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파트리치아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 

그들처럼 세상을 보는 제3의 눈을 뜨다 

삶이 모험으로 일관된 예술 애호가였던 페기 구겐하임과 비교되는 이탈리아의 예술 후원자는 파트리치아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PATRIZIA SANDRETTO RE REBAUDENGO)다. 해마다 ‘톱 200 컬렉터스’에 오르는 파트리치아는 이탈리아 토리노 출신이다.

▎Patrizia Sandretto Re Rebadengo Credit Photo Stefano Sciuto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명성에 걸맞은 훌륭한 전시들로 전 세계 애호가들의 열정적인 관심을 받았다.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동안 컬렉터들과 예술 애호가들은 물론, 단지 며칠 동안 베니스를 즐기는 관광객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흥미진진한 곳이 있다. 바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페기는 1941년 뉴욕에 ‘금세기 미술관(The Art of This Century Gallery)’을 열어 피카소, 브라크, 달리, 막스 에른스트, 자코메티, 칸딘스키 등 유럽의 전위적 작가들의 아방가르드했던 작품들을 전시해 미국에서는 드물게 유럽 작가들의 동시대 미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금세기 미술관은 점차 유럽 화가들과 미국 화가들이 만나는 교류의 장이 되었다.

페기는 갤러리스트로서의 삶을 정리한 후 유럽으로 떠나 평생 그곳에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 시대를 앞서간 안목을 지녔던 페기가 유럽에서 둥지를 틀었던 곳이 베네치아다. 늘 수많은 관람객을 맞고 있는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녀가 강아지들과 함께 살았던 집이다. 페기는 잭슨 폴록을 포함해 여러 작가를 후원하면서도 늘 과감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대담한 여인이었다. 대중의 발길을 유혹하는 미술관에서는 페기가 수집했던, 유럽에서 보기 어려웠던 20세기 전후의 미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다. 페기 구겐하임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세운 솔로몬 구겐하임의 조카딸이다.

파트리치아의 어머니는 세라믹 도자기 수집가였고 아버지는 플라스틱 주입회사(plastic-injection company)의 창립자로, 19세기 후반의 유서 깊은 플라스틱 오브제들을 모았다. 아버지의 수집품들은 이탈리아 폰트 카나베세(Pont Canavese)에 있는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아버지의 높은 안목을 이어받은 그녀는 수집가 부모님 곁에서 어린 시절부터 어떤 형태로든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은 모두 수집의 형태를 띠었다.


▎Fondazione Sandretto Re Rebaudengo, Turin Credit Photo Maurizio Elia
1992년부터 시작된 아트 컬렉션들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이언 챙(Ian Cheng), 베를린더 더브라위케어(Berlinde de Bruyckere), 세리스 윈 에반스(Cerith Wyn Evans),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조시 클라인(Josh Kline), 사라 루카스(Sarah Lucas), 리넷 이아돔 보아케(Lynette Yiadom-Boakye), 마크 맨더스(Mark Manders), 찰스 레이(Charles Ray), 신디 셔먼(Cindy Sherman), 루돌프 스팅겔(Rudolf Stingel), 로즈메리 트로켈(Rosemarie Trockel), 에이드리언 비야르 로하스(Adrián Villar Rojas)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1500여 점과 보석, 금속, 나무 등으로 제작된 커스텀 주얼리 1000여 점, 사진 3000여 점에 달한다.

그녀가 동시대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이유는 아버지처럼 유서 깊은 오브제를 모으기보다는 자신과 같은 세대의 작가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 그들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파트리치아는 그들을 통해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의 무수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Installation view of Aletheia, Berlinde De Bruyckere’s solo show (until 12 July 2020), Credit Photo BDB Sandretto Copyright Mirjam Devriendt
파트리치아의 첫 컬렉션은 1950~60년에 제작된 이탈리아 작가 카를라 아카르디(Carla Accardi), 타노 페스타(Tano Festa), 마리오 메르츠(Mario Merz), 살바토레 스카르피타(Salvatore Scarpitta)의 페인팅 4점으로 시작되었다. 이 네 작품이 그녀의 강박적인 예술품 수집의 씨앗이 되었다. 그녀는 이 생소한 컨템퍼러리 아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카탈로그와 예술 관련 책을 탐독했다.

첫 수집 후 3년 만에 재단 설립


▎Douglas Gordon and Philippe Parreno. ZIDANE 21st CENTURY PORTRAIT 2005
파트리치아에게 영국은 그녀의 열정에 불을 지핀 특별한 나라다. 1992년 방문했던 런던 리손 갤러리의 니콜러스 록스데일(Nicholas Logsdail), 화이트 큐브 갤러리의 제이 조플링(Jay Jopling)과의 만남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혁명적인 순간이었으며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기회였다. 이들은 런던에서 활동하던 작가들과 파트리치아가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었다. 파트리치아에게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 줄리언 오피(Julian Opie) 등 아틀리에 방문은 그녀의 삶을 근원적으로 바꾸어버릴 정도로 중요했다. 그 후 작품 수집에서 그녀의 취향은 작품과 함께 살 것인가에 동요되지 않고 오로지 작가의 경력으로 보아 그 작품이 충분히 상징적인 작품인지, 작가 개인에게 중요한 이슈가 담긴 작품인지가 유일한 길잡이가 되었다. 파트리치아는 테이트 모던의 니콜러스 세로타(Nicholas Serota),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이오나 블라즈윅(Iwona Blazwick) 등 국제적인 전문가들의 가이드를 받아 자신의 취향을 굳혀갔다.

