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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대기자의 ‘역설의 리더십’(11) 

리더십은 리더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간신이라고 광고하는 이는 없다. 오히려 생김새는 충신일 수 있다. 지도자는 늘 고민한다.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지. 하지만 군주 자신도 준비가 돼 있어야 훌륭한 신하를 만날 수 있는 법이다.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유대인들이면 누구에게나 통하는 궁극적 원칙이 하나 있다. ‘오늘 내가 있는 곳은 내일 내가 있을 곳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원래 유목민이었던 만큼 양들을 먹일 신선한 풀을 찾아 이동하면서 체득한 원칙일 터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원칙을 더 높고 심오한 위치로 끌어올린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옮기면 이렇게 된다.

‘오늘 내가 처한 어려움이 내일 또 계속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탓이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이 원칙을, 아니 이 진리를 가장 먼저 터득한 민족이 아닐까 싶다. 아시아에서는 불과 한두 세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날 때 속했던 사회적·경제적 계층에서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었다. 유럽,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 더 강한 사람, 더 성공한 사람, 더 친절한 사람으로 거듭난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다. 물론 성경을 통해서다. 유대 사람들을 가리키는 ‘히브리’란 단어는 원래 ‘이브리(Ivri)’에서 나왔다. ‘가로지르는 자’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대교 율법학자이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보좌관이기도 했던 랍비 다니엘 라핀은 ‘가로지르는 자’를 ‘신분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옮겨갈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자’라고 설명한다.

“이스라엘인 혹은 유대인에게 ‘히브리’라는 고전적인 용어의 의미는, 후손들의 운명을 석판에 새기지 않았으며 변할 수 없게 고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유대인 비즈니스의 성공 비결 40가지』

라핀은 ‘최초의 히브리인’ 아브라함을 예로 든다.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말한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세기12:1)

그런데 왜 아브라함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는 걸까. 이 구절 이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 만큼 특별한 모습을 보여준 내용이 없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성경에는 이전에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조차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여호와는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아브라함에게 명령을 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명령한 게 아니다. 여호와는 모두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아브라함만 그 명령을 받든 것이다. 신은 아브라함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길로 나가라고 명령했지만, 오직 아브라함만 그 도전을 받아들인 것이다.

새로운 길로 나가라는 명령

‘출애굽기’에도 비슷한 사례가 등장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출애굽기 3:2~3)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모세가 특별히 뛰어난 점이 있음을 암시라도 하는 구절이 앞 장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왜 모세인가. 그것의 답 역시 같다. 모세만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따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날 아침 수백 명이 불타는 나무 근처를 지나갔지만, 어느 누구도 멈춰 서서 불타고 있는 나무를 살펴보지 않았다. 어째서 불 붙은 나무가 타서 재가 되지 않는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모세만 그러한 상황에 의문을 품고 어떠한 신의 계시가 있는지 나무를 살펴보러 간 것이다. 모세는 여호와가 자신에게 내린 임무가 너무도 크고 무거운 것임을 알고 주저한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가 말한다.

“누가 사람의 입을 만들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 눈 밝은 자나 눈 어두운 자가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더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으며 할 말을 가르치리라.”

자신감을 얻은 모세는 여호아의 명령을 따랐다. 하지만 그는 말도 어눌했을뿐더러 자신의 능력을 동족들에게 증명해 보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고 말해도 동족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에게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어 보이는 이적을 행하면서까지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비록 능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새로움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의 도전 정신을 높게 산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리고 있지 않을까. 익숙한 현실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떠날 때가 됐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을까. 편안함에 빠져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후퇴하고 만다는 경고를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유대인,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유효한 메시지일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그러한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조직과 사회, 세상을 바꾸는 리더가 되는 것이다.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 마찬가지다. 택시 기사든 그 택시를 타고 가는 세일즈맨이든,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든 그 카페의 주인이든, 어떤 회사의 말단 직원이든 그 회사의 CEO든,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신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셀프 리더십이 바꾼 현실

그 ‘신의 초대’가 모세처럼 동족을 구해내기 위해 이집트의 파라오와 담판을 짓는 엄청난 과업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어제보다 5분 먼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위대한 업적의 시작 역시 처음 5분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왕 라핀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해보자. 라핀은 어느 날 댈러스에 있는 한 교회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청중에게 “당신에게 월급을 주는 CEO를 고용주가 아닌 고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추면 매일 하는 따분한 일이 즐거운 일이 되고, 훨씬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연을 마친 뒤 슈퍼마켓 계산원으로 일하며 홀로 자식을 키우고 있는 한 중년 여성이 질문을 했다. 자신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고용주까지 고객으로 여길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라핀은 그녀를 자기 부부가 묵는 호텔로 초대했다. 라핀이 한 긴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당신이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고용주를 그냥 둔 채 퇴근해버리고 다른 사람이 일을 해결하도록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가게의 소유주라면 절대로 자기 고객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손님이 온다면 업무시간이 끝났다고 매몰차게 말하는 대신, 문을 다시 열고 무엇이 필요한지 물을 것이다. 누군가는 ‘일도 좋지만 가족이 우선 아니냐’며 당신을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자식이 홈런을 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면 당장 나를 필요로 하는 고객을 내버려두고 가도 괜찮다는 태도를 당신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당신은 당신 자식의 롤 모델이 돼야 한다.”

