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가장 핫한 기업이 있다. 중장기 숙박 플랫폼 ‘미스터멘션’이다. ‘제주도 한 달 살기’ 문화를 선도하며 제주도 최대 숙박 플랫폼으로 성장하더니 이제 내륙을 넘어 해외에서도 ‘쉼’을 전파하고 있다.
▎국내 최초 장기 숙박 플랫폼인 미스터멘션은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와 리프레시 휴가 트렌드와 맞물려 급성장했다. 한국 관광업계가 맞은 직격탄을 홀로 비껴갔다. 남들과 달리 2016년부터 제주도를 중심으로 중장기 숙소만 묵묵히 확보해온 덕분이다. 중장기 수요를 체감한 정성준(왼쪽), 정재혁 미스터멘션 공동대표는 내륙을 넘어 해외 진출 채비에 본격적으로 나설 의지도 내비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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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멍, 쉬멍, 걸으멍’(‘놀며, 쉬며, 걸으며’를 뜻하는 제주 방언). 이 말처럼 제주 여행길은 자연으로 들어가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여정이다. 코로나19 이후 제주 여행법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제주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보내는 시간은 더 길어진 듯싶다. 재택근무와 리프레시 휴가까지 퍼지며 제주에서 한 달 이상 체류하는 이른바 ‘장박’(장기 숙박)이 한국 사회의 새 트렌드로 떠올랐다.국내 최초 장기 숙박 플랫폼인 미스터멘션도 이 트렌드와 맞물렸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한국 관광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미스터멘션 매출이 4배 이상 뛴 것이다. 홈페이지 누적 이용자 수는 300만여 명, 회원 수는 10만여 명, 올해 거래 금액만 100억원이 넘는다. 2016년 제주도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이 회사는 경쟁사가 단기 숙박 중개에 집중할 때 ‘제주도 한 달 살기’, ‘제주도 일주일 살기’, ‘강원도 한 달 살기’와 같은 중장기 여행객을 위한 숙소를 늘려왔다. 현재 제주도 2000여 개, 내륙 지역에만 1500여 개, 태국에서도 800여 개 숙소를 운영하고 있다.투자 유치도 순조로웠다. 금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올해 케이브릿지인베스트먼트, NICE 투자파트너스로부터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이보다 앞서 창업 초기였던 2016년에는 초기 기업 투자 전문 벤처캐피털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로부터 4억원을 유치했고, 2017년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간투자 프로그램 ‘팁스(TIPS)’에도 선정돼 연구개발(R&D) 자금 약 5억원을 지원받았다. 2019년에는 KDB산업은행과 부산연합기술지주로부터 13억원 투자를 유치했고, 2020년에도 신용보증기금이 최대 30억원까지 보증을 지원하는 ‘퍼스트펭귄’에 선정됐다. 부산시가 미스터멘션에 거는 기대도 크다. 지난 11월 15일 부산시는 미스터멘션을 제1호 부산관광 스타기업으로 선정하고, 디지털 기술로 부산관광산업의 미래를 이끌 롤 모델로 삼아 지원하기로 했다.미스터멘션은 코로나 시대에 4배나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사업 초기에는 부침을 거듭했다. 지난달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미스터멘션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정성준(33) 공동대표가 말문을 열었다.“사람들의 시선이 꽤 부정적이었습니다. ‘경쟁력이 부족하다’, ‘또 플랫폼이냐’, ‘3개월 안에 매출 내면 기적이다’ 등 별의별 악담을 다 들었죠. 이해됩니다. 한국이 OECD 국가 가운데 근로시간이 2위인 나라잖아요. 한 달을 쉬어보라니 다들 직장과 생활이 걱정됐을지도 모르죠.”옆에 있던 정재혁(33) 공동대표도 거들었다.“서비스를 론칭했는데 3개월간 예약이 없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악담이 맞나 싶기도 했죠. 사실 시스템이 문제인지 수요를 잘못 파악해서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어요. 분명 30~50대 수요층이 있긴 했습니다. 그래서 모바일로 예약하는 과정을 좀 더 편하게 하려고 내부 UI와 UX를 바꾸는 데 수개월을 매달렸죠. 그러자 하나 둘 거래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확신도 있었다. 정성준 대표가 부모님이 운영하던 펜션 사업을 도우면서 중장기 숙박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보다 펜션의 공실을 채우기 쉽지 않았고, 성수기에 숙박 예약이 늘어도 1~2일짜리 단기 숙박이라 예약 관리와 청소가 문제였다”며 “부모님이 펜션을 운영하면서 왜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그때 깨달았다. 부모님을 돕고자 웹사이트를 만들어 단기 숙박상품의 가격을 좀 더 낮춰 중장기 숙박 상품으로 바꿨더니 공실이 한 달 만에 다 찼다”고 말했다.
