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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대기자의 ‘역설의 리더십’(18)] 희생양과 앞잡이 사용법 

 

리더가 모든 조직원을 만족시킬 순 없다. 조직원들이 싫어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더 많다. 불가항력적인 경우엔 희생양과 앞잡이 전략이라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꼭 명심해야

인간관계에서 평판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평판이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다. 그런데 내가 들여다보는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거울처럼 반전(反轉)이 있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나의 장점이 먼저 보이지만, 남들의 눈에는 나의 단점이 더 쉽게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한번 형성된 평판은 인위적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거의 평생 따라다니는 인증서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억울한 면도 있을 수 있지만 어차피 그 용도가 남이 사용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해명을 한다 해도 들어주느냐 마느냐는 상대의 몫이다. 탓할 수도 없으니 좋은 평판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리더일수록 더하다. 리더가 모든 조직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것을 반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불만인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엔 조직을 위해 부득이하게 모든 조직원이 싫어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에 잘 대처해야 현명한 리더다. 좋은 예를 보자.

2세기 말 한나라가 몰락해가면서 명문거족이던 원술은 황제를 폐위하려는 동탁을 격파해 명성을 얻은 뒤 스스로 황제를 참칭했다. 이에 승상인 조조는 17만 대군을 이끌고 원술을 정벌하러 달려갔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원술은 성문을 굳게 닫고 조조군의 군량미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지연 전술을 펼쳤다. 말이 17만이지, 이들을 먹이려면 보급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곧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에 조조는 병참 책임자인 왕후를 불러 대책을 물었다. 왕후가 대답을 못 하자 조조가 말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식량 배급량을 줄여야 하지 않겠나. 쌀을 나눠줄 때 작은 되를 사용하도록 하게.”

“그러면 병사들의 원성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내게 생각이 있으니 지시대로 하게.”

식량 배급량을 줄이자 예상대로 병사들의 불만이 커져갔다. 마침내 폭동 일보 직전에 이르자 조조는 왕후를 다시 불러 말했다.

“자네에게 빌릴 게 하나 있는데 부디 거절하지 말게나.”

“무엇입니까?”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자네의 목을 빌려야겠네.”

“아니, 저는 승상께서 시키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걸 내가 모르겠나. 하지만 폭동을 막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네. 자네가 죽은 뒤에 가족들은 내가 잘 보살펴줄 테니 너무 슬퍼하지 말게.”

조조는 병참 책임자 왕후의 목을 잘라 효시하고 방문을 써 붙였다.

‘왕후가 되를 속여 군사들에게 돌아갈 군량을 훔쳤으므로 군법에 따라 처벌하노라.’

“그러면 그렇지. 승상이 우리를 속일 분이 아니지.”

병사들은 공정한 태도에 감탄했다. 자연스럽게 불만도 사라지고 사기가 충천했다. 원술의 성이 이내 무너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조조가 속임수를 썼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특히 오늘날에 무고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다. 무고하지 않더라도 목숨을 거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는 혼란이 극에 달한 난세였다. 한 사람을 희생시켜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불가피하게 선택을 해야했다. 게다가 조조는 조직의 생리와 권력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알았다. 희생양이 없다면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원술과의 싸움을 벌이나 마나 결과는 뻔했다. 따라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배급 참모 목을 빌린 조조

살아가면서 한 번도 위기가 없을 수는 없다.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조직을 이끌면서 모든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위기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흔히 권력자들이 몰락하는 것은 위기와 그에 따른 피해 탓이 아니라, 그 위기에 대처하는 태도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위기 앞에서는 과감해야 한다. 외과의사들처럼 빠르고 결단성 있게 위기의 원인이 되는 종양 덩어리를 잘라내야 한다. 머뭇거리면 사태만 악화될 뿐이다. 사과나 변명 따위는 들지 않는 메스에 불과하다. 만일 조조가 배고픈 병사들 앞에서 보급 수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조금만 참자는 변명을 늘어놓았다거나, 전투를 앞두고 배를 곯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더라면 어땠을까. 과연 조조를 솔직한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존경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능력과 재주가 없는, 신뢰할 수 없는 지도자로 여기는 병사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 지도자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병사도 그만큼 적었을 것이다. 신뢰, 즉 평판을 잃은 지도자는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이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희생양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조조의 말이 그것이다.

“세상이 나를 배반하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온 세상을 배반하겠다.”

