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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신탁 제언 

 

가업승계에서 신탁이 힘을 발휘할 때다. 그중에서도 주식신탁은 피상속인이 보유한 기업 주식과 개인 자산의 적정한 분배 비율을 정하고 집행 과정도 투명하게 유지하면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제도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가의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 납부에 관심이 증폭되면서 다시금 가업승계가 주목받고 있다. 상속세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가업을 승계하려는 기업들이 주저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서 승계는 단순히 개인의 부를 이전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한 기업과 근로자의 생존, 그 사회가 보유한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해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수단으로 봐야 한다. 관련 제도도 이런 인식에 발맞춰 달라져야 한다.

희망적인 소식이 들린다. 최근 중소기업 승계를 위한 세제가 일부 개선됐다. 지난 4월 중소기업중앙회는 기업승계활성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세제적 관점에서 제도 개선 내용을 발표했는데, 사후관리 요건인 업종제한 폐지와 자산처분 제한 요건, 가업상속공제 최대주주 지분율 완화 등이 주로 담겼다. 세제 개편과 함께 신탁제도도 주목받고 있다. 신탁은 본질적으로 소유자가 맡긴 재산을 수탁자가 잘 관리한 후 소유자가 사망할 경우 생전에 정해놓은 사람에게 안전하게 이전하는 재산이전 기능을 한다. 개인의 상속뿐 아니라 기업의 주식승계 과정에도 신탁은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주식신탁은 피상속인이 보유한 기업 주식과 개인 자산의 적정한 분배 비율을 정하고 그 집행 과정에서 신탁은 객관적인 집행관리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주식신탁은 여전히 생소한 제도다. 지난해 신탁업권 전체 수탁고도 1000조원을 넘어섰지만, 이 중에서 유가증권신탁이 차지하는 비중은 3조4000억원으로 약 0.33% 수준에 그쳤다. 증권신탁 중 순수한 주식신탁의 비중은 그보다 더 낮다. 실무 현장에서 유가증권신탁은 금융회사의 여신 취급 과정에서 보충적 담보제공 용도로 활용되거나 단순 관리 목적으로 활용되어 전체 활용도가 낮은 상황이다.

단순 관리 목적의 주식신탁도 의결권 인정해야

왜 이렇게 이용률이 낮을까. 이유가 있다. 첫째, 주식신탁을 활용하는 데 있어 금융기관의 주식 소유 시 승인이 걸림돌이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서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 중 100분의 20 이상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금융위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는 2017년 유언대용신탁 목적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통해 금융위의 사전승인 없이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다. 기업 승계를 목적으로 하는 유언대용신탁에서 주식신탁 의결권 행사 등 실질적인 권리행사 주체를 위탁자로 보기 때문이다.

둘째, 주식을 신탁하면 신탁회사의 의결권 행사에 제약을 받는다. 주식을 신탁하면 소유권은 수탁자인 금융회사에 이전되고 명의변경이 일어난다. 그런데 자본시장법 제112조에서는 신탁업자의 발행주식 총수의 15%를 초과하여 취득한 경우, 초과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원래 신탁계약을 통해 다른 기업에 대한 지배력 행사를 금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주식을 단순 보관 후 다음 세대로 이전한다는 유언대용신탁에 대해서는 예외 적용이 가능한가라는 질의에서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렸다.

이러한 의결권 제한 규정은 주식 보유자가 신탁을 활용하는 데 큰 제약 요소로 작용한다. 상속 목적으로 주식을 단순 보관하는 유언대용신탁에 대한 상담 과정에서 주식을 신탁하면 15%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안내 이후에는 아무리 관리와 승계의 투명성이 제고된다 하더라도 신탁계약을 체결할 이유가 거의 사라진다. 결국 단순 관리 목적으로 주식을 신탁하는 경우까지 15% 룰 적용은 제외돼야 하지 않을까.

셋째, 주식신탁 후 가업상속공제 적용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100년 장수기업을 유지하기 위한 대표적인 세제혜택으로 가업상속공제제도를 들 수 있다. 30년 이상 기업을 영위한 경우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어 50% 세율을 고려할 경우 250억원까지 세금을 줄일 수 있는 제도다. 가업상속공제를 활용하려면 가업 요건, 피상속인·상속인 요건이 각각 정해져 있다. 엄격한 사후관리 요건도 준수해야 한다. 그런데 신탁과의 관계에서 보면 상속을 목적으로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할 경우 피상속인을 포함한 최대주주가 10년 동안 5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요건이 문제다. 소유권이 대내 외적으로 수탁자에게 이전되는 신탁의 특성상 명목적인 소유권 이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요건에 위배된다는 해석도 있다. 단순 보관 목적의 유언대용신탁인 경우에는 예외적인 해석 또는 명확한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와 함께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증여세 과세특례 요건을 갖춰 자녀에게 증여하는 경우 자녀 주식을 수탁자에게 이전해 관리하고 부모의 일정한 관리를 받도록 신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렵다. 증여받은 자녀가 업무 경험이 미숙하여 당분간 부모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만약 사기 또는 착오 등으로 증여받은 주식을 처분하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증여세 과세특례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현 제도로는 과세특례 요건을 형식상 위배라고 본다.

신탁제도는 재산 보유 주체가 신뢰하는 이에게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안전하게 관리된 자산을 승계하는 제도다. 2012년 개정 신탁법에 유언대용신탁, 수익자연속신탁 등이 도입되는 등 다양한 신탁제도가 도입됐으나 가업승계 목적의 주식신탁 활용은 여전히 미비한 상황이다. 자본시장법 제103조에 신탁 가능한 7가지 재산도 금전과 부동산신탁에만 국한돼 있어 가업을 승계한다는 대의를 품기엔 뭔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승계로 꼬인 문제, 현실적으로 신탁이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센터장

202106호 (202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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