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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 

K-로봇 개척자의 미래 

장진원 기자
청소 로봇에 이어 서빙 로봇, 바리스타 로봇, 배달 로봇, 실버케어 로봇까지 등장했다.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거나 공존하는 로봇은 시나브로 우리 곁에 와 있다.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도 “로봇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가 자체 제작한 천문 마운트 ‘레인보우 아스트로’ 앞에 서 있다.
무더위와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2022년 8월의 어느 날, 레인보우로보틱스 경영진이 삼성그룹을 찾은 건 순전히 강연을 위해서였다. 이날 경영진은 삼성그룹 사장단이 모인 자리에서 로봇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했다. 이들의 명성은 국내외 로봇산업계와 학계에선 이미 자자했다. 일본 혼다의 ‘아시모’에 이어 지난 2004년 세계 두 번째 이족보행 로봇인 ‘휴보(HUBO)’를 탄생시킨 주인공이 바로 지금의 레인보우로보틱스 경영진이다.

이보다 1년여 앞선 2021년 8월, 전 세계 미디어는 삼성전자가 제시한 신수종 사업을 일제히 주목했다. 이재용 회장은 “미래 신사업 분야에 3년간 240조원을 쏟아 붓겠다”고 밝혔다. 삼성의 미래 먹거리는 반도체도 스마트폰도 아닌 로봇이었다. 그룹 총수의 바통은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DX부문장)이 이어받았다. 한 부회장은 2022년 초 주주총회에서 “로봇을 고객 접점의 새로운 기회로 생각한다”며 “전담 조직을 강화해 로봇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21년 말, 로봇사업화 태스크포스(TF)를 로봇사업팀으로 격상해 정규 조직화했다. 현재 이 팀에는 석박사급 인력 수백 명이 투입돼 ‘삼성봇’ 상용화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글로벌 로봇공학계의 리더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경청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삼성전자 손 내밀게 한 로봇 기술력


운명은 때로 예기치 못한 계기로 크게 선회한다. 레인보우로보틱스에는 2022년 8월이 그랬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투자를 받으려 한다”는 한마디가 모든 걸 바꿔놓았다.

그보다 앞선 2022년 중순, 당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국내 ICT 기업과 수백억 원에 달하는 투자에 대해 막바지 논의를 진행 중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해당 기업은 이미 1년 가까이 시장조사와 기업 리퓨테이션 체크를 비밀리에 진행해왔고, 로봇 사업을 위한 최적의 파트너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점찍어둔 상태였다. 앙사 간 협약 체결도 코앞이었다.

하지만 2022년 8월, 삼성과의 우연한 만남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앞날을 바꿔놓았다. 레인보우로보틱스 측의 투자 관련 발언은 만찬에 함께한 그룹 CEO들의 뇌리에 강하게 꽂혔다. 강연과 만찬이 끝난 그날 밤 삼성은 예정에 없던 회의를 소집했다. 논의를 매듭지은 건 몇 시간이 훌쩍 지난 늦은 밤. 새 ‘투자처’에 뜻을 모은 삼성은 최고위 경영진에게 새 파트너사에 대한 투자 필요성을 브리핑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삼성전자 관계자의 연락을 받은 건 강연 후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이미 받았던 투자 제안도 레인보우로보틱스 입장에서는 큰 기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함께하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의 로봇 산업을 리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삼성전자의 투자 제안을 받기로 결정했다. 삼성그룹 사장단과 만남, 삼성전자의 투자 제안, 이어진 레인보우로보틱스의 결단은 그렇게 단 사흘 만에 전광석화로 단행됐다.

미래 먹거리를 둘러싼 대기업 간의 드라마틱한 뒷이야기를 풀어내던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의 얼굴에는 새로운 기회에 대한 희망이 번졌다. 하지만 공룡 등에 올라탄 작은 기업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 역시 숨기지는 못했다.


“‘삼성이다, 무조건 손잡자’ 한 건 물론 아니에요. 삼성은 이미 글로벌 제조업 최강자인 데다 자체 로봇 조직도 상당한 수준이죠. 대기업의 별도 조직 수준에 머물거나 기술만 유출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도 컸어요. 다만 서로의 강점을 접목하면, 우리가 미처 캐치하지 못하는 사업적 리스크를 방어할 수 있는 훌륭한 파트너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반면 ICT 기업과 협업하면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순 있겠지만, 제조 역량에서 시너지를 발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삼성과 손잡은 결정적 이유죠.”

