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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 밴 보크호븐 캠브리지 컨설턴트 혁신전략책임자 

韓 기업 혁신 키 될 ‘R&D 아웃소싱’ 

삼성, LG, 엔비디아, 히타치, 필립스, 보쉬, 나이키. 모두 캠브리지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았다. 아무리 크고 잘났어도 홀로 성장하기 어려운 세상. 이제 기술 컨설팅은 글로벌 기업 연구개발(R&D)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과학자, 수학자, 엔지니어가 이끄는 이 기업이 이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AJ 밴 보크호븐 캠브리지 컨설턴트 혁신전략책임자는 “이미 수년 전 아시아의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과 강한 관계를 구축하는 전략을 수립했다”며 “그간 쌓아온 우리의 R&D 경험과 노하우가 한국 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엔비디아, 히타치, ARM, 이리디움, 로레알, 포드, P&G….’ 기술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영국 캠브리지 컨설턴트와 기술개발 협력에 나섰다는 점이다. 연구개발(R&D)의 경우 막강한 인프라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다. 어떤 식으로 글로벌 기업을 돕는 걸까.

지난 2012년 나이키는 실시간 활동량 측정장치 ‘퓨얼밴드’를 출시했다. 손목시계 형태로 디자인된 이 제품은 현재시간은 물론 날씨정보, 산소섭취량, 운동량 등을 컬러 LED 액정에 표시해준다. 하지만 제품 크기가 워낙 소형인 데다 손목에 차는 형태다 보니 기성 배터리로는 구현이 힘들었다. 캠브리지 컨설턴트는 커브형 배터리를 제안했다. 제품 디자인 스케치부터 여러 단계의 프로토타입 제작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더불어 외부 제작사를 찾아주고 제작단계에서 제품의 품질 관리까지 전 과정을 도맡았다.

일본 화장품 회사 SK-II도 2006년 ‘에어터치 파운데이션’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스프레이식 파운데이션 제품으로 양이온 입자가 음이온 상태인 피부에 고르게 밀착하는 원리를 이용해 머리나 옷에 묻지 않게 개발됐다. 제품 출시 당시 10만원이 넘었음에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온화 기술의 경우 캠브리지 컨설턴트가 P&G가 보유한 기술특허에 착안해 화장품에 활용한 케이스였다.

캠브리지 컨설턴트는 이런 식으로 제품 기획 컨설팅부터 상용화에 필요한 모든 단계에 걸친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1960년 설립된 캠브리지 컨설턴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신들이 모여 세운 곳으로 서양에선 꽤 알려진 비즈니스 모델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굉장히 낯설다. 지금까지는 컨설팅 하면 기업 경영이나 구조 효율화를 조언하는 식이었다면 캠브리지 컨설턴트는 제품 혁신이 가능하도록 기술적인 측면에 집중해 돕는다. 연구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는 기업엔 기술 파트너 역할을 하며 ‘소방수’를 자처하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갑자기 연구개발에 진척이 없다고 해서 연구인력을 새로 뽑거나 무한정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캠브리지 컨설턴트는 개발을 주도했어도 관련 지식재산권(IP)을 모두 해당 기업에 두고 나온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캠브리지 컨설턴트에 ‘SOS’를 요청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들이 이제 한국을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한국 기업을 만나고 있다. 몇몇 대기업과도 상당히 의미 있는 접촉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캠브리지 컨설턴트의 경영진이 수차례 한국을 오간 데 이어 올해는 캠브리지 컨설턴트의 AJ 밴 보크호븐(AJ van Bochven) 혁신전략책임자가 방한했다. 단순한 시장 탐색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꾸려나가면 좋을지 좀 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지난 2월 초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난 그는 회사의 맨파워 얘기부터 꺼냈다. 보크호븐 혁신전략책임자는 “현재 미국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보스턴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는 싱가포르와 일본 도쿄에 지사를 두고 있다”며 “850여 명이 넘는 직원 가운데 90%가 엔지니어, 디자이너, 과학자 등 연구개발 관련 인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매년 400여 개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의학기술, 소비재, 디지털 헬스, 에너지, 무선통신 등을 총망라한다”며 “최근엔 5G, 디지털자동화, 합성 바이오, 퀀텀 테크놀로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 각종 디지털 서비스 영역에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주목하는 이유와 어떤 식으로 한국 기업과 협력 나설 것인지 등 다양한 각도에서 물어봤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국에 주목하는 이유가 뭔가.

