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31) 

자존심, 자신감, 자존감? 삶을 지지해주는 3개의 ‘자’ 

심리치료 전문가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자존심과 자신감, 자존감의 차이였다. 발음도 유사한 세 가지. 자존심, 자신감, 자존감을 어떻게 구분할까.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4
심리학에서는 유사해 보이는 다양한 용어가 뒤섞여 사용된다. 회복탄력성, 자아존중감, 자존심, 자기효능감, 자신감 등이 그렇다. 이 용어들은 유사한 분야에서 사용되지만 분명히 다른 용어이다. 최근에는 심리학 용어들이 과거보다 다 폭넓게 여러 대화에서 사용되는 만큼, 이 용어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 또한 말하는 이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특히 심리치료 전문가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자존심과 자신감, 자존감의 차이였다. 이 세 단어는 심지어 외형조차 비슷하여 사용처가 명확히 설정되지 않으면 적재적소에 사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단어들을 뒤섞어 사용했는데, 상대방은 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면 조금은 머쓱한 상황을 만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여기에서는 발음도 비슷한 세 가지. 자존심, 자신감, 자존감을 구분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자존심


▎1997년 발행된 프랑스 100센트 지폐 앞면
흔히들 자존심이 자존감보다 센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존심은 ‘타인’과 관련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라 명시되어 있듯이 ‘남에게 굽히지 않는다’는 조건이 자존심의 핵심 맥락이다.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은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와 소중한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작가이다. 그의 아버지는 금융회사 창립자이자 대표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로스쿨에 가서 은행의 법무를 도와주길 원했고, 최종적으로는 은행을 이어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세잔은 부유한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화가의 길을 택했고, 경제적 도움도 친구 에밀 졸라에게 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지지해 주었던 오랜 친구 에밀 졸라와도 결별하고 말았다.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에 묘사된 주인공이 예술적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결국 자살하게 되는데, 이것이 자신을 표현한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졸라는 세잔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설득했으나 세잔은 졸라와 연을 끊어버렸다.

세잔은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시리즈를 즐겨 그렸다. 카드놀이는 당시 농사일을 하는 남자들의 소일거리였고, 여유 있는 사람들의 놀이는 아니었다. 세잔은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가난한 농부들의 편에 둔 것으로 추측된다.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1997년 프랑스에서 발행한 100센트 지폐에도 세잔의 얼굴과 함께 새겨져 있다.

세잔은 사랑하는 여성 오르탕스와 아들까지 낳고 가정을 꾸렸으나, 아버지가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와 아들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소개해주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으나 세잔은 그 돈을 쓰지도 않고 가난한 생활을 유지했다. 세잔이 자존심을 조금만 굽히고, 부모에게 자신의 꿈을 좀 더 설명했더라면, 믿어주는 친구 에밀 졸라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아들을 부모님께 인사를 시켰더라면, 남겨주신 유산을 그냥 사용했더라면… 세잔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결국 세잔은 자신의 작품이 세간에서 인정받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906년 쓸쓸히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감


▎앤디 워홀 [3명의 엘비스] 1963
자신감은 스스로를 믿는 감정으로, ‘용기’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자신감이 높다면 대범한 행동을 남들보다 쉽게 할 수 있고, 좋지 않은 결과를 만나더라도 오랜 시간 부정적인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감이 낮다면 발표나 자기표현을 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자신감은 특정 상황에서 주요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페인에서 체류한 적 있는 사람은 스페인 회사와 거래할 때 다른 직원보다 언어적 자신감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특히 잘한다고 느껴지는 것에 대해 더 잘할 수 있음을 느끼는 것, 더 나아가 전체적으로 난 잘할 것이라 느끼는 큰 개념까지도 자신감에 포함된다. 이는 자기 효율성과도 밀접한 개념이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은 20세기를 대표하는 팝아티스트로, 현재는 팝아트의 황제라고 불리지만, 그가 팝아트를 시작할 때 미술계의 시선은 차가웠다. 워홀은 실크스크린으로 대중적 이미지를 복제하여 전시하는 방식의 미술작업을 시도했다. 모두가 다 아는 사진들, 편집된 이미지들이 공장에서 생산되듯 실크스크린에 인쇄되는 것이다. 화가의 붓 터치 한 땀 한 땀과 고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작품에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워홀이 가장 잘 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라’는 말은 누구나 듣고 자라지만, 이것을 이처럼 창의적으로 표현한 사람은 많지 않다.

