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People

Home>포브스>CEO&People

우정과 열정(14) 오익환 아인의료재단 이사장 & 팽한솔 하해호 대표 

여성전문병원의 진화 

김영문 기자
올해 인천에 아시아 최대 여성전문 종합병원이 문을 연다. 단순히 메디컬 ‘빌딩’이 아니라 주거·상업시설까지 갖춘 명실상부 메디컬 ‘타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엔 새로운 치유 공간을 꿈꿨던 의사와 고객의 경험을 토대로 행복을 디자인하는 젊은 창업가의 노력과 열정이 녹아 있다.

▎오익환 아인의료재단 이사장(왼쪽)과 팽한솔 하해호 대표.
“첫 삽을 뜨는 데만 10년이 걸렸습니다. 2008년 이 공간을 생각하며 시작한 일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부지 개발은 2018년에야 시작할 수 있었죠. 올해 문을 열기까지 장장 14년이나 걸렸습니다. 감회가 새롭네요. 병원을 찾는 여성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편안하게 머물 곳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어 버틸 수 있었습니다.” - 오익환 아인의료재단 이사장

“진심이 느껴졌어요. 제가 50여 곳에 달하는 공간, 특히 병원을 중심으로 서비스디자인을 해왔습니다. 오 이사장님은 그 누구보다 여성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계셨어요. 저도 지금까지 쌓아온 헬스케어 서비스의 경험디자인 노하우를 아낌없이 쏟아냈습니다. 첫 미팅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네요.” - 팽한솔 하해호 대표

두 사람이 손을 잡은 이유가 있다. 올해 인천에 문을 열 아시아 최대 여성전문 종합병원 ‘서울여성병원’ 때문이다. 오익환 아인의료재단 이사장은 이곳에 자신의 꿈을, 팽한솔 하해호 대표는 자신의 서비스경험 노하우를 담았다. 인천 미추홀구에 문을 여는 서울여성병원은 환자, 보호자, 주변 거주자들의 동선과 편의를 고려한 국내 유일의 ‘메디&라이프 복합몰’을 표방한다. 인천 미추홀구 재정비촉진지구 내 도시개발1구역에 속하는 이곳은 대지면적만 2만495㎡(약 6200평), 연면적은 무려 27만7685㎡(약 8만4000평) 규모이다. 국내에서 유일한 주거·상업·의료시설(아파트 지상 6~44층 4개 동 864세대, 상업시설 지하 2층~지상 2층, 병원 지상 3~13층이 복합된 의료복합개발단지다. 팽 대표는 “서울여성병원은 지금까지 내가 디자인한 응급실이나 암병원 등과 달리 기쁨과 설렘이 존재하는 곳으로 디자인하고 싶었다”며 “공간의 특성과 진료 서비스, 직원들의 응대 등 모든 정보를 담아 만든 ‘서비스여정지도’를 토대로 설계한 국내 유일의 병원이라 자부한다”고 말했다.

14년이나 걸린 프로젝트였다. 오 이사장은 이보다 훨씬 앞선 1990년대부터 이 꿈을 다져왔다. 그가 인천 부평에 홀로 오익환산부인과를 열었던 1993년부터 되짚어보자. 오 이사장은 비록 동네 의원으로 출발했지만, 실력만큼은 국내 최고라 자부했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병원을 꾸려가면서도 당시 이름조차 생소했던 ‘난임 시술’을 주요 진료항목으로 고집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하루에 진료한 환자가 120명 정도였는데, 진료 상담을 받을 분과 다음 대기자, 치료 대기자까지 한 공간에 몰려 있었다”며 “혼자 운영하는 게 다소 버거웠지만, 그 어느 때보다 환자를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199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환자들이 서슴없이 가족과 함께 병원에 오는 것을 보고 뭔가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때부터 ‘병원도 이제 뭔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자리한 듯싶다.

고민도 잠시, 늘어나는 환자를 수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부랴부랴 1997년 서울대병원 출신 후배 세 명을 설득해 인천 주안에 산부인과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다시 열었다. 인천에 터를 잡았지만 있지만, 병원 이름에 ‘서울’이 붙은 이유다. 그 후로도 학교 후배를 하나둘 끌어오다 보니 환자는 더 늘고 병원 규모는 점점 더 커졌다. 오 이사장은 “개원 직후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환자들이 종합병원보다 집 근처 전문병원을 찾기 시작했다”며 “나를 믿어준 후배들이 내 곁에 서줬고, 서울여성병원은 인천 지역에서 대표 병원으로 자리매김해갔다”고 말했다. 실제 부평에서 오 이사장 혼자 시작한 산부인과는 어느새 40여 명으로 구성된 전문 의료진이 포진한, 인천·경기 내 최대 여성전문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난임 시술 분야만큼은 국내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서울대병원 전공의(레지던트) 때 난임 시술을 익혔고, 대학을 나와서도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난임 파트였다”며 “우리 병원의 난임 치료 성공률은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돈다. 난임 치료에 필요한 최신 기술과 장비가 있다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도입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이 몰리니 필요한 게 더 잘 보였다. 오 이사장은 여성전문병원에 걸맞게 서비스도 바꾸고 싶었다. 진료 접수부터 상담, 병원 문을 나서기까지 환자의 동선을 쫓으며 공간을 맞춰갔다. 화장실 인테리어부터 시작해 민낯으로 다니는 여성 환자의 동선에 맞춰 의자 위치도 바꿨다. 환자들이 좀 더 따뜻하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에 병원 대부분 공간 바닥에 난방을 깔았다. 당연히 환자들 반응이 좋았으리라. 오 이사장은 “환자 사생활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병실로 2인실로 바꿨다”며 “환자가 필요로 하면 매년 4억~5억원 적자가 날 수 있는 신생아중환자 집중치료실도 늘려갔다”고 말했다.

