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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이 만난 아트 인플루언서(4) 피아니스트 손열음 

“클래식 연주란 죽은 음악 되살리는 일” 

마치 피아노를 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스태미나 넘치는 파워풀한 타건에 화려함의 절정으로 치닿는 고난도 테크닉의 향연을 긴장감 ‘1도 없이’ 스스로 즐긴다. 손열음(34)은 그냥 ‘천재 피아니스트’는 아니다. 그가 쓴 글을 보면 글 잘 쓰는 음악가도 꼭 필요한 존재다 싶다. 관찰자로선 알기 힘든 심오한 음악세계의 구석구석까지 훅 끌고 들어가 꼭 한번 들어보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니까. 그뿐 아니다. 전 세계 음악계가 멈춰 선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한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전석 매진으로 이끈 이도 그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임기를 다 채워가는 손열음은 “음악제를 통해 대한민국 음악계 전체를 고양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죄송한데, 음악 좀 꺼주시겠어요? 음악에 귀가 기울여져서 아무 생각이 안 나거든요.”

새빨간 원피스를 입은 손열음은 태도도 선명했다. 잘 울리는 매끄러운 목소리와 또렷한 발음, 빠른 속도의 조리 있는 말투에 물씬 묻어나는 자유로움은 똑부러지되 열정 넘치는 연주 스타일과도 닮았다. 잘 웃고 호방했지만, 예술가 특유의 예민한 완벽주의자의 모습도 숨기지 않았다.

“네, 예민해요. 연주자는 당연히 예민하게 타고나야 하죠. 예민하지 않으면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이 많아요. 색깔을 10가지 구별하는 능력과 60가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10가지 밖에 구분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50은 못 쓰겠죠. 그런 문제예요. 소리도 기술로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일단 이상이 있어야 그걸 좇을 수 있는 기술이 나오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이상을 좇는다는 건 남들은 전혀 구별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라도 추구해가는 과정이죠.”

손열음이 예술감독으로서 3년째 꾸려온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이번에 새 역사를 썼다. 코로나19 때문에 객석 띄어 앉기를 시행하긴 했지만, 2주 동안 열린 전 공연에서 매진을 기록한 건 2004년 행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다. 지난 8월 8일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열린 폐막 공연 ‘지금 아니면 다시는’에서는 지휘자 정치용이 이끄는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PFO)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을 직접 연주하며 마무리했다. “이번엔 코로나19 때문에 특히 힘들었어요. 준비과정에서 수정하고 번복하는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폐막 공연에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을 선곡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 공연은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이었어요. 성악곡과 협주곡 한 곡씩, 그리고 교향곡 5번으로 구성했는데, 베토벤 생전에 있었던 어느 날 공연의 프로그램을 따온 거죠.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마라톤 공연이었거든요. 베토벤이 지휘도 하고, 4번 협주곡 연주도 직접 했고, 교향곡 5, 6번을 초연한 공연이죠. 1808년 12월 22일 그 추운 날에 관객들이 5시간짜리 공연을 보러 모여들었다는 기록이 있거든요. 처음엔 그날 공연을 그대로 하고 싶었지만 코로나19 등 여러 이유로 핵심 3곡만 가져왔어요.

평소에 긴장을 전혀 안 하던데, 그런 큰 연주를 할 때는 떨리기도 하나요.


▎9월 클라라 주미 강과 서울 예술의전당을 비롯해 고양, 수원, 제주 등에서 듀오콘서트를 연다. / 사진:크레디아
그날은 안 떨었지만, 저도 떨긴 떨어요.(웃음) 어렸을 때는 정말 하나도 안 떨었거든요. 스무 살 이전에는 떨린다는 감각이 없었죠. 남들이 떠는 걸 보면서 만일 내가 저렇게 떨리면 못 나갈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때도 많이 떨진 않았는데, 그 후로 사실 연주에 욕심이 생겨서 더 떨기 시작했어요. 어떨 때 떨린다는 규칙은 없어요. 치다가 내려오고 싶을 때도 있고, 치면서 안 끝났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선 안 끝내고 싶었을 것 같은데.

맞아요. 그땐 행사가 끝나가는 느낌에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없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죠. 차이코프스키 콘서바토리 볼쇼이홀은 피아니스트들에겐 성지거든요. 호로비츠 같은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사랑했던 무대기도 하고, 지난 150년의 피아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에 간 것 자체가 너무 좋았고, 러시아 관중에 대한 느낌도 좋았어요. 러시아가 진짜 문화 강국이란 생각을 한 게, 관객이 정말 음악을 사랑해요. 그들에겐 음악이 여흥이 아니라 의식주 같은 건데, 그런 나라를 러시아 말고는 못 봤어요. 한국인이 흥이 많고 가무를 즐기는 것도 특별하지만, 러시아는 공연문화에 대한 존중이나 애착이 남달라요. 돈이 없으면 밥을 굶고도 꽃을 사서 생판 모르는 연주자에게 건네죠. 그런 사람들에게 그들이 사랑하는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피아노는 시작부터 무대에 올라갈 때까지 혼자 하는 일이잖아요. 피아노만 치다가 여러 사람과 합을 맞추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초반에는 쉽지 않았어요. 대신 그만큼 보람도 희열도 큰 것 같네요. 사실 음악제 기간에 맘껏 공연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워낙 음악을 좋아하는데, 연주여행을 다니는 삶이 있으니까 공연을 한꺼번에 많이 볼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다시 애호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어서 참 좋았어요. 또 프로그래밍을 100% 제가 했는데, 곡 하나하나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어요.

