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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 패러다임의 체인저] 장명호 지아이이노베이션 대표 

유한양행이 손잡은 면역항암제 기업 

수익성과 신약 개발을 모두 잡은 바이오기업이 있다. 벌써 조 단위 기술수출계약도 성사시켰다. 한국 바이오벤처 업계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들이 개발한 면역항암제 후보 물질은 올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임상도 진행한다. 2017년 창업한 지아이이노베이션 얘기다.

▎장명호 대표가 이끄는 지아이이노베이션은 한국 바이오벤처 업계에서는 드물게 누적 기술수출 2조원대를 달성했다.
한국 바이오벤처로는 드물게 두 차례나 기술수출에 성공한 기업이 있다. 면역항암제를 개발하는 지아이이노베이션 얘기다. 이 회사는 자사 핵심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으로 ‘GI-101’ 면역항암제와 ‘GI-301’ 알레르기 치료제를 보유 중이다. GI-101은 지난 2019년 중국 10대 혁신제약기업 심시어(Simcere)에 9000억원 규모로, GI-301은 지난해 유한양행에 1조4000억원 규모로 각각 기술이전을 했다. 국내 비상장 바이오벤처 최초로 누적 기술수출만 2조3000억원에 이르는 기업이 됐다. 비결이 뭘까.

“파이프라인을 많이 갖고 있으면 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연구개발에 원칙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약 효과가 좋아야 하고, 생산성이 뛰어나야 합니다. 상업화를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면, 기술수출은 어려웠을 겁니다. 임직원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실패하는 걸 밥 먹듯 생각하라’고 말이죠. 신약 개발에 따른 실패는 숙명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난 3월 11일 서울 문정동 지아이이노베이션 본사에서 만난 장명호(53) 대표가 설명했다. 그는 덤덤했지만, 지아이이노베이션의 파이프라인이 시장에서 갖는 존재감은 특별하다. 특히 GI-101의 경우 독자 기반 기술인 ‘지아이 스마트(GI-SMART)’ 플랫폼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이중융합 단백질 면역항암제다. 기존 출시된 면역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고, 면역세포를 증식·활성화한다고 해 글로벌 제약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실제 글로벌 제약사 MSD는 자사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무상 지원해 GI-101와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지아이이노베이션과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2020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됐고, 올해 1월 국내 식약처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 임상시험계획서(IND)까지 제출해 본격적으로 임상에 돌입할 채비를 마쳤다. 미국과 한국에서 임상이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회사만큼이나 장 대표도 꽤 유명하다. 전 세계 면역대사 연구 분야에서 권위자로 꼽힌다. 한양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GC녹십자 목암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이후 오사카의과대학에서 면역학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오사카대 면역학 프런티어연구센터에서 교수로 지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였다. 이 연구센터는 수년간 노벨상 후보로 기론됐던 아키라 시즈오(審良 静男) 교수가 이끈 곳으로, 면역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 기관으로 인정받는다. 세계 최대 정보제공업체 톰슨로이터도 이 센터를 세계 면역학 분야 1위로 자주 꼽을 정도다. 그가 이곳에서 작성한 면역학 분야 논문 60여 편도 세계적으로 7500회 이상 인용된 바 있다. 장 대표는 2013년 불현듯 귀국해 기초과학연구원(IBS)과 제넥신, 프로젠을 거쳐 2017년 지아이이노베이션을 창업했다.