그녀의 컬렉션 방향과 취지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작품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다람쥐 조각 [비디 비도 비디 부 (Bidibido bidiboo)]다. 제목부터 매우 흥미로운 조각으로, 디즈니 영화에서 신데렐라에 대한 요정 대모의 주문이다. 파트리치아는 1996년 런던의 로어 제니아드 갤러리에서 이 작품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대부분의 수집가는 20년가량 개인 수집 역사를 보내고서야 재단 설립을 실현한다. 그러나 파트리치아는 첫 수집이 시작된 후 고작 3년이 지난 1995년에 고향 튜린에 파트리치아 산드레토레 레바우덴고 재단을 설립했다. 자신의 수집품들을 되도록 빠른 시기에 대중과 공유하려고 내린 과감한 결정이었다. 사후 미술관 설립을 유언으로 남긴 페기 구겐하임과는 사뭇 비교되는 호의적인 성품이 드러난다.


▎Maurizio Cattelan, Bidibidobidiboo 1996, Credit Photo Zeno Zotti
2018년 Three & Four 갤러리에서 [그녀의 이야기 Herstory: Women Artists from the Collection of Patrizia Sandretto Re Rebaudengo] 전시를 기획했다. 그동안 수집한 파트리치아의 작품들 중 여성 작가들의 작품만 선정해서 기획한 특별한 전시였다. 신디 셔먼,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셰리 레빈(Sherrie Levine), 모나 하툼(Mona Hatoum), 사라 루카스, 낸 골딘(Nan Goldin), 시린 네샤트(Shirin Neshat), 파울리나 올로스카(Paulina Olowska) 등 지난 40년간 활동해온 작가들의 변천사를 한눈에 감지할 수 있는 기획이었다. 여성 작가들이 선택한 주제들은 신체 이미지, 성적 정체성, 성에 관한 사회의 고정관념, 편견 및 권력 남용을 포함한 문제들을 탐구할 수 있도록 출발점을 제공했다.

파트리치아의 재단은 박물관, 갤러리 등과 꾸준한 협업으로 작가들의 작품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재단은 도시 외곽에 있다. 1990년대 초부터 파트리치아가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갖고 있는 예술품 수집은 재생 에너지 기업인 아지 암비엔트 이탈리아(Asja Ambiente Italia)의 창립자이며 엘렉트 리시타 푸투라(Elettricità Futura) 회사의 부회장인 남편 아고스티노 레 레바우덴고(Agostino Re Rebaudengo)와 두 아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1997년 재단은 피에몬트 로에로 언덕에 있는 18 세기 저택인 구아레네 드 알바(Guarene d’ Alba)의 팔라초 레 레바우덴고(Palazzo Re Relabaudengo)에서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으며 2002년에 파트리치아는 토리노의 버려진 산업 지대에 3,500㎡ 규모의 예술 공간, 컨템퍼러리 아트 센트를 열었다.

재단의 기본 목표는 항상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다. 새롭고 혁신적인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재단이 21세기의 가장 대담하고 기억에 남는 작품에 헌신하게 유도했다. 그중 더글러스 고든(Douglas Gordon)과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가 2005년 공동 제작한 영상 [지단(Zidane)]은 한 경기 동안 프랑스 축구 선수 지단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촬영했다.


▎Ragnar Kjartansson, The End 2009
페기 구겐하임은 구겐하임 죈 개관식에서 왼쪽은 아브 탕기, 오른쪽은 알렉산더 콜더가 만들어준 짝짝이 귀걸이를 착용해서 모두의 눈길을 끌었었다. 파트리치아의 아침은 수집한 1000여 개 커스텀 주얼리 중 브로치 혹은 목걸이를 고르는 기쁨으로 시작된다. 선택된 주얼리는 그날 입을 의상과 구두, 헤어스타일까지 결정하는 첫 단추가 된다. 파트리치아는 협업의 기회를 통해 커스텀 주얼리 또한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파트리치아는 컬렉션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단호히 컨템퍼러리 아트의 역할을 믿는다. 또 컬렉션은 삶을 설명하고, 훌륭한 조언을 해주고, 숙고하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예술은 우리 모두에게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준다.”

작가들과 대화하는 동안 우리는 일상에서는 절대 접할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을 나누게 된다.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그들처럼 세상을 보는 제3의 눈을 뜨게 되는 그 감동은 너무도 짜릿하고 고귀해서 다시 그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 빠진다. 이 욕망은 점차 강박이 되기 일쑤다. 이 특별한 경험을 위해 일생을 미술계에 헌신한 여인이 페기 구겐하임이며, 파트리치아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 역시 그 길을 가고 있다.


▎Sarah Lucas, Love Me 1998


※ 박은주는…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2007호 (2020.06.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