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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형규 마켓컬리 CTO 

컬리의 꿈을 실현하는 개발자 

김영문 기자
마켓컬리가 지난해부터 대대적으로 기술부서를 보강하고 있다. 커머스 시장이 이커머스 시장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이커머스 업체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다. 마켓컬리는 기술 고도화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장보기 앱 마켓컬리(이하 컬리)가 지난해부터 기술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우선 류형규 전 카카오 기술이사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원래 컬리에는 기술 개발을 총괄하는 C레벨 직급이 없었지만 류 이사를 영입하면서 CTO 직책을 만들었다. 개발자 인력도 확충하고 있다. 지난해 개발자 100여 명을 새로 영입한데 이어 올해에는 더 좋은 인력을 두 배 이상 보강할 생각이다. 특히 올해는 개발자의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아는 류 CTO가 직접 개발자 영입에 나섰다. 옛 동료인 시니어급 개발자를 찾아다니며 컬리의 비전과 방향성을 설명했다.

“설득하러 가면 컬리가 기술 회사냐고 묻더군요. 기술이 향후 컬리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예스(Yes)’라고 했습니다. 개발자 영입에서도 처우는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개발자들은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따져보는 성향이 있습니다. 개발자가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도 중요하죠. 난이도를 따지는 게 아닙니다. “기술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지난 6월 15일 서울시 강남 컬리 본사에서 만난 류 CTO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컬리에서는 상품 검색과 결제, 배송까지 모든 과정이 기술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어 개발자 입장에서 예측 발주, 생산·배송 최적화 등은 물론 다양한 디스커버리를 실험해볼 기회”라며 “더 나아가 뛰어난 생산자에게는 자존심을 지켜주고, 남다른 물건을 찾는 소비자에게는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고도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류 CTO는 큰 기업에서 다양한 개발 경험을 쌓은 베테랑 개발자다. SK텔레콤에서 윤송이 당시 SK텔레콤 상무(현 엔씨소프트 사장)와 함께 인공지능(AI) 서비스 1㎜를 개발했고, 엔씨소프트에서는 음악 서비스 ‘24hz’ 사업과 개발을 총괄했다. 이후 SK플래닛으로 자리를 옮긴 후 신사업, O2O 플랫폼 등을 개발하다 신세계 이마트에서 기술전략과 미래 서비스 기획을 맡은 바 있다. 2017년부터는 카카오에서 기술 전략을 주도하며 데이터분석, AI 기술성장 로드맵 등 기술 전략을 세웠고, 카카오 클라우드 전환을 주도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마켓컬리에 합류했다.

‘데이터’, ‘AI’, 클라우드’. 류 CTO가 걸어온 길은 크게 이 세 가지 단어로 함축된다. 공교롭게도 한국 이커머스 생태계가 당면한 성장 둔화를 돌파하는 가장 강력한 경쟁 요소이기도 하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유통업체 매출은 오프라인이 7.5%, 온라인은 15.7% 증가해 온라인이 2배 이상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류 CTO는 “특히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트렌드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맞물리면서 오프라인 쇼핑은 크게 줄었고, 온라인과 모바일에 친숙한 MZ세대는 디지털을 통해서 소비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며 “이커머스 시장이 예정보다 훨씬 커졌지만,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잠재고객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서 이커머스 업체들은 기술 고도화를 기반으로 서비스 차별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가 여러 이커머스 중 컬리를 택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컬리에 합류했나.

새롭게 도전할 만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사실 이커머스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우연히 김슬아 대표를 만나게 됐고, 1시간 50분 동안이나 뭔가에 홀린 듯 얘기를 들었다. 나도 말이 좀 많은 편이라 대화를 주도하는 편인데, 7년차 창업가가 내세우는 초심이 매우 흥미로웠다. 나에게 처우나 복잡한 기술 얘기보다는 ‘더 좋은 식품이나 물건을 발굴해 신선하게 배달해주고 싶다’는 말을 더 강조했다. 이를 위해 풀어야 할 기술적 과제가 많다(?)는 점도 왠지 매력적으로 들렸다.

