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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갈등 부딪힌 가업승계 

 

한국 창업 1세대의 사망이나 은퇴 소식이 자주 들린다. 하지만 세금을 비롯해 넘어야 할 각종 규제까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예기치 못한 사고나 돌연사로 가족을 잃게 되면 더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혁신과 성장만큼이나 합리적인 승계 도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대기업과 함께 산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던 중견기업들도 창업주들의 은퇴와 2세대로의 세대교체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100년을 넘어 해외 명문기업과 같은 장수기업을 가꾸기 위한 기업 자체의 승계전략과 원활한 승계를 위한 다양한 제도지원은 우리에게 주어진 큰 과제다.

기업승계에 대한 접근은 세제상 해법을 구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세금문제는 승계과정에서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명문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세금을 비롯해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다. 생존을 위한 기업 자체의 부단한 혁신과 성장 노력이 우선이겠으나, 법적·세제적 지원과 함께 다양한 승계 도구도 마련돼야 한다. 창업주 가족 간 기업 철학의 공유와 분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족 내부의 다양한 리스크에 대한 적절한 관리통제 역시 중요하다.

‘재혼가족’ 고민

실제 상담 과정에서 집안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기업가를 자주 만난다. 창업주의 이혼과 재혼으로 인한 고민, 승계수업을 받고 있던 자녀의 이혼 또는 갑작스런 죽음 같은 일을 누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다고 지나치기엔 기업승계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실제 사례를 보자.

재혼가족이라면 가족의 상황을 고려해 미리 자산에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어야 한다. 제조업 창업 후 기업 경영에만 집중하던 김철수씨(90, 가명). 딸과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내와 사별하고 20세 연하의 배우자와 재혼했다. 딸은 유학을 마친 후 현지에서 자신의 일을 갖고 결혼하여 정착을 했다. 둘째인 아들은 한국에 돌아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김씨의 배우자는 젊고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김씨와 함께 회사를 경영했고 김씨가 은퇴한 후에는 대표로서 회사를 이끌어왔다. 아들과도 관계가 원만하여 재혼한 법적 배우자에게는 부동산 외에 주식도 어느 정도 증여했다. 당연히 자신보다 오래 살 배우자의 노후를 위한 배려였고, 경영을 함께해온 데 전하는 감사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김씨의 배우자가 작년에 갑자기 병으로 사망했다. 배우자가 보유한 주식 및 부동산의 평가금액은 약 150억원대로, 상속세는 나누어 내겠지만 문제는 사망한 배우자에게 전 남편과의 사이에 자신이 몰랐던 자녀가 한 명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배우자의 아들과 상속협의를, 아니 상속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증여한 재산은 자신의 사후 아내의 노후를 위한 배려였고 아내가 사망한다면 당연히 자녀가 없기에 그 형제들에게 상속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을 비울 수도 있지만 문제는 기업의 주식만큼은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들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현실적으로 김씨는 배우자와 함께 재산을 일군 기여분을 주장하거나 배우자가 보유하던 주식은 자신이 상속받는 것으로 상속협의를 진행했다. 이 사례가 흔한 경우는 아니겠으나, 기업 승계를 장기적으로 고려한다면 배우자에게는 주식 증여보다는 다른 형태의 재산 증여가 더 현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주식 증여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증여된 주식에 대해서는 배우자가 아들을 수익자로 지정하는 유언대용신탁 또는 기업승계신탁을 체결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의 소유권이 계약을 통해 수탁자인 금융회사에 이전되어 관리되고, 계약변경제한특약 등이 사전에 합의된다면 좀 더 안정적인 승계 플랜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재산 이전한 부인의 죽음

