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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도나우강의 ‘UFO 다리’, 개통 50주년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 시가지를 스쳐 흐르는 도나우강에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에스엔페(SNP) 다리가 놓여 있다. 이 다리는 수수한 브라티슬라바의 도시 풍경을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로 바꾸어놓았다. 이 다리가 지닌 또 다른 매력은 주탑 위 85m 높이에 설치된 비행접시 형태의 레스토랑이다. 그런데 이 다리는 공산주의 시대에 건설됐다.

▎브라티슬라바 성에서 본 도나우강과 에스엔페 다리, 일명 ‘UFO 다리’
슬로바키아(Slovakia)는 일반인들에게 그리 잘 알려진 나라가 아니다. 심지어 유럽 사람들 중에도 슬로베니아와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립한 슬로바키아는 규모로 보면 우리나라 면적의 반 정도밖에 안 되고 전체 인구는 45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이다.

우리는 무심코 ‘슬로바키아는 동유럽 국가’라고 말한다. 동서 냉전시대에 공산진영에 속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 지리적으로 보면 유럽의 심장부에 자리하며 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북서쪽으로는 체코, 북쪽으로는 폴란드, 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남쪽으로는 헝가리와 접하고 있으니까 자그마치 다섯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이다.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인구 45만 명 정도가 사는 고도(古都)로, 빈, 프라하, 바르샤바, 부다페스트 등 이웃 나라의 수도에 비하면 그리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소박하고 순수하고 은근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 빈이나 부다페스트를 여행할 때 한 번쯤은 찾아가볼 만한 도시이다.


브라티슬라바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약 60㎞ 동쪽에 자리한다. 지구상에서 두 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가까운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 두 자매 도시는 열차, 버스, 자동차 등을 이용하면 대략 1시간 만에 갈 수 있다. 또 두 도시 사이에 있는 도나우강을 따라 페리도 운행된다. 이 경우에는 약 1시간 15분 정도 걸린다. 역사적으로 볼 때, 브라티슬라바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의 주변 도시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독일어가 아니라 슬라브어 계통의 언어인 슬로바키아어를 쓰고 있으니 엄연히 다른 민족이 사는 나라의 수도임을 알 수 있다.

파격적인 디자인의 에스엔페(SNP) 다리


▎주탑 위에 설치된 UFO 레스토랑
도나우강이 흐르는 곳에 자리한 브라티슬라바의 구시가지는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반경 약 300m 안에 있어 전 지역을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작다. 구시가지 서쪽에는 해발 100m 정도의 바위 언덕 위에 고풍스러운 브라티슬라바 성이 있는데, 유유히 흘러가는 도나우강을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이 성에서는 브라티슬라바 시가지와 도나우강, 강 건너편 페트르잘카 지역의 풍경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강에 놓인 다리가 매우 인상적이다. 파격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 다리의 정식 명칭은 현지어로 모스트 에스엔페(Most SNP)라고 한다. 슬로바키아어 Most는 ‘다리’라는 뜻이다.

강을 끼고 발전한 도시들을 보면 강변 풍경의 인상은 강 주변에 세워지는 건축물과 강에 세워지는 다리의 형태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에스엔페 다리는 수수한 브라티슬라바 시가지를 완전히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로 바꾸어놓았다.


▎전망 테라스에서 본 강북 지역. 다리 입구 가까이에 성 마르틴 대성당과 왼쪽에 브라티슬라바 성이 보인다.
이 다리는 보통 다리들과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마치 발을 물에 담그기 싫다는 듯, 다리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도나우강에 박은 교각이라곤 하나도 없어서 어떻게 보면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다리는 총길이 430.8m, 폭 21m이며 다리의 두 지점을 떠받치는 교각과 교각 간 거리는 303m이다. 그리고 상판은 복층 구조로, 위층은 자동차 전용이고 아래층은 보행자 및 자전거 전용이다.