다른 이커머스가 겪는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대다수 대형 이커머스 업체는 ‘세상 모든 것을 판다’고 할 정도로 취급 물품이 많다. 대략 수억 개는 족히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컬리는 식품류를 중심으로 엄선한 3만개의 상품에 집중하고 있다. 모든 상품의 품질이 보장되어 있고, 개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면 추천의 방향과 품질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개수가 많으면 고객의 의도 파악이 어려운 면이 있고 아무래도 가격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다. 하지만, 컬리는 상품의 개수도 적고 고객의 성향이 비목적성 구매를 많이 하기에, 추천 수용성이 높고, 이에 따라 추천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이커머스 업계가 ‘빠른 배송’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새벽배송’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니다. 컬리는 처음부터 빠른 배송을 내세운 적이 없다. 신선한 상태로 배송하기 위해 새벽 배송을 선택했다. 새벽 배송은 그 옛날 집집마다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던 때부터 해온 방식이다. 컬리도 마찬가지다. 실제 소비자도 밀키트나 신선식품을 새벽 3시에 가져다주는 것보다 6~7시쯤 배달해주는 것을 선호한다. 더 빨라도 늦어도 안 된다.

최근 컬리 배달이 늦어지고 있는데….

최적의 동선을 짜는 것도 기술적 과제다. 컬리는 구역별로 최적의 동선을 짜 배달 기사에게 전송한다. 하지만 일부 배달 기사가 자신이 더 잘 아는 길(?)로 가다 보면 동선이 꼬이기 쉽다. 아직 데이터보다 자신의 경험을 더 믿는 이가 많다. 네비게이션이 처음 등장했을 때 택시기사들이 자신의 경험적 지식을 더 믿었지만, 이제는 모두 내비게이션 안내대로 간다. 컬리의 기술도 더 진화해야겠지만, 배송 기사가 받아들일 수 있게 시간이 더 필요하다.

동선을 짜는 일에도 ‘최적화’가 등장한다.

회사 차원에서 보면 비용과 기술이 얽힌 복잡한 문제다. 무조건 빠른 배송만 추구하면 인건비, 유류비 등이 급격하게 늘어나 회사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새벽 7시’처럼 특정한 시간을 정하고 컬리 전반의 기술적 최적화를 따져본다면 해볼 만한 과제다. 컬리는 늘 밤 10시쯤 주문이 폭주하고 그때부터 새벽 7시까지 배송 전쟁이 벌어진다. 고객에게 약속한 신선한 배송을 책임지기 위해, 최적의 동선을 만들어내는 일은 힘들지만 도전해볼 가치있는 과제이다.

식품을 주요 대상으로 하니 다른 곳보다 개인화 추천이 좀 더 수월하지 않겠나.

수월하다기보다는 좀 다르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이커머스에서는 고객들이 목적성 구매를 하는 성향이 있어, 해당 목적에 준하는 다른 상품을 추천해줄 수 있다. 하지만 컬리는 상품 수도 적고, 비목적성 구매를 하는 고객들이 많아, 목적과 상품을 섞어서 추천해야 하는 다소 복잡함이 있다. 예를 들어 예전 동네 음반점을 상상해보자. 처음에는 진열된 음반의 수와 종류, 그리고 상점에 흐르는 음악이 내 취향이라고 신뢰하게 되는 순간, 상점 주인이 권하는 음반에 관심이 가게 될 거다. 컬리와 비교하기에는 조금 뜬금없는 사례 같지만, 추천이라는 것은 신뢰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에 컬리의 상품의 품질이 좋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그간 소비하지 않았던 다른 상품을 추천 받기를 희망하게 된다. 평소 삼겹살을 좋아하는 고객에게 무항생제 삼겹살을 추천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아가 숙성 한돈 목살 스테이크를 추천하거나, 양갈비를 추천할 수도 있는 거다. ‘가격이 조금 비싸도 훨씬 맛있어, 먹어봐’라고. 한번 경험한 소비자는 그때부터 이 상품의 단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초개인화 마케팅이 나온다. 하지만 추천을 하다 보면 소비자가 되레 새로운 시도를 못 하고 기존 성향에 갇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맞다. 지금의 AI 알고리즘 추천은 고객의 과거 행적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컬리는 이와 접근 방식을 좀 달리하고자 한다. 평소 만화책을 좋아하는 고객이 갑자기 수학책을 찾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 고객의 구매 의도는 달라진 거고,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개인화 추천보다는 당장 의도에 맞춘 추천을 해야 한다. 초개인화 기술은 이 두 가지 의도를 소비자의 특성과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적절하게 제시해야 한다. 성향 파악에 따른 추천이 능사는 아니다. 날씨, 트렌드와 같은 외부 상황은 물론 어떤 스타일의 상품을 선호하는지까지 아주 세밀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AI 알고리즘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연관 상품을 추천해주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 연관 상품을 어떻게 추천할 것인가도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자칫 잘못하면 게임기를 사지도 않은 고객에게 게임 소프트웨어부터 추천하는 일이 벌어진다. 식품 카테고리에서 생각하면 더 웃긴 일이다. 소고기나 삼겹살을 사지 않은 고객에게 상추나 후추, 쌈장을 추천하는 꼴이다. 결국 데이터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생활 패턴을 이해하는 것이고, 더 깊이 들어가면 심리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실제 컬리는 인간의 소비심리를 기반으로 추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컬리는 ‘빅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는가.

