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의 나비효과는 대단했다. 비(40)는 요즘 가요계에서 가장 바쁜 가수로 꼽힌다. 지난해 여름 이후
비가 발표한 곡만 9개. 데뷔 23년 차인 그는 10대들에게까지 인정받으며 ‘여전한 대세’임을 입증했다.
포브스코리아 ‘2021 파워 셀러브리티 40’에 이름을 올린 비를 만났다.
2020년 여름. 2017년 발매 곡 ‘깡’이 갑자기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콘셉트가 과했다’, ‘트렌드를 못 읽었다’며 가사와 안무를 희화화한 패러디 영상이 인기를 끈 것이었다. 이 패러디는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타고 확산됐고, 너도 나도 따라 하는 ‘밈(meme,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트)’으로 발전했다. 당사자인 비에게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패러디 재밌게 보고 있다. 더 장난쳐달라”는 유쾌한 반응으로 밈을 함께 즐겼다.나비효과는 제대로 일었다. ‘깡’은 발표 3년 만인 지난해, 음원차트 순위에 재진입하는 ‘역주행’ 신화를 썼고 공식 뮤직비디오는 2000만 뷰(유튜브)를 훌쩍 넘겼다. 식케이, 박재범 등 후배 힙합 가수들이 재해석한 ‘깡 리믹스’는 발매하자마자 음원차트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이뿐인가. 10대들은 가수 비를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그의 수많은 히트곡과 멋진 퍼포먼스 영상이 회자됐다. ‘조롱의 밈’을 역이용한 비의 현명한 결정이 제대로 들어맞은 셈이었다.한번 음원차트에 진입한 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 이효리와 결성한 그룹 ‘싹쓰리’로 신곡을 내놨다. 199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다시 여기 바닷가’, ‘그 여름을 틀어줘’는 여름 내내 음원차트를 ‘싹쓸이’했다.사실 비는 가수로도, 배우로도 정점을 찍은 국내 몇 안 되는 톱스타다. 1998년 6인조 그룹 ‘팬클럽’으로 연예계에 첫발을 디딘 그는, 2002년 솔로가수 ‘비’로 새롭게 시작하며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 ‘It s raining’, ‘rainism’ 등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했다. 데뷔 이듬해엔 드라마 [상두야 학교 가자](2003), [풀하우스](2004)에 연이어 출연해 ‘대박’을 터뜨렸고 가수와 연기자의 길을 병행했다. 미국 진출도 했다. 신인의 자세로 직접 할리우드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닌 그는, 오랜 고생 끝에 영화 [스피드레이서](2008), [닌자 어쌔신](2009)에 출연했다. 데뷔 10년이 채 안 돼 ‘월드스타’ 반열에 올랐다.‘월드스타’란 수식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렸던 그가 카리스마를 내려놓고 친근함을 택한 이유가 뭘까. 비는 지난해 자신의 ‘이미지 변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춤, 노래, 연기 실력이 인기의 척도였어요. 그런데 요즘 팬들은 인간적이고, 빈틈 있는 모습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많이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깡’으로 역주행 신화를 썼는데, 소감이 어떤가.“사실 내가 잘해서 주목받은 건 아니고 팬분들 덕분이다. 특히 인터넷에서 밈으로 활성화해준 깡 팬분들.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시대적인 흐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깡’ 이후 ‘나로 바꾸자’ 등 음반 발매도 팬들의 요청이었나.“그렇다. 박진영 PD님과 작업하는 모습을 다시 보고싶다고 하더라. 박진영 PD님이 흔쾌히 듀엣을 수락해 13년 만에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2020년 12월 31일 발표한 ‘나로 바꾸자’다. 올해 3월에 발표한 ‘WHY DONT WE(feat. 청하)’도 ‘파워풀한 안무로 무대를 찢어주세요’라는 팬들의 요청으로 탄생한 곡이다.”
두 곡 모두 격렬한 댄스곡이다. 힘들지 않나.“댄스 무대가 이제는 너무 힘들다. 체력 좋은 10대, 20대 후배들보다 잘할 자신이 없다. (지금 생각으로는) 청하씨와의 곡이 마지막 댄스곡이 아닐까 싶다. 대신 장르를 바꿔볼 생각이다. 원탁에 앉아서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자유롭게 부르는 거다. 오래된 팝송, 트로트, 가요를 내 방식으로 바꿔 부르고 그 장면을 유튜브로 방송하면 꽤 재밌을 것 같다.”
새로운 플랫폼 무조건 가입할 정도로 트렌드 관심 많아실제 비는 지난해 7월, JTBC 스튜디오 룰루랄라와 손잡고 유튜브 채널 ‘시즌비시즌’을 개설했다. ‘시즌’은 팬들이 원하는 콘텐트를, ‘비시즌’은 비가 원하는 콘텐트를 찍어 올리는 콘셉트다. “유튜브를 시작할 때 ‘최대한 많이 망가지자’고 결심했다”고 그가 설명했다. “싹쓰리로 활동할 때도 주변에서 ‘너 많이 내려놨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이미지를 사랑해주셨어요.” 그래서인지 유튜브에서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기 싫다’고 투덜대는 모습부터 제작진이나 팬들의 놀림에 토라지는 모습, 제작비를 위해 열심히 앞 광고 하는 모습까지. 비의 희생(?)에 ‘시즌비시즌’ 채널은 승승장구 중이다. 개설 8개월째인 현재(4월 기준), 구독자 126만 명을 보유 중이다.
