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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 

40년 제조기업의 혁신 성장 

노유선 기자
2017년 대표 자리에 오른 2세 경영인은 새로운 길을 원했다. 혁신을 통해 전통 제조업의 질적 전환을 꾀하고 싶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제조업의 위기가 본격화되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경영 역량 시험대에 오른 그는 강한 혁신 의지와 실행력으로 2022년 놀라운 퀀텀점프를 이뤄냈다.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의 혁신 노정이 빛을 보고 있다. 2018년 1조3800억원 수준이던 매출액은 2019년 1조6000억원대로 올랐다. 하지만 이후 3년간 그 선을 넘지 못했다. 혁신이란 말이 무뎌질 법도 했지만 그래도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조금씩 끓기 시작한 물은 2022년 하반기 마침내 임계점에 이르렀다. ‘2조 클럽’ 입성을 앞둔 한세실업의 이야기다.

한세실업은 설립 40년 만에 매출 2조원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1982년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이 설립한 한세실업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에서 의류 제조, 디자인, 원단 개발 등 다방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의류 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으로 거듭났다. 전 세계 9개국 21개 법인에 10개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1년에 생산·수출하는 옷만 4억 장이 넘는다. 갭, H&M, 아메리칸이글 등 글로벌 유명 의류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모두가 ‘제조업의 위기’를 논할 때 한세실업은 점진적 혁신의 길을 택했다. 그 길에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이 함께했다. 2017년 7월 대표이사에 오른 김 부회장은 한세실업이 섬유 제조업의 낙후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첨단기술로 무장하고 정보기술(IT) 기업의 면모를 갖추는 데 주력했다. 생산공정을 디지털화(Digital Transformation)하고 3차원(3D) 디자인 기술을 고도화했다. 또 조직문화를 유연하게 개선했으며 조직 전반의 업무 방식도 효율적으로 바꿨다.

대표 취임 후 변화의 결과가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혁신 의지를 관철해나갔다. 김 부회장은 “아버지(김동녕 회장)께서는 늘 ‘실적이 좋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라’고 하셨다”며 “수치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제조업의 정신이기도 한 ‘의지와 집념’으로 복잡한 매듭을 풀어나간 그는 마침내 위기의 한국 제조업에서 희망의 불씨를 쏘아 올렸다.

‘트래디셔녈’의 숨은 뜻 알아내고 전 세계 누볐다


포브스코리아는 2022년 12월 14일 김 부회장을 만나 한세실업의 지난한 혁신의 여정을 들었다. 김 부회장은 김동녕 회장의 차남으로 ‘2세 경영인’이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MBA를 마친 뒤 LG유통(현 GS유통), 미국 의류업체 아베크롬비앤피치 등에서 경영 수업을 했다. 2004년 대리로 입사해 2009년 R&D 부서장, 2013년 품질관리(QA) 부본부장, 2014년 영업본부장 등을 거쳐 2017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취임해 최고경영진으로서 회사를 이끌고 있다.

김 부회장은 도전에 익숙한 경영자다. 한세실업이 워낙 탄탄한 기업이기에 안정적인 사업 기조를 유지해가도 됐을 법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전면적인 혁신에 나섰다. 뚜렷한 문제의식과 확고한 신념, 좋게 말하면 뚝심이었다.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추진력은 김 부회장 주변에서 그를 바라봐온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3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의 시작은 ‘고된 설득의 시간’을 상기하는 자리였다. 과거 임직원이 그에게 했을 법한 질문을 다시 해봤다. 우선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그는 “한국 제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이나 OEM·ODM 업체에 대한 비관적 시선은 정답이 아니라고 봤다”며 “세상이 달라진다면 변화에 대응·대처하기보다 앞서 대비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오래전부터 거론되어온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고성장 시대에서 저성장 시대로 바뀌고, 하루에도 수많은 신기술과 신사업이 쏟아지는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준비되지 않은 제조 기업들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김 부회장은 이를 개구리에 빗대 설명했다.

“펄펄 끓는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확 튀어 올라오겠죠. 반면 물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면 온도 변화에 적응하다가 결국 서서히 죽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조금씩 또는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는데 제조업은 밤낮없이 일하느라 변화에 대비하지 못했어요. 예민하게 반응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면 거뜬히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을 겁니다.”

