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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투자 유치의 달인 

 

월스트리트에서 ‘정부’라는 말은 욕설일 때가 많다. 그러나 사모펀드 백만장자 램지 무살람(Ramzi Musallam)은 글로벌 경제에서 가장 큰 행위자의 동기를 잘 파악함으로써 비극을 포브스 400대 부자가 될 기회로 바꿨다.
2012년 9월 10일, 램지 무살람은 업무 중에 화장실에 잠시 다녀왔다. 비서가 눈에 띄게 덜덜 떨고 있었다. 비서는 무살람에게 무살람의 상사인 로버트 맥키언에 대한 소식을 알렸다. 맥키언이 58세 나이로 남부 코네티컷에 있는 자택에서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무살람은 급히 차를 타고 코네티컷주 다리엔으로 64 ㎞를 달려갔다. 무살람은 맥키언과 친했고, 그가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살람은 맥키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맥키언은 강인한 사람이었다. 케이크 상점의 배달부로 일하며 일곱 자녀를 키운 아버지 밑에서 자란 맥키언은 오로지 의지 하나만으로 브롱크스 길바닥에서 금융업계 상층부까지 오른 인물이다. 무살람은 충격에 빠졌다.

무살람은 “굉장한 충격이었다”며 “나는 맥키언과 오래전부터 알았고, 함께 일을 해왔다. 아주 힘들었다. 그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맥키언의 아메리칸 드림은 악몽이 됐다. 무살람도 곧 겪게 될 악몽이었다. 무살람은 사무실로 돌아와서 베리타스 캐피털의 붕괴를 막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베리타스 캐피털은 맥키언이 1992년 설립한 사모펀드 업체다.

무살람은 1998년 베리타스에 두 번째로 높은 임원으로 합류했다. 맥키언이 사망한 이튿날 아침, 무살람은 회사 투자자들과 긴급 회의를 열었다. 맥키언의 죽음으로 인해 이들은 베리타스의 거래에 자금을 대야 한다는 책임을 포기할 권리를 갖게 됐다. 그 대신 무살람은 투자자들에게 자신을 믿어달라고 설득했다. 또 맥키언의 유족과 협상을 해서 맥키언의 베리타스 다수 지분에 대한 소유권을 대부분 무살람에게 넘기게 했다. 수년 뒤 이 성급한 거래는 무살람과 유족 간의 원한, 그리고 소송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놀라운 월스트리트의 성공담에 초석을 놓았다. 약 10년 뒤 베리타스 캐피털의 자산은 2012년 20억 달러에서 오늘날 36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이 회사의 펀드는 31%라는 압도적 수익률을 기록했다. 펀드는 오직 단 한 건의 투자(뉴멕시코의 태양광 회사에 투자한 8700만 달러)에서만 손실을 봤으며, 무살람이 전권을 넘겨받은 뒤 베리타스는 120억 달러를 투자자들에게 배분했다. 무살람은 53세 나이에 40억 달러에 달하는 부를 축적했고, 포브스 400대 부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무살람은 미국 연방정부가 지배력을 행사하는 부문에서 영업하는 IT 기업에 주력하면서 이러한 기록을 이뤄냈다. 주로 국방, 의료, 교육 부문이다. 미국 정부는 연간 6조8000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과 광범위한 규제로 이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다수의 기업인수 업체는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을 피해서 투자하지만, 무살람의 전략은 글로벌 경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행위자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이해하는 데서 비롯됐다.

