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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현 시그니엘 서울 총주방장 

“음식은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 

롯데호텔 시그니엘 서울의 남대현 총주방장이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 지난 34년간 오롯이 한길만 고집하며 요리 분야 최고 장인의 영예를 안은 남 총주방장을 포브스코리아가 만났다.

▎서울 송파구 잠실 시그니엘 서울에서 만난 남대현 총주방장. 지난 34년간 오롯이 한길만 걸어온 최고의 요리 장인이다.
경북 포항의 어느 마을, 소년의 어머니는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했다. 당시만 해도 남자가 주방에 드나드는 것을 곱게 보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소년은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설거지도 자주 하고 궂은 식당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덧 사회 진출의 기로에 선 소년은 음식 솜씨 좋던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요리사라는 직업을 운명처럼 선택했다. 한국전쟁 당시 해군 중사로 복무하며 미 해군 군함의 서구식 선진 주방 문화를 경험한 아버지의 추천은 소년이 요리사의 길을 걷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소년은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긴 세월 동안 요리사로서의 인생을 묵묵히 살아왔다. 어느덧 환갑을 눈앞에 둔 나이가 된 소년은 요리 분야 최고 명예인 ‘대한민국 명장’ 반열에 올랐다. 롯데호텔 시그니엘 서울 남대현 총주방장(57)의 이야기다.

대한민국 명장은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산업현장에서 15년 이상 종사한 사람 중에서 최고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장인에게 부여하는 영광스러운 자격이다. 명장 제도가 시작된 후 지난 30여 년 동안 조리 부문 명장은 남 총주방장을 포함해 지금까지 단 14명에 불과하다. 지난해에도 이 분야에서 명장은 나오지 않았다.

올해는 전국 지자체에서 대상자를 추천받아 서류심사와 현장실사, 프레젠테이션, 심층 면접 등을 거쳐 단 13명만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총 8명이 참가한 조리 부문에서는 남 총주방장이 유일하게 선정됐다.

지난 9월 11일,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시그니엘 서울 79층 더 라운지에서 남 총주방장을 만났다. 그는 “국내 최고의 호텔에서 요리를 책임지고 있는 총주방장으로서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칭호를 받게 돼 무척 영광스럽다”며 “향후 한식 세계화는 물론 미래를 위한 후진 양성과 소외계층을 위한 재능 기부에도 더욱 헌신할 계획”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대한민국 최고의 요리사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오랜 시간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1차 서류심사를 위해 준비한 자료로 책 한 권을 만들었을 정도니까요. 스물세 살부터 훌륭한 요리사가 되기 위해 한눈팔지 않고 최선을 다한 노력들이 비로소 인정을 받는 것 같아 무척 기쁘네요.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만큼 책임감도 무겁게 느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요리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할 생각입니다.”

어머니 유전자 물려받은 국가대표 요리사


▎조리 부문 대한민국 명장 반열에 오른 남대현 총주방장이 선보인 다양한 요리.
남 총주방장은 지난 34년간 롯데호텔에 몸담아온 요리사로서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다. 1985년 군복무를 마친 남 총주방장은 당시 한국관광공사가 호텔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해 운영하던 경주호텔학교 조리과에 입학했다. 전액 국비 지원이었던 이곳에서 1년간 강도 높은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은 남 총주방장은 이듬해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조리팀에 입사했다.

국내 호텔업계의 호황기 속에서 주방 조리직은 물론 다양한 업장에서 관리직을 두루 거친 남 총주방장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같은 굵직한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전공 분야인 양식은 물론 한식·일식·중식·베이커리·뷔페 등 다양한 조리 분야에서 내공을 쌓았다. 특히 13년간 연회장 책임자로서 청와대 국빈행사, G20 정상회의, 평창동계올림픽 등을 전담하며 한식 세계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 총주방장은 “최소 2~3주 전부터 준비하는 국빈행사의 모든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며 “실제 본행사를 치르는 동안에도 전혀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질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국빈행사가 메뉴 구성부터 식재료 검열, 맛 평가까지 굉장히 디테일하고 복잡해서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해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위급 상황들이 벌어지곤 하니까요. 예를 들어 겨울철 행사에서 참석자의 연설이 예상보다 길어지면 준비한 음식들이 식지 않도록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거나 사전에 허가받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 현장 검사에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되면 즉시 다른 메뉴로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거든요. 특히 유럽에 비해 식문화가 매우 다른 아랍권 국빈을 맞을 때는 메뉴 개발이나 구성에 더욱 신경을 써야만 했죠.”

호텔 업무만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남 총주방장은 한식 세계화와 식용 곤충 같은 친환경 식량자원 개발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한식진흥원과 함께 모스크바 롯데호텔에서 러시아 현지인들에게 한식 조리법과 메뉴 등을 가르쳤으며, 농촌진흥청 곤충산업 현장 명예연구관으로서 주기적으로 회의에 참석해 메뉴 개발에 힘쓰고 있다.

남 총주방장은 “한식의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선 단순히 해외에 우리 음식을 알리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고유의 식재료 수출도 같이 이뤄져야 한다”며 “한식에 사용되는 양념이나 소스 등에 대한 표준화 작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후진 양성·재능 기부로 대한민국 요리 발전에 기여

2015년 대한민국 조리기능장, 2018년 대한민국 우수숙련기술자(준명장)에 오른 남 총주방장은 2019년 관광진흥 정부포상 국무총리상도 수상했다. 지난 2018년 4월부터 롯데호텔 시그니엘 서울 레스토랑의 모든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남 총주방장은 조직 수평화와 직원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호텔 메뉴와 조리 직무에 대한 표준작업(SOP, Standard Operation Procedure) 지침서를 발간해 직무교육의 체계성을 높이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총주방장은 주방 인력부터 위생, 메뉴 등 모든 부문을 책임지는 자리예요. 특히 우리 호텔이 누구나 일하고 싶은 곳이 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좀 더 편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죠.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중간 관리자와 젊은 요리사들 간에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덕분에 올해 2월에 롯데그룹 베스트 리더 팀장상을 받았는데요. 롯데그룹 91개 계열사 팀장 1700명 중 단 7명에게만 주어지는 상이라 더욱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영원한 요리사로 남고 싶다’는 남 총주방장은 앞으로 후학 양성을 위한 강의 활동을 비롯해 청소년 진로지도 같은 재능 기부, 봉사활동을 통한 소외계층 지원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일 계획이다. 또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신메뉴 개발에도 힘써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는 복안이다.

“언제부턴가 소위 ‘먹방’들이 인기를 끌면서 요리사들이 유명 연예인 못지않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후배들이 요리사의 화려한 면만 보고 쉽게 덤빌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훌륭한 요리사가 되기 위해선 요리를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배경지식이 될 만한 역사나 인문학 같은 공부도 많이 해야 해요. 여기에 음식을 예쁘게 디자인하는 감각과 강인한 체력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죠. ‘음식은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생각해요. 맛있는 음식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도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고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끌어내죠. 덕분에 중요한 외교 문제나 비즈니스가 성사되기도 하고요. 이 때문에 요리사는 음식이 손님상에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명감을 갖고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010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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