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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이 만난 아트 인플루언서(5) 성악가 김주택 & 김현수 

“노래할 수 있는 건 오직 관객의 힘” 

유주현 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기자 yjjoo@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전례없는 팬데믹 사태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도 높게 시행되면서 공연 형태도 바뀌고 있다. 상반기 수많은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됐지만, 사태가 장기화되자 최근엔 적극적으로 디지털 플랫폼에 올라타는 추세다. 아날로그를 미덕으로 삼던 클래식 축제도 예외 없다. 9월 16일부터 10월 15일까지 한 달간 열리고 있는 제5회 마포 M 클래식 축제도 전면적인 ‘디지털 콘택트’ 축제를 표방했다. 플랫폼을 디지털로 옮기자 시공간 제약 없는 거대한 스케일의 축제로 거듭났고, 9월 26일 클래식계 최초로 시도한 ‘100인 비대면 대합창’도 성악가 김주택, 김현수의 리드로 색다른 감동을 만들어냈다.

▎[팬텀싱어] 출신의 바리톤 김주택과 테너 김현수는 대학 시절부터 어울린 친구 사이다.
JTBC [팬텀싱어] 시즌 1 우승팀 ‘포르테 디 콰트로’의 테너 김현수와 시즌 2 준우승팀 ‘미라클라스’의 바리톤 김주택은 친한 친구 사이다. 학연이나 지연은 없지만 대학 때부터 어울려 다녔다는 특이한 인연이다. ‘절친이냐’고 물으니 “소름 끼치게 친한 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시종일관 만담하듯 혼을 쏙 빼놓는 유쾌한 호흡에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유튜브 영상 촬영을 위해 힘든 시기 희망이 되는 노래를 한 곡 불러달라니, 잠시 악기 조율하듯 목소리 톤을 맞추고는 금세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로 천상의 화음을 뽑아낸다. ‘사람 몸이 최고의 악기’라는 말 그대로다.

“대학 다닐 때 같이 노래방에 갔었는데, 사장님이 마지막 1분 서비스를 주셨을 때 둘이 ‘향수’를 부른 기억이 나네요. 그때 케미가 좋아서 나중에 꼭 무대에서 같이 부르면 좋겠다고 꿈을 꿨었죠. 근데 얘랑 부르면 솔직히 부담돼요. 제가 너무 부족하니까요. 성량은 진짜, 같이 있으면 시끄러워 죽겠어요.(웃음)”(현) “실제로 전에 [오페라 카니발] 공연에서 다 같이 ‘향수’를 부르기도 했고, 가끔 듀엣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컬러가 다르니까 스며들 수 있는 거죠. 현수만 원한다면 언제든 듀오콘서트도 하고 싶어요.”(주)

언제부터 노래를 잘했나요.

김현수: 저희 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울음소리가 범상치 않았다고 하시는데… 지어낸 말 같아요.(웃음)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이 동요대회는 무조건 내보냈어요. 축구하다가 먼지 묻은 옷을 입은 채로 대회 나가서 입상하곤 했죠.

김주택: 저는 노래보다 악기를 먼저 했어요. 대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 바이올린을 배웠고, 교회에서 밴드도 하고 드럼도 쳤는데, 악기 다루는 게 좋으면서도 한창 놀고 싶은 나이에 연습이 너무 힘들어 도망 다녔죠. 그런데 초등학교 2, 3학년부터 소풍 갈 때 버스에서 노래방 기계로 트로트를 부르면 운전기사 아저씨들이 가수가 탔냐며 좋아하시더군요. 그때부터 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좋아해준다는 느낌 때문에 노래를 즐겼던 것 같아요.

각각 엄청난 미성과 성량이 시그니처인데, 비책이 있을까요.

김현수: 저는 고3이 다 되서 변성기가 왔거든요. 고2 때까진 여자보다 높이 올라갔었는데, 비책이라면 물을 많이 마십니다. 아침마다 2리터를 마시는데 신진대사가 원활해지고, 목도 트여요. 물론 저도 주택이처럼 트로트도 즐겨 부르고, 삶 속에서 노래를 즐겨왔던 것 같아요.(웃음)

김주택: 성량은 뱃심인데, 그게 사실 테크닉이에요. 보통 ‘성악가’하면 파바로티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배 안에 튜브가 하나 있는 느낌이잖아요. 그런 풍채만큼이나 복식호흡이 진짜 중요하거든요. 저도 이태리에서 15년간 공부하면서 호흡 하나만 팠어요. 온몸을 사용해서 내 몸에 있는 소리를 다 나오게 하는 거죠.

김현수: 몸이 하나의 활이 되는 거예요.