10년 혁신에 나서다


2004년 한세실업에 입사한 김 부회장은 2009년 R&D 부서장을 맡으면서 IT 기술 도입에 적극 나서는 등 대대적인 혁신의 선봉에 섰다. 먼저 낙후된 공장을 디지털 화해 스마트 공장으로 바꾸고 공정의 비효율성을 대폭 개선했다. 창고 운반, 재단·봉제, 라벨 부착, 폴리백(비닐포장) 작업, 가먼트 폴딩(의류 접기) 등 생산공정을 단계별로 쪼개 자동화시스템을 적용했다. 특히 제품 생산 과정을 데이터로 전환해 실시간 모니터링 및 분석이 가능한 스마트팩토리 시스템 ‘햄스(HANSAE Advanced Management System)’를 고도화했다. 공정 효율화는 제품 품질 표준화로 이어져 전 세계에 퍼져 있는 27개 한세실업 공장에서 고품질 제품을 일관되게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10년 전 미국의 한 바이어가 저희 공장에 찾아왔습니다. 한참 둘러보더니 ‘매우 전통적’이라고 하더군요. ‘노후됐다’는 말을 고상하게 표현한 거죠. 그때부터 전 세계의 스마트 공장을 찾아다녔어요. 섬유 제조업뿐 아니라 자동차 공장, 반도체 공장까지 자동화시스템이 잘 갖춰졌다는 공장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가 우리 공장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생산공정 효율화에 이어 원단과 디자인 혁신에 나섰다. OEM·ODM 업체의 한계에서 벗어나려면 원단 제품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한세실업은 2013년 베트남 원단공장 C&T VINA를 인수하고 이듬해 원단 전문 업체 ‘칼라앤터치’를 설립했다. 염색·가공과 원단 중개, 봉제·제조 등 여러 과정을 수직계열화했다. 이를 기반으로 2018년 항균 원단을 개발하는 데 성공, 현재 중미 지역에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원단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2017년 디자인 역량에서도 글로벌 OEM·ODM 업계에서 선두로 올라섰다. 국내 의류업체 최초로 버추얼 디자인(Virtual Design·VD)팀을 구성해 3D 디자인 기술을 활용해 가상 샘플을 제작했다. 불필요한 원단 폐기물과 포장재, 물류비 등도 획기적으로 줄였다. 김 부회장은 “가상 샘플은 원단 질감과 패턴, 컬러감을 그대로 표현해 실물 샘플만큼 정교하다”며 “2025년까지 실물 샘플의 80% 이상을 가상 샘플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상 샘플은 김 부회장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차원에서의 친환경 의류 생산시스템 구축의 일환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 해외 공장에 다양한 친환경 의류 생산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대표적으로 빗물을 재활용하는 빗물 저장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에어컨 대신 작업장 내 온도를 조절하는 워터 쿨링 시스템으로 물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를 통해 시스템 구축 전인 2015년 대비 2020년에는 물 사용량 8000만L 이상, 유류 사용량 14만L 이상, 석탄 사용량 100%가량 절감하는 성과를 냈다.

친환경 경영을 확대하기 위해 관련 기업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2021년 고품질의 재활용 섬유를 생산하는 글로벌기업 ‘리커버 텍스타일 시스템(Recover Textile Systems)’과 미국의 혁신적인 섬유 기술 스타트업 ‘에버뉴(Evrnu)’에 투자했으며, 이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섬유산업 내 친환경 순환고리를 구축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 의류 제조 ESG 경영에 필요한 기술 프로그램을 선도적으로 연구, 실행해왔다”며 “다양한 기술 기업을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등 차별화된 사업 모델과 생태계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문화로 혁신의 동력을 확보하다


▎스마트 공정 시스템 ‘햄스(HANSE Advanced Management System)’는 제품 생산 과정을 데이터로 전환해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도록 했다.
혁신은 말처럼 쉽지 않다. CEO의 의지와 실행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조직 전체가 혁신의 필요성과 방식에 동의하고 공유해야 한다. 김 부회장은 “작은 것 하나 바꾸려 해도 (임직원들에게) 여러 차례 설명해야 했다”며 “정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윗사람의 결정을 무조건 따르는 상명하복이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기업 구성원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변화의 방향에 동의할 때 더 나은 변화를 더 빠른 속도로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류업계는 대체로 도제식 운영에 익숙합니다. 그러다 보니 상명하복 문화가 뿌리를 내렸죠.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어요. ‘나를 따르라’든가 ‘내가 해봤는데 말이야’는 그야말로 옛것이에요. 구태의연한 관습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시대 흐름을 빠르게 읽어내는 집단지성을 따라야만 기업도 성장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소통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소통해야 해요.”