고독하기에 자유로운 직업, 피아니스트


▎8월 8일 평창대관령음악제 폐막 공연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직접 협연했다. / 사진:평창대관령음악제
9월에는 ‘절친’인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듀오 콘서트로 전국 투어가 예정돼 있다. 2011년 대관령음악제에서 처음 한 무대에 섰던 두 사람의 듀오는 2016년 DECCA 레이블 듀오 앨범 발매를 기념한 전국 투어 이래 4년 만인데, 라벨과 프로코피예프, 슈트라우스와 스트라빈스키를 들려준다. “어쩌다 보니 20세기 초반 작곡가들로 구성하게 됐어요. 특징이라면 음악사에서 갑자기 멀티 스타일이 된 시대거든요. 그전에는 바로크, 고전, 낭만주의가 순차적으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그 시대에 재즈도 생기고 네오바로크, 12음기법 등 여러 스타일이 한꺼번에 나왔죠. 우리가 선정한 네 작곡가도 각기 다른 스타일인데, 서로 영향을 주면서도 비슷하지 않게 만든, 그런 부분이 흥미롭지 않을까 해요.”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듀오 콘서트에 꼭 가고 싶어진다. 언어로 음악에 대한 흥미를 돋우는 재주가 역시 남다르다. 5년간 신문 칼럼을 연재하고 연주회 프로그램북을 직접 쓸 정도로 글쓰기에 애착을 보이는 그다. “피아노 치고 공연하는 건 오히려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적어요.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어도 무대에서 완전히 변할 수 있는 여지가 많거든요.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고칠 수 있으니까 성취감이 다른 것 같아요.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도 글쓰기의 매력이죠.”

피아니스트의 고독에 대해 쓴 글이 기억나는데.

어떨 땐 내가 왜 이렇게 혼자 있어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그만큼 자유가 주어지는 거니까 영광스런 순간이기도 하죠. 그 누구라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일이 많지 않은데, 저에게 그 순간만큼은 주어지는 거니까요. 그런데서 오는 고독은 어쩔 수 없죠. 고독과 자유는 공존할 수밖에 없는데 피아노 연주가 그런 거라 생각해요. 혼자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지만 혼자인 게 특권이기도 하죠.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지만,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한예종을 졸업할 때까지 ‘토종 피아니스트’로 유명했던 손열음을 얘기할 땐 늘 ‘엄마의 헌신’이 세트 메뉴다. 고교 교사인 어머니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간을 쪼개 원주에서 서울까지 매번 레슨을 받으러 데리고 다녔다는 이야기다. ‘그럼 아버지는 어떤 분이냐’고 물으니 왜 그런지 ‘깔깔깔’ 웃는다. “아빠는 되게 자유로운 영혼이에요. 저의 자유에의 갈망 같은 성향은 다 아빠한테서 왔죠. 제 타고난 기질과 성격의 원형은 아빠예요. 전혀 음악적인 분은 아니지만요. 음악성이요? 그건 그냥 하늘에서 온 거죠. 음악성이란 게 세습되는 건가요?(웃음) 아빠를 보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깨닫는 게 많아요. 늘 가장 큰 성원을 보내주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예요.”

어려서부터 활동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나요.


▎손열음은 답을 내려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음악을 하고 싶단다. 함께 사유하고 싶어서다. / 사진:신인섭 기자
슬럼프에 빠질 만큼 여유로운 시간은 없었어요. 투정 부릴 시간도 없었지만 그저 늘 감사했어요.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데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힘들긴 하죠. 전에는 힘들다고 말도 못 했었는데, 대관령음악제 때문에 사무적인 일도 하고, 책상에 앉아 밤새고 회의도 몇 시간씩 하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 충돌도 다 겪어보고 나서 이제야 말할 수 있는 건 그 모든 것보다 연주가 제일 힘들다는 거예요. 왜냐면 그 순간성과 현장성에서 오는 중압감이 크고, 그걸 감당하기 싫은 느낌이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축복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니까. 명암이란 게 빛이 짙을수록 그림자도 어두운 거잖아요.

음악 인생에 전혀 위기가 없었던 건가요.

