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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대기자의 ‘역설의 리더십’(16) 

사소함 보고 큰 그림 그리는 리더 

리더라면 사소한 사건으로 새로운 추이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실제 역사는 언제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사건에서 비롯됐다.

▎ 사진: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리더는 큰 그림을 그린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변화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건 눈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하긴 눈을 시퍼렇게 뜨고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리더라면 사소한 사건이나 미세한 움직임을 다양한 각도로 조합해 완전히 새로운 추이를 구성해낼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쓰는 ‘디테일에 답이 있다’는 말 또한 역설적으로 작은 요인들의 변화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역사는 언제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사건에서 비롯된다.

‘촉이 좋다’는 말도 자주 쓰이는데, 그것 역시 같은 뜻이다. 미세한 떨림에서 대지진을 예측할 수 있듯, 일상의 작은 움직임도 허투루 놓치지 않는 게 리더의 본령이다. 그래야만 미래를 내다보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까닭이다. 먼저 실패 사례를 보자.

춘추시대 말기, 진(晉)나라가 쇠퇴해 제후가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하자, 지(智), 범(范), 중행(中行), 한(韓), 위(魏), 조(趙) 여섯 가문이 실질적인 국가 권력을 나눠 가졌다. 이들을 진날 6경(卿)이라 불렀다. 그중 지씨 세력이 가장 강했다. 지씨 가문의 수장은 지요(智瑤)로서 지백(智伯)이라 불렸는데, 야심이 크고 가혹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었다.

지백은 한, 위, 조씨 세력과 연합해 범, 중행가를 멸했다. 이후 그는 다시 한, 위씨 가문과 연합해 조씨 가문을 멸하고 그들의 토지와 재산을 나누기로 합의했다. 이에 한, 위, 지 세 가문의 연합군이 조가를 공격했으나, 의외로 조가의 저항이 강해 진양이라는 곳에서 대치했다. 지백은 진수(晉水)의 물길을 돌려 진양성에 수공을 가할 계략을 꾸몄다. 이에 연합 세 가문은 자기들의 군영 앞에 높은 둑을 쌓아서 물을 막은 뒤 진수의 물을 진양성으로 흘려 보냈다. 두 달이 지나자 진양성은 물이 민가의 지붕까지 차오를 정도가 됐다. 그러나 진양성의 백성들은 솥과 양식을 가지고 지붕 위로 올라가 밥을 해 먹으면서도 항복할 의사를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진양성을 둘러싼 대치는 3년이나 이어졌다.

사신의 태도에서 위험 감지한 지과

그러던 어느 날 지백의 가신 지과가 지백을 알현하려 들어오다 조나라 책사 장맹담을 우연히 만났다. 장맹담은 지백에게 항복 협상을 제안하고 나오던 참이었다. 물론 지백에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지과는 서둘러 들어가 지백에게 말했다.

“한씨와 위씨 가문에 무슨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백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변화라니? 무슨 변화가 생겼단 말인가?”

“신이 밖에서 장맹담을 만났는데, 그의 태도가 의기양양했습니다. 우리 군영을 빠져나가자마자 가슴을 내밀고 거들먹거리면서 배에 올라타는 게 아니겠습니까? 결코 항복을 구걸하러 온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뭐라도 믿는 구석이 있지 않으면 결코 그런 태도가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지백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며칠만 기다리면 진양성이 무너질 텐데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가. 눈앞의 이익을 앞두고 설마 한호와 위구가 나를 배신이라도 하겠는가.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게.”

지백 앞에서 물러나온 지과는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한가와 위가의 군영을 살펴본 뒤 다시 지백을 찾아 설득했다.

“두 군영이 모두 훈련을 평소보다 강화하고 방비를 튼튼히 하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진양성을 공격하는 데 소극적이던 태도와는 크게 달랐습니다. 무슨 변화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한, 위 양가의 군영을 쳐서 후환을 없애는 게 좋겠습니다. 조가는 우리를 공격할 여력이 없으니 걱정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지백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반대가 단호하자 지과는 다른 계책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한, 위 두 가문과 더욱 관계를 가깝게 하셔야 할 줄 압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관계를 가깝게 하다니?”

“위구의 모사는 조하요, 한호의 모사는 단규입니다. 이 두 사람은 자기가 모시는 주군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조가를 점령한 다음, 조하와 단규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그들에게 각각 만 호읍씩 떼어주자고 제안하십시오. 그렇다면 한, 위 양 대부는 우리를 의심하지 않고 배반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지백은 지과의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

“당치 않은 소리요. 나는 조가의 영토를 빼앗아도 두 가문에 나눠주지 않을 생각인데, 단규와 조하에게 만 호씩 떼주다니. 그건 한과 위의 세력을 더욱 키워주는 꼴밖에 더 되겠소.”