신개념 ‘의료·문화 멀티플렉스’로 새로 문을 열 서울여성병원


서비스 수준만큼이나 의료 수준도 국내 상급종합병원 못지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난임시술의료기관 평가에서 1등급을 획득(인공수정, 체외수정)했고, 분만 건수도 전국 3~4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시험관아기 임신 성공률은 전국 평균 37%를 상회한 48%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도 이런 그의 노력을 인정했다. 서울여성병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3회 연속(2013년부터 현재)으로 인증 의료기관을 획득했고, 4회 연속(2011년부터 현재) 보건복지부 지정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인정받았다. 지난해에는 서울여성병원이 ‘2021 대한민국보건의료대상’에서 대상인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오 이사장은 이런 노력과 더불어 새로운 공간도 준비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그의 머릿속에 자리했던 ‘변화’를 끄집어낼 차례였다. 몇 번 병원을 개원한 경험이 있는 그는 자신감이 넘쳤고, 2008년 의료·육아·쇼핑·문화생활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신개념 ‘의료·문화 멀티플렉스’를 생각하며 병원 개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규모가 크다 보니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오 이사장은 “새 부지는 도시재개발이 일부 선행돼야 자리 잡을 수 있는 곳이었다”며 “공동으로 부지 개발에 나서기로 했던 기관들이 각기 다른 사정으로 무르기를 수차례, 우여곡절을 거친 후인 2018년에 첫 삽을 뜰 수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건물은 올라가고 있었는데 오 이사장은 뭔지 모를 헛헛한 기분이 들었다. 더 좋은 공간·시설과 최고 의료진, 최첨단 의료시설에 서비스 설계도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 이사장은 막연하게 ‘최고’의 의료서비스가 아니라 병원 생태계를 중심으로 서비스와 공간을 한데 엮어보고 싶었다. 앞서 팽 대표가 말한 정밀한 ‘서비스여정지도’기 필요했던 것이다. 수소문한 끝에 팽 대표를 소개받았다. 1990년대부터 그려온 병원 서비스 혁신의 밑그림을 ‘서울여성병원’에 녹여낼 기회였다. 오 이사장은 “팽 대표와 처음 만나 얘기하던 날, 그간 의사로서 갖고 있던 여성 생애주기에 대한 생각부터 진료 현장에서 겪은 환자 니즈 등을 다 털어놨다”며 “서비스 디자이너인 팽 대표라면 내가 30년 가까이 머릿속으로 생각해온 병원 서비스경험을 새로운 공간에 투영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팽 대표도 “처음에는 우리가 너무 다른 환경과 세대를 경험했기에 프로젝트 진행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며 “오 이사장과 처음 미팅한 날, 몇 시간 만에 ‘우리가 같은 지점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하는 파트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거들었다.

팽 대표는 국내 헬스케어 현장을 누빈 베테랑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국내 헬스케어 영역에서 응급실, 암병원, 건강검진센터 등 의료서비스에 이용자의 경험을 투영하는 일을 맡아왔다. 서울시 서울의료원에서 시민공감서비스디자인센터 팀장을 역임했고, 국내 13개 시립병원의 서비스 혁신 프로젝트와 공공영역에서 정책서비스를 디자인한 바 있다. 이러한 경험들을 기반으로 팽 대표는 헬스케어 서비스경험디자인 전문회사인 하해호를 창업하고,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HAHEHO라는 회사 이름은 ‘Happy Birth, Healthy Life, Honorable Death’의 앞 두 글자씩 따서 만들었다”며 “우리 삶 여정 속에 ‘ha-he-ho’ 웃음을 지을 순간으로 가득 채울 일을 만들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코로나 완치 퇴원환자를 위한 회복키트 서비스디자인’,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 모의훈련 및 서비스 컨설팅’, ‘서울시 건강돌봄 키트 서비스디자인’ 등이 하해호가 맡았던 프로젝트들이다.

