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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에 그룹의 승계 비결 

 

프랑스에는 가족 대기업 집단 기업 물리에가 있다. 직원 60만 명에 매년 매출액만 110조원이 넘는 큰 덩치를 자랑한다. 200년 넘게 한 가문이 끌고 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루마니아에 있는 대형 유통체인 오샹의 하이퍼마켓 전경. 오샹 유통그룹은 프랑스 풀리에 가문의 구심점이다. / 사진:오샹그룹
물리에(Mulliez)는 프랑스의 가족 대기업 집단이며, 대표적 회사로는 대형 할인매장 체인인 오샹(Auchan)이 있다. 그룹에 상장회사가 하나도 없어서 정확한 그룹 매출액 및 종업원수는 발표되지 않으나 매출액은 약 860억 유로(약 117조원), 종업원은 6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리에 가문은 200년 전부터 섬유제조업에 종사해왔는데, 창업주 1세대 루이 물리에(Louis G. Mulliez-Lestienne, 1877~1952)가 1903년 설립한 섬유회사 필다(Phildar)가 그룹의 시초다. 현재 물리에 그룹은 700여 명의 물리에 가문 구성원이 속해 있는 가족협약인 ‘물리에가족연합체(Association Familiale Mulliez, 이하 AFM)’를 정점으로 여러 개의 하위 사업 그룹별로 수많은 회사가 소속되어 있다. 소속된 사업체 수가 많고 상장된 회사가 하나도 없어서 프랑스에서는 ‘물리에 은하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리에 그룹은 다양한 유통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통 소그룹 오샹은 오샹홀딩(Auchan Holding)을 정점으로 한 대형 유통체인이다. 오샹 자체 매장 이외에 다양한 브랜드의 유통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AFM의 오샹홀딩에 대한 지분율은 84%다. 창업주 루이의 둘째 아들인 2세대 제라르(Gerald Mulliez, 1906~1989)는 프랑스에서 섬유산업이 쇠퇴하자 1946년부터 유통부문에 진출하는 것을 주도하는 등 가업을 이끌어왔다. 특히 섬유 및 뜨개질, 바느질 용품에 필다 브랜드를 붙여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후 같은 브랜드로 프랜차이징 사업을 전개해 유통분야에 적극 진출했다. 1952년 창업주 루이가 사망하자 2세대 리더 제라르를 포함한 상속자 11명이 고민에 빠졌다. 이들은 모든 회사를 공동소유하기로 결정했다. 자손 대대로 공동소유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했고, 1955년 가족연합체인 AFM이 출범했다.

공동소유 기업승계를 주도한 2세대 제라르는 여섯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제라르 파울로(Gerald P. Mulliez, 1931~)가 뛰어난 경영 수완을 보이며 가문의 3세대 리더로 부상했다. 그는 1961년 29세에 미국을 여행하면서 미국 백화점을 보고 프랑스에 돌아와 식료품 체인 오샹 제1호 매장을 루베(Roubaix)에 개장했다. 이후 그는 1967년 ‘하이퍼마켓’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대형 유통매장을 출범시키는 등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현재 전 세계 3800개가 넘는 매장을 갖춘 오샹 유통제국을 만들었고, 물리에 가문의 구심점이 됐다.

AFM의 운영 원칙은 “모든 가족구성원이 모든 사업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편입된 회사의 지분을 모든 가족회원이 동등하게 분할해 소유한다. 가문 구성원이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여 AFM에 소속된 형태로 운영하려면 AFM에 신청해 AFM의 참여 지분을 결정하고, 가문 구성원들이 AFM 지분에 동등하게 참여할 권리를 나눠 갖는다. 가문 구성원이 설립한 회사가 AFM의 신규 회원사가 되면 매년 3월 가문 구성원이 해당 회사의 지분을 매입할 기회를 준다.

AFM 가족회원이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혈연을 통한 가문의 일원일 것, 21세 이상이 되어야 하며, 그의 부모가 AFM 이사회에 추천해야 한다. 또 AFM 가입 및 탈퇴에 대한 계약조건을 수용해야 한다. AFM 회장은 3세대 가문 리더인 제라르 파울로의 조카인 티에리(Thierry Mulliez)가 4세대 리더로 1998년부터 2014년까지 네 번 연임했으며, 2014년에는 당시 40세의 바르텔레미 길랭(Barthelemy Guislain)이 5세대 리더로 선출됐다. 물리에 그룹의 승계는 소속된 개별 회원사 차원에서 이루어지지만, 가족연합체인 AFM이 설정한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물리에 그룹의 승계과정의 특징은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AFM을 통한 공동 균등 소유를 통한 승계 체계 구축이다. AFM에 편입된 회사의 지분은 자손들이 동등하게 분할하여 소유하게 되며, 구성원별로 지분을 상속하여 승계하는 독특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균등 소유 및 승계방식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둘째, 가문 구성원 간 목표 공유와 역할 설정을 통한 기업 성장 및 승계다. 회사의 공동 목표를 공유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가문 구성원이 함께 노력하는 전통이 확립됐다. 이 전통은 모든 가문 구성원을 적극적 주주로 만들어준다. 물리에 가문은 촌수에 관계없이 모든 가족 주주에게 각각 역할을 맡긴다. 지식과 열정을 갖고 있는 주주들 덕분에 소속 기업들은 장기적인 관점을 유지할 수 있다.

셋째, 외부 주식매각 금지를 통한 안정적 성장 및 승계다. 물리에는 철저한 가문 구성원 순혈주의를 표방하여 물리에 가문의 후손만이 AFM 소속 회사들을 통제할 수 있는 지분(AFM 회원사가 되면서 정한 AFM 통제 지분)을 보유할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오샹은 1961년 AFM 회원사가 되면서 84% 지분을 AFM 통제 지분으로 정했으며, AFM 회원인 가문 구성원들에게 이 지분을 균등하게 보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넷째, 소속 회원사에 대한 독립경영 보장을 통한 성장과 승계다. 유럽 내 다른 대기업의 가족협약과 AFM의 가장 큰 차이는 소속 회원사에 독립적인 경영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동일한 주주를 두고 있지만 개별 기업들의 운영은 AFM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다섯째, 강력한 인재 육성과 경쟁을 통한 가족 경영자 선임이다. 가문 구성원에게 어떤 자리도 보장하지 않고, 기업을 경영하고 운영하는 것을 배우길 원하는 가족 구성원을 위해서 AFM은 고도의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프랑스에서 어디를 가든지 물리에 가문이 운영하는 사업체를 볼 수 있지만, 실제 물리에 가문 사람들은 철저하게 뒤에 숨는다. 특권의식이라고는 전혀 나타내지 않으며, 정부나 정치인을 상대로 로비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모방하는 기업집단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이를 실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6년간 AFM 회장을 맡았던 티에리는 AFM을 통한 물리에 그룹의 기업승계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공평에 대한 강력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협약이 성공한 요인은 이 해결 방안을 그들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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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호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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