김주택: 그렇죠. 단검이 아니라 활을 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올 들어 두 성악가의 삶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이탈리아 오페라계 스타인 김주택은 올해 공연이 모두 취소되어 국내에 머물고 있고, 원조 ‘팬텀싱어’로 크로스오버계에서 맹활약 중인 김현수도 9월에만 콘서트 7개가 취소됐다. “사실 생계에 위협을 느낄 정도예요. 최근 뉴스를 보니 한국 젊은 세대 3분의 1이 코로나 블루를 겪는다고 하던데, 저도 좀 그래요. 성악가는 무대에서 망신살이 뻗쳐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그럴 일이 없으니 우울한 거죠.”(주) “직장인이 15년 출근하다가 갑자기 집에만 있는 느낌이랄까요. 빨리 지나가기만 바랄 뿐입니다.”(현)

‘무관중 온라인 공연’이란 걸 난생처음 해봤죠.


김주택: 처음엔 진짜 김이 빠지더군요. 제주도까지 가서 ‘마이웨이’를 부르고 마지막 음을 10초 끌었는데 아무도 박수를 안 치니까요. 바보처럼 웃다가 그냥 내려왔죠. 관객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김현수: 성악가는 관객의 박수를 먹고 사는 직업이니까요. 저는 일곱 번쯤 해서 이제 적응은 됐는데, 절대 좋을 수는 없는 상황이죠.

개인적으로도 활동에 변화를 모색해야 할 텐데요.

김주택: 6개월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어요. 이태리에 못 가니 개인 레슨을 하게 됐고,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도 열었죠. 무대가 없어지니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다가갈까, 가장 빠른 방법을 찾은 거죠. 영상을 통해서라도 많은 분이 제 마음을 받아주시고 좋은 댓글도 달아주시니 같이 이겨나갈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살이 빠지는 것도 장점이죠. 내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하니 저절로 관리가 되더군요.(웃음)

김현수: 저는 오히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나면 유튜브로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옛날에 목포 공생원에 찬양대 사역을 갔는데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서요. 속세를 떠나 캠핑카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버스킹도 하고, [비긴어게인]에 [나는 자연인이다]가 섞인 듯한 콘텐트를 찍으면 대중도 재밌게 보지 않을까요.”

이런 상황이 되니 수천 명이 모이는 대형 공연보다 코앞에서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작은 공연에 미래가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김현수: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에 포디콰 3집을 굉장히 소규모 편성으로 녹음했어요. 목소리에 집중하자는 콘셉트였죠. 작년에 세종 체임버홀에서 마이크 없이 솔로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 너무 좋았어요. 가끔 콰르텟 실내악을 보러 가서도 엄청난 감동을 느끼곤 하는데, 앞으로 이런 공연이 더 많아질 것 같아요.

김주택: 저도 피아노 반주 하나로 독창회를 열기도 하고 들으러 가기도 하는데, 육성이 악기에 묻히지 않고 마이크 없이 다이렉트로 다가올 때 감동이 엄청나거든요. 코로나를 안고 가야 하는 현실이라면 공연도 소규모든 대규모든 새로운 형태로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축제의 메인콘서트 ‘클래식, 희망을 노래하다’에서는 100여 명으로 구성된 마포구민합창단과 온라인으로 하모니를 이룬 ‘감동 대합창’ 프로젝트 외에 두 사람이 듀엣으로 오페라 ‘진주조개잡이’의 아리아 ‘신성한 사원에서’도 불렀다. 두 남자가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물론 스토리는 테너의 승리(?)로 끝난다. “저는 이태리 오페라 전문인데, 그 곡은 프랑스 오페라라 부담스러운 곡이죠. 하지만 부담감을 넘어 멜로디와 하모니가 엄청 좋아요.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갈등하는 오페라지만, 이 곡만큼은 둘이 합심해서 부르거든요.”(주) “제가 나쁜 놈이죠. 사랑하지 말자고 합의 봐놓고 나중에 그 맹세를 깨는 배신자니까요. 진정한 승리라곤 볼 수 없죠.(웃음)”(현) “테너와 바리톤은 항상 그래요. 실제로 유학 시절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죠. 아는 테너 형과 사이에 한 여자가 있었는데, 결국 테너를 택하더군요.(웃음)”(주)

‘거리두기’ 속에서 클래식 공연도 발전해야


두 사람은 지난 7월 막을 내린 [팬텀싱어] 시즌 3도 흥미롭게 지켜봤다고 했다. 좁은 성악계에서 함께 고생하던 후배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 “준비 과정이 힘든 걸 아니까 모든 친구를 응원했지만, 특히 (유)채훈이는 7, 8년 전 크로스오버 활동을 처음 할 때 같이했던 친구거든요. 긴 무명 시절을 겪으며 포기하고 싶다는 얘기도 했었고, 그래서 더 잘되길 바랐죠. 근데 우승하고는 연락도 없네요.(웃음)”(현) “저는 (길)병민이가 선화예고 직속 후배고, 유럽에서 같이 활동한 경험도 있어서 마음이 갔죠. 겉보기엔 화려한 커리어지만 속으로는 열망이 많았을 텐데, 잘돼서 너무 좋네요. 새로운 싱어에 관한 관심도 생겼어요. (김)민석씨라고, 아쉬운 게 좀 늦게 터졌어요.