108종류의 환자 유형을 분석해 만든 ‘서비스경험지도’


▎올해 인천 미추홀구에 서울여성병원이 아인여성병원으로 새롭게 바뀌며 생애주기별 진료뿐만 아니라 한 공간에서 쇼핑, 육아, 문화 등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메디& 라이프 의료복합단지가 문을 연다. 사진은 조감도. / 사진:서울여성병원
프로젝트를 맡은 팽 대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병원의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팽 대표는 “당연히 병원을 오가는 환자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하지만 고객만 위한다면 서비스경험디자인은 현실화될 수 없기에 의사, 간호사, 접수직원 등 실무진과도 만나 모든 서비스 프로세스에 대한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서울여성병원 실무진과 초산, 경산, 쌍둥이, 난임 등 108종류의 고객 유형을 분류해 실제 병원에서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분석했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오 이사장과 심층 면담을 이어갔고 이걸 다시 병원의 공간과 서비스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물론 내부 진통도 있었다. 오 이사장은 “내부에서 꼭 의견을 들어서 서비스 환경을 바꿔야 하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며 “하지만 업계가 혁신하는 방법은 ‘내부’보다 ‘외부’에서 더 잘 보인다는 믿음이 있어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나둘 서비스들이 달라지면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고객서비스경험이 새 병원에 어떻게 투영됐을까.

팽 대표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먼저 처음 산부인과에 방문한 환자의 첫 번째 경험부터 변화가 필요했다”며 “산부인과에 들어오자마자 접수창구에서 민감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환자들은 병원에 들어서면 “마지막 생리일이 언제인가요?”, “성관계 경험이 있나요?”, “임신 가능성이 있나요?”, “유산 경험이 있나요?” 등 일상에서 듣기 힘든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 하지만 새로 문을 열 서울여성병원에서는 키오스크에서 접수하면 바로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간호사와 일대일 상담을 할 수 있다. 팽 대표는 “각종 검사와 진료, 시술 등 다소 불편할 수 있는 경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 시작부터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팽 대표는 “임산부의 경우 함께 오는 아빠가 있을 만한 공간이 제대로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며 그동안 “산부인과를 찾은 아빠들은 ‘이방인’ 취급을 받았는데 새 병원에는 ‘남성고객 전용 동선과 공간’을 만들어 남성 보호자도 임신, 출산, 육아 모든 여정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수없이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아 분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팽 대표는 “무려 108종류의 고객 유형을 나눠 조사한 만큼 더 많은 사례가 있었다”며 “개인적으로도 오랜 시간 다양한 ‘엄마’를 만나고, 그들을 진료하고 상담했던 의사 입장을 들어보면서 내가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서비스 현장의 이면을 이해하는 기회였다”고 정리했다. 지금까지 밝혀낸 수많은 서비스경험 사례는 모두 새 병원의 공간설계에 적용됐다.

오 이사장도 여성의 생애주기별 특성을 ‘메디&라이프 의료복합단지’ 전반에 반영하기로 결심했다. 서울여성병원의 의료시설에는 여성센터, 소아청소년과, 여성외과센터, 내과센터, 기능의학센터, 건강검진센터, 하이푸센터, 로봇수술센터, 산후조리센터, 마더비문화센터 등을 총망라했다. 7만2727㎡(2만2000평) 규모로 조성된 상업시설은 출산육아용품 전문점과 영화관, 카페 등 여성들이 의료와 문화생활을 동시에 충족할 공간으로 꾸미는 중이다. 오 이사장은 “인천에 살면서 임신, 출산, 육아 등의 용품을 구입하려고 서울에 가거나 해외 직구에 나서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이 부분을 도와주고 싶었다”며 “유모차뿐만 아니라 각종 외산 유아용품을 면면히 들여다보면 해외 현지보다 곱절이나 비싼 경우도 흔하다. 웬만한 백화점 한 층보다 넓은 지하 1층에 출산용품은 물론 유아용품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괄 서비스 전문몰을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중에도 두 사람은 새로운 서비스경험 얘기가 나오면 업무(?) 얘기로 빠져버렸다. ‘환자에게 좀 더 나은 서비스경험을 주고 싶다’는 열정이 넘쳤다. 긴 대화를 마치며 오익환 아인의료재단 이사장은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순수하게 좋은 병원을 짓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건축법상 인허가, 토지매입에 따른 협상, 건축주로서 버틸 자금 능력까지 어디 하나 쉬운 게 없었어요. 메디컬빌딩을 짓는 문제도 간단치 않았습니다. 병상 규모부터 병원으로서 깔끔한 인상을 주는 외관 자재를 일일이 골라야 했죠. 내부는 팽 대표 덕분에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 동선을 효율적으로 분리해 다시 짤 수 있었네요. 그래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성전문 종합병원으로서 여성의 생애주기를 파악하고 그들의 ‘삶’을 반영한 치유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은 늘 간직했지요. 서울여성병원에서 우리의 의술은 여성과 그들의 가족, 그 여성의 꿈과 커리어까지 함께 고민하는 큰 힘이 될 겁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205호 (2022.04.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