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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 구현한 리얼 라이프 | 박관우 위지윅스튜디오 대표 

현실과 구분 없는 디지털 라이프 

장진원 기자
현실의 물리적 삶을 디지털에 온전히 구현하는 일이 가능할까? 국내 VFX 1세대인 박관우 위지윅스튜디오 대표는 리얼 라이프로 가득한 메타버스를 실현하려 한다.

“지구를 구하는 건 으레 미국인이라야 했다.” 그랬다. 비행선을 타고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거나, 슈퍼히어로가 돼 행성과 지구 사이를 날아다니려면 일단은 건장한 백인 남성의 모습을 떠올리는 게 당연했다. 임무를 완수한 영웅이 고지에 성조기를 꽂거나, 우주복 어딘가에 선명히 새겨진 나사(NASA) 로고도 그러려니 했다.

2021년 2월 초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된 영화 [승리호]는 한국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임을 내세웠다. 다만 익숙했던 금발의 슈퍼히어로 대신 한국말을 쓰는 한국 배우들이 나와 우주 활극을 벌였다. 왠지 익숙하지 않을 것만 같은 설정이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오그라드는 손발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오징어 게임]이 대박을 내기 전, 이미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 SF 영화는 넷플릭스 개봉 당일 글로벌 1위를 차지하며 한국산 콘텐트의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2021년 1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승리호] 공개 후 28일간 전 세계에서 무려 2600만이 넘는 유료 구독 가구가 한국산 SF에 열광했다.

영화와 게임의 콘텐트 융합


▎위지윅스튜디오의 VFX 기술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 [승리호]의 한 장면(왼쪽)과 ‘컴투버스’ 메타버스 플랫폼 개념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답게 영화 속 장면의 상당 부분은 시각효과(VFX, Visual Effect) 덕을 톡톡히 봤다.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VFX 기술은 한국산 SF라는 이질감을 감탄으로 바꾸어놓기에 충분했다. [승리호]를 비롯해 영화 [마녀], [1987], [물괴], [신과함께] 등 최근 한국 영화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받는 영화들의 정교한 VFX는 모두 위지윅스튜디오(이하 위지윅)가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세계적 수준의 VFX 기업에서 종합콘텐트 기업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 중인 위지윅은 국내 VFX 1세대로 꼽히는 박관우 대표가 이끌고 있다. 박 대표는 1994년 영화 [구미호], 1996년 [은행나무침대] 등에 참여해 한국 영화계에 본격적인 VFX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구미호' 전에는 국내에 VFX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나.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사실 지금도 뼛속 깊이 엔지니어의 DNA가 있다. 대학 졸업 후 자동차회사에 입사했는데 상명하복 같은 특유의 조직문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무언가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는데, 당시 [터미네이터2]나 <쥬라기공원> 같은 미국 VFX 영화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때마침 한국에서도 VFX를 활용한 영화(구미호)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고, 제작사 신씨네에 입사했다.

공학도와 VFX 전문가가 쉽게 연결되진 않는데.

당시는 국내에 VFX라는 기술 자체가 없었고, 당연히 전문가도 없었다. VFX는 기술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일이니 엔지니어 베이스가 유리했다. [구미호]는 한국에서 이른바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한 첫 작품이었는데, 기술적으로는 큰 이슈를 끌어냈지만 흥행이나 완성도 측면에선 많이 부족했다. 당시 함께했던 팀도 영화 개봉 후 뿔뿔이 흩어졌는데, 얼마 후 강제규 감독이 [은행나무침대]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왔다. [구미호] 때 인턴으로 참여했는데, [은행나무침대]에선 VFX 총책임자를 맡게 돼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웃지 못할 시절이지만, 두 작품을 계기로 한국 영화의 장르와 표현 기법이 다양해지며 다양성을 확보한 분기점이 됐다.

현재 위지윅을 비롯한 국내 VFX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기술 자체로는 할리우드 못지않은 실력에 도달했다. 그동안 자국 영화산업과 시장을 지켜온 덕분이라 생각한다. 유럽 몇몇 나라와 인도를 제외하면 이 정도로 영화산업을 지켜낸 나라가 별로 없다. 그러는 사이 국내 VFX 기술도 30년간 실력을 다져온 셈이다. 최근에는 유통혁명이 한국 콘텐트의 세계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할리우드라는 브랜드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였듯이, 한국의 수준 높은 콘텐트들이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를 통해 유통의 벽을 허물고 있다. 과거 배급사 등 유통 부문이 가졌던 헤게모니가 콘텐트 자체로 옮겨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 [지옥], [킹덤], [승리호]에서 끝나지 않을 거다. 콘텐트 산업에도 일종의 디지털 혁명이 불어닥쳤다.

최근 박 대표는 모바일게임 전문기업 컴투스와 전략적 지분 투자 관계를 맺으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2021년 3월 위지윅 지분 500만 주를 사들인 컴투스는 8월 들어 1600억원을 투자해 위지윅 보통주 1127만 주를 새로 인수했다. 이로써 컴투스는 위지윅 지분 38.1%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VFX 기반의 종합 콘텐트 기업과 게임 기업이 손을 맞잡은 첫 사례로 주목받는다. 박 대표는 “콘텐트를 기반으로 양 사의 시너지를 통해 본격적으로 메타버스 비즈니스에 시동을 걸겠다”는 출사표를 밝혔다.