지과는 지백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자 그날로 군영을 빠져나와 진(秦)나라로 망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성도 보(輔)씨로 고쳤다.

장맹담 역시 지백의 군영에서 나오다가 지과를 보았다. 고수는 서로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도 지과의 재능과 예리한 판단력을 알고 있었다. 장맹담은 조씨 가문의 수장인 조맹에게 말했다.

“신이 지가 군영에서 우연히 지과와 마주쳤는데 신을 의심하는 눈빛이 현연했습니다. 필시 오늘 밤으로 출병을 서두르지 않으면 절호의 기회를 놓칠 것입니다.”

장맹담은 조맹의 재가를 받고 위가와 한가를 찾아갔다. 사실 장맹담이 지백을 찾아 항복 의사를 밝힌 것도 계략의 일환이었다. 그는 이미 위, 한 양가를 설득해 세 가문이 연합해 지가를 치기로 맹약을 받은 상황이었다. 망설이는 위, 한 양가에게 장맹담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이치를 들어 설득했었다.

“우리 조가가 멸망하면 다음 수순은 어디겠습니까. 당연히 위, 한 양가일 것이 뻔한 이치입니다. 한, 위가 멸망을 면하려면 지백과 손을 끊고 우리 조가와 연합해야 합니다.”

장맹담은 조하, 단규와 상의해 이튿날 새벽에 지백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조맹이 항복을 요청한 사실에 지백이 방심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 위 양가의 병사들은 새벽에 잠입해 지백 군영 쪽의 제방을 무너뜨렸다. 큰 물이 밀려들자 지백의 군대는 큰 혼란에 빠졌다. 이어 조가의 군대까지 합류한 공격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지백은 생포돼 참수됐으며 지씨 성을 가진 사람은 모두 몰살되고 말았다. 중국에서 지(智)씨 성이 사라진 게 이때라고 한다. 그러나 지과가 시조가 된 보(輔)씨 성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한, 위, 조가는 지씨의 토지와 재산을 고르게 나눠 가졌으며 진의 권력을 삼등분했다. 이를 ‘삼가분진(三家分晉)’이라고 한다. 진(晉)나라는 이렇게 망했고, 세 가문은 이때부터 자신들의 영읍을 근거지로 각각의 통치 체제를 정비해 제후로 행세했다. 그 후 50년 뒤인 기원전 403년에 그 아들과 손자들인 한건과 위사, 조적이 주나라의 위열왕으로부터 제후 지위를 정식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름하여 전국시대의 개막이었다.

지백의 일족이면서 책사였던 지과는 장맹담의 미세한 태도 변화만 보고도 뭔가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를 서둘러 지백에게 알렸지만, 지백은 지과의 설명을 듣고도 그것이 자기 일가의 멸족을 초래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훌륭한 리더라면 아래에서 올라오는 작은 사실 보고 속에서 조직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중대한 트렌드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로 혜안을 갖지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보고를 토대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지백의 경쟁자들은 그만한 능력은 갖추고 있었기에 나중에 전국칠웅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과한 선물로 알아차린 상대의 의도

앞서의 사례가 일어나기 전 지백은 육경 중 하나인 위가를 멸할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위가에 준마 400마리와 귀한 벽옥 하나를 보냈다. 이를 받은 위가 대부가 기뻐한 것은 물론, 모든 가신이 경사를 축하했다. 그런데 가신 중 한 사람인 남문자만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위 대부가 남문자에게 물었다.

“진나라 6경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자네는 무슨 근심을 그리 하고 있는가?”

남문자가 말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공로도 없는데 상을 받을 때나 도와준 일도 없는데 남의 보상을 받을 때는, 상대방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따져봐야 하는 것으로 압니다. 커다란 벽옥과 준마 400필, 이렇게 많은 보물을 바치는 것은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하는 일이지, 지씨 가문처럼 강한 세력이 우리 같은 약한 세력에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상식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강자인 지씨 가문이 그렇게 귀한 보물을 우리 같은 약자에게 보내겠습니까? 대부께서는 부디 현명하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위가 대부는 남문자의 말을 새겨듣고 지가 세력과의 경계지역을 더욱 엄중하게 지키라고 명했다. 과연 지백은 군사를 출동해 위가를 기습하려고 했으나, 위가가 이미 삼엄하게 수비를 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물러나면서 지백은 개탄했다.

“위가에 현자가 있구나. 내 모략을 이미 알고 있다니!”

