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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13) 중국 반도체 굴기의 위기와 기회 

 

지난 10여 년간 중국 반도체 시장은 빠른 성장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제조 2025’를 타깃으로 하는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중국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고, 그 견제는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최근 중국은 반도체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19세기 중국과 영국 간 아편전쟁의 원인이 차와 아편이었다면, 21세기 중국과 미국 간 무역전쟁의 원인은 반도체라고 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가장 예민한 아이템이 반도체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반도체라는 산업의 쌀을 먹으면서 이루어진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아야 세계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반도체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기술을 가지고 있고, 요즘의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반도체 분야에 종사하는 관계자를 묘하게 현혹한다. 그들의 표현대로 ‘대국’ 스케일을 자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은 반도체 후공정과 팹리스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은 지난 10여 년간 혁혁한 성장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거품이 있는 게 사실이다. 10여 년 전에도 중국 정부는 10여 개 300㎜ 반도체 팹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실질적으로 투자가 이뤄진 업체는 SMIC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몇 년간 중국 정부가 투자한 푸젠진화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무역 제재에 직격탄을 맞아 생존의 갈림길에 놓였다.

중국 정부가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중국인들도 이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정부조차 목표치를 과장해서 발표하는 중국의 풍토는 독특하다. 이런 풍토를 알지 못하는 외국인은 쉽게 현혹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중국 반도체 공장 건설 프로젝트는 대부분 당초 일정보다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20여 개 신규공장 건설 계획이 있지만 그 가운데 상당수는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10여 년 전에 건축공사를 마친 한 공장은 아직도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대여섯 차례 이 회사를 방문하면서 사업 기회를 찾으려 했지만 힘만 뺐고, 결국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것이 거품이다. 이런 사례가 많다. 하지만 LCD, 태양열, 배터리, LED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정부 보조금을 줄이는 중국이 반도체에는 지속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가 국가안보와 직결된다고 생각하고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100조원이 되었든 500조원이 되었든 중국 정부는 반도체 굴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도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전략물자 통제와 지식재산권 보호라는 무기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아설 것이다.

냉정하게 보자. 중국 정부는 자국에서 세계 반도체의 절반이 소비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폭스콘 등 전자제품 임가공 수요를 제외하면 중국 내 자체 수요는 세계 수요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미중 무역전쟁 이후에 미국 회사들은 전자제품 임가공을 베트남 등 동남아로 옮기고 있다. 반도체 웨이퍼 투입량도 마찬가지다. 현지에 공장을 운용하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TSMC 등을 제외한 토종 중국 반도체 업체의 웨이퍼 투입량은 세계적 관점에서 볼 때 아직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다. 지역별로 볼 때 중국의 반도체 장비 투자액 성장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중국 내 대규모 반도체 팹 투자는 한국(삼성, SK), 대만(TSMC 등)이 이끌어가고 있다. SMIC 등 토종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반도체 팹의 첨단공정기술은 부족함이 많다. 중국 내 가전 소비 증가 추세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서 중국 전자기업들의 급성장을 이끌었던 내부 성장 동력도 약화되고 있다.

중국 반도체 투자에 한국이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도 없다. 정부 주도의 발광다이오드(LED), 태양광, 액정표시장치(LCD) 투자가 먹혔을지 모르지만 메모리를 포함한 반도체 분야는 기술 장벽이 이보다 훨씬 높다. 중국 반도체 업계 종사자는 팹리스나 후공정 분야에선 자국 기업의 성공을 자신하지만 전공정 분야에선 확신하지 못한다. 현재 중국에서 반도체 팹을 운용하는 회사는 정부 보조금을 빼면 대부분 적자 상태다. 중국 정부가 자금을 대준다 하더라도 기술, 인력, 후방 생태계 확보 등 장벽이 높다. 성 단위로 각각 공장을 세우고 경쟁하는 구조는 중국 전체 반도체 산업 발전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나마 중국 기업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정부 보조금과 지식재산권 이슈도 미국의 공세 앞에서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은 관세장벽, 핵심 장비, 부품, 소재의 수출금지뿐만 아니라 중국 기업들에 지식재산권 보호와 보조금 축소를 강력하게 또 집요하게 요구할 것이다. 인터넷이 중국 인터넷과 중국 바깥의 인터넷으로 양분되었듯이, 반도체 시장도 중국 시장과 중국 바깥 시장으로 갈리고 있다는 느낌까지 든다.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 체계 아래에서 중국이 단기간에 반도체 자립을 이루어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된다고 해도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집요하게 추진해나갈 것이다. 먼 미래에 중국과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어느 선에서 타협할지 필자도 궁금하다.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사서 『삼국사기』
이런 시장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면 오히려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중국이 장기적으로 투자할 가치가 있는 시장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 대만, 일본, 미국과 같이 반도체 생산의 역사가 오래된 성숙 시장에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반도체 업계에서 수많은 반도체 프로젝트가 역동적으로 추진되면서 신규 공장이 들어서고 가장 활력이 넘치는 곳이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장비, 재료 분야에서 국산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어 기술 유출에도 주의해야 한다. 냉철하게 시장을 분석하고 핵심 경쟁력을 바탕으로 5년, 10년을 내다보는 긴 호흡으로 중국 시장에 접근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오만한 농경민들의 역사 기록


