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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모가 들려주는 예술가의 안목과 통찰(20) 현대옻칠회화의 선구자, 김성수 

현대미학 가미한 나전에 옻칠로 화룡점정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 hyung@joongang.co.kr·사진 김경빈 기자, 통영옻칠미술관 제공
대한민국 최고의 나전칠기 장인을 사사했다. 국전 공예부문에서 3년 연속 특선을 했다. 홍익대와 숙명여대 교단에 섰다. 나라 대표로 해외에 나가 다른 나라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래도 허전했다. 이렇게 좋은 걸 이대로 묵힐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상들이 내려준 비법을 응용해 새로운 걸 남겨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김성수(85) 통영옻칠미술관 관장이 ‘현대옻칠회화’를 창안하고 이 분야에 매진한 지 올해로 30주년. 그가 통영(‘천년을 잇는 옻칠과 나전 작품전’, 7월 15일~10월 18일 통영옻칠미술관)과 서울(‘김성수 옻칠회화전’, 9월 9~15일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한 전시는 코로나19의 시름에도 천년의 광택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 관장과 그의 현대옻칠회화 작품 ‘이슬 3-3’(2019)을 겹쳐 보이도록 이중노출 기법으로 촬영했다.
‘현대옻칠회화’는 나전칠기의 이론과 실기를 두루 터득한 김 관장이 전복 껍데기와 옻칠로 완성하는 ‘그림’이다. 전통 나전칠기 제작 방법에 뿌리를 둔 것으로, 다양한 기법을 분석하고 융합한 뒤 현대적 미학을 가미해 만들어낸다.

“전통 기법을 알고 했느냐, 모르고 했느냐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죠.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과정도 무시하고, 그냥 옻을 사다 붓으로 칠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건 전통의 현대화가 아닙니다. 이런 방식이 시중에 범람하게 되면 또 힘들어져요. 래커(lacquer)나 캐슈(cashew)를 칠한 자개장이 인기를 얻은 탓에 오히려 진짜 옻칠한 자개장은 싸구려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의 옻칠회화는 지난한 작업이다. 우선 바탕은 캔버스가 아니다. 적당한 크기의 나무판을 만들고 옻칠을 한다. 그 위에 삼베나 마를 붙이고 다시 옻칠을 한다. 그리고 자개로 모양을 낸 뒤 색을 칠한다. 거기에 다시 옻칠을 더하고 또 더하는 공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수개월간의 작업이 끝나면, 나무판 전체가 마치 유리를 붙여놓은 것처럼 번쩍인다. 유리 액자가 필요 없는 이유다. ‘칠흑(漆黑) 같은 어둠’이 무슨 말인지 알게 해준다. 물에 젖지 않고, 벌레도 꼬이지 않고, 썩지도 않는, 옻의 방수·방충·방부 기능이 고스란히 빛난다.

게다가 김 관장의 옻칠회화는 모더니즘 미학과는 다른 컨템퍼러리 미학으로 가득하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그의 작품은 순수 추상이고 기하학적 추상이면서 치밀하게 전개되는 나전의 배치 및 배열은 기존 추상회화와 확연히 다른 시각적 이미지와 정서를 드러낸다”고 평가한다.

그의 작업은 음양오행에 기초한다. 해와 달, 남과 여, 생과 사, 밤과 낮, 밝음과 어두움, 직선과 원처럼 서로 대립하는 존재의 합일을 추구한다. 그의 작품은 우주의 한 풍경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 작가는 “아침저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또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1. 옻칠회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김성수 관장 / 2. ‘우주공간’(2018), 111.2×162㎝ / 3. ‘양 SUN’(2019), 120×120㎝ / 4.1994년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김성수 관장의 옻칠나전 귀중품 함 ‘작은 숲’ / 사진:통영옻칠미술관
옻칠회화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1990년 한국칠예가협회를 만들고 전통 장인과 현대교육을 받은 작가의 융합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개라는 물성과 옻칠이라는 물성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융합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1998년 정년 퇴임 후 미국에 가서 본격적으로 옻칠회화를 시도했습니다. 2002년과 2003년 LA와 샌프란시스코, 뉴욕에서 미주 중앙일보 주최로 미국 이민 100주년 기념 순회전을 한 것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였죠.

옻칠회화의 의미라면.

나전칠기가 전통의 본질을 이어가는 것이라면 옻칠회화는 그것을 응용해서 새 길을 걸어간다는 의미가 있죠.