정재혁 대표도 “예약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교육사업을 할 때 한 달간 제주도에 출장을 갔는데 대부분이 인터넷카페나 블로그에서 장기 숙박 거래를 하는 게 뭔가 불안했다”며 “숙박업을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이도 많았겠지만, 좀 더 안전하게 숙박할 곳을 찾는 고객도 많을 거라 보고 장기 숙박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2015년 법인을 차리고 이듬해 5월 미스터멘션 서비스를 정식으로 출시했다. 이제 미스터멘션은 제주도에서 최대 중장기 숙박 플랫폼으로 성장했고, 강원도, 남해 등 전국 각지뿐만 아니라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두 사람의 여정을 더 들어봤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정재혁 대표: 대학 재학 시절 교육사업을 했다.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진로·체험 행사를 외주하는 일이었다. 교육 프로그램이 너무 주먹구구식이어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정성준 대표가 부산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컴퓨터공학 개발자라고 해 대기업 면접을 앞둔 그를 무작정 찾아갔다. 물론 단박에 거절당했다.(웃음)
정성준 대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웃음) 일단 취업 준비가 급했고, 정재혁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더라. 제대 후 만든 학교 앱 덕에 유명해졌더라. 처음에는 학교 식단표를 앱에 담고자 했고, 나중에 도서관 자리, 메신저, 과 모임 기능 등 16가지를 넣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많은 학생이 그 앱을 쓰고 있었다. 대기업 취업도 매력적이었지만, 정재혁 대표가 말한 사업에 매료돼 동업에 나섰다.
맡은 프로젝트가 뭐였나.정재혁 대표: ‘경영의 신’, ‘경제의 신’이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학생들에게 미리 창업과 경제를 체험하게 하는 일종의 교육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었다. 이걸 가지고 정성준 대표와 함께 경남권 초중고 100여 곳을 돌며 창업 캠프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를 느꼈다. 여전히 한국 교육 체계가 진로 교육보다는 국·영·수 중심의 입시 교육에 치중했고, 점점 예산도 줄면서 사업이 극악의 인건비 벌기식으로 변질됐다. 같이 일했던 친구 4명이 모두 폐렴이나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걸 보며 패기만으로는 사업이 어렵다는 걸 느꼈다.
미스터멘션으로 2년 만에 피보팅했다.정성준 대표: 앞서 말했던 부모님 덕이 컸다. 교육사업을 접고 부모님 펜션 일을 돕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 부모님이 펜션 공실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성수기는 예약이 몰렸지만 비수기에 공실이 많아 문제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이트를 만들었다. 단기 숙박보다 1일 가격을 낮춘 중장기 숙박 상품을 올렸더니 한 달만에 공실이 다 찼다. 분명 전국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가 많을 거란 생각에 중장기 숙박 플랫폼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부침이 많았다고 들었다.정재혁 대표: 일단 시장의 냉소적인 시선은 그렇다 치고 플랫폼을 쓰는 민박사업자가 먼저였다. 일단 홈페이지부터 열고 무작정 제주도로 날아갔다. 제주도를 동서로 나눠 정성준 대표는 동쪽, 나는 서쪽에 있는 민박사업자를 설득하러 돌아다녔다. 홈페이지를 보여주자 거의 다 사기꾼 취급하더라. 15일 정도 흘렀을까. 50여 개 숙박시설을 가진 호스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다시 설명해봐요. 내 아들 같아서 맡기는 거니까 한번 다 운영해봐요.” 기회였다. 당시 초기 투자사가 제주도 호스트들에게 크라우드펀딩을 받아오면 투자를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몇몇 제주도 호스트가 투자금을 내줬고 2주 만에 2000만원을 모았다.
숙박 플랫폼은 꽤 많다.정성준 대표: 기존 플랫폼과 달라야 했다. 일단 가격 문제다. 다른 숙박 플랫폼은 무조건 1박 기준으로 가격이 나오고 한 달을 머물면 별도의 협상 과정을 거쳐 할인을 받아야 했다. 우리는 이걸 한 번에 제시했다. 낯선 제주에서 중장기 숙박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추천 서비스도 제공했다. 호스트의 불편도 최소화하고자 했다. 단순히 중개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사진과 영상을 찍어 올렸다. 이를 본 몇몇 호스트는 아예 위탁 운영을 맡겼다. 몇몇 숙소는 아예 장기 계약을 맺고 초기 인테리어를 싹 바꿔 청소 관리까지 미스터멘션이 다 맡아 한다.