▎중국 최초의 역사서 『사기』를 집필한 사마천.
유라시아 동쪽에서는 중국의 농경정주국가들이 역사 기록을 독점했다. 기원전 90년 한나라 때 완성된 중국 최초의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에서 농경정주민인 중국은 개화된 문명국이고, 이웃한 나라들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자 미개한 야만인으로 묘사됐다. 우리의 조상 동이도 활 잘 쏘는 오랑캐에 불과했고, 조선은 오랑캐이면서도 오랑캐 근성을 버린 순이(順夷), 즉 ‘착한 오랑캐’였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은 다르다. 흉노처럼 진나라, 한나라보다 군사적으로 더 강한 나라도 있었고, 티베트처럼 문화적으로 세련된 나라도 있었다. 기원전 198년 흉노와 한나라가 맺은 강화협정에는 한나라 황제가 흉노의 선우에게 공주를 시집보내고 황금과 비단을 해마다 조공으로 바치는 것을 화의조건으로 규정했다. 돌궐의 4대 카간 바발가한(타발가한)은 조공을 바치는 북주와 북제를 두고 “내가 남쪽의 두 아들을 효순하게만 하면 어찌 물자가 없음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할 정도였다. 이처럼 흉노와 돌궐의 군사력이 우세했어도 중국의 역사가들은 흉노와 돌궐을 제후국 정도로 다루었다.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最古) 사서는 12세기에 나온 『삼국사기』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조차도 『사기』 같은 중국 사서에 바탕을 두고 기술됐다. 이 때문에 우리의 고대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중화사상에 기초를 두고 유목민을 배제하고 농경민의 입장에서만 쓴, 중화문명의 편향된 사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중국 사서 이외의 다른 지역의 사서와 현대과학에 근거한 고고학, 생명공학 등을 바탕으로 지구촌의 관점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 내가 한국의 역사 학자들에게 가지는 유감은 대부분의 역사 연구가 한반도 지역을 분리해 서지학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른 학문과의 교류도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 부하라 같은 오아시스 도시는 그 적은 인구로도 전 지구적 교류를 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우리 역사학자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왜 한국의 사학자들은 『총,균,쇠』나 『사피언스』와 같은 인류사를 통째로 본 역사서를 쓰지 못하는 것일까? 실제 고대부터 있어왔던 전 지구적인 교류와 소통을 한반도와 연결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마르칸트에서 유행했던 문물이 몇 달 뒤에 신라의 경주에서 유행했다고 하는데, 그러한 문명 교류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우리가 알건 모르건 이미 수천 년 전, 아니 수만 년 전부터 실크로드는 교역과 인적 왕래를 통해 유라시아대륙 여러 지역의 민족과 문명을 연결하는 대동맥으로서 힘찬 맥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사실 실크로드의 유목민들과 상인들에 관한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중국과 같은 농경정주사회의 기록에 의지해야 하는 한계가 많았다. 계절마다 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문자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고 구전으로 몇백 년 전 조상들의 일까지 기억하고 있었지만 후대에 전해지는 기록은 거의 없다. 상인들 대부분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돈 버는 비결은 말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수하고 싶지 글로 남겨 여러 사람이 알도록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그 당시에도 세금추징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기록한 몽골비사, 유목민들의 벽화, 비문,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간 문서는 없애지 못하게 해서 남겨진 유대인들의 중세 게니자 문서, 소그드 상인들의 무덤에서 발견된 편 등이 유목민들과 상인들의 제한적인 기록이다. 실크로드 역사에 획을 그은 사건은 한무제가 장건을 파견해 파미르 고원 서쪽 서역 국가들과 개통한 ‘서역착공(西域鑿空)’이었다. 장건은 한무제의 스파이이자 외교사절로 13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에 있는 오손(烏孫)· 대완(大宛)· 대하(大夏)· 안식(安息)·대진(大秦) 등 여러 나라의 정보를 한나라에 가져왔다. 여기서 착공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뚫었다는 의미인데, 실제는 한나라 훨씬 이전 기원전 6세기의 켈트족 무덤에서도 중국에서 만든 비단을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됐다. 유목상인들은 이미 몇백 년 전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별의별 물건들을 유럽의 끄트머리 영국까지 팔고 있었는데, ‘장건의 서역착공’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사마천과 같은 농경민 사관들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건이 대하(박트리아)를 방문했을 때 중국 사천성 지역의 대나무 제품과 옷감이 시장에서 팔리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흉노가 한나라의 진상품으로 받아서 내다 판 비단을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상품이 유목민을 따라 동서를 가로질러 팔려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2101호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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