시장에서 저력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한국 대기업도 적극 지원에 나섰다. 지난 2019년 5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면역항암제 위탁개발(CDO)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이 지아이이노베이션의 세포주 개발에서부터 임상 1상 물질을 생산하는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 대표는 “국내 의약품 위탁생산(CMO) 기업 중 이중융합 단백질 생산 경험이 있는 곳이 없었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 협력을 약속했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 모든 팀이 실사에 협력해줘서 중국 심시어와 GI-101 기술이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제약사 유한양행은 더 적극적이다. 2019년 375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에 전략적 투자자(SI)로 60억원을 투자해 전환우선주 48만 주(지분율 3.6%)를 취득했다. 올해 3월 100억원을 추가로 출자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보통주 30만3030주를 취득한다. 지난해 7월에는 알레르기 치료 후보 물질 GI-301에 대한 기술이전 계약도 맺었다.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 대상 사업화 권리로 총 1조4090억원 규모다. 계약금으로 200억원을 먼저 지불했다. 장 대표는 “지아이이노베이션이 개발한 독자 기술의 가능성을 국내 최대 제약사가 인정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장 대표는 “신약 개발에서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주인의식’을 강조한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명감에 가까운 열정으로 임해야 혁신을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바이오벤처에서 드문 성과다.

그런 셈이다. 사실 유한양행 같은 국내 제약사에 기술 수출을 하는 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2019년 남수연 대표가 합류하면서 길이 열렸다. 그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 조교수, 로슈, BMS, 유한양행 연구소장, 네오이뮨텍 부사장을 거친 베테랑이다. 물론 남 대표가 유한양행 출신이어서 특혜를 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유한양행은 같은 회사 출신자의 제안을 더 까다롭게 본다. 하지만 그 엄격함이 GI-301의 기술력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됐다.

GI-301은 어떤 약인가.

혈액 속 면역글로불린E(lgE)라는 물질을 없애는 약이다. 쉽게 설명해보겠다. 대다수 알레르기 질환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노출될 때 생성되는 면역글로불린E가 비만세포나 핏속 호염구(백혈구의 일종)와 결합한 뒤 히스타민을 분비하고 가려움증 같은 증상을 일으킨다. GI-301은 면역글로불린E에 붙어 비만세포 등과 결합하는 걸 차단하는 이중융합 단백질 신약이다. 천식이나 만성 두드러기, 아토피피부염, 음식물 알레르기 등 알레르기 관련 네 가지 핵심 질환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현재 유일한 승인 처방제인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의 면역글로불린E 억제제 ‘졸레어(성분명 오말리주맙)'보다 알레르기 억제 효과가 50배 정도 뛰어나다. 졸레어는 전 세계에서 4조원어치나 팔리는 약이다.

면역력을 극대화하는 약물 같다.

그렇다. 1980년대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 표면에서 ‘CTLA-4’란 수용체가 발견됐다. CTLA-4가 활성화되면 면역세포 기능이 떨어져 암세포에 대응하지 못했다. 이 수용체를 억제하니 암세포가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났고, 1996년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메다렉스사가 1999년 이 항체로 신약 개발에 나섰고, 2011년 미국 FDA가 전이성 흑색종 치료제로 ‘이필리무맙’을 승인했다.

그럼 GI-101은 더 나은 단백질 신약인가.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좋았다. 두 개 약물을 결합해 특정 표적에 대한 작용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이중융합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면역세포 위아래에 두 약물을 달아 엮은 뒤 면역력을 키워 암을 공격하는 식이다. 원래 CTLA-4 관문을 억제하면서 면역세포의 일종인 조절T세포를 과하게 줄이면 부작용이 나타난다. 하지만 GI-101은 CTLA-4를 억제하면서 조절T세포를 줄이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면서도 치료 효과가 좋다. MSD가 키트루다를 무상으로 지원할 정도로 GI-101 효능이 상당했다.

유한양행이 추가로 투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유한양행이 우리 기술력을 인정해준 결과다. 이번이 두 번째 투자 유치로 대규모 기술이전과 함께 추가 투자를 하면서 파트너십은 더 탄탄해졌다. 이번 출자로 유한양행의 지분율은 5.0%가 됐다. 시장에서는 기업가치 2조원까지도 거론되지만, 이번 증자 때 적용된 우리 기업가치는 5000억원 수준이었다.

기업가치를 너무 낮게 잡은 것 아닌가. 주주들 불만이 있었겠다.