당장 구성원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타운홀미팅(Town Hall Meeting)을 시작했다. 하지만 CEO 혼자 ‘소통’을 외친다고 해서 경직된 기업 체질이 바뀌진 않는다. 조직 전체에 자유로운 ‘소통 문화’가 퍼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김 부회장은 생산공정 같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조직문화와 인사제도 등 소프트웨어를 바꾸는데도 공을 들였다.

2019년 신설된 P&C(People&Culture)팀이 대표적이다. P&C팀은 경영방침에 대한 구성원의 의견을 청취하고 사내 캠페인을 기획하는 등 유연한 조직문화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무엇을 바꿀 계획이며 어떻게 경영할 방침인지 구성원에게 전달하는 한세실업의 헤르메스(Hermes: 使者)”라며 “시스템 개편 등 변동 사항이 있기 전 전체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도 수행한다”고 뿌듯해했다.

흔히 ‘수평적인 조직문화’, ‘소통하는 경영자의 모습’이란 표현은 IT업계의 조직문화를 상징하는 말처럼 쓰인다. 김 부회장은 “한세실업은 무늬는 의류업체여도 내부는 IT 업체”라며 “업계를 선도하는 한세실업의 경쟁력은 조직문화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직급이든 자신의 생각을 언제든지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문화를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다.

조직문화 개선에 대한 집념은 입사 초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됐다. 2004년 한세실업에 경영지원팀 대리로 입사한 김 부회장은 R&D 부서장, QA 부본부장, 영업본부장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그는 “직급이 비교적 낮을 때 윗사람에게 일하는 방식이나 공장 시스템이 낡았다고 말하면 ‘도대체 무슨 소리냐’라는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며 “언제쯤, 어떤 직급이 되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지난 12월 1일 열린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의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 것도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경영 철학이다.

“인간에겐 관성이란 게 있어요. 오랫동안 굳어져버린 타성 때문에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 거죠.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태한 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결국엔 업계에서 살아남지 못해요. 한세실업이 지향하는 인재상은 관성적으로 일하길 거부하고 더 나은 방향을 계속해서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성과를 내는 사람, 그 과정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로 직원을 육성하기 위한 한세실업의 전략이 궁금했다. 김 부회장은 “이 시대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공정이라고 생각한다”며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가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공정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가 말하는 공정이란 조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진한 의견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채택될 경우 그에 따른 성과를 공정한 방식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공정 문화의 대표적인 예가 다면평가다. 한세실업은 조직장(長)이 부하직원의 인사고과를 매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부하직원도 상사를 평가하고 동료 간에도 서로를 평가하는 다면평가 방식을 도입했다. 김 부회장은 “회사 내부에서 가장 반발이 심했던 제도였다”며 “이를 정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이제는 조금씩 수용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다수 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살지 않나요? 누군가가 자신을 낮게 평가하면 반발심부터 생기곤 하죠. 저평가에 익숙하기란 쉽지 않아요. 하지만 다면평가는 실제 자기 모습을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개선 방법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죠. 저 역시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타운홀미팅에서 별의별 소리를 다 듣는데,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회사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인사제도를 개편한 것도 같은 의도다. 김 부회장은 2022년 초 기존 호봉제를 성과주의에 기반한 연봉제로 전환하고 복잡한 직급과 호칭을 단순화했다. 그는 “단순히 연차가 높다고 해서 높은 연봉을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맞는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며 “낮은 직급도 성과에 따라 합당한 보상을 받는 공정한 체계로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현대경영에서 새로운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조직원의 동기부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부회장은 조직원의 동기부여와 조직문화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다.

최근 도입한 ‘알봇’도 직원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다. 단순 반복 업무를 컴퓨터가 대신하는 자동화시스템으로, 사내 직원들 사이에선 ‘알선임’이라 불린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반복되는 질문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처리하는 챗봇 시스템도 갖췄다. 김 부회장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처리하는 데 시간을 뺏기지 않도록 IT 업체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 수준의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생산공정뿐만 아니라 본사 업무에도 첨단기술을 접목해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사내 어린이집은 한세실업이 자랑하는 복지제도다. 지난해 한세예스24어린이집은 전국 직장어린이집 1248곳 중 우수한 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어린이집 13곳으로 선정돼 근로복지공단이 주는 본상을 받았다. 그는 “아이들이 직접 폐페트병으로 장난감을 만들거나 커피 찌꺼기를 화분에 비료로 주는 등 생활 속에서 친환경을 실천하는 프로그램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해 한세예스24어린이집 소속 원장이 서울시로부터 서울시장상(보육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서울에 있는 직장어린이집 296곳 중 4곳의 원장이 보육서비스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직원이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며 “2022년 근로복지공단과 서울시 등 두 곳에서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게 되어 기뻤다”고 했다.

