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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재산이 유류분에서 제외되면 

 

상속 하면 누구나 유류분을 떠올릴 것이다. 법에서 정해놓은 법정상속분의 일정한 몫이라는 것은 이젠 상식이 됐다. 자녀와 배우자는 1/2씩, 부모와 형제자매는 1/3씩이라는 비율은 금과옥조처럼 나를 위해 존재하는 숫자로 인식된다.

우리나라 민법 제1009조에서는 상속인이 받을 수 있는 법정상속비율로 ‘자녀는 1, 배우자 1.5’로 정하고 있다. 돌아가신 부모가 생전에 유언으로 그 비율을 자유롭게 정해놓아도 자녀와 배우자는 해당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유류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가 일부 자녀에게만 상속하는 것에 대한 형평성 차원에서 1979년 유류분 제도가 도입됐다.

침범할 수 없는 권리로 여겨지던, 그래서 분쟁 없는 상속설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배려되던 유류분 제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시대 흐름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최근 계속되더니 결국 위헌법률심판 제청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사망하기 1년 이전에 신탁된 재산은 유류분 반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1심 판결도 나왔다. 특히 신탁된 재산이 유류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판결은 유류분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내용이다. 만약 2심과 대법에서도 받아들여진다면 국내 상속 관행에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필자가 2014년 진행하여 관리하던 한 유언대용신탁은 계약 후 약 3년이 경과한 2017년, 계약자의 별세 후 가족 간 유산 다툼으로 이어졌다. 모친은 곁에서 자신을 부양한 막내딸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는 ‘신탁 계약’을 했다. 모친의 사망으로 막내딸은 신탁재산을 상속받게 되었고, 이 상속에서 배제된, 사망한 아들의 며느리와 손자가 상속인을 상대로 유류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유류분 반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근거는 모친이 사망하기 1년 이전에 상속인이 아닌 제3자, 즉 금융기관인 수탁자에게 소유권이 이전된 신탁재산은 유류분 대상 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제3자에게 증여한 재산, 유류분 일부 인정

유류분 청구의 대상이 되는 재산은 상속 시점에 고인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과 생전에 상속인 혹은 제3자에게 증여한 재산을 기반으로 계산된다. 생전에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은 판례에 의해 시기와 상관없이 유류분 대상이 되지만, 제3자에게 증여한 재산은 상속 개시 전 1년간 이뤄진 것만 포함된다. 다만, 제3자가 해당 재산을 증여받아 다른 상속인에게 손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시기와 상관없이 유류분 대상에 포함된다.

재판부는 유언대용신탁계약이 이뤄지면 재산의 소유권은 수탁자인 은행으로 넘어가므로 신탁이 성립된 상태에서의 대내외적인 소유권자는 수탁자이고 고인 소유의 재산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본다. 이는 신탁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를 근거로 한다. 신탁된 재산은 성질상 유류분 반환 대상인 증여재산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유언대용신탁을 2010년부터 시작하여 2019년 말 기준으로 금전계약과 맞춤형 계약을 합쳐 약 10만 건의 계약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상담과 고민을 경험했다. 이 판결이 언론에 보도된 후 상당히 많은 상담 요청이 들어왔는데, 기업 승계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그다음으로는 이미 1차 상속을 겪으면서 발생한 크고 작은 갈등에 대한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장자 중심으로 재산을 상속함으로써 평생 동안 이뤄온 재산을 자손들에게 계속 이전하고자 하는 상담 요청도 많은 편이었다.

우리 경제가 성장하면서 기업가치도 올랐고, 자산 규모만 수천억을 상회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기업 승계를 고민하는 리더들은 세금 못지않게 기업이 외부 요인으로 분할되는 일 없이 오랫동안 생존하며 자손들에게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장수기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슬하에 첫째 딸과 아들, 막내딸을 둔 김상철(가명·75)씨는 유류분 판결 이후 상담을 신청했다. 큰딸이 오랫동안 부친을 보좌하고 있었고, 부친의 경영 철학에 맞게 자금 분야에서 무난히 일을 해왔기에 큰딸도 아들과 함께 후계자 중 하나로 생각했다. 그런데 딸은 안정적이고 꼼꼼한 성격이라 적극적인 사업 확장을 위해 대기업에서 과장급으로 근무하던 아들에게 승계를 결정하던 차였다.

아직까지는 자신이 85%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주식에 대한 중장기적인 승계 플랜을 위해 기업의 구조적 접근이나 가업상속공제 등 세제 프로그램도 집중적으로 자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적지 않은 주식 평가 금액 때문에 어느 한 자녀라도 유류분에 대한 소송을 진행한다면 기업의 평판이나 지속적인 경영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적극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업의 주식 평가와 개인 보유재산에 대한 전체 평가를 통해 자녀들의 법정상속분과 유류분의 금액을 파악할 수 있다. 또 기업을 맡아 경영할 아들에게 경영에 문제가 없을 수준의 주식 비중과 개인 부동산 현황, 미래가치상승 가능성 등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자녀들 간 적절한 정도의 재산분배 설계를 제시할 수 있었다. 특히 가업상속공제 등 세제 프로그램은 승계 이후 일정 기간 고용유지, 업종유지 등 엄격한 사후관리 요건들에 대한 검토까지 해야 했다. 개인재산과 보유 주식의 이전 절차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승계방식 증여, 신탁, 유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최적의 솔루션을 찾았다.

출생률 저하와 유류분

요즘에는 자녀를 둘 이상 갖는 가정을 보기 어렵다. 상속 관점에서 보면 재산분배의 형평성 문제를 따지는 유류분 이슈는 세월이 가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자녀가 하나라면 개인재산이든 기업이든 유류분 문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현 가정 상황에서는 고령 부모를 중심으로 자녀가 여러 명이므로 유류분에 대한 고민과 갈등은 확대될 수 있다. 미래의 가정 구조를 고려한다면 자녀들의 이혼으로 인한 재산상속분쟁의 유형과 부모 기업에는 참여하지 않고 자신만의 일을 하겠다는 독립적인 자녀들의 욕구가 오히려 늘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공정한 재산관리와 집행에서 투명성이 기대되는 신탁제도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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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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