대, 보험료 인하부터 공공조달 가점 등 각종 인센티브를 내걸고 독려하는 체제다. 한국도 건강경영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인센티브를 개발해야 한다.

그런 한편으론 국민은행이 정부보다 앞서서 ‘건강경영’을 해보겠다고 선언했다. 건강경영은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가장 중요한데, 허인 행장이 앞장서서 도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민은행을 필두로 몇몇 기업이 건강경영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한국에선 정부보다 선도기업들의 역할로 건강경영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박스기사] 허인 국민은행장 인터뷰 - “먼저 건강경영을 시행하고 그 경험을 사회와 공유할 생각”


국민은행이 한국에선 이제 막 첫발을 뗀 ‘건강경영’을 도입해 시범적으로 실시하겠다며 손들고 나섰다. 지난 7월, 중앙SUNDAY(7월 6일 자 1, 4~5면)에 서울대 의대와 함께 조사했던 건강경영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였다. 국민은행은 서울대 의대 스마트건강경영전략연구실에 직접 접촉해 건강경영에 대해 문의했다. 그리고 내년부터 ‘건강경영지수’ 진단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건강경영 프로그램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등 선진국형 건강경영 전략 수립 단계를 차근차근 밟을 계획이다.

아직 국내엔 확립된 건강경영 정책도 없다. 이에 국민은행 측은 “건강경영의 경험과 결과를 사회와 공유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의 건강경영을 돕는 선도기업의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은행이 국내 제1호 건강경영기업으로 나선 데는 허인 행장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다. 허 행장은 “직원들을 육체적·정신적으로 좀 더 건강하게 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건강경영’에 국민은행이 먼저 관심을 보여 실은 좀 놀랐다. 건강경영지수 약식조사 자체도 거부하는 기업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늘 직원들 건강관리를 위해 우리가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중앙SUNDAY와 서울대 의대가 ‘건강경영’을 제안한 것을 보고, 여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실은 생각보다 우리 직원들이 많이 아프다. 사고가 아니라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포함해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 우리는 좀 더 이른 나이에 좀 더 좋은 건강진단 패키지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아프면 치료비를 대주거나 보험제도를 이용하는 것 외에는 어떻게 건강관리를 해줘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국민은행은 직원 건강과 관련해 신체건강과 마음건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상당히 열심히 하는 기업에 속한다.

은행원은 감정노동자라는 점에서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도입하곤 있지만,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들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고, 퀄리티가 높은지 등에 대해선 알기 힘들었다. 전문적 평가를 통해 정말 건강에 유용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아직 국내엔 ‘기업건강경영 전문가’가 없다고 보면 된다. 선도기업으로 전문가를 양성하고, 그 노하우를 다른 기업에 전수하는 일까지 하겠다는 건 상당한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건강경영은 기업의 지속가능성 차원에서도 아주 필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린 다우존스에 상장돼 있는데, 매년 쓰는 보고서 중 ‘지속가능성’ 평가 부문에 기업의 건강정책을 평가받고 있는지 등을 묻는 항목이 있다. 건강경영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린 이 항목을 늘 비워둘 수밖에 없었다. 건강경영 정책이 도입되는 건 국내 기업 경쟁력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 우린 선도기업으로서 일정한 사회적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금융권에서 건강경영기업에 금리 혜택이나 보험료 인하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는 상품을 내놓고 있다. 금융기업으로서 이런 분야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는가.

우리 그룹엔 보험사와 증권·카드사에 요양회사까지 있다. 그룹 전체적으로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건강경영을 고양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 또 그룹 내 연구소에서는 건강경영을 확산하기 위한 법률적 문제라든지 정책 등에 대해 연구하고 사회적으로 제안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양선희 대기자 중앙콘텐트랩 sunny@joongang.co.kr·사진 김경빈 기자

201912호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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