그래도 쉽지는 않았겠다.정재혁 대표: 모두 직영이 아니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 현장과 앱에 올라온 사진이 다르면 다짜고짜 환불을 요구하는 문의가 온다. 일부 호스트가 실제와 다른 사진을 올렸거나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경우다. 이럴 때는 호스트를 찾아가 적극적으로 설득한다. 관리를 잘하는 호스트는 앱에서 슈퍼호스트라 명명하고 우대한다. 미스터멘션 입장에서는 숙박 이용자, 호스트 모두가 소중한 고객이기에 어느 쪽도 관리에 소홀할 수 없다. 인테리어 공사가 늦어지거나 비용이 많이 들면 당장 정성준 대표와 현장에 달려가 페인트 붓을 잡는다.
불법영업 문제도 있다고 들었다. 무슨 얘기인가.정성준 대표: 현재 주택을 숙박용으로 제공하는 ‘공유숙박업’으로는 도시 지역의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 농어촌 지역의 ‘농어촌민박업’, 한옥을 이용하는 ‘한옥체험업’ 등이 있다. 하지만 도시 지역에서는 외국인에게만 허용된다. 제주도에서 장기 숙박 사업을 하려면 ‘농어촌민박’이나 ‘숙박업’ 등으로 등록해야 한다. 특히 농어촌민박업 신고가 까다로운데 6개월 이상 계속 거주하거나 임대로 들어온 사람은 3년간 살아야 한다. 숙박업을 하려면 공중위생관리법을 따라야 하고, 따져볼 규제도 여럿이라 복잡하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공유숙박업을 잡기 위해서는 규제도 어느 정도 완화해줘야 토종 기업이 에어비앤비 같은 외국 회사에 맞설 수 있다.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조직도 많이 달라졌겠다.정재혁 대표: 그렇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조직 내 변화가 많았다. 2017년 운 좋게 초기 투자금 4억원, 팁스(TIPS) 투자금 5억원을 쥐게 됐다. 문제는 채용이었다. 조직문화와 비전을 너무 쉽게 봤다. 회사를 10배, 100배 키우겠다는 희망만으로는 어떤 직원도 붙잡을 수 없었다. 채용하고 금방 나가버리니 다시 채용에 매달리는 식이었다.
정성준 대표: 개발자 채용도 마찬가지였다. 주니어급 직원을 많이 뽑으면 회사가 금방 성장할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대표인 우리가 주니어들을 붙잡고 일을 가르치고 있더라. 당장 뛰어나가서 영업해도 모자랄 판인데 사무실에 매몰되는 형국이었다. 시니어급 인재가 절실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투자금을 받았던 미스터멘션은 경영 면에서 구멍가게나 다름없었다. 그다음부터 프로 의식이 있는 시니어 채용에 주력했다. 그렇게 시니어급 마케팅 전문가와 개발자를 영입하고 비전과 미션을 재정립했다.
최근 화두는 뭔가.정재혁 대표: 안정적인 성장 아니겠나. 몸집만 커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하루에 1000명 정도가 우리를 통해서 숙소를 찾는데,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 이렇게 이용 고객이 1만 명, 10만 명으로 늘수록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얘기다. 개발 측면에서도 그렇다. 숙박 이용자가 1000명에서 10만 명으로 늘어나면 호스트도 늘고 관리하는 숙소도 자연스레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은 한 단계 진화해야 하고, 미스터멘션 조직도 달라져야 한다. 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되 어떤 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것. 이것이 바로 미스터멘션의 에너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정성준 대표: 영어로 큰 저택은 멘션(mention)이 아니라 맨션(mansion)이라고.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처음에는 우리도 미스터맨션을 생각했다. 숙소를 의인화해 더 열심히 뛰겠다는 뜻을 보여줄 셈이었다. 하지만 법인 도장을 파고 보니 멘션이라고 찍혀 나왔다. 도장을 다시 팔까 하다가 누군가 ‘쉼’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주는 곳이라는 취지로 삼자고 해 ‘말한다’는 뜻의 멘션을 그대로 썼다.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쉼을 응원하는 존재’라는 믿음이 위기 때마다 큰 고비를 넘기는 힘이 됐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경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