조조의 경우는 위기에 직면해 불가피하게 희생양으로 삼은 측면이 강하지만,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경우는 아예 위기 때 사용하기 위해 평소부터 희생양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범죄자나 행려병자 등 사회에서 타락하고 쓸모없다고 판단되는 낙오자들을 공적인 비용을 들여 부양했다. 그러다가 전염병이나 가뭄 같은 재난(곧 신의 벌)이 닥치면 그들을 도시 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였다. 변덕스러운 신들이 벌을 내리는 경우가 워낙 잦다 보니 희생양들을 미리 준비해놓지 않으면 그 수요에 맞추기 어려웠던 것이다.

조조 같은 간웅들만 자신의 평판을 위해 희생양을 만드는 게 아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처럼 정직하고 공정하다는 평판을 가진 리더들도 희생양을 만든다.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인 루스벨트도 오랜 정치 인생 가운데 자칫 정치적 재앙이 될 만한 위기를 여러 번 맞았다. 그때마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졌다면 아마도 13년이란 긴 시간을 대통령 자리에 머물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일을 대신 한 사람이 20년 동안 루스벨트의 비서로 일한 루이스 하우였다.

하우는 루스벨트 대신 냄새 나는 정치적 뒷거래를 도맡았고, 언론과 피곤한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으며 선거운동과 관련된 온갖 공작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루스벨트의 공적인 이미지에 손상을 줄 만한 일이 생길 때마다 자청해서 희생양 노릇을 했고 한 번도 그것을 불평하지 않았다. 그런 하우가 있었기에 루스벨트는 훌륭한 평판을 지켜냄으로써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루스벨트의 성공 이면에 있는 것

외부적인 위기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것이라면, 내부적인 개혁이나 혁신처럼 꼭 필요한 일들이 있다. 리더라면 그런 개혁과 혁신을 피해서는 안 되지만, 조직원들에게 그것은 우선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일일 뿐이다. 그런 여론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리더로서의 신뢰와 평판이 추락하기 쉽다. 이럴 때도 현명하게 잘 대처해야 훌륭한 리더다. 예를 보자. 가까운 과거의 중국이다.

1920년대 말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1927년 제1차 국공합작이 결렬된 뒤 국민당 지도자인 장제스(張介石)는 공산주의자의 씨를 말리겠다고 선포하고 공산당 소탕에 나섰다. 몇 년에 걸쳐 공산당이 지배하는 소비에트 지역을 포위 공격했다. 국민당군의 제5차 토벌전으로 심한 타격을 입은 홍군(공산당군)은 1934년부터 1935년에 걸쳐 중국 서남부에서 북서부로 근거지를 옮기는 대장정을 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다.

장제스는 1936년 대대적인 6차 공산당 토벌전을 준비한다. 그러나 이때 일본군이 노골적으로 중국 침략에 나서면서 중국에서 항일 여론이 크게 높아졌다. 공산당은 거국적인 항일운동을 호소하는 8·1선언을 발표하는 한편, 국민당에 내전 중지와 항일투쟁 제휴를 제안했다. 하지만 장제스는 ‘선 통일, 후 저항’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공산당의 제안을 거부했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동북군 사령관 장쉐량(張學良)이 장제스를 납치 구금하고, 공산당과의 내전 중지와 항일투쟁 합작을 요구하는 ‘시안 사건’이 벌어졌다. 게다가 이듬해 일본이 노구교 사건을 일으키며 중일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하자 2차 국공합작이 성립됐다.

장제스로서는 잃을 게 별로 없는 협상이었다. 오히려 장제스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던 공산당이 장제스를 조건 없이 풀어주고 국공 연합군 사령관으로 인정하는 등 커다란 양보를 한 것처럼 보였다. 장제스로서는 공산당과 싸우지 않으면 일본은 금방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뒤에 공산당을 토벌해도 늦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2차 합작으로 공산당이 합법화됨으로써 공산당은 국민당의 대대적 토벌작전에서 벗어나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공산당 군조직인 홍군이 장제스의 국민혁명군 소속 제8로군과 신4군으로 재편됐지만, 장제스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인 작전권을 확보했다.

일본과 전쟁을 치르면서 재래식 전술을 사용한 국민혁명군은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맥을 못 추고 패배와 후퇴를 반복했다. 하지만 8로군과 신4군은 게릴라전술로 일본군 후방을 괴롭혔다. 따라서 주력부대를 고스란히 살리며 세력을 넓혀갔다.