라핀은 6개월 뒤 다시 강연할 기회가 생겨 같은 교회를 찾았다. 그녀도 청중으로 교회에 왔다. 그런데 지난번보다는 옷차림새부터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 돼 있었다. 지난번에 싸구려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제법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가르쳐주신 대로 행동했어요. 내 고객(고용주)이 맞이하는 모든 고객을 잘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랬더니 살면서 처음으로 일을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전에는 항상 고개를 숙이고 금전등록기만 바라보며 스캐너에 바코드를 찍는 일을 했는데, 이후로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웃어주고 대화도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그녀가 눈에 띄게 되었다. 그녀가 맡은 계산대에 가장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단골손님들이 늘어난 것이었다. 결론은 고용주로부터의 보너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부동산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었다. 부동산 회사의 오너는 회사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회사의 얼굴이 되어 잠재적 고객을 맞이할 직원이었다. 그는 그녀가 계산대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봤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그녀는 계산대 점원으로서 받던 최저임금을 훨씬 웃도는 임금에 복리후생까지 제의 받았다. 덕분에 그녀와 그녀 아이들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흔히 이 같은 사례를 빗대 ‘주인의식’을 강조하기도 한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적절한 비교가 아니다. 라핀의 교훈을 실천한 슈퍼마켓 계산원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고객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 슈퍼마켓의 주인까지 고객으로 대한 것이다. 라핀이 그녀에게 일깨워준 것은 주인의식이 아니라, 자기주도성이었다. 그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대신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키워나간 것이다.

자기주도가 성장 이끈다

슈퍼마켓 계산원이 미소를 지으며 고객과 나눈 한두 마디 대화는 그저 날씨나 안부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친절한 점원과 인사나 나누려고 일부러 줄을 서는 단골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물건을 고른 고객에게 어떤 신제품이 나왔는데 효과가 더 좋더라는 조언을 하거나, 며칠 후에 무슨 제품의 할인행사를 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다.

이것이 ‘자기주도’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최고의 효율과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한 노력이다. [생활의 달인]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놀라운 역량을 선보이는 ‘달인’들이나 각종 분야에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이 늘 그렇다.

그렇지 못하고 윗사람이 시키는 일, 오늘 내게 떨어진 할당량 채우기에 만족하면 일이 결코 즐거울 수 없다. 지겨움과 불만이 쌓이고 짜증이 늘어나게 되며, 업무에 발전이 있을 수 없다. 평가도 좋아질 리 없다. 이런 경우 제자리걸음에 그치는 게 아니다. 자연적으로 후배들에게 밀려나게 된다. 발전하지 않으면 제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후퇴하는 것이란 얘기다.

이 같은 자기주도 역시 리더십의 또 다른 모습이다. 리더십이 꼭 리더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개인에게 자신의 잠재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그런 셀프 리더십이 작동함으로써 발현된 결과가 두드러지는 인물이 그 조직의 리더로 부상하기 쉽고, 리더로서 성공할 확률도 높다. 그러한 리더는 조직원들에게 잠재된 셀프 리더십을 일깨우는 데도 탁월한 성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일본 ‘신칸센 7분 극장’의 ‘총감독’이었던 야베 데루오(矢部輝夫)가 그런 인물이다.

신칸센 7분 극장이란 일본 고속철 신칸센이 기점인 도쿄역에 도착했을 때 벌어지는 7분간의 실내 청소를 말한다. 신칸센을 운영하는 JR동일본의 11개 청소회사 중 하나인 ‘텟세이(TESSEI)’의 직원들이 출연 배우들이다.

텟세이 역시 그저 그런 청소업체 중 하나로, 이른바 ‘3D 업종’에서 공통적인 근로자의 사기 저하와 낮은 로열티, 높은 이직률로 허덕이던 회사였다. 그런데도 JR동일본의 자회사인 만큼 망할 염려가 없었기에 ‘대충대충’ 풍조가 만연했다.

2005년 야베가 책임자로 오면서 달라졌다. 그는 “텟세이가 고객에게 파는 건 청소가 아니라 ‘여행의 추억’”이라고 선언했다. 자존감 없던 청소부들을 쾌적한 여행을 책임지는 코디네이터로 바꿔놓은 것이다. 이를 위해 전형적인 청소부 유니폼을 던져버리고 호텔리어를 연상케 하는 산뜻한 제복으로 바꿨다. 미관에 좋지 않은 물양동이 대신 가방에 작은 물통을 넣어 해결했다. 모든 청소도구는 조립식으로 만들어 가방 안에 넣게 했다.

신칸센이 도쿄역에 정차하는 시간은 12분이지만 승객의 승하차 시간을 빼면 허용된 청소시간은 단 7분이다. 이 시간에 직원 22명이 테이블과 의자 청소는 물론 돌려진 좌석의 180도 전환, 분실물 확인 등이 이뤄져야 한다. 분실물이 발견되면 작은 종을 매달아 청소 종료 후 분실물 센터에 보내는 인지장치도 고안했다.

여행 코디네이터라는 자부심으로 뭉친 직원들은 모든 작업을 7분 내에 정확하게 끝낸다. ‘신칸센 극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이 작업은 도쿄역의 명물 볼거리가 됐으며, 승객들의 호응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승객들이 알아서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텟세이 직원들은 ‘신칸센 극장’의 배우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신칸센 승객이 폭발하는 휴가철이나 연말 연초에는 사무직까지 청소에 참여해도 불만이 나오지 않는다. 직원 스스로 셀프 리더십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다. 텟세이의 셀프 리더십 사례는 하버드 MBA 스쿨에서 교재로 사용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야말로 리더십이란 꼭 리더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훈범은…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고 싶어 기자가 되었고, 기자로 살며 본 세상을 칼럼에 녹이고 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서 혜안을 얻는 게 삶의 기쁨이다. 1989년 중앙일보에 얽매여 기자로 산 지 30년째, 그중 10년 이상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경영에 답하다』(2009),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공저),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2014), 『품격』(2019)이 있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과정 수료.

202003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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