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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주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퍼스트 무버’ 위해 넘어야 할 3개의 허들 

조득진 선임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취임 2주년을 맞았다. 그는 팬데믹 와중에도 현대차그룹을 사상 첫 글로벌 판매 톱 3에 올려놓았고, 특히 전기차 시장에선 테슬라의 경쟁자로 급부상했다. 로보틱스·자율주행·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 펼쳐놓은 청사진도 화려하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자국우선주의’ 등 난제가 만만치 않다.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2020년 10월 14일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그룹 수장에 취임할 당시 앞길은 순탄치 않아 보였다. 당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에 접어든 시점으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계속됐다. 밖으로는 자동차업계의 대대적인 변화에 대응한 모빌리티 혁신이 필요했고, 안으로는 지분 확보를 통한 지배구조 완성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다. 미래기술 관련 비용부담 증가, 신흥국 수요 회복 지연, 경기침체 및 저성장 장기화에 따른 신차 구매수요 위축 등 리스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현대차의 속도’는 역시 빨랐다. 현대차 특유의 속도전을 펼친 결과 현대차·기아는 올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에서 토요타·폴크스바겐에 이어 3위에 올랐다. 2010년 톱 5위에 오른 지 12년 만에, 정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지 4년 만에 거둔 성과다. 반도체 수급난과 전동화 전환 등 전례 없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했다는 평가다.

특히 미래차 패권을 쥐고 있는 전기차 시장에선 테슬라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아이오닉5와 EV6를 앞세워 상반기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에 올랐고, 유럽 전기차 시장 점유율도 12%에 이른다.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점유율은 14%로, 1위 테슬라(27%)를 맹추격 중이다. “내연기관차 시대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였지만, 전기차 시장에선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정 회장의 결단과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이 넘어야 할 허들이 만만찮다. 최근 불거진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의 후폭풍에 대처해야 하고, 점유율이 1~2%로 쪼그라든 중국 시장에선 활로를 찾아야 한다.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사업, 자율주행, 로보틱스,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 잔뜩 펼쳐놓은 미래사업에선 기술력 있는 글로벌기업과 파트너십도 구축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그룹 경영을 이어가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도 절실하다.

우선 ‘자국우선주의’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세계 자동차 1·2위 시장인 중국과 미국이 자국우선주의로 회귀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해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한해서만 최대 7500달러(약 983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국내 공장에서 전기차를 전량 생산, 수출하는 현대차그룹은 혜택을 받지 못해 일주일에 1000대 이상 판매가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거세지는 ‘자국우선주의’ 파고 넘어야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방한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100억 달러(13조원) 이상 미국 제조업 투자를 발표했던 현대차로서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조금 악재’를 만난 정 회장은 급히 미국 출장길에 올랐고 조지아주에 세울 첫 전기차 전용 공장의 완공 시점을 앞당기는 협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그러나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결국 내년까지는 일단 전기차를 못 파는 셈이고, 2024년 공장이 가동되어도 중국산 배터리나 핵심 광물을 쓰면 안 되는 탓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했다.

중국 시장 여건도 녹록지 않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대외적인 한중 관계 악화 속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때 중국자동차 판매 시장점유율 10%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2.7%로 쪼그라들었고, 올해는 1~2%대로 전망된다. 중국 완성차기업이 외국 자동차기업과 합작 등을 통해 품질을 끌어올려 경쟁력을 갖춘 점, 중국 당국의 자국 브랜드 지원금 보조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미중 무역 전쟁 속에서 전 세계 산업 질서가 자국중심주의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전통적 우방보다는 경제적 이익에 따라 합종연횡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한 달 동안 반도체, 전기차·배터리, 바이오 분야에서 ‘미국 내 생산’을 기치로 한 입법·행정 조치를 내놨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연일 ‘미국 우선주의’ 비판이 제기되는 정책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 중국의 부상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는 전략도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칩4동맹(Chip4, 미국 주도의 한국·일본·대만 4개국 반도체 생산·공급망 동맹),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등 중국 견제 성격의 경제협력체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요구도 한중 관계에 부담이다. 대중국 무역수지가 사상 첫 4개월 연속 적자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칩4동맹 예비회의에 참석하기로 하면서 중국의 추가 보복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탈美’와 ‘中 공략’에 노력하고 있다. 우선 인도네시아에 전기차를 비롯한 완성차 생산공장에 이어 배터리셀 공장도 짓고 있다. 배터리셀 양산이 본격화되면 아세안 지역의 전기차 시장 공략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아세안 지역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해 미국과 중국 등 대형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겠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전략이다.

