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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견제도가 주는 교훈 

 

일본은 너무나 유명한 장수국가다. 하지만 2025년이면 치매환자와 인지장애 인구를 합해 1300만 명이 넘을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이들에게 후견제도는 필연에 가깝다.

일본 치매환자가 전 인구의 5%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2025년이면 치매환자는 약 700만 명,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580만 명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본 내각부가 발간한 『고령사회 백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총인구 1억2600만 명 중 65세 이상 인구는 약 3500만 명으로 30%에 육박한다. 65세 이상 인구를 고령자라고 보면 그 수가 너무 많아져서 전후기를 구분한다. 65~74세를 전기고령자, 75세 이상을 후기고령자로 나눈다.

2025년이 되면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단카이세대(1947~1949년 출생자)는 후기고령자에 편입된다. 70세 이상 인구가 이미 2년 전부터 한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으니 그냥 넘길 상황은 아니다.

특히 치매환자가 문제다. 물론 일본 정부도 고령층 치매환자를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치매환자와 가족을 돕기 위한 ‘인지증 서포터’가 1000만 명에 가깝고, 치매환자와 놀아주는 로봇이나 반려동물 등도 많다. 매년 상반기에는 오사카에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하반기에는 도쿄에서 국제복지기기박람회(HCR)가 열리는데, 일본 장애인과 고령자를 위한 제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할 정도다.

가장 발달한 건 후견제도다. 일본은 2000년 4월부터 치매 등 정신적 장애가 있는 이들을 위한 후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치매나 정신적인 장애가 있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실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제도다. 일본의 성년 후견법은 자기결정권 존중, 신상보호 중시, 정상화(Normalization)에 주안을 두고 있다. 한국도 2013년 7월 1일 개정된 민법에서 정신적 제약이 있는 이들을 위한 후견제도를 도입해 기존 한정치산·금치산제를 대체하도록 했다.

일본의 후견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선 개호보험제도를 알아야 한다. 개호보험은 스스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일본의 간병보험이다. 성년후견제도와 개호보험법은 수레바퀴처럼 맞물려 시작됐다. 한국에서 2008년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일본의 개호보험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에선 고령층 치매환자를 위해 후견제도와 개호보험이 동시에 필요했다.

일본의 후견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스스로 후견을 결정하는 임의후견과 법원이 결정하는 법정후견이 있다. 자신의 결정을 우선 존중한다는 이념하에 임의후견을 우선으로 한다. 법정후견은 후견유형, 보좌유형, 보조유형으로 나뉘며, 한국으로 따지면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에 해당한다.

일본의 후견제도는 2006년 12월의 UN 장애인권리 협약에 가입하면서 철학적으로 한층 더 강화됐다. 치매 등 정신적 장애를 가진 노인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차원에서 후견제도를 정착화했다. 2010년 10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성년후견 세계회의까지 열리며, 성년후견제도를 행정당국의 공적 시스템에 포함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요코하마 선언 후 일본은 2016년 4월 성년후견제도이용촉진법을 제정했다.

성년후견제도의 이용 촉진을 위한 회의도 격상했다. 내각총리대신이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관하도록 하고 촉진위원회도 따로 뒀다. 여기서 활성화 계획을 세우고 행정·사법, 민간이 함께하는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또 재산관리의 강화를 위한 신탁제도 활용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신탁제도는 피후견인의 가족 간 분쟁이 있거나 피후견인을 위해 관리가 충분치 않을 경우 객관적인 제삼자인 금융기관에 재산관리를 맡기는 제도다. 후견제도가 시행되면서 친족들에 의한 크고 작은 재산유용 사고가 터졌다. 후견법인을 유용하는 일까지 터지면서 일본 대법원은 재산이 일정 규모가 넘으면 신탁을 권한다. 2018년 일본 신탁협회의에 따르면 전체 후견사건 중 신탁관리 사례는 20%를 상회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재산분쟁이 늘고 있어 법원이 직접 신탁제도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시 일본 얘기로 돌아가자. 일본에서 후견 업무는 피후견인과 가까운 사람이나 단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친족이나 시민후견인 또는 사회복지협의회 등이 후견을 하는 것이 원칙이나 전문직은 예외로 둔다. 특히 변호사회, 사법서사회, 사회복지사회와 같은 전문직 후견인들이 후견 업무 초기에 기본적인 후견절차를 정비한 후 친족이나 시민후견인에게 역할을 넘겨주는 식이다.

일본에서도 후견제도가 순탄하게 뿌리내린 건 아니다. 도입 초기 자금유용 등 부정 사례가 생기면서 전문직 후견인에게 맡기는 경우가 점차 늘었다. 일본최고재판소 자료에 따르면 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6년이 경과한 2006년 친족후견인의 비율은 71.2%였다. 반대로 2018년엔 제삼자에 의한 후견 비율이 76.8%를 기록했다. 한국에서 1만603건 중 9527건, 90%에 가까운 비율로 친족 후견인(2018년 기준)이 많은 것과 대조를 이뤘다.

일본 전문후견단체도 역할이 크다. 부정방지를 위해 분별관리와 윤리연수를 실시한다. 의료, 개호, 복지관계자 등 연계모임을 하면서 지역 네트워크를 다지고, 관련 금융상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일본의 세리사회(한국의 세무사회)도 관련 교육 연수에 적극적이다.

일본에서 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정착됐다고는 하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아직 개선할 게 많다. 사회 전반에 걸친 이해와 활용 의식도 개선돼야 한다. 일본이 이럴진대, 한국은 사실상 후견제도를 두고 손을 놓고 있다고 봐야 한다. 2013년 7월 민법 개정으로 후견제도만 도입해놨을 뿐이다.

한국 역시 65세 이상 고령자가 700만 명을 넘어섰고, 치매 인구도 75만 명이나 되는데 후견제도를 활용하는 비율은 미비하다. 자연스레 이에 연계한 신탁 활용도 미진한 상황이다. 우선 치매나 정신적 제약이 있는 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는 홍보부터 해야 할 듯싶다. 또 관련 기관의 소통이 필수다.

사회 인식의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후견제도가 피후견인이 스스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살려줄 수 있고, 더불어 신탁 관련 금융상품도 다양하게 개발될 수 있다. 한국도 치매를 걱정하는 노인이 스스로 자기 뜻을 잘 이해하고 실현해줄 수 있는 후견인을 미리 선임하는 임의후견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

-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202002호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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