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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모가 들려주는 예술가의 안목과 통찰(19) 미디어아트 유닛 ‘에이스트릭트’ 

우리는 자연을 각색한다, CG로 

지난 5월부터 코엑스 아티움 앞은 지구적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건물 꼭대기 ‘ㄴ’자형 LED 스크린이 쓰나미급 파도가 들이치는 초대형 투명 물탱크처럼 변신한 덕분이다. ‘웨이브(Wave)’라는 제목의 이 초현실적 퍼블릭 미디어아트는 대번에 CNN 등 해외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타고 서울의 새로운 상징물이 됐다. 제작사는 국내 영상 디자인 회사인 디스트릭트(d’strict). 이 디스트릭트의 재주꾼들이 현대미술에 도전했다. 이들이 CG로 만들어낸 밤 바다 ‘스타리 비치(Starry Beach)’가 삼청동 국제갤러리(8월 13일~9월 27일)에서 파도를 치기 시작했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국제갤러리에 설치한 영상 작품 ‘스타리 비치(Starry Beach)’ 앞에 선 에이스트릭트 작가들. 왼쪽부터 염윤정 XL 컨설팅 팀장, 한상훈 영상디자이너, 이성호 대표, 이상진 부사장, 임호진 영상디자이너. / 사진:디스트릭트
고 최은석·김준한·이동훈이 2004년 설립한 디스트릭트는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미디어 기술과 콘텐트를 결합해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아트 테크 팩토리’다. 회사 이름에는 ‘디자인은 엄격하게(design+strictly)’ 혹은 ‘무언가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다(de+strict)’ 아니면 ‘구역(district)’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웹사이트 제작에서 출발해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나 프로젝션 맵핑 같은 신기술을 연구하며 디지털 미디어 기획 제작으로 독보적 역량을 과시하고 있는 곳이다. 2011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 테마파크인 ‘라이브 파크’(경기도 일산)가 그해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에서 ‘차세대 콘텐츠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SLS호텔 GX 디자인(2014), 중국 난징 킹모 라이프센터 GX 디자인(2016). 평창겨울올림픽 라이브 파빌리온(2018), 넥센 유니버시티 ‘더 인피니티 월’(2019), 2020 CES SK 미디어 파사드(2020) 등 눈길 끄는 공간디자인으로 10여 년간 iF 디자인 어워즈를 휩쓸어왔다. ‘웨이브’는 착시현상을 이용해 입체감을 표현하는 ‘아나몰픽 일루전’ 기술이 이들의 치열한 공간 연구를 통해 대중 앞에 드러난 사례다(‘웨이브’에 이어 9월부터는 ‘웨일’이라는 신작이 상영될 예정이다).

“그동안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부응하는 커머셜 작업만 해왔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동시대의 예술적 가치에 부응하는 결과물도 종종 나왔어요. 사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디자이너들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게 ‘작가’로서 활동할 기회를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엑스 아티움 건물에 설치된 퍼블릭 미디어아트 ‘웨이브‛(2020) / 사진:디스트릭트
디스트릭트 내에 ‘에이스트릭트(a’strict)’라는 유닛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한 이성호 대표의 설명이다. ‘예술에 집중한다(art+strictly)’는 의미처럼, 디스트릭트의 디자이너들은 에이스트릭트에 선정되면 현업에서 빠져 ‘예술 작품’ 제작에만 몰두하게 된다. 직장인과 작가를 오가는 신묘한 시스템이다. 에이스트릭트라는 브랜드로 처음 선보인 작품이 ‘스타리 비치’다. 이 대표를 비롯해 직접 작품을 만든 이상진 부사장, 염윤정 XL 컨설팅 팀장, 한상훈·임호진 매니저(영상디자이너)를 포브스코리아가 국제갤러리에서 따로 만났다.

직장인이 작가가 되는 신묘한 시스템


▎제주 플레이 K팝 전시장(2015) / 사진:디스트릭트
벽면과 바닥면에 투사되는 밤 파도 치는 모습이 묘하다. 바다 위를 날아가며 내려다보는 느낌과 모래 위에서 발목이 젖는 듯한 두 가지 느낌을 동시에 준다.

파도라는 물성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보통 파도를 앞에서만 보지 않나. 우리는 위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위해 물결을 연구했고 6각·8각·12각 패턴을 찾아냈다. ‘아, 이런 게 바다에 있었구나’ 싶더라. 영상 길이는 3분인데, 반복 영상을 보아도 똑같다는 느낌은 갖지 못할 거다. 모래가 쓸려 나가는 느낌까지 담아냈다.

왜 파도를 만들었나.

현대인들이, 도시인들이 뭘 좋아할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연 아닐까. 파도는 바다에 가지 못하면 접할 수 없다. 도심에서 파도를 느껴보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자연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특히 물 같은 유체는.

3D맥스라는 기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자연적 환경을 유추하고 가상공간에서 물을 흘려보내 거센 파도와 약한 파도를 만들었다. 자체 기술도 활용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연에는 규칙이 없기 때문이다. 파도 소리를 녹음해 우리 움직임과 싱크로를 맞췄다.

영상 기술도 급변하고 있다.