일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논의하는 콘퍼런스인 ‘서울 워크 디자인 위크(SEOUL WORK DESIGN WEEK·SWDW)’에 4회째 후원하고 직접 참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SWDW는 일에 대한 사회 통념이 빠르게 변화하는 양상에 주목하고 새로운 업무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각계각층 인사가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그는 “새로운 업무 방식과 근무 형태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고 있다”며 “직원의 업무 편의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CEO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바쁜 시간을 쪼개 세계적인 경제 월간지 포브스코리아에 ‘김익환이 만난 혁신기업가’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한세실업만이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회사의 일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포브스코리아에서 혁신기업 CEO를 만나 기업 운영과 업무 방식에 대해 인터뷰하는 ‘김익환이 만난 혁신 기업가’ 시리즈가 벌써 39회를 맞았네요. 특히 이 시리즈는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어요. 좋은 회사를 소개함으로써 여러 회사가 본보기로 삼고 더 나아지길 바라는 거죠.”

오로지 혁신? 지킬 건 지켰다


▎한세실업의 버추얼 디자인팀은 3D 디자인 기술로 가상 샘플을 만들고 있다. 2025년까지 실물 샘플 80% 이상을 가상 샘플로 대체할 계획이다.
40주년을 맞은 한세실업은 100년 기업을 바라보고 있다. 100년 기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계승과 혁신의 균형 점을 잘 찾아야 한다. 창업주의 경영 철학과 방식을 어떻게 현대화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한세실업이 전통 제조업의 한계를 뛰어넘어 글로벌기업으로 우뚝 선 건 창업주 김동녕 회장이 성장의 토대를 단단히 다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깊은 숙고의 시간 속에 자리 잡은 경영 철학과 오랜 시간 축적해온 경영 노하우는 한세실업의 DNA로 자리 잡았다.

김 부회장은 “혁신은 과거와의 마찰이 아니라 과거를 개선하는 일”이라며 “직원에게 힘이 되는 회사, 직원을 최고로 대우하는 회사로 만들자는 창업주의 경영 철학과 가장 좋은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기업 비전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오늘날의 한세실업은 한세 1.0 시대에 구축한 신뢰 덕분에 고객사를 비롯한 글로벌시장에서 한세실업을 믿어주는 만큼 나도 그 믿음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며 “배턴터치가 가능했던 건 기존의 경영 철학과 비전을 계승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1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40주년 기념식에서 한세 1.0 시대의 종언과 한세 2.0 시대의 개막을 천명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뛰어난 디자인과 좋은 품질의 옷을 만들어내는 것 △디지털 라이제이션을 통해 시대 흐름에 앞서나가는 역량을 구축하는 것 △업계 최고를 넘어, ESG의 리더로서 입지를 다져가는 것 △최고의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어내는 것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의 회사로 만들어가는 것 등 5대 비전을 제시했다.


김 부회장은 2세 경영인으로서 계승과 혁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고충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을 느낄 때마다 고민이 적지 않았다”며 “어떤 제안을 하면 ‘네가 뭘 아냐’는 시선이 돌아오곤 했다. 2세 경영인으로서 신뢰를 받기가 참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혁신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끈기를 갖고 수없는 반복을 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 기업과 혁신기업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매출 2조 클럽 가입은 김 부회장의 혁신 노력이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김 부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비롯해 어려운 순간이 많았지만 디지털전환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성과를 이뤄냈다”며 “앞으로도 글로벌 경기둔화 등 여러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지속적인 품질 향상으로 고객사와의 파트너십을 끈끈하게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전통적인 ODM·OEM 기업에 머물지 않을 겁니다. 한세실업은 의류 봉제·제조만 하지 않습니다. 디자인 제안, 원단 중개, 판매 데이터 분석, 3D 라이브러리 구축 등 다방면에서 역량을 키워오고 있어요. 지금은 중미 지역에 세계 최대 원단복합단지를 조성하는 중입니다. 원단 단지가 완공되고 본격적으로 운영이 시작되면 한세실업은 레벨업(level-up)된 새로운 버전의 기업으로 변모할 겁니다.”

인터뷰 말미에 김 부회장은 조직문화를 또다시 언급하며 강조했다. “백년기업으로 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연하고 세련된 조직문화”라며 “다양한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트렌디한 기업으로 성장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의류 제조업이라고 하면 자칫 고리타분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1세대의 노하우를 존중하고 계승하되 세대를 뛰어넘는 신선한 사업 모델을 구축해 업계 유일의 백년기업이 되겠습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박종근 기자

202301호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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