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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견계약 활용법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후견 사례가 화제였다. 한국에서 2013년에 도입된 성년후견제도는 질병과 장애, 노령 등에 따른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없는 이를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해 보호하는 제도다. 여기에 신탁을 더하면 안정적인 노후설계와 상속을 꾀할 수 있다.

2020년은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특히 한국 굴지 기업들의 승계가 연이어 이어진 해이기도 하다. 창업주인 1세대를 넘어 2, 3세대로 이어지며 기업은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후견 사례는 다소 낯설었던 성년후견제도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성년후견제도는 2013년 7월 1일 도입됐다. 질병과 장애, 노령 등에 따른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해서 결여되거나 부족한 이를 위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법정후견)하거나 당사자가 계약을 통해 후견인을 선임(임의후견)해 재산관리, 일상생활과 관련한 신상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시행 8년 차에 접어든 성년후견제도를 활용하는 이도 점차 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0 사법연감』에 따르면 성년후견 제도를 활용한 사건은 총 1만4534건으로 전체 가사비송사건 중 후견사건 비율이 17.3%나 됐다. 후견사건 처리 내용을 보면 성년후견이 6831건, 한정후견이 768건, 임의후견이 25건, 특정후견이 660건을 기록했다.

성년후견 비율이 높은 이유가 있다. 대부분 정신적 제약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주위 사람들에 의해 후견 신청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임의후견(후견계약)이 현저히 낮은 것은 본인의 의사대로 후견이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임의후견이란, 장래 치매 등으로 판단능력이 부족한 상태가 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이 계속될 수 있도록 판단능력이 온전할 때 들어두는 일종의 ‘정신보험’과도 같은 계약이다. 특히 노후설계와 맞닿아 있다. 일반적으로 질병, 사고, 장애, 소외, 치매 등 잠재적 위험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거나 재산관리, 건강관리, 경력개발, 증여, 상속, 유언을 통한 방법을 찾게 된다. 하지만 본인의 정신적 위험 대비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고령화사회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노후가 길어진다는 것이므로 안전한 노후를 준비할 때 ‘정신보험’인 임의후견은 필수가 될 것 같다.

후견계약이 그냥 이뤄지는 건 아니다. 반드시 공정증서로 체결해야 한다. 가정법원의 후견개시심판으로 후견이 개시되는 법정후견과 달리 후견계약은 등기돼야 하고,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한 때부터 후견계약의 효력이 발생한다.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임의후견인,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청구로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하게 된다. 본인이 아닌 사람에 의해 가정법원에서 임의후견인을 선임할 때는 미리 본인의 동의를 받는 등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임의후견감독인이 없는 경우에도 가정법원은 직권으로 본인, 친족, 임의후견인,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청구로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할 수 있다.

홀로된 고모를 돌봐준 조카의 고민

얼마 전 상담한 사례도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미혼인 고령의 고모와 그의 조카가 찾아왔다. 고모가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것. 고모는 아파트 한 채와 현금을 일부 보유하고 있다. 상속인으로는 동생 3명, 사망한 오빠의 배우자인 올케와 조카 3명이 있다. 여동생 1명은 해외에 있어 연락이 잘 닿지 않고 동생들도 연로해 자신을 돌보기 쉽지 않다고 했다. 상담에 동반한 조카가 유일하게 자신을 돌보는 이라고도 했다. 조카는 사망한 오빠의 딸이다. 고모는 조카에게 자기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했다. 조카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재산 때문에 돌본다는 시선이 마냥 편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임의후견을 통해 신탁 활용을 제안했다. 법정 후견은 가정법원 심판으로 개시되어 가정법원이 후견인을 정하게 되므로 본인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지만 임의후견은 후견계약을 통해 후견받을 사람이 원하는 내용을 모두 반영할 수 있다. 본인의 사무처리 능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서두를 것을 권했다. 임의후견계약에 후견계약이 체결된 후 효력이 발생할 때까지 후견계약자의 생활상태나 건강상태를 정기적으로 만나서 살피고 재산관리 등 사무를 위임한다는 내용과 사망 후 사망 사실 통지, 장례식, 유산배분 등의 내용으로 별도의 사후 사무위임 내용 등도 넣을 수 있다.

구체적인 솔루션도 제시했다. 고모의 요구에 맞게 임의후견에서는 신상보호를 통한 생활지원과 재산관리 및 처분은 신탁계약으로 처리할 수 있게 했다. 임의후견 계약과 신탁을 결합한 솔루션인 셈이다. 현금은 신탁을 통해 병원비, 간병비, 생활비를 지원하고 아파트의 경우 고모에게 유고가 발생한 후 소유권 이전, 필요하면 아파트의 처분, 세무·법률자문을 통한 유산 정리 전 과정을 조카를 위해 지원하도록 설계했다. 여기에 치매 안심 기능을 첨가한 유언대용 신탁을 활용했다. 특히 최근 유언대용 신탁재산의 유류분 대상 제외 판결도 있어 유류분 소송 가능성에도 대비할 수 있다.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일본은 우리보다 13년 빠른 2000년부터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 후 피후견인의 재산을 후견인이 유용하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면서 사회문제가 됐다. 이에 일본 최고재판소는 피후견인의 재산을 신탁을 통해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는데, 이것이 바로 ‘후견제도지원신탁’이다. 신탁이 성년후견제도를 뒷받침하는 재산관리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후견제도지원신탁은 계약 체결부터 변경 및 해지가 가정재판소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로써 후견인조차도 신탁된 재산을 임의로 인출할 수 없는 안전장치가 마련됐다. 일본신탁협회 자료를 보면 후견제도지원신탁은 일본에서 2012년 2월에 출시된 이후 2018년 9월까지 수탁 건수가 2만1000건을 넘어섰고, 2015년부터 약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치매 환자들의 성년후견제도 신청 비율이 높아 치매 환자들의 재산 보호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일본의 치매 환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정부는 2015년 기준 약 520만 명, 2030년에는 830만 명으로 늘어날 거라 전망한다. 치매 환자가 보유한 금융자산도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2018년 8월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30년엔 현재의 1.5배인 215조 엔(약 2150조원)으로, 전체 가계 금융자산의 10%를 돌파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을 보면 앞으로 한국에서 벌어질 상황도 대략 추측해볼 수 있다. 일본에선 생활에 필요한 자금은 성년후견인이 관리하고, 나머지 재산은 신탁은행에 맡겨 수탁자가 관리한다. 전문직 후견인이 수탁자와 신탁계약을 체결한 후 사임하면 친족 후견인이 후견 사무를 인계받아 수행하는 방법이 보편화돼 있다.

- 박현정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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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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