굳이 꼽자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이후에 한국인으로서 유럽 무대에 계속 서는 게 혹시 가능하지 않은 건 아닐까 싶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음악에서 콩쿠르는 등용문일 뿐이지 운동선수의 올림픽 금메달과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유럽은 자기들끼리의 사회가 견고한데 클래식은 거기가 본고장이고 나는 거기서 연주하고 싶지만, 그들에게 나란 존재는 굳이 있을 필요 없는 존재가 아닐까 고민했던 거죠. 저한테나 그들한테나 그걸 증명하는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클래식 연주자에겐 나만의 색깔이 필요한 것이겠죠.

클래식 연주란 죽어 있는 텍스트를 되살리는 작업인데, 나라는 사람을 통해서 다시 나오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고 그게 곧 연주음악의 매력인 것 같아요. 하지만 내 색깔을 말로 규정하라면 조심스러워요. 언어가 끝나는 지점에서 음악이 시작된다는 말도 있지만, 한번 언어로 규정해버리면 모든 게 제한되고 그 안에 갇히는 것 같아서죠. 사람들이 내 연주의 특징에 대해 많이 물어보지만 대부분 대답하지 않아요. 다만 지향하는 점이 있다면 답을 내려주는 음악 말고 질문을 던지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추상적인 얘기긴 하지만, 어떤 연주는 너무 답을 내려주는 것 같거든요. 저는 함께 사유하게 만드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유럽에서 존재 증명하기까지 힘든 시간도

코로나19 때문에 5월부터는 한국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장기간 한곳에 머무는 것은 대학 졸업 이후로 처음이다. 10년쯤 살고 있는 독일 하노버도 마찬가지다. 3월부터 예정된 공연이 다 취소되어 두 달 동안 집에만 머물렀는데, 두 달이나 하노버를 떠나지 않은 것도 처음이란다. “계속 연주를 다녀야 하니까요. 학교를 다녔지만 석박사 과정에 레슨 정도 받은 거니까. 워낙 어디 사는지는 별 의미가 없어요. 원래 집 밖으로 잘 안 나오는 스타일이거든요. 이번에도 두 달 동안 집 안에만 있었죠. 연주가 없으니 피아노도 안 치고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이 잘 가더라고요.”

집에서 책만 읽었나요.

책도 많이 안 읽었는데, 토마스 만의 단편들을 다시 읽긴 했어요. 제일 좋아하는 작가거든요. 왜 좋아하냐고요? 이렇게 얘기하면 고자세 같아서 좀 웃긴데, 예술가밖에 못 느끼는 지점이 있거든요. 예술가로서의 삶에서 오는 피로와 고뇌가 그의 모든 작품에서 드러나죠. 예술가끼리 통하는 것 같아서 왠지 좋아요. 전에는 왜 좋아하는지 이유를 몰랐는데, 요즘 다시 읽으면서 왜 토마스 만에게 유독 빠지게 됐는지 생각해보니 그런 것 때문인 것 같아요. ‘아티스트병’에 걸린 사람에 대한 공감대랄까?(웃음)

클래식 아티스트는 어딘가 벽이 느껴져요. 연예인보다도 멀게 느껴지는데.

연예인과는 전혀 다르지 않나요? 연예인들은 인기가 중요한 사람들이죠. 남이 주목하고 트렌드를 이끄는 게 중요한 사람들인데, 우리는 그런 거와 상관없다 생각해요. 오히려 운동선수와 비슷하죠. 자기 일을 하면 남들이 봐주는 건 부차적인 거죠. 물론 운동선수나 우리나 관중이 없다면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일단 중요한 건 우리 기량과 예술성을 끌어올리는 게 지상 과제니까요.

음악가로서 사회적 책임도 느끼겠죠.

대관령음악제를 통해 많이 노력했어요. 지역사회에도 보탬이 되고, 세계적 기량의 음악제로 만들려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짜냈죠. 지역민과 국민에게 사랑받는 음악제가 되기를 희망했고,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 전체 음악계를 같이 고양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그는 자신을 어떤 음악가로 표현하고 싶냐는 물음에 ‘죽을 때까지 피아노를 치고 싶은 음악가’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연주하고 싶은 단 한 곡은 뭘까. “슈만의 ‘크라이슬레리나’요. 클라라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곡인데, 그런 스토리 때문은 아니고 어렸을 때 처음 듣자마자 그 곡과 사랑에 빠졌어요. 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그 곡을 바라보는 시각도 계속 성장했고요. 저랑 같이 자라난 음악이랄까요. 슈만이란 작곡가가 개인적인 언어로 곡을 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의 언어가 꼭 나의 언어 같은 느낌이 들어서죠.”

※ 유주현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휩쓸던 영광의 기억을 품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살아왔다. 2010년부터 중앙SUNDAY에서 공연을 중심으로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을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전달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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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호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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