▎넥센 유니버시티 ‘더 인피니티 월’(2019) / 사진:디스트릭트
맞다. 120인치 TV가 나오는 세상이다. 파도를 처음 만들었던 3~4개월 전과 지금 만든 파도가 완전히 다를 정도다. 기본 기법에 다른 기술을 덧붙이고 덧붙였다. 하나의 솔루션은 없다.

얼마나 걸렸나.

직접 제작에만 4개월가량.

미안하지만, 드론을 띄워 파도를 촬영한 영상과 뭐가 다른가.

촬영만으로는 이런 느낌을 못 낸다. 우리는 우리식으로 바다를 ‘각색했다’. 타임랩스 기법을 활용해 느리게 혹은 빠르게, 구사했다. 거품 입자가 얼마나 나오느냐, 얼마나 빨리 없어지는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하나하나 계산했다.

사실 밤 바다는 실제로 보면 그저 깜깜할 뿐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드론으로 찍어봤자겠다.

몰디브 바다에 가면 밤에도 훤하다고 한다. 발광 플랑크톤 때문이다. 별명이 ‘바다의 별’이라고 하더라. 우리도 가보지는 못했지만 지구 어딘가에 존재하는, 밤에도 보이는 파도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만든 바다의 색은 ‘별빛이 녹아 있는 까망’이다.

파도를 ‘부리는’ 능력을 갖게 된 소감은.

이런 것들을 실감 콘텐트 기술이라고 한다. 창조주 영역의 결과물이다.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진 배우’가 액션을 한다. 미디어 테크놀로지로 리얼한 시청각 경험을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작품을 현대미술로 보는 이유는.

작가의 철학을 어렵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강렬하게 아티스틱한 면을 드러내는 ‘인스톨레이션 아트’다. 예술은 무엇보다 감동과 울림을 주어야 한다.

‘스타리 비치’ 다음 작품은 뭔가.

9월 25일, 제주에 ‘아르떼(ARTE) 뮤지엄’을 오픈할 예정이다. 감각적인 미디어아트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이터널 네이처(Eternal Nature)’라는 주제로 10개 공간을 구성했다. 사실 ‘스타리 비치’도 그중 하나다.

어떤 공간들인지 궁금하다.

스피커 공장이었던 4630㎡(1400여 평) 공간에 꽃·가든·폭포·우주·정글 등 10개 테마로 꾸며 2시간 관람 코스를 만들었다. 국내 최대 규모다. ‘가든’ 같은 경우 바닥과 4면 등 모두 5개 면에 영상을 쏘아 진짜 정원 같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식이다. ‘폭포’는 8m 높이의 원통형(정확히는 14개 면) 방에 1면에만 프로젝트를 쏘고 나머지 면에는 거울을 설치해 색다른 시각효과를 준다. ‘오로라’와 ‘선셋’도 준비하고 있다.

미디어 파사드 같은 건가.

우리 작품들은 낡은 공간을 트랜스포밍하기에 좋다. 건축비도 거의 안 들고, 많은 사람에게 시각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 제주에서 성공한 뒤 수도권, 부산, 강릉 등으로 확대해나가고 싶다.

직원들에게 돈 버는 일 대신 예술 작품 활동을 허용하는 방식이 신선하다.

아까 말씀드렸듯, 디자이너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걸 만드는 동안 여기에만 집중하도록 회사가 지원한다. 기회는 공정하게 오픈하고, 특정인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한다. 유능한 크리에이터들이 많이 회사를 떠났는데, 그들에게도 기회를 줄 생각이다. 다양한 직군의 크리에이터가 사내에 70명 정도 있는데, 확실히 작품 활동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장기적으로 디스트릭트의 하이엔드 유닛으로 포지셔닝할 생각도 있다.

일본의 미디어아트 그룹 ‘팀랩’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음, 거기에는 할 말이 많다. 2011년 우리가 ‘라이브 파크’를 오픈할 때 보러 왔었다. 우리는 2012년 SM 샤이니 홀로그램 콘서트 무대를 만들었고, 그 뒤에는 YG와 함께 동대문과 제주에 K팝 무대를 조성했다. 샛길로 빠진 셈이다. 하지만 팀랩은 커머셜보다 처음부터 아티스트 그룹으로 포지셔닝을 하고 현대미술 작가의 길을 걸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금 우리가 팀랩을 따라 한 것처럼 보이겠지. 그들이 일본 오다이바에 만든 전시장 규모(약 9900㎡)는 대단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팀랩보다 더 많은 작업을 했다. 제주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 전시에서 사용될 비장의 무기가 있다면.

팀랩의 작품 사운드가 명상음악 위주라면 아르떼 뮤지엄에서는 멜로디와 사운드 이펙트를 고루 들려준다. 특히 사운드엔지니어링은 그래미상을 두 차례(2012년, 2008년)나 수상한 황병준 사운드미러코리아 대표가 맡았다. 현대미술로 보면 우리는 ‘신진작가’다. 하지만 유명작가 못지않은 시각적 임팩트를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 역량에 대한 자신감은 충만하니까.

※ 정형모는… 정형모 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은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고 중앙SUNDAY에서 문화에디터로서 고품격 문화스타일잡지 S매거진을 10년간 만들었다. 새로운 것, 멋있는 것, 맛있는 것에 두루 관심이 많다. 고려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고, 한국과 러시아의 민관학 교류 채널인 ‘한러대화’에서 언론사회분과 간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만든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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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호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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