엄청난 기술 수요를 봤다. 우리의 활동 지역이 일종의 척도 같다고 보면 된다. 과거엔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활동했는데 이 지역 기업들이 2000년대 이전까지 전 세계 기술개발을 선도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부터 싱가포르,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 기업들과 협력에 나섰다. 두 나라를 오가면서 한국 기업들의 활약을 봤다. 기술·경제 수준이 이미 보통을 넘어섰고, 첨단기술 컨설팅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활용할 준비가 돼 있는 곳이 한국이라 봤다.

한국은 첨단기술을 좋아하지만, 의구심도 상당한 나라다.

알고 있다. 바로 그 점이 우리가 타깃팅하는 포인트다. 한국 기업들이 과연 구현 가능할지 의구심을 갖거나 단순히 표어처럼 개념만 있는, 또 시장에서 정의되지 못한 기술도 함께 연구개발에 나설 수 있다. 이미 우린 시장 자체가 형성되기 전부터 기술을 개발해 상품화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 1996년 세계 최초로 사물인터넷 솔루션을 개발했다. 배터리 하나로 2년간 작동하는 칩을 개발한 것이다. 이게 사물인터넷 개념으로 쓰인 것도 훨씬 나중이다. 블루투스 칩 기술 개발 회사로 스핀아웃(Spin-Out, 사업화)한 CSR이 퀄컴에인수(2014년 25억 달러, 한국 돈으로 약 3조원)되기도 했다. 최근엔 세계 최초로 DNA를 활용한 데이터 스토리지 구현에도 성공했다.

여느 외부 파트너들과 어떻게 다른가.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내부 기술 인력과 외부 파트너와 협력하는 식으로 기술혁신 과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른바 멀티 모달(Multi-Modal, 멀티소스와 비슷한 개념) 연구개발 방식이다. 물론 연구개발도 중요하지만, 시장을 개척하고 돈을 버는 상용화 과정도 중요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연구개발에 나서면 내부 연구개발 인프라(인하우스 R&D) 활용, 조인트 벤처나 파트너십 맺기, 인수합병, 라이선싱 등 다양한 방법을 구사한다. 하지만 역시 핵심은 기술이다. 우리가 제시하는 건 여러 산업에서 축적한 기술적 노하우와 경험을 가지고 연구개발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다. 더불어 더 빨리 결과물을 내면 ‘하이리워드’를 얻을 수 있다. 특히 ‘혁신’이 ‘상업화’ 되려면 연구개발 때부터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기술 유출이나 비용 부담을 고민하는 기업이 많다.

우리가 글로벌 기업과 60년간 협력관계를 맺어올 수 있었던 건 ‘신뢰’ 덕분이다. 고객사들이 캠브리지 컨설턴트와 함께 개발한 기술로 지식재산권을 생성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지켜내고, 시장을 선점해 더 큰 이익을 거둘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존재 가치다. 신뢰와 더불어 기업에 강조하는 건 ‘개방성’이다. 우리가 새로운 모델이라고 제시하는 건 개방성에 기초한다. 혁신하려면 동종 산업 간 기술만 응용해선 곤란하다. 완전히 다른 산업이 개발한 기술과 노하우를 이해하고, 융합 적용해야 한다. 물론 우리와 손잡고 개발한 기술은 해당 기업에 완전히 귀속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비용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기술)연구개발에 투입된 엔지니어의 시간당 인건비를 청구한다. 한국 시장에서 ‘월드클래스급’ 인재를 영입하기도 어렵거니와 기술은 기술 자체보다 시장에 나오는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빨리 내놓을 수 있으면 쓴 비용의 10배 이상을 버는 경우가 다반사다. 고객사 중 하나인 온라인 식료품 유통업체가 우리와 함께 개발한 자동화 솔루션 지식재산권을 가지고 미국 슈퍼마켓 체인 시장에 라이선스를 공급해 시가총액을 10배나 불린 사례도 있다. 비용이 아니라 사실상 투자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한국에선 어떤 분야에 관심이 가나.

크게는 산업 자동화와 바이오 분야다. 한국 기업의 기본 기술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꺼내 들었다. 인공지능은 센서와 애플리케이션이 정교하게 얽혀 있어야 하고 여기에 쌓인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 스마트공장과 임상시험을 비롯해 빅데이터 분석을 고도화해야 하는 신약 개발 분야에서 특히 힘을 발휘할 것 같다.

한국 기업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 기업의 경영진과 최고기술경영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멀티 모달 R&D 트렌드를 이해하고, 내부 팀만으론 해결이 어려운 연구개발 과제가 있다면 우리에게 연락하길 바란다. 캠브리지 컨설턴트는 대학 연구소도 아니고 기술 컨설팅만 제공하는 회사도 아니다. 기업과 밀접하게 결합해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이도록 돕는 회사다. 이렇게 나온 지식재산권은 기업이 갖고 지속적으로 비즈니스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003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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