“나와 우리 회사는 정부와 아주 긴밀한 거리를 유지한다. 왜냐하면 정부가 우리를 가로막는 모든 복잡성과 사안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라고 무살람은 자신의 맨해튼 사무실에 앉아서 말했다. 넓게 보이는 센트럴 파크의 뷰는 이곳이 워싱턴DC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줬다. 무살람은 “이는 물론 정부의 영향을 받는 시장이며, 정부가 이 시장을 생각하는 방향과 가까워지면 최선의 투자 방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공식은 통했다. 2021년 1월 베리타스는 HEC-다우존스 순위에서 잘나가는 토마스 브라보, 비스타 에퀴티 파트너스, 클레이튼, 더빌리어 앤드 라이스를 누르고 사모펀드 업계 실적 4위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CEO는 “사모펀드 업계에는 주목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무살람은 그렇지 않다.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며 “정부가 규제하는 시장과 IT 사이의 교차점에서 대단히 가치가 높은 사업을 조용히 일궈냈다. 사모펀드로서는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램지의 아버지인 사미 무살람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계 기독교인으로, 1950년대 후반에 뉴욕에 정착했다. 1948년 아랍과 이스라엘의 첫 전쟁이 벌어진 직후였다. 사미가 YMCA에서 머무른 첫날 밤 소지품을 모두 도난당했다. 사미는 굴하지 않았고, 마침내 미주리대에서 토목공학 학위를 취득한 뒤 번화한 일리노이주 에핑엄에 정착했다. 성공을 거둔 사미는 1960년대 중반에 중동으로 돌아갔다. 둘째 아들인 램지는 1968년 요르단 암만에서 태어났다.

사미 무살람은 미국 공병대 밑에서 일하며 가족과 함께 끊임없이 이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탄자니아 등 개발도상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무살람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살았다. 마을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며 “집에서 편지를 통해 교육을 받았다. 아이패드도 없었다. 숙제를 하면 어머니가 우편으로 부쳤다”고 지난 시절을 돌이켰다.

무살람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세심함과 회복력을 길렀다. 무살람의 가족은 탄자니아의 비포장도로에서 총을 든 도적들에게 금품을 강탈당한 적도 있었다. 무살람은 “그게 평범한 건 줄 알았다”고 말했다.

무살람이 고등학교에 있을 때 가족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뉴저지주 파인 브룩에 정착했다. 무살람은 콜게이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1990년에 JP모건의 투자 은행가로서 월스트리트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2년 뒤 부티크 회사 버크셔 파트너스에서 사모펀드 일을 맡았고, 이후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에서 수완을 발휘해 하얏트 호텔 체인을 만든 억만장자 제이 프리츠커의 투자 업무를 맡았다. 1997년 졸업 후 뉴욕으로 향했다가 로버트 맥키언에게 채용됐다. 6년 뒤 맥키언은 와서스틴 페렐라 앤드 컴퍼니를 떠나 베리타스 캐피털을 설립했다.

무살람의 선구안

무살람은 맥키언을 두 가지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첫째, 무살람은 맥키언이 건별 접근법에서 벗어나 기관 투자자로부터 사모펀드를 유치하여 현금을 몇 년 동안 묶어놓는 방식을 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베리타스가 유연성을 확보하고 사업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둘째, 무살람은 방위산업 하청업체들이 정부 계약의 특수성을 이용하고자 하는 펀드들에 아주 쏠쏠한 인수 대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앨러배마 헌츠빌 소재 군사 장비 제조업체 PEI 일렉트로닉스 인수를 시작으로 베리타스는 여러 방산 기업을 인수해 인테그레이티드 디펜스 테크놀로지스(Integrated Defense Technologies)를 설립하고 2002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방산 거래는 베리타스의 핵심 수익사업이 됐다. 특별히 유망해 보이는 회사가 있으면 맥키언은 브루스 와서스틴의 방식을 본받아 자신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챙겼다. 맥키언은 2010년 매각한 방산 하청업체 딘코프(DynCorp) 한 건만으로도 혼자 3억5000만 달러를 챙겼다.