옻칠이 좋기는 한데 값이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균형과 조화’(2015) 앞에 서 있는 김성수 관장 / 사진:김경빈 기자
금이나 은이 좋은데 비싸다고 금맥기나 은맥기 값을 요구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고려나 조선 시대에 귀한 명품은 양민들이 쓰지 못했어요. 재료 값이 비싼 것은 사실 작가나 장인에게 큰 고민거리입니다. 값이 비싸 사는 사람이 적으니 안 만들 것인가. 좋은 예술품이라도 비싸니까 안 사고, 싸니까 사고 그러는 것인가.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좋고 그래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요즘 옻의 시세가 얼마나 하는데요.

한 관이 3.75㎏인데 원주 상품은 현 시세로 26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입니다. 옻은 7월에서 8월 중 채취하는 것을 상품으로 치는데 한 나무에서 아주 조금씩밖에 나오지 않아서 귀하죠.

나전칠기는 고려 시대부터 명성을 날리던 최고의 공예품이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실생활에서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예품을 넘어 현대미술의 오브제 개념으로 가야 합니다. 국그릇, 밥그릇을 사는 사람도 별로 없지 않습니까. 장식도 되고 기물로도 쓰면서 ‘옻칠나전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를 깨닫고 주위에 알려준다면 말 그대로 전통이 현대화되는 것이겠죠.

옻칠(Ottchil) 회화의 창시자이자 전도사

그가 통영 자신의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전시는 우리나라 최고 장인들의 나전칠기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특히 스승인 김봉용 선생은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장식공예 만국박람회에 나전칠기 대형화병을 출품해 당당히 은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공예가다. 김 관장은 “마라톤에 손기정 선수가 있다면, 공예계에는 김봉용 선생님이 계셨다”고 술회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봉용 선생이 남긴 ‘무궁화당초문서류함’도 볼 수 있다.

스승님은 어떻게 만났습니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경남 통영에 도립 기술인양성소가 설립됐어요. 초대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김재원 선생이 ‘전통문화의 맥은 이어야 한다’며 학교 건립을 제안하신 덕분이죠. 집안 어른 소개로 일을 배워볼까 해서 들어갔습니다. 스승님을 비롯해 홍익대에 공예학부를 만든 유강렬, 일본 태평양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장윤성, 일본에서도 칠예가로 명성을 떨친 강창원 선생님 등 최고의 강사진이 저희를 가르쳤죠. 이중섭 선생과 초정 김상옥 선생도 가끔 특강을 했고요.

양성소에서는 무엇을 배웠습니까.

처음엔 도제식으로 기술을 배우겠거니 싶었는데, 소묘 데생 등 서양미술 기초부터 설계와 제도, 도안(디자인)까지 2년간 ‘정규 미술 교육’을 두루 받았습니다. 전통 장인들은 보통 백골(목기)이면 백골, 나전이면 나전, 옻칠이면 옻칠 하는 식으로 분업화되어 있었는데, 스승님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줄 아셨죠. 저도 이곳에서 이론부터 실기까지 다 공부한 셈입니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면서는 일본식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고, 제작 공정도 정리하는 작업도 하면서 이론적 틀을 닦는 일도 하게 됐고요.

옻칠미술관은 어떻게 시작한 건가요.

통영이 옻칠로 유명하다지만 정작 통영 시민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옻칠이 자꾸 소외되고 있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듣고 돌아왔어요. 사재를 털어서 미술관을 지었죠. 그게 2006년입니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옻칠에 대한 관심도 줄고 있지 않나요.

제가 대학에 있을 때만 해도 여러 대학에서 학생을 배출했는데, 요즘은 인기가 없다 싶으면 바로 학과를 없애더라고요. 지금 전국의 대학 중에서 옻칠 과정이 있는 곳이 숙명여대 대학원 정도일 겁니다.

일본도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진다고 걱정이 많더라고요.

그래도 일본은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전통문화와 관련된 학과는 국립대학교에 설치돼 있어요. 일본에서도 지원자가 점점 줄어들어 아예 없던 해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학과를 없애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니까 명맥이 유지되고 활동이 이어지는 것이죠. 게다가 백화점에 가면 오리지널 전통문화상품을 파는 곳이 정해져 있어요. 그러니까 ‘진짜’가 살아남는 것입니다.

옻칠회화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관심은 많습니다. 이게 세계적으로 없는, 아주 새로운 기법과 장르거든요. 독창적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면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가르치다 보면 ‘아, 이게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구나’ 하고 느꼈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 정형모는… 정형모 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은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고 중앙SUNDAY에서 문화에디터로서 고품격 문화스타일잡지 S매거진을 10년간 만들었다. 새로운 것, 멋있는 것, 맛있는 것에 두루 관심이 많다. 고려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고, 한국과 러시아의 민관학 교류 채널인 ‘한러대화’에서 언론사회분과 간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만든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이 있다.

202010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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