워홀은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광고예술을 전공했으며, 1952년 신문광고 미술부문의 아트 디렉터스 클럽상을 수상했다. 그 후로도 상업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전업 예술가로 전향했다. 그런 그가 자신 있던 것은 대중에게 ‘시각적인 것을 광고적으로 노출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조차 ‘factory’라고 이름 짓는 등 자신의 재능과 경력을 예술에 적용하는 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정통 예술가가 아니었기에 쏟아지던 비난 중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비난만 받아들이고 창작에 응용했던 그의 자신감은 그가 남긴 명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이 당신에 대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라. 다만 그것을 자세히 평가하라.”

자존감


▎툴루즈 로트레크 [메이 밀튼] 1895
자존감은 자기 스스로 평가하는 주관적인 가치감을 의미한다.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감정이다. 일반적으로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말로 사용된다.

자존감의 정의를 살펴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간단하다. 내 자존감의 주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이며, 가치감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자존감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상주의 화가가 있다. 바로 프랑스의 귀족 출신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다. 로트레크의 부모는 귀족의 피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결혼한 사촌지간이었다. 근친 결혼으로 인해 유전적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그가 14살 때 의자에서 떨어지면서 다리의 성장이 완전히 멈춰버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어머니는 로트레크가 원하는 미술교육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고, 파리로 유학을 간 로트레크는 물랭루주를 중심으로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로트레크는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지만, 그것은 로트레크가 자존감을 구성하는 주관적 가치에서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는 종이 인쇄물이라 여기는 포스터를 작품으로 승화했다. 그저 벽에 붙이는 포스터였지만 로트레크가 예술로 승화하자, 포스터 3000장은 벽에 붙이자마자 동이 났다. 사회적 편견으로 차별받는 소수자들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에 대한 강한 일침이었다. 이러한 로트레크의 예술 정신과 포스터의 퀄리티에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도 감동했다. 피카소는 그의 작품 [푸른방] 속에 로트레크의 포스터를 그려 넣어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


▎파블로 피카소 [푸른 방] 1901
자존심, 자신감, 자존감, 이 모든 것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며, 얼마나 ‘적절히’ 활용하는 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자기효능감이다. 자기효능감은 캐나다의 심리학자 밴듀라(Albert Bandura)가 사용한 용어로,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이다. 자기효능감은 해야 할 일을 아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이것을 효율적으로 적절히 잘할 것인가에 대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회복탄력성이다. 때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실패를 겪었을 때 이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마음의 힘은 각자 다를 것이다.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공을 떠올려보면, 야구공, 농구공, 축구공, 탱탱볼, 심지어 비비탄알까지 매우 다양할 것이다. 같은 원형의 공들이지만 바닥에 떨어진 후 튕겨져 올라오는 탄력성은 모두 다르다. 각각의 공들이 바닥에 부딪힌 후 다시 위로 튀어 올라오는 것이 회복탄력성이라면, 공처럼 사람도 각각 지니고 있는 회복탄력성의 정도가 다르다.

회복탄력성은 상대적이고, 또 안정적이지도 않다. 불행한 사건, 혹은 기대하지 않은 불쾌한 사건을 겪은 후 사람의 반응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선택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받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고통을 극복하며 더 성장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회복탄력성을 보일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가족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모습만 보일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위에 언급한 단어와 정의를 암기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떠한지, 자존감을 잘 지키고 있는지, 불필요한 자존심을 내세우지는 않는지, 자신감 있는 일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잘 회복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면, 나는 스스로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209호 (2022.08.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