맥키언의 죽음으로 베리타스의 ‘핵심 인력’ 조항이 깨졌고,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새 거래에 자금 제공을 중단할 권리를 갖게 됐다. 이미 많은 투자자를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더 떠나갈 경우 회사가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투자자들이 자금 제공을 중단하기 전에 핵심 인력 절차를 거치기까지 무살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이었다. 무살람은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며 “막대한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살람은 전국을 돌며 베리타스의 투자자들을 만났고, 일부 관리 수수료를 삭감하는 대가로 모두를 붙잡아둘 수 있었다. 무살람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투자자 100%의 지지를 얻어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무살람은 맥키언이 네 자녀를 위해 설립하고 맥키언의 형제들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신탁에 맥키언이 보유했던 베리타스 지분을 넘기도록 설득해야 했다. 투자자들의 믿음을 이끌어내려는 무살람의 노력이 없었다면 회사는 무너졌을 것이므로, 무살람은 협상에서 유족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2013년 1월 맥키언의 유족은 향후 관리 회사 매각 수익 및 기존 펀드와 연관된 3개 일반 파트너십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10%를 받기로 하고 베리타스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데 동의했다. 또 기존 베리타스 펀드에서 발생하는 맥키언 몫의 성과급 일정액과 베리타스가 유치하는 다음 두 번의 펀드에 대한 성과급 5%도 받기로 했다. 무살람의 완승이었다. 무살람은 최대 지분 소유자이자 CEO로서 회사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시카고 소재 자산관리 업체 PPM 아메리카에서 60억 달러 규모 사모펀드 투자를 운용하는 베리타스 투자자 클로디아 배런은 “무살람은 투자자와 회사를 상대할 뿐 아니라 자신과 가까웠던 사람을 잃는 시련까지 겪었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았고, 때로는 재는 듯하거나 사적인 것으로 보이는 질문에도 모두 답했다”며 “힘든 시기에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면 거래할 때 똑같은 수준의 사고력과 진실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살람은 수년간 건강 기록 디지털화에 집착했다. 처음에는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의료보험을 총괄했던 케리 윔과 대화하면서 의료 IT와 관련된 민관 파트너십을 떠올렸다. 무살람은 윔즈처럼 거액의 미국 정부예산을 주무르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 베리타스는 2007년 처음으로 의료 IT 서비스 업체인 반젠트(Vangent)를 인수하며 이 분야에 손을 댔다. 4년 뒤 이 회사를 제너럴 다이내믹스에 매각하면서 3억5000만 달러 수익을 올렸다.

무살람은 “의료 체계는 망가져 있다”며 “IT로 이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신념”이라고 말했다. 2012년 무살람은 정보 대기업 톰슨 로이터에 접근하여 이 회사가 병원과 보험회사에 보험금 청구 및 의료 비용 지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세운 사업 부문들을 인수하려 했다. 무살람은 베리타스가 의료 데이터 업계에 크게 투자해야 한다고 확신했고, 4억6500만 달러를 쏟아부은 뒤에야 130억 달러의 레버리지 바이아웃으로 그룹을 인수할 수 있었다. 베리타스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였다.

무살람은 톰슨 로이터의 사업 부문 이름을 트루벤 헬스 애널리틱스(Truven Health Analytics)로 바꾸고 이 회사를 단순한 데이터 공급업체에서 고객이 비용과 낭비를 줄이고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지원하는 기업으로 바꾸기 위해 1억6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트루벤은 베리타스가 록히드 마틴으로부터 인수한 방어 인텔리전스 소프트웨어 회사와 협업했다. 이미 페타바이트 규모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회사였다.

무살람은 트루벤의 시장을 공공부문으로 전환하고 처음으로 메디케어 등 정부 고객에게 서비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016년 트루벤은 IBM에 26억 달러에 매각되면서 베리타스에 초기 투자 비용의 3.2배에 달하는 돈을 안겼다.