뛰어난 모사나 현자는 위가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지가 역시 훌륭한 브레인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리더가 판단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책사가 많아도 소용이 없다. 결국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 리더의 몫이다. 은나라 폭군 주왕의 숙부인 기자는 젓가락 하나로 미래를 판단하지 않았나 말이다.

주왕은 즉위하자마자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어 오라고 명했다. 이 소식을 들은 기자는 탄식을 했다.

“왕이 상아 젓가락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으니, 사기 그릇에 담은 밥은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장차 술잔도 무소뿔이나 옥으로 만든 술잔을 쓰려고 할 것이다. 옥잔과 상아 젓가락을 쓰면 거친 밥은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무명옷도 입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초가집에서도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욕심은 끝없이 번져갈 것이며 끝내는 천하의 귀중한 물건을 다 차지해도 만족을 모를 것이다. 그 이후의 일들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떨린다.”

기자의 예견대로 주왕은 날이 갈수록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졌다. ‘주지육림’이란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음탕한 짓거리를 즐기다, 주나라 무왕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본인은 자살하고 말았다.

상아 젓가락 하나를 보고 국가의 망조를 예측하다니 참으로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사소한 것을 보고 장차 드러날 일을 안다’는 ‘견미지저(見微知著)’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큰일이 나기 전에는 대체로 이런저런 작은 조짐들이 나타나는 법이니, 사소한 일들을 허투루 생각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 큰일에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사소한 변화로 미래를 예측한다고 해서 모든 대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알고도 손을 쓸 수 없는 변화도 있다.

상아 젓가락으로 본 국가의 미래

강태공이 제(齊) 땅을 분봉받은 지 다섯 달도 못 돼 그동안의 치적을 보고하기 위해 돌아왔다. 주공이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돌아오셨습니까?”

강태공이 경쾌하게 대답했다.

“정부 조직들은 간소화하고 예절은 모두 현지 풍속을 그대로 따르게 했을 뿐입니다. 어렵거나 오래 걸릴 게 없지요.”

하지만 주공의 아들인 백금은 노(魯) 땅을 분봉받은 부친을 대신해 노나라로 떠난 지 3년이 지나서야 올라왔다. 주공이 물었다.

“어찌 이리 늦었느냐?”

백금이 주저하며 대답했다.

“노나라 백성들의 풍속을 바꾸고 예절을 혁신하느라 늦었습니다. 예컨대 부모상을 당하면 3년 동안 상복을 입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늦었습니다.”

이에 주공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모든 나라는 제나라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정사를 간단하지 처리하지 못하면 국민은 그를 가까이하지 않는 법, 친근한 집정자만이 민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주공은 또 강태공에게 물었다.

“장차 제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려고 하십니까?”

강태공이 대답했다.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게 하고 공업을 숭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주공이 말했다.

“그러면 제나라 후대에는 임금을 시살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자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강태공이 주공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주공께서는 노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려고 하십니까?”

주공이 “현명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친족들을 중히 여기도록 할 것”이라고 대답하자 태공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이후 노나라는 날로 쇠약해질 줄 압니다.”

주공과 강태공의 대화는 그야말로 선문답 수준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한 왕조가 영원히 이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전성기가 지나면 쇠퇴하기 마련이고 쇠퇴하면 왕조가 바뀌는 이치를 역사는 증명한다.

그래도 사소한 일에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주공과 강태공도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현명한 리더라면 작은 지류 정도는 바꿀 수 있다. 주나라 평왕이 도읍을 낙읍으로 옮길 때 대부인 신유가 이천에 이르러 보니, 백성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야외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이를 본 신유가 말했다.

“이곳은 전통 예절이 모두 사라졌으니 곧 서융(중국 서부의 유목민족)에 점령당할 것입니다.”

과연 이천 땅은 나중에 서융의 한 부족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오늘날 모럴 해저드를 경계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한두 명의 사소한 일탈이 둑을 허물어뜨리는 구멍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신유가 이천에 인재를 파견해 풍속을 단속했다면 이천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를 가르는 결정적인 사건도 시작은 늘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리더가 사소한 변화를 허투루 보지 않는 섬세함이 필요한 까닭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변화를 사소하다고 내버려두지 않고 이를 조합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물론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 이훈범은…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고 싶어 기자가 되었고, 기자로 살며 본 세상을 칼럼에 녹이고 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서 혜안을 얻는 게 삶의 기쁨이다. 1989년 중앙일보에 얽매여 기자로 산 지 30년째, 그중 10년 이상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경영에 답하다』(2009),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공저),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2014), 『품격』(2019)이 있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과정 수료.

202008호 (20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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