콘텐트 기업이다. 메타버스 분야에서 게임과의 시너지는 어떻게 낼 생각인가.

위지윅 같은 콘텐트 기업들이 전략적 파트너를 선택할 때는 대개 거대 플랫폼이나 네트워크(통신사)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다. 컴투스는 콘텐트 기반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본질이 같다. 게임 분야와 영상의 컨버전스는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다. ‘더라스트오브어스(THE LAST OF US)’ 같은 북미·유럽계 콘솔게임들은 실제로 영화적 스토리와 등장인물을 기반으로 한다. 콘텐트 융복합의 좋은 예다.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들은 인터랙티브(interactive)가 대세가 될 거라 본다. 스크린이라는 2차원 창을 통해 카메라가 촬영한 피사체를 관람하는 것에서 벗어나, 관객이 실제로 영화 속 상황에 참여하는 게 가능해진다. 이른바 볼류메트릭(volumetric) 촬영 기법인데, 하나의 영화를 감독의 시선, 주인공의 시선, 제3자의 시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게임과 영화의 구분이 사라지게 될 거다.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가상환경과 콘텐트, 바로 메타버스다.

박 대표는 가상의 인터페이스를 창조하는 VFX 기술이 최근 등장한 메타버스를 구체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거라 말했다. 디지털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캐릭터(아바타, 디지털휴먼 등)를 창조하는데 VFX만큼 적확한 기술이 없다는 뜻이다. 위지윅을 이끄는 박 대표는 컴투스와 함께 ‘컴투버스’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열릴 메타버스 환경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하반기까지 계열사 인력 2000명 컴투버스에 입주

‘컴투버스’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인가.

메타버스의 핵심은 디지털 공간 안에 현실의 물리적 삶을 어떻게 이동시킬 것인가다. 사실 모바일 시대로 넘어오면서 우리의 삶이 이미 50% 이상 디지털로 넘어왔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넷이 등장한 초기만 해도 어느 누가 온라인에서 옷을 사 입을 거라 생각했나? 결국 기술과 시스템이 만든 환경을 사용자가 신뢰하게 된 것이다. 메타버스도 마찬가지다. 기술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스템 안에서 사회·문화·경제 등 물리적 삶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컴투버스는 일종의 버추얼 오피스에서 출발하려 한다. 일차적으로 올해 하반기까지 위지윅과 컴투스를 비롯한 계열사 인력 2000여 명이 입주할 예정이다. 물리적으로 하루에 9시간 이상 메타버스 공간에 머물면서 실제 업무를 보는 환경이다.

현실의 사무 공간을 디지털에 그대로 옮겨 심는 게 가능한가.

많은 메타버스 업체가 일종의 서비스 개념에서 출발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그 안에서 실제로 살아가자는, 즉 물리적 현실과 디지털 공간의 구분을 없앤다는 뜻이다. 버추얼 오피스에서 출발하지만 물리적 삶의 공간을 완벽히 이식하기 위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가령 팀원들이 앉아 있는 사무실에 내 아바타가 가까이 다가가면 자동으로 화상채팅이 시작된다. 메타버스 공간이지만 현실의 물리적 대면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위지윅을 비롯한 계열사 직원들만 입주하게 되나.

궁극적인 메타버스 환경은 삶 자체를 디지털로 옮기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될 것이다. 컴투버스는 사무공간 개념을 넘어 또 다른 삶의 공간을 그리고 있다. 디지털로 구현되는 또 다른 도시, 가령 판교테크노밸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컴투버스 안에서 업무는 물론 금융, 쇼핑, 엔터테인먼트, 심지어 원격진료까지 이뤄지게 될 것이다. 현재 은행 등 금융사, 백화점, 대형 서점(교보문고), 의료(닥터나우) 등 여러 입주 대상 기업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은행의 경우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서비스가 모바일에서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나. 우리는 이에 더해 금융투자, 대출상담 같이 대면 업무가 필요한 서비스도 화상채팅을 통해 컴투버스 안에서 실현하려 한다.

그쯤 되면 현실을 대체할 새로운 가상 경제권으로 진화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컴투버스의 핵심도 바로 경제 시스템이다. 구체적으로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토큰이코노미가 될 것이다. 최근에는 게임산업도 NFT 기반의 P2E(play to earn) 비즈니스로 옮겨가고 있다. 컴투버스 안에선 항상 퀘스트가 존재하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 이뤄질 것이다. 가령 출근 자체를 토큰으로 보상하는 식이다. 메타버스 안에서 토큰이 실제 재화로 활용되는 식인데, 이는 결국 이용자의 신뢰를 얻어야만 하고 블록체인이 그 기반이 될 것이다.

위지윅 외에도 다양한 기업과 경제주체를 참여시키는 게 관건이 될 것 같다.

컴투버스가 지향하는 바다.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의 경우 중앙집권형인 경우가 많다. 그 안에서 이벤트는 가능하지만 비즈니스와 생활 자체는 쉽지 않은 이유다. 컴투버스 시스템 안에선 자신의 디지털 자산을 소유하고, NFT를 사용해 나만의 부동산에 투자할 수도 있다. 서비스 플랫폼을 넘어 원하는 사람이나 기업, 기관 누구든 참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이 바로 컴투버스다. 외부 파트너들과의 협업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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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호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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