30대부터 한 땀 한 땀 기업을 일궈온 홍길남씨(80, 가명). 코로나 상황에도 경영 중인 기업은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잘 이어가고 있다.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고 회사가 안정을 찾아가던 50대 초반에 아내는 병으로 그만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어려운 시기에 만난 두 번째 아내는 홍씨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이 차이가 꽤 많은 편이었지만 현명한 아내는 주변을 두루두루 잘 챙겨주었다. 두 아들도 새어머니를 많이 따랐고 아내는 홍씨의 부모님 수발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근 홍씨에게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나이 차이가 있는 아내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야무지게 살림하던 아내가 늘 믿음직스러워 재산의 많은 부분을 아내에게 이전해놓았다. 절세를 위해서 미리 증여하기도 했지만, 역시 홍씨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혼자 살아내를 배려해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이대로 아내가 사망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홍씨는 아내의 상속관계를 따져봤다. 아직 장모님이 살아 계셨고 형제자매도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장모님이 90대 고령이고 중증치매로 인지능력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는 점이다. 홍씨는 상속문제를 처리하고자 자신과 공동상속인이 될 고령의 장모님을 대신하여 아내의 형제자매들과 돈 문제를 놓고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평소 부부가 재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 명확하게 해두는 게 좋아 보인다.

홍씨는 어느 정도 아내를 배려했으니 주식과 다른 재산은 두 아들에게 어떻게 분배하겠다는 뜻을 밝혀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아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녀들 사이에서도 승계로 인한 분쟁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2020년 유언대용신탁된 재산은 유류분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판결이 있어 유류분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다. 또 아내 입장에서도 자신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 중 일정 부분은 홍씨의 두 아들에게 줄 수도 있고 또는 자신의 친정 형제나 조카들에게 주겠다는 뜻을 명확히 함으로써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아내 역시 자신이 원하는 형제나 조카에게 주고자 한다면 유언장이나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상속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고 분쟁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가업승계 중인 아들의 죽음

30대부터 창업하여 중견기업으로 일궈낸 박길수씨(60, 가명). 슬하에 딸과 아들이 있다. 딸은 전업주부이고, 아들은 자신과 함께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아들은 3살 난 손주를 두고 며느리와 작년에 이혼했다.

이혼했지만 유학을 다녀오고 회사 경영에도 열심이던 아들이 허망하게 올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마음을 추스릴 겨를도 없이 아들 앞으로 있던 부동산과 기업 주식은 손주에게 상속이 이뤄졌다. 물론 손주는 젊은 며느리가 친권자로서 양육하고 있다. 며느리를 볼 때마다 승계 플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젊은 며느리는 몇 해가 지나면 재혼할 수 있다. 아직도 미성년자인 손주에게 상속된 재산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재혼한 며느리가 친권자로서 손주 명의의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박씨는 법적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걸 잘 안다. 손주의 교육비며 생활비는 자신이 지원하겠지만 손주 앞으로 상속된 회사 지분만큼은 잘 지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박씨는 두 가지 고민을 해결해야 한다. 첫째, 당장 손주 앞으로 상속된 재산에 대한 관리는 며느리를 설득해 신탁관리를 해야 한다. 모든 재산의 신탁관리는 며느리도 수용하기 쉽지 않겠지만, 회사의 주식만큼은 며느리가 손주의 법률대리인으로서 주식을 신탁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의결권이나 신탁계약 변경 등은 박씨 자신과 협의한다는 내용을 담아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둘째, 자신의 상속문제에 대비해야 한다. 아직 건강한 60대 후반의 박씨에게 유고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미성년자 손주는 대습상속인으로 아들의 상속 지분을 받게 되고 이 또한 이혼한 며느리가 관리하게 될 것이다. 이미 아들로부터 상속받은 지분까지 합친다면 대주주의 실질적인 권한은 누구에게 귀속될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유언장을 작성할 수 있다. 손주에게 그 지분을 적게 주는 정도일 것이고 손주가 미성년 상태에서 자신이 사망할 경우 여전히 기업 지분에 대한 고민은 남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신탁이 필요하다. 보유 재산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검토를 통해 손주에게 이전할 재산을 정하되, 손주가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는 수탁자인 금융회사가 관리 후 이전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주식을 승계할 경우에도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수탁자가 보관하고 배당금 지급처리와 의결권 행사방법도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업승계는 다양한 관점에서 중장기적인 플랜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가족 내에서 후계자의 선정,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등의 문제부터 세제 등 다양한 제도의 검토 등 전문가 집단의 조력이 필요하다. 또 애써 피하거나 쉽게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 간의 문제로 인한 승계 리스크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제도를 활용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202103호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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