이 다리는 과감한 구조와 날렵한 디자인이 놀라울 정도로 일체화되어 있다. 이 다리의 구조를 보면 비대칭형이다. 즉, 강 건너편 남쪽 육지 위에 두 개의 높은 철강 기둥으로 이루어진 사다리꼴의 주탑 하나만 비스듬히 세워져 있고, 주탑 상부에서 늘어뜨린 철강 케이블 몇 가닥에 차량과 사람들이 지나는 상판이 매달려 있는 형태다. 이런 다리를 영어로 케이블 스테이드 브리지(cable-stayed bridge)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차용하여 사장교(斜張橋)라고 한다.

이 다리가 지닌 또 다른 매력이라면 주탑 위 85m 높이에 설치된 비행접시 모양의 레스토랑이다. 이것은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UFO가 이륙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 레스토랑의 이름도 UFO이고, 이 다리를 보통 ‘UFO 다리’라고도 한다.


▎공중에 떠 있는 듯 과감하고 날렵한 구조와 디자인이 돋보이는 에스엔페 다리.
이 레스토랑과 그 위의 전망대에서는 브라티슬라바 시가지 전경과 도나우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곳에 올라가려면 주탑의 동쪽 기둥 안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한편 서쪽 기둥에는 430개 계단으로 이루어진 비상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다리는 사람들을 통행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머물게도 한다.

그런데 이런 다리가 세워진 것은 최근이 아니라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통합되어 있던 체코슬로바키아 시대였다. 당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천편일률적이고 구태의연한 형태의 디자인이 주축을 이루었지만 이곳에서는 놀랍게도 이처럼 혁신적인 디자인의 다리가 세워졌던 것이다.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 간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듯 소련의 위성국이던 이 나라에서 UFO 형상을 띤 하이테크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 다리는 공산주의 시대에 체코슬로바키아의 건축가 라쯔코(J. Lacko)와 구조 엔지니어 테사르(A. Tesár)가 설계했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건설기술진에 의해 1967년에 착공, 5년 만인 1972년 8월 26일에 공식적으로 개통되었다. 그러니까 올해 이 다리는 개통 50주년을 맞이한다.


▎도나우강 선착장 부근에서 본 ‘UFO 다리’.
이 다리가 완공되었을 때 공식 명칭은 모스트 에스엔페(Most SNP)로 정했다. SNP는 슬로벤스케호 나로드네호 폽스타니아(Slovenského národného povstania)의 약자로 ‘슬로바키아 민중 항쟁’을 뜻한다. 즉,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슬로바키아를 점거한 나치 독일에 항거해 일어난 대대적인 민중봉기를 기념해 만든 다리이다. 하지만 간단히 ‘새로운 다리’라는 뜻으로 ‘노비 모스트(Nový Most)’라는 별칭이 더 널리 쓰였기 때문에 1993년에 브라티슬라바 시의회는 아예 노비 모스트를 공식 명칭으로 결정했다. 그러다가 2012년에 슬로바키아 민중 항쟁 68주년을 맞아 고통스러웠던 역사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과거에 쓰던 공식 명칭 Most SNP를 다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역사지역 훼손 vs. 미래


▎에스엔페 다리 주탑의 철강 기둥 안에 설치된 계단.
한편 이 다리가 세워짐으로써 도나우강 남쪽과 북쪽 지역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더욱 견고하게 통합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리 건설을 위해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던 유서 깊은 도시 성벽의 일부가 완전히 매몰되고 말았다. 또 이 다리와 연결되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브라티슬라바 성 아래 구시가지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특히 유서 깊은 유대인 지구는 아예 완전히 철거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 다리와 연결되는 도로가 브라티슬라바의 종교적 구심점인 성 마르틴 대성당의 정면에서 불과 3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가깝기 때문에, 화물을 적재한 트럭이 지나갈 때면 도로에서 발생하는 진동이 그대로 이 수백 년 된 성당의 기초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브라티슬라바가 수백 년 동안 지니고 있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이곳에서는 크게 훼손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과거를 뛰어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감내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브라티슬라바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깨고 슬로바키아를 미래로 연결하려는 듯한 이 다리는 브라티슬라바를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특히 UFO 덕분에. 빈과 브라티슬라바를 오가는 페리의 선착장은 바로 이 다리 가까이에 있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분야 외에도 미술, 음악, 역사,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로마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 여러 권이 있다.(culturebox@naver.com)

202209호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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