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흑인과 클래식 음악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가혹 행위로 살해당했다. 사람들은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흑인들은 어떠한가.

▎‘퇴폐적 음악(Entartete Musik)’이라는 전시회 포스터. 색소폰으로 추정되는 악기를 연주하는 이는 검은 피부의 원숭이다. 그의 가슴에는 유대인을 상징하며 오늘날 이스라엘 국기로 사용되는 별 문양 배지가 달려 있다. / 사진:wikipedia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는 모노스타토스(Monostatos)라는 등장인물이 있다. 테너가 맡는 이 인물은 이 오페라에서 악역이다. 그는 여주인공 파미나를 좋아한 나머지 그녀를 강제로 범하려고 한다. 또 다른 악인인 밤의 여왕과 결탁해 어둠의 세계를 만들려고도 한다. 결국, 소멸해버리는 모노스타토스는 특이하게도 흑인이다. 그를 향한 인종차별적 단어들이 이 오페라 악보에 버젓이 있다. 최근의 연출에서는 이 단어들이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마적(魔笛)]이라고도 불렸던 이 오페라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2년 뒤인 1791년에 작곡되었다. 1789년, 파리의 바스티유 교도소를 습격해 왕에 의해 구속되었던 정치범을 해방했던 프랑스 혁명 세력은 그 유명한 ‘인간의 권리선언’을 선포한다. 이것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여기서 인간이란 남자며 백인이다. 혁명을 접수했던 나폴레옹은 1802년에 노예제도를 부활했다. 여성과 흑인은 혁명의 수혜자가 아니었다. 프랑스 옆의 보수적인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에서 모차르트가 흑인을 악인으로 묘사한 오페라를 쓴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모차르트 이후, 흑인이 등장하는 오페라는 한동안 작곡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베르디가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아이다]와 [오텔로]에서 흑인이 주연으로 등장하게 했다. [아이다]의 이야기 배경은 이집트이니, 등장인물 모두가 흑인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오페라가 흑인들에 의해서만 공연된 적은 거의 없다. 이 오페라의 배경이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모르고 좋아했던 것 같다. 그저 세기말 이국풍(exoticism)의 한 사례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1871년의 [아이다] 공연과 1887년의 [오텔로]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오텔로]에서 이탈리아 인종주의자인 이아고는 흑인 오텔로를 몰락시킨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주인공을 이아고로 생각했던 걸까. 대리 만족을 위해? 당시 이탈리아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하여 패했다. 현실에서의 패배를 오페라에서의 흑인 살해로 보상받은 것일까.

모차르트가 활동했던 시절, 프랑스에는 조제프 불로뉴 슈발리에 드 생 조르주라는 흑인 작곡가가 있었다. 다르타냥 등의 등장인물로 유명한 소설 『삼총사』를 쓴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버지는 토마-알렉상드르 뒤마라는 이름의 장군이었는데, 흑백 혼혈이었다. 이런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프랑스 흑인들은 적어도 미국 흑인들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아왔다. 1차 세계대전에 뒤늦게 참여했던 미국이 유럽에 보낸 군대에는 흑인도 꽤 있었는데, 이들은 프랑스에서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흑인들이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극장에도 갈 수 있었다.

링컨 대통령이 1863년에 흑인 노예를 해방했음에도,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지위는 보잘것없었다. 1950년대 이후 흑인들의 인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s)이 있기 전까지, 흑인 연주자들은 미국 오케스트라단에 고용될 수 없었다. 1960년대 이후 그들은 유럽과 캐나다에 진출했다. 유럽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소수의 흑인 음악가만이 고국인 미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흑인 지휘자 딘 딕슨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던 것을 토대로 1970년 7월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 있었다. 1915년생인 그는 1941년에 이미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한 적이 있었다. 30년 동안의 공백기는 그의 무능 때문이었을까,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보수성 혹은 차별 때문이었을까.

최근에는 좀 늘었다. 2015년부터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로 활동 중인 로데릭 콕스, 2008년 서울시향을 지휘했던 제임스 드프리스트 등을 거론할 수 있다. 흑인 악기 연주자는 더 드물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흑인이 성공한 사례가 가장 많은 곳은 성악, 특히 여성 소프라노 부문이다. 마리안 앤더슨, 레온타인 프라이스, 케서린 배틀, 제시 노만, 바브라 헨드릭스 등이 대표적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미국 흑인들에게 교회는 매우 중요하다. 그들의 중요한 교회 활동 중 하나가 복음성가 합창이다. 이 활동에서 쌓은 음악적 경험이 클래식 성악 분야에서 성공하는 토대가 되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세한 사회학적 연구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한국의 성악계 상황과 유사하다. 한국에서도 성악과 학생 중 대다수가 교회 성가대 출신이며, 한국 성악은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남녀 모두가 나름의 성공을 보여주는데, 미국 흑인들의 경우에는 주로 여성들이 성공한다. 여성 흑인들에게 모종의 생물학적 특성이 있는 걸까.