마오쩌둥의 앞잡이가 된 일본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종전된 뒤 다시 국공합작이 결렬되고 국민당과 공산당은 2차 내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상황은 과거와 딴판이었다. 국민혁명군은 항일전쟁 과정에서 체력을 거의 소모해 크게 약화돼 있었다. 하지만 홍군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으로 힘을 비축할 수 있었을뿐더러, 중국 전역에서 국민에게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홍군이 국민혁명군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마오쩌둥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일본 제국주의라는 국가적 환란 앞에서 내전 종식을 외침으로써 대의명분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당에 밀려 괴멸될 위기에서 벗어나 숨을 돌릴 시간을 벌었다. 일본군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오의 앞잡이가 돼, 홍군이 국민혁명군을 누르고 정권을 획득할 수 있는 토대를 깔아준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여왕도 또 하나의 좋은 사례다. 흔히 클레오파트라의 성공은 고혹적인 미모 덕분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반만 맞는 말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의 멋진 말 때문에 왜곡된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외모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남들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능력이 없었다면 권력을 움켜쥐지 못했을 것이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는 그녀의 위험한 형제들을 제거했을 뿐 아니라 정부와 군대 내에 있는 정적들을 모두 없애줬다. 이어 두 사람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이집트를 로마의 식민지가 아니라 동맹을 맺은 독립국으로 대우해줬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본의 아니게 클레오파트라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이다. 외모만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왕이 직접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권력을 유지하려면 적을 없애야 한다. 따라서 그런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 리더의 숙명이다. 그래서 스페인 출신의 풍자가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 일은 모두 직접 하고, 불쾌한 일은 모두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라. 전자로는 환심을 살 수 있고, 후자로는 상대의 악한 의도를 비껴 갈 수 있다. 중요한 일에는 상과 벌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당신은 상만 주고, 벌은 다른 사람이 주게 하라.”

하지만 이처럼 앞잡이를 써먹을 때는 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칫 과하면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의 군주 평공(平公)과 재상 자한(子罕)의 얘기가 그것이다. 『한비자』[이병(二柄)]편에 나온다. 자한이 평공에게 말했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백성의 어려움을 다스리는 것은 군주께서 백성에게 포상을 하고 처벌을 내리는 데 달려 있습니다. 대체로 상을 주면 사람들이 좋아하니 군주께서 손수 시행하시고, 처벌을 받는 건 사람들이 싫어하니 신이 담당하겠습니다.”

평공은 신하가 악역을 맡겠다고 자청하니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상을 주는 병’보다 ‘벌을 주는 병’이 더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가혹한 형벌을 피하려니 백성들이 당연히 왕보다 자한을 더 두려워하고 따르게 된 것이다. 1년이 지난 뒤 자한은 평공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

앞서 말한 희생양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칫 베일이 들춰져 속내가 드러나면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까닭이다.

1572년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위그노(프랑스 신교도)파 지도자이자 해군 제독인 가스파르 드 콜리니를 없애려는 음모를 꾸몄다. 콜리니가 카트린의 아들 샤를 9세와 가까웠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카트린은 프랑스에서 가장 유력한 기즈 가문에 콜리니를 암살하는 일을 맡겼다. 그러면서 기즈 가문이 암살을 주도한 사실을 위그노파가 알고 그들에게 복수하기를 바랐다. 그야말로 1석 2조의 효과를 노린 계획이었지만, 일은 카트린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암살범은 콜리니를 죽이지 못하고 부상만 입혔으며, 콜리니는 배후 인물이 카트린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젊은 왕에게 일러바쳤다. 일이 그렇게 확대되면서 가톨릭과 청교도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벌어지게 됐고, 위그노파 수천 명이 죽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로 절정을 이뤘다. 신구교 어느 한쪽으로 힘이 쏠리지 않도록 조정하고 견제하려는 의도였지만, 치밀하지 못하고 어설픈 계략이 속내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리더라면 희생양과 앞잡이 전략을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마지막에 써야 하는 카드일 뿐이다. 무엇보다 리더 자신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희생양과 앞잡이는 불가항력적인 경우에 내미는 카드이다.


※ 이훈범은…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고 싶어 기자가 되었고, 기자로 살며 본 세상을 칼럼에 녹이고 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서 혜안을 얻는 게 삶의 기쁨이다. 1989년 중앙일보에 얽매여 기자로 산 지 30년째, 그중 10년 이상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경영에 답하다』(2009),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공저),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2014), 『품격』(2019)이 있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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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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