베리타스는 저명한 전직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를 고용하지 않고 정부를 중심으로 바이아웃을 진행하는 보기 드문 회사다. 그 대신 무살람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인맥을 활용한다. 그는 군에서 설치한 ‘특수 기밀정보시설(SCIF)’에 한참 동안 앉아서 브리핑을 듣는다. 무살람은 “미국 정부는 전체 벤처캐피털 업계가 투자하는 액수를 몇 배로 곱한 것만큼이나 큰 IT 부문 최대 규모의 단일 투자자다. 수십 개 연방 기관이 회사에 직접 투자한다”며 “우리가 잘 아는 기업 상당수가 정부가 후원한 고객 R&D 프로그램을 통해 사업을 시작했다. 구글, 애플, 아이폰에 들어가는 제품 상당수가 이에 해당되며 테슬라도 마찬가지다. 우주 기업들도 어떤 식으로든 정부 협력하에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무살람은 방산 분야에도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2015년 베리타스는 일부 공동 투자자와 함께 8억4500만 달러를 들여 두바이 에어로스페이스와의 21억 달러 규모 거래에서 위태로운 항공우주 수리 업체 스탠더드 에어로를 인수했다. 무살람은 베리타스의 새로운 첫 펀드를 위해 19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고 그 대부분을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있는 이 회사에 투자했다. 베리타스가 과거 스탠더드 에어로의 경쟁사인 버텍스 에어로스페이스에 투자한 적이 있기 때문에 무살람은 항공우주 업계를 잘 알고 있었다.

스탠더드 에어로는 유럽과 아시아로 빠르게 확장했다. 제트엔진 수리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는 기술을 개발하자 정부 계약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2019년 무살람은 스탠더드 에어로를 초기 투자 액수의 3배 이상인 53억 달러에 칼라일 그룹에 매각했다.

시장조사 업체 프레킨(Preqin)에 따르면 2019년 베리타스는 5개 바이아웃 펀드가 모두 업계 상위권에 드는 실적을 올리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와 동시에 호황이 찾아들면서 외부 투자자들이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성공한 회사의 지분을 소유하기 위해 줄을 섰고, 2020년에는 뉴욕 소재 다이얼 캐피털이 무살람의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접근했다. 2020년 10월 무살람은 베리타스 지분 11.8%를 다이얼에 현금 7억2500만 달러에 매각하는 데 동의했으며, 2억 달러의 프리미엄을 베리타스에 대한 대출 형태로 받았다. 그 수익 대부분을 챙긴 무살람과 베리타스의 파트너들은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다. 이 거래로 베리타스의 기업가치는 62억 달러가 됐으며 무살람이 최대 지분을 유지했다.

안타깝게도 다이얼 거래가 로버트 맥키언의 후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2021년 2월 맥키언의 유족들은 무살람을 계약 위반으로 고소하며 베리타스가 받은 2억 달러 대출은 자신들의 지분 매각 몫인 10%, 즉 2000만 달러를 주지 않기 위한 편법이라고 주장했다.

법정 기록에서 무살람은 자신이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무살람은 “대출은 매각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2021년 9월 뉴욕주 대법관 제니퍼 셱터는 무살람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며 사건을 기각했다. 무살람은 맥키언의 유족들을 상대하면서 책상에 10년 전 사망한 부친 사미의 커다란 사진을 놓아두고 일했다. 아메리칸 드림이 잘 유지되고 있음을 상기해주는 상징이자 커다란 행복에는 막대한 부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무살람은 “아버지는 요즘 뉴스에 나올 만한 행동을 했다. 배를 타고 뉴욕에 찾아온 것”이라며 “아버지가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의 바이아웃

사모펀드는 비밀스럽기로 악명 높은 사업이다. 그래서 어떤 회사가 잘하고 있는지를 외부인이 알기 어렵다. 최고의 데이터는 10년 동안 529개 기업을 조사한 HEC 파리 경영대학원의 올리버 고트샬그가 만든 것이다.

※ 순위 / 기업 / 자산 / 실적 / 점수
1. 프란시스코 파트너스 / 250억 달러 / 2.4
2. 겐스타 캐피털 파트너스 / 330억 달러 / 1.79
3. 비트루비안 파트너스 / 120억 달러 / 1.71
4. 베리타스 캐피털 / 360억 달러 / 1.65
5. 워터랜드 파리이빗 에퀴티 인베스트먼츠 / 110억 달러 / 1.57
6. 토마 브라보 / 830억 달러 / 1.48
7. Hg 캐피털 / 370억 달러 / 1.48
8. 리어나드 그린 앤드 파트너스 / 500억 달러 / 1.47
9. 클레이튼, 더빌리어 앤드 라이스 / 430억 달러 / 1.29

-NATHAN VARDI, HANK TUCKER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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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호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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