유튜브라는 채널을 택한 이유가 있나.“이제 콘텐트 주도권은 방송국에서 시청자들에게 넘어갔다. 각자 원하는 콘텐트를 골라 보는 세상이니까. 어느 날 문득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나를 찾아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료로 콘텐트를 제공할 방법을 찾다가 유튜브를 선택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많은 연예인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지만 해외에선 3~4년 전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광고업계에서도 모델을 선정할 때 유튜브 플레이 여부를 중요하게 따진다. 이제 연예인에게 유튜브는 필수가 된 거다.”
메타버스 등 플랫폼이 계속 쏟아져 나온다. 다 시도해볼 건가.“나는 어떤 플랫폼이 생겼다고 들으면 바로 가입해서 써보는 편이다. 이미 메타버스도 가입했다. 넷플릭스는 한국 출시 전부터 미국 계정으로 이용해봤고, 스포티파이도 출시하자마자 이용 중이다.”
이제 40대에 들어섰다. 젊은 후배들과 경쟁하기 어렵지 않나.“내가 박진영 PD님과 음악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언쟁했던 나이가 20대 초반이었다. 지금 내가 아무리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 만든다고 해도 지금의 20대 후배들의 귀와 몸동작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오히려 젊은 친구들에게 많은 결정을 맡기는 편이다. 노래도 안무도 모두.”
백댄서로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좌절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자존감이다. 어렸을 때 워낙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감이라도 없으면 나는 내세울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지금은 어렵지만 언젠간 꼭 성공할 거야’라고 자기암시를 했다. 2017년 ‘깡’이 잘 안 됐을 때도 자책하지 않고 누군가는, 언젠가는 좋아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수많은 패러디를 해준 분들, 재미로 희화해준 분들, 진짜 춤을 좋아해준 분들 등 흐름을 타서 잘될 수 있었다. 우스갯소리지만 박진영 PD님을 보면서도 많이 배웠다. ‘박진영 PD님은 실력에 자존감까지 갖췄는데 그분을 따라가려면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자존감이 꼭 있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웃음)”
제작자로 변신, 목표는 K팝 게임 체인저잘 알려진 대로, 비와 박진영 PD는 오래된 사제지간이자 둘도 없는 선후배다. 2007년 비가 JYP와 결별하고 독립했지만 둘은 여전히 깊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비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돌아봤다. “이전과는 다른 음악 스타일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비가 아닌 정지훈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궁금하기도 했고.” 그는 잠시 다른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갔다가 ‘레인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렸다. 이후 발표한 ‘레이니즘’, ‘널 붙잡을 노래’가 성공했고, 할리우드 영화에도 진출했다. 그는 “그때 엔터 산업의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 레인컴퍼니에서는 7인조 보이그룹 ‘싸이퍼’를 데뷔시켰다. 비가 직접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원래 제작에도 욕심이 있었나.“3년 전쯤 ‘케이타’라는 멤버가 나를 찾아왔다. 일본인인 그 친구는 당시 국내 대형 4대 기획사 중 한 곳의 연습생이었다. 오래 연습했는데 결국 데뷔조에 뽑히지 못했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를 붙잡고 자기한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엉엉 울더라. 오기와 분노, 욕망으로 똘똘 뭉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17살 무렵 절실했던 내 모습이 겹쳤다. 이 친구의 꿈을 돕고 싶었다. 그렇게 총 7명의 멤버를 모았고 데뷔를 시켰다. 우리 목표는 K팝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K팝 글로벌화의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감히 제가 뭐라고 말할 수 있겠나. (레인컴퍼니는 중소기업이지만 그동안 공부했던 데이터로 말해보자면) 대한민국에서 1등 하면 세계에서 1등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비결을 두 가지 꼽자면, 첫째는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대형 기획사는 연습실 10개, 녹음실 3~4개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여기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떻게 하면 이 그룹을 홍보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퍼블리싱팀, 홍보팀, 매니지먼트팀 등 수백 명의 지원팀도 있다. 대기업에 맞서는 탄탄한 중소 기획사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매년 몇백 팀이 데뷔하는데, 전투력은 모두 세계적이다. 둘째는 월드와이드화된 플랫폼 서비스다. 이제 유튜브만 켜면 세계 전역의 콘텐트를 다 볼 수 있다. 예전엔 미국 방송국에 출연 요청을 하려면 ‘너희가 뭔데’라는 부정적인 시선만 돌아왔다. 그런데 이젠 그런 수고 없이 전 세계에 콘텐트를 노출할 수 있다. 국내에만 있던 K팝의 잠재력이 터진 거라고 본다.”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가진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이제 자금력 있는 큰 기획사가 많아졌다. 자금력은 곧 제작 능력이 된다. 예전엔 1000만원 들여서 안무가를 고용하면 그 한 명과 계속 일해야 했는데, 이젠 전 세계 안무가들을 불러놓고 경쟁을 붙인다. 미국 1등, 영국 1등, 한국 1등 팀을 모두 모아놓고 조합하는 것이다.”밖에선 화려한 톱스타이자 리더지만 집에선 예쁜 두 딸의 아빠. 가정을 꾸린 후 어떤 점이 달라 졌을까. “바뀐 건 없고 그냥 1000배 더 행복하다”고 웃어 보였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에 가면 집에 있을 식구들 먼저 생각난다고. 마지막으로 딸들에게 어떤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아빠 미소’를 지으며 “뻔한 답이지만 남자친구 이야기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빠”라고 했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