CTO로서 빅데이터를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빅데이터를 분석한다는 게 얼마나 거대한 주제인지 알기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이다. 컬리가 데이터를 어떻게 쌓아가고 있는지로 답을 대신하겠다. 컬리는 구매, 구매 전 행동, 구매를 촉발한 원인 등 총 세가지 측면에서 데이터를 살펴본다. 데이터는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라 원하는 데이터를 잘 분류해 촘촘히 쌓는 게 중요하다. 자칫하면 막대한 서버 비용만 지불하고 활용도 못할 데이터만 잔뜩 끌어안고 있게 된다. 그리고 컬리는 많은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실시간 데이터 처리로 운영을 지원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지 않나.

맞는 말이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분이나 배송하는 인력 모두 사람이지 않나.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 CTO로서 강조하는 부분도 기술이 모든 걸 통제하고, 완벽한 결과를 내자는 것이 아니라 컬리 구성원 모두가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개발자를 모으는 일도 어렵지만, 같이 일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렇다. 개발 조직도 인사가 만사다. 사람 관리가 제일 어렵다는 뜻이다. 내가 CTO로 일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게 주위 시니어급 개발 실력자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기술 조직에서 최고의 복지는 믿을 수 있는 동료와 함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간 이 바닥에서 일하면서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실력자가 컬리에 몰린다고 소문나니 스승을 따르려는 주니어 개발자들이 몰려든다.

“기술 조직 내 최고 복지는 믿음직한 동료”


클라우드는 어떻게 활용하나. 컬리는 클라우드로 시작한 회사 아닌가.

처음에는 클라우드가 아니었고, 몇 년간 노력에 의해 최근에는 물류센터의 일부 소프트웨어를 제외하고 모두 클라우드로 전환되었다. 특정 시간마다 몰리는 트래픽과 동시다발적으로 포장 배달이 이뤄져야 하는 과정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운영할 경우 유연성과 확장성을 보장할 수 없어, 현실적으로 운영이 불가능한 얘기다. 클라우드는 이제 대세다. 하지만 이 자원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면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효율적으로 쓰는 것도 능력이다.

CTO로서 가장 부담되는 게 있다면.

비용 효율화 아니겠나. 일단 기술로 소싱부터 유통 전반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어디서 누수가 생기는지, 물류에서는 어떤 비효율이 발생하는지를 데이터화해 경영진에게 가이드를 제공해줘야 한다. 나가는 비용을 철저히 잡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부 최적화는 여기서 ‘의미 있는 수치’를 잡아내는 일이다.

기술 부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기술 조직 내 부서끼리 좀 더 끈끈하게 소통하면 좋겠다. 내부 조직 간에 소통이 자연스레 이뤄지는 조직이 목표다. 모두가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그 과정을 함께 해결해가는 조직이 되는 것이다.

미래 이커머스는 어떻게 달라질까.

큰 맥락에서 보면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한 커머스와 이커머스의 기본 사업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과거 대형마트는 ‘전통시장에 있는 상품보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그래도 용인할 만한 가격에 질이 좋다’는 점을 내세워 시장을 키워왔다. 그렇게 20여 년을 키워오다 그 브랜드 정체성에 갇혀 ‘대규모, 저가’에 머무르고 있다. 컬리는 기술적으로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를 한데 모아 가격보다는 ‘질’ 경쟁에서 새로운 소비를 끌어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즉, 생산자는 더 좋은 품질의 식자재를 생산하고, 유통자는 정확한 시간에 배달하고, 소비자는 추천받은 상품에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하기를 바란다. 고차원의 기술을 뽐내는 곳보다 유통의 본질을 더 잘 지켜낼 수 있는 곳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컬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얘기가 돈다. 알고 있다. 나 역시 가능성보다는 ‘숫자’로 얘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그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 앞서 비용과 매출을 잡겠다고 한 얘기도 결국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기술적인 부분은 미래지향적인 그림을 그리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숫자를 맞춰가는 과정인 셈이다. 앞으로 이커머스 생태계가 퀄리티 경쟁으로 흘러가면 컬리가 중심에 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많지만, 개발자들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새로운 노하우를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개발자가 컬리의 여정에 함께하면 좋겠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

202207호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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