김현수: 민석씨는 아주 내성적이고 순진한 친구지만, 자연스럽게 터질 거라고 믿었어요. 방송에서 저희가 탈락자들 중에 뽑아서 부활시키는 순서가 있었는데… 더는 얘기 안 할게요.(웃음)

이번 시즌엔 소리꾼, 카운터테너까지 섞여 도약한 느낌이 있던데요.

김주택: 저희는 평생 노래를 해온 사람이니까 평가하는 시선일 수밖에 없는데, 이번엔 가슴을 터치하는 사람이 많이 보였어요. 물론 시즌 1을 보면서도 가슴이 뛰었기에 저도 나간 거였지만, 시즌 3 역시 같이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봤죠.

김현수: 시즌 1은 클래시컬한 크로스오버를 지향했고, 시즌 2 우승팀은 케이팝적인 스타일이었다면, 시즌 3는 한국적인 면이 돋보이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간 것 같아요. 갑자기 국악하는 친구가 나와서 쿠바, 그리스 노래를 부르는데 멋있더군요. 연예인병만 안 걸리면 다들 잘될 거예요.(웃음)

김주택: 그 친구들도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되는데, 이런 상황이라 아쉽죠.

김현수: 걔넨 잘될 거야. 우리 걱정이나 하자.(웃음)

그럼 포디콰와 미라클라스, 각자 우리 팀만의 매력을 자랑해볼까요.


▎지난 7월 열린 [오페라 카니발] 공연 중에서 / 사진:아트앤아티스트
김주택: 솔직히 포디콰와 미라클라스는 어딘가 모르게 닮았어요. 둘 다 힘이 있거든요.

김현수: 굳이 표현한다면 우리 팀은 아주 세밀한 대포라고 한다면 미라클라스는 핵폭탄이죠. 둘 다 강한데, 좀 다른 강함이에요. 그 차이는 들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체로 날씬하다는 것도 차별점이죠.(웃음)”

김주택: 저는 최근에 6㎏을 빼서 많이 날씬해졌어요. (정)필립이가 평균을 다 깎아먹고 있네요.(웃음)

쩌렁쩌렁 울리는 발성에 상남자 스타일의 김주택과 보기 드문 미성에 어딘지 ‘4차원’스러운 김현수는 그야말로 색깔이 전혀 달랐다. 하지만 이들은 ‘순수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수는 항상 전진하는 친구예요.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고, 원하고 바라는 걸 위해 모든 걸 투자할 수 있는 똑똑한 친구죠. 친구지만 존경스러워요. 제가 만일 한국에 있었다면 이렇게 못했을 것 같은데, 현수는 꿋꿋하게 해냈죠.”(주) “오히려 주택이가 이태리에서 외롭게 버틴 거죠. 자기 가치를 최고로 끌어올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부분을 존경해요. 이런 우리 둘이 합치면…”(현) “합치면 대박이죠.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 되겠죠.(웃음)”(주)

'팬텀싱어' 출신들에겐 4050 팬덤이 대단하던데요.

김현수: 우린 7080 팬들도 계세요.(웃음) 거제도에서 제 공연 때마다 올라오시는 분도 있죠. 제 부족한 노래에 치유받는다고 말씀해주시는 분이 많아서 음성치료학을 공부해볼까 생각해요. 약으로 치료 안 되는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제 노래를 듣고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셔서요. 그래서 지금도 노래하는 거예요. 사실 노래하기 싫을 때도 많거든요.

김주택: 저도 지치고 싫을 때가 있어요. [팬텀싱어] 출연을 결심한 것도 회의를 느껴서죠. 10여 년 동안 똑같은 공연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오케스트라 반주로 10번, 15번을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팬텀싱어] 이후에 팬분들이 제 오페라를 보러 이태리까지 오시는 거예요. 그러니 회의감 따위 날려버리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분들을 생각하면 내 목이 떠나가는 그 순간까지 노래해야겠다 싶습니다.

※ 유주현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휩쓸던 영광의 기억을 품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살아왔다. 2010년부터 중앙SUNDAY에서 공연을 중심으로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을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전달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202010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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