내년엔 중국에 ‘중국 전용 전기차’를 투입할 계획이다. 저가형 전기차 2종이 유력한데,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베이징 등 현지 공장에서 생산을 맡는 방안이 유력하다. 현대차는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의 베이징 2·3공장과 충칭, 창저우 등 4개 생산기지에 전기차 라인을 증설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파격 투자 좋은데, 가시적 성과도 챙겨야


▎7월 14일 현대차는 전용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의 두 번째 모델 아이오닉6를 첫 공개했다.(왼쪽) 지난해 9월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을 시연하는 모습.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정 회장은 취임 후 그룹의 사업 범위를 자동차 영역에서 미래 모빌리티로 본격적으로 확장하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 신성장 분야로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는 분야는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사업, 자율주행, 로보틱스, AAM(미래항공모빌리티) 등이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그룹이 추구하는 미래 최첨단 상품의 경쟁력은 인공지능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며 “우리가 그동안 신성장 분야로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는 자율주행, 로보틱스, AAM과 같은 미래사업 영역에서 스마트 솔루션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첫 대규모 인수합병 분야도 로보틱스였다. 2020년 12월 세계적 로봇기업 보스톤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하기로 하고 지난해 6월 1조원을 들여 M&A를 완료했다. 평소 정 회장은 로보틱스가 모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씨앗이 되는 기반을 마련해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에서 자동차 대신 로보틱스를 선보인 이유이기도 하다. 테슬라 역시 로보틱스 기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9월 통신사 KT와 손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 회사는 상호 책임감 있는 협업을 위해 75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맞교환했다. 자동차산업은 MECA(모빌리티 서비스, 전동화, 커넥티비티, 자율주행)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데 그 핵심 요소가 바로 고품질의 안정적인 통신망이다. 제너럴모터스(GM)와 미국 최대 통신업체 AT&T, 토요타와 일본 최대 통신 업체 NTT, 베이징자동차그룹과 차이나텔레콤, 아우디와 도이치텔레콤의 동맹이 이뤄지는 이유다.

그러나 로보틱스나 MECA 분야는 대규모 자본 투입이 필요하면서도 단기간에 수익화하기가 어렵다. 구글이 2013년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지만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해 2017년 소프트뱅크에 매각했고, 소프트뱅크가 이를 현대차그룹에 되판 이유다.

그러나 파격 투자 발표는 올해도 계속됐다. 올해 들어 현대차그룹은 76조원에 달하는 국내외 대규모 투자 계획을 연달아 발표했다. 이 같은 공격적인 투자에는 오너의 결단이 있다. 정 회장이 강조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기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와 인내를 결정한 것이다.

물론 투자가 발표한 대로 100% 이뤄질 것으로 보긴 어렵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오너의 의지와 업계의 반응은 달리 갈 수 있다. 오너 입장에서든 시장 입장에서든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야 신사업 추진 동력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정 회장이 제시한 여러 비전은 미래의 패러다임을 선도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가시적 효과가 나올 시기는 아직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편, 노조 협조 등 ‘수신제가’ 필요

현대차그룹이나 정 회장이 미래 산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정적 지배구조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선 현재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해외 공장 증설에 대한 노조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 회장은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0.32%만 보유하고 있어 늘 외부 세력에 공격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2018년 정 회장의 지분이 많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을 추진했으나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최근 현대모비스가 사업분할을 결정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이슈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모듈·핵심부품 제조를 전담할 등 2개의 생산전문 통합 계열사 설립을 검토한다고 공시했다. 기존에 생산전문 협력사를 통해 운영하던 국내 모듈공장과 핵심부품공장을 2개의 100% 생산전문 자회사로 분할 설립하는 것이다.

현대모비스의 이번 자회사 설립은 불법파견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밑그림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의도적으로 기업 가치를 낮추려고 알짜 사업을 물적분할, IPO(기업공개)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효 사태에서 보듯 자국우선주의 시대에서 생산공장의 현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미국 현지 생산 확대 방안에 반대하는 노동조합과 협상 테이블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현대차그룹이 기존 해외 생산 계획 등을 수정하려면 노동조합과 협의해야 한다. 현대차와 기아 노사 간 단체협약에 따라 해외로의 생산 차종 이관, 국내 생산 차종의 해외 생산 시 노사공동위원회를 거쳐 심의 및 의결해야 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미래자동차공학부)는 “현대차의 미국 공장 조속 완공은 결국 노사 합의가 중요하다. 현대차 내부적으로는 공장 착공 계획 및 기존 라인 변경 등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조득진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202210호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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