흑인들의 생물학적 특성을 강조하는 시도는 -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 인종차별로 인식될 수 있다. 사실 몇몇 외양적 차이는 분명해 보이는 것 같다. 흑인들의 피부색이 검은 것은 사실이 아니던가.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의 눈은 대체로 크지 않고 둥그렇지 않다. 이런 차이를 인식하고 중립적으로 거론하는 것조차 문제일까. 여기까지는 그나마 괜찮다. 흑인들이 선천적으로 지능이 낮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아서 젠슨은 미국의 흑인과 백인 사이에 IQ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었고, 그 차이의 원인에 유전자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유전적 차이가 원인이라면, 유전공학의 도움이 없다면 - 예를 들어 공부 잘하게 하는 유전자를 이식받지 않는다면 - 지능의 차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다. 흑인들에게는 암울한 논리로 비쳤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젠슨에게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명이 붙었다. 오늘날 흑인들의 지능에 관한 연구는 뜨거운 감자다.


▎미국의 흑인 지휘자 제임스 드프리스트는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이 불구다. / 사진:wikipedia
인종차별은 무엇일까. 특정한 인간 집단이 다른 인간 집단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때가 있다. 이때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을 같은 생물학적 특성을 공유하는 ‘인종’에 속하는 사람들로 보며 그들이 차별 대우하는 다른 인간 집단도 그들만의 생물학적 특성을 공유하는 ‘인종’으로 여긴다. 그 ‘인종’은 우리 ‘인종’과 다르며 열등하다. 이러한 인식들에 기초한 차별적 행위를 인종차별 행위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며, 무엇보다 인종이 과학적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 집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미국 흑인들을 비하하는 동요와 쇼는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심리를 퍼트리는 데 일조했다. 1830년대부터 영국과 미국에서는 블랙 페이스라고 하는, 백인들이 얼굴을 검게 칠한 채 과장된 춤과 노래로 흑인을 희화하는 쇼가 유행했다. 무려 100여 년 동안 계속된 이런 쇼에서 ‘10명의 작은 흑인 소년들(The Ten Little Nigger Boys)’과 같은 노래가 불리기도 했다. 이 노래는 원래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인디언~”이라는 가사로 알려진 ‘열 꼬마 인디언 소년들’ 노래였고, 이 가사를 쓴 이는 19세기 영국 시인 프랭크 그린이다. 인디언 열 명이 하나씩 죽어서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는 내용의 시에 이후 선율이 붙으면서 제목이 “10명의 작은 흑인 소년들”로 바뀐 것이다. ‘Nigger’는 흑인을 경멸하는 명칭이자 쌍욕이다. “열 꼬마 인디언 소년들” 노래는 한국에서 동요로 불리는데, 그만 불러야 하는 노래로 판단된다.

인종차별에는 특정 ‘인종’을 괜히 좋아하고 대접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어떤 인종을 대우하는 것은 그들이 유전적으로, 즉 선천적으로 잘났다는 인식에 기초할 때가 많다.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의 지능이 지금 이 순간뿐 아니라 대대로 높았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아시케나지 유대인은 주로 독일과 폴란드에서 살았던 백인 유대인이다. 이들의 평균 IQ는 112~115로, 유럽인 표준 IQ인 100보다 높으며, 이것은 인간 집단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능지수다. 유대인은 분명 범상치 않은 인간 집단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유럽 사회에서 중세 이래 주로 국가의 세금 징수 업무를 대행해주면서 화이트칼라 직종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동시에 전통적인 유대인 박해 정책 때문에 오랫동안 동족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동족 결혼은 그들을 다른 집단과 유전적으로 달라지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화이트칼라 직종에서 성공을 거둔 유대인의 높은 지능이 자연선택 된 것이다.

유대인은 서양 음악사에서 독일인과 함께 나름의 두각을 나타냈던 인간 집단이다. 음악계에 유대인 파워가 있다면, 유대인끼리 밀어주고 도와주어서 생긴 것일까. 유대인 파워가 있어서 별 재능이 없던 유대인도 현실에서 성공하는 것일까. 그런 유대인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에 기초해 유대인을 증오했던 이들도 있다. “유대인은 모든 세상을 지배하며 그들의 권력은 금전이고 그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다. 유대인 음악은 과시적이며 깊이가 없고,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반유대주의로 유명했던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말이다. 나치 치하 독일에서 유대인과 흑인은 원숭이와 동급이었다. 나치 당국은 ‘퇴폐적 예술전시회’를 열어 나치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나쁜 예술을 선보였고, 그중에는 ‘퇴폐적 음악(Entartete Musik)’이라는 전시도 있었다. 이 전시의 포스터는 참담하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다”라고 교육함으로써 누구도 인종차별적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결과는 좀 역설적인데, 현실에서의 차별은 존재하지만, 인종에 관련된 논의가 아예 금기시되어버렸다. 프랑스는 특히 국가적 통계를 산출할 때 흑인 관련 데이터 확보를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경향은 유색인종의 삶의 경험과 문화적 차이, 생물학적 특성에 관한 중립적 연구를 막는 효과가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007호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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