그랬을 수 있다.(웃음) 하지만 분명한 건 현 상태에서 기업가치만 치솟아 오르면 추가 투자 유치가 불가하다. 현재 우리에게는 기업가치 상승보다 연구개발에 쓸 돈이 회사에 들어와야 한다. 얼마 되지도 않는 자금으로 한두 개 파이프라인의 임상에 돌입하면 실패했을 때 타격이 크다. 상장도 안 한 주식 가치가 한없이 오르기만 하면 좋아할 일이 아니다. 사내 풍부한 자금으로 제대로 된 신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다.

자금력이 중요해 보인다.

바이오 업계에서 자금력과 성장 가능성은 상관관계가 꽤 높다. 허가받지 않은 신약을 생산하는 게 위탁개발생산(CDMO)인데 한 번에 100억원이 든다. 한 파이프라인으로 임상시험 3상까지 하려면 평균적으로 1000억원 넘는 비용이 들고, 시험 기간도 3~5년은 족히 걸린다. 괜히 임상 3상을 ‘죽음의 계곡’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우리가 파이프라인을 개발할 때부터 상업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이유다. 돈이 안 되면 주주부터 협력에 나선 모든 기업에 낭패다. 우리를 믿고, 같이 멀리 보면 좋겠다.

역시 창업은 어려워 보인다. 오사카대 교수직을 내려놓은 것도 창업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나.

그건 아니다. 8년간 해온 교수 생활에 불만이 없었지만, 신약 개발에 대한 열망은 있었다. GC녹십자 목암연구소에서 일하며 면역학 분야 권위자인 오사카대 의과대학 히로시 키요노 교수한테 메일을 보냈다. 답장을 받고 인터뷰하고 시험 통과하고 박사과정 4년, 박사후과정 2년을 쉴 새 없이 달려온 후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2013년 제넥신 설립자이자 포스텍 교수인 성영철 대표가 ‘한국에 기여 좀 하라’며 불렀다. 그렇게 뭐에 홀린 듯 귀국해 제넥신 과학고문, 프로젠 신약개발총괄 등을 거쳐 창업에 나섰다. 5년, 길지만 참 짧은 시간이었다.

바이오 기업에는 맨파워가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 맨파워가 정말 중요한 분야다. 남수연 대표를 비롯해 한독 연구소장이었던 조영규 부사장, 제넥신에서 세포주 개발팀장이었던 오영민 상무, 세포 배양에 특화돼 있는 권순탁 이사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업계 톱 인력을 모셨다.

소개하고픈 경영 철학이 있나.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주인의식’만큼은 항상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모든 신약 파이프라인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전임상시험 단계에서 상업화와는 거리가 멀어 중단하는 물질도 많다. 담당했던 직원은 좌절감이 크다. 하지만 신약 개발에서 실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일상적인 일)’일 뿐이다. 실패를 기회로 만드는 문화가 자리 잡혀야 글로벌 신약 개발사가 될 수 있다. 주인의식은 열정을 뒷받침하는 토대다. 스톡옵션을 받지 않은 직원이 없을 정도로 전 직원이 주주다. 과거보다 바이오기업의 기업공개(IPO)가 어려워졌다지만, 코스닥 상장 기술성 평가 3곳에서 모두 ‘A’를 획득했다. 임직원이 열심히 달려준 덕분이다.

앞으로 계획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보다 내가 왜 신약 개발에 눈떴는지 얘기하고 싶다. 암 치료는 유전체를 편집하고, 단백질을 합성하는 등 기술적 진보는 이뤘지만, 가혹한 치료법이 여전한 분야가 암이다. 암세포는 쉽게 죽지 않는다. 정상 세포를 파괴하고 마구 돌아다니며 커진다. 구조도 엄청나게 복잡하다. 하나의 약으로 치료한다는 게 오만으로 느껴질 정도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면역력을 키우면서 부작용은 줄이고, 대량생산해서 값싼 약을 환자에게 제공하고자 한다. 절망하는 환자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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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호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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