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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쉬그룹의 독특한 지배구조 

 

보쉬그룹은 그들만의 지배구조로 유명하다. 보쉬그룹의 모회사 격인 보쉬유한회사 지분의 90% 이상을 재단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의결권은 보쉬신탁에 위임돼 있다. 보쉬재단은 배당받을 수 있지만, 경영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보쉬는 어떻게 경영 간섭 없이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보쉬그룹은 로베르트 보쉬(Robert Bosch, 1861~1942)가 18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설립한 전기기계공장에서 출발해 올해로 135년 역사를 갖고 있는 독일의 대표적인 공업기술기업이다. 보쉬그룹은 ‘로베르트 보쉬 유한회사(Robert Bosch GmbH, 이하 보쉬유한회사)’를 모회사로 전 세계 60여 개국에 440여 개 자회사를 두고 총 40만 명에 이르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0년 그룹 매출액은 716억 유로(약 100조원)에 이른다.

보쉬그룹의 재단을 통한 승계


보쉬그룹은 네 개 사업 부문으로 구성된다. 자동차 부품 등 모빌리티 솔루션 분야가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가장 큰 부문이고, 공구 및 소비가전 분야가 23%, 포장 및 교통통제시스템 등 산업기술 분야가 10%, 에너지 및 건설기술 분야가 7%를 차지한다. 보쉬그룹의 모회사인 보쉬유한회사는 비상장회사이며, 독특한 지배구조로 유명하다.

보쉬유한회사의 지분구조를 보면 ‘로베르트 보쉬 재단(이하 보쉬재단)’이 회사 지분의 92%를 보유하고 있으며, 보쉬 가문 후손들이 지분 7.4%를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0.6%는 자사주이다. 그런데 의결권 구조는 전혀 다르다. 보쉬재단은 의결권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고, ‘로베트르 보쉬 산업신탁(이하 보쉬신탁)’이라는 합자회사가 의결권의 93.2%를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의결권 6.8%는 보쉬 가문 후손들이 보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보쉬재단이 보유한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전부와 보쉬 후손 등이 보유한 지분 일부에 대한 의결권이 보쉬신탁에 위임돼 있다고 하겠다. 보쉬재단은 보쉬유한회사로부터 배당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지만, 경영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한은 없다. 보쉬재단은 보쉬의 배당금을 재원으로 교육, 연구, 의료 등 다양한 자선사업을 수행하며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지만, 보쉬그룹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보쉬그룹의 독특한 지배구조는 창업주 로베르트 보쉬가 기틀을 잡았다. 보쉬는 1921년에 보쉬자산관리유한회사(Vermögensverwaltung Bosch GmbH)를 설립해서 이 회사로 하여금 자신의 지분 관리와 함께 자선사업을 총괄하도록 했다. 자녀 사랑이 남달랐던 보쉬는 회사 후계자로 기대했던 첫아들이 1921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회사의 미래를 깊이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많은 일자리를 만들며 장기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계속 성장하고, 여러 자선사업도 지속되기를 바랐던 보쉬의 마음은 이후 그의 유언장에 그대로 담겼다. 1942년 창업주 보쉬가 사망한 이후 그의 유언장에 담긴 뜻을 구현하기 위해서 지정 집행인과 지분을 상속한 두 자녀가 함께했다. 창업주 보쉬는 첫아들이 사망한 이후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부인과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이혼했다. 보쉬의 지분은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자녀인 보쉬 주니어와 에바(Eva)에게만 상속됐다.

특히 전기공학을 공부한 2세대 보쉬 주니어(1928~2004)는 1954년부터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활동했는데, 지정 집행인과 함께 부친의 유언을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보쉬 주니어의 노력으로 1964년에 보쉬재단이 설립됐고, 보쉬재단은 두 상속인으로부터 회사 지분의 대부분을 취득했다. 재단에 귀속된 지분의 의결권은 당시 ‘로베르트 보쉬 산업투자 유한회사(Robert Bosch Industriebeteiligung GmbH, 보쉬신탁의 전신)’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넘기게 된 것이다. 보쉬 주니어는 재단 기업으로서 보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지배구조를 구축한 이후 1971년에는 회사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회사의 감독이사회의 멤버로만 남았다. 1978년에는 감독 이사회도 떠났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단 중심의 지배구조로 보쉬 가문 후손의 보쉬그룹에 대한 영향력은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보쉬 주니어가 보쉬그룹 경영권을 갖고 있는 보쉬신탁의 이사회 멤버로서 1999년까지 역할을 수행한 것을 보면 그 영향력이 계속 유지됐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3세대 크리스토프 보쉬(Christof Bosch)가 보쉬가문을 대표해서 보쉬신탁의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크리스토프는 보쉬유한회사의 감사이사회 멤버로도 활동하면서 보쉬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크리스토프는 보쉬그룹의 일반 경영활동에는 관여하지 않고 보쉬그룹이 창업주 할아버지 보쉬의 경영 철학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조언하는 데 관심을 둘 뿐이다. 보쉬신탁의 이사회 멤버는 10명인데, 주로 보쉬그룹의 전직 최고경영자들과 산업계 저명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임업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크리스토프는 가문을 대표해서 회사의 감독이사회 및 보쉬신탁의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보쉬 가문에는 자손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을 권하는 전통이 있다. 3세대 후손으로 총 8명이 있는데 크리스토프를 제외한 대부분은 음악 등 예술 분야에 종사하거나 자선사업을 한다. 4세대 후손 20여 명 중에는 보쉬그룹에서 경력을 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할 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보쉬 가문 후손들은 가문 구성원들의 정기적인 회합을 열어 회사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하나로 통일된 목소리를 낸다고 한다. 재단 중심의 지배구조를 갖춰 승계 관련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제거한 보쉬그룹은 독립적 전문경영을 통해서 미래 경쟁력을 축적해가고 있다.

보쉬그룹은 업종 평균의 두 배에 이르는 연구개발 투자로 유명한데, 이러한 미래 경쟁력을 위한 투자는 대부분 그룹 순이익의 재투자로 이루어진다. 매년 순이익의 약 5%가 배당으로 보쉬재단에 유입되어 교육, 학술 등 다양한 자선사업에 사용되고, 순이익의 95%는 기업의 미래에 투자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202103호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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