삼성의 투자는 올 1월 3일 레인보우로보틱스 공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한 삼성전자는 약 590억원을 투자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지분 10.22%를 확보했다. 이어 지난 3월 15일에는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섰다. 주당 3만400원에 91만여 주를 다시 취득한 삼성전자의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율은 14.99%까지 올랐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이번 삼성의 추가 지분 획득을 향후 인수합병(M&A)까지 염두에 둔 행보로 읽는다. 레인보우로보틱스 대주주들이 제3자에게 지분을 넘길 수 없도록 한 1차 계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삼성전자가 6년 안에 최대주주의 지분을 모두 양도받을 수 있도록 한 콜옵션 항목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양사의 주주 간 계약에 달려 있긴 하지만, 콜옵션 행사 여부는 오롯이 삼성전자의 몫이다. 14.99%라는 지분율도 의미심장하다. 공정거래법상 자산이나 매출액이 3000억원 이상인 기업이 자산 또는 매출액 300억원 이상인 상장사 주식을 15% 이상 취득하면 기업결합 신고 의무가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당장 레인보우로보틱스를 계열사로 편입하기보다 향후 시장 상황을 보면서 최종 결정의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현존하는 로봇 플랫폼 최강자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2대주주로 올라서면서 투자한 돈은 약 870억원이다. 수조원대 M&A가 빈번한 대기업 간 딜에 비하면 소규모 지분투자 수준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절대적인 금액보다 투자의 성격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이 로봇이라는 신수종 사업을 강화하려면 그에 걸맞은 기술력이 필요한데, 레인보우로보틱스는 로봇 제작 기술력에선 글로벌 톱티어 수준이기 때문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지난 2011년 오준호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와 연구진이 주도해 설립했다. 혼다 아시모의 출현에 자극을 받은 오 교수는 2000년대 초반 학내에 휴머노이드연구센터를 설립해 이족보행 로봇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현재 최고경영자(CEO)로 회사를 이끄는 이 대표 역시 카이스트 공학박사 출신으로, 센터 설립 초기부터 오 교수와 함께 휴보 개발에 뛰어들었고 2013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 휴보와 협동로봇, 천문마운트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인간처럼 두 발로 걷는 로봇이 처음 등장한 건 1996년이다. 혼다는 이미 1970년대부터 관련 연구를 비밀리에 진행해왔고, 1996년 P2 모델을 효시로 2000년 들어 아시모를 내놓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의 행보에 훨씬 뒤졌지만, 한국도 팔을 걷어붙였다. 2002년부터 연구를 시작한 카이스트팀은 불과 2년 만에 내놓은 첫 이족보행 모델 휴보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현재 이족보행 로봇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기업은 레인보우로보틱스와 미국 보스턴다 이내믹스(모델명 아틀라스), 혼다 등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0년 말 현대자동차가 인수했다.

대학에서 출발한 ‘실험실 벤처’가 맨 처음 주목받은 것 역시 2004년 휴보를 세상에 내놓으면서다. 이들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독보적 기술력을 확보한 것 역시 휴보라는 로봇 플랫폼이 있어 가능했다. 이 대표는 “휴보 같은 이족보행 로봇은 해당 기업의 기술력을 상징한다”며 “현존하는 로봇 관련 기술이 집약된 가장 높은 수준의 플랫폼이 이족보행 로봇”이라고 설명했다. 로봇 제작을 위한 거의 모든 기술이 이족보행 로봇 안에 구현되기 때문이다.

“이족보행 로봇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고성능 슈퍼카나 F1 자동차일 거예요. 휴보가 뛰어난 성능을 가진 건 분명하죠. 그렇다고 경쟁사에 비해 우리가 최고라거나 더 높은 기술을 가졌다고 함부로 이야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슈퍼카 잘 만든다고 무조건 자동차산업의 톱티어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만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로봇기술의 정점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2004년 휴보를 처음 선보인 지 10여 년이 지난 2105년, 레인보우로보틱스는 또 한 번 세계 무대에 그들의 이름을 각인했다. 그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모나에서 열린 재난구조용 로봇 대회에서다. 미국 국방성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이 대회에는 전 세계 로봇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엔지니어들이 모여들었다. 나사(NASA)와 록히드마틴이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카네기멜론대학, MIT를 비롯해 일본 도쿄대, 한국 서울대도 도전장을 냈다. 이 밖에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도 ‘로봇 좀 만든다’는 기관과 학계, 기업들이 뛰어들어 자웅을 겨뤘다. 이날 레인보우로보틱스의 ‘DRC-휴보’는 직접 차량을 운전하고, 드릴로 벽에 구멍을 뚫고 밸브를 잠그며 계단을 오르는 미션을 완벽히 수행한 유일한 로봇이었고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카이스트(KAIST)와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함께한 ‘팀카이스트’는 이날 우승으로 ‘세계 최고의 재난구조 로봇’이라는 타이틀을 따냈다.

새롭게 열린 협동로봇 시장

재난구조 로봇 대회에서 완벽한 미션 수행 능력을 보여준 DRC-휴보의 활약은 한국의 로봇 기술력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로봇의 산업화, 즉 시장성 면에서 한국은 아직 변방”이라는 뜻밖의 진단을 내놓았다.

“현재 로봇이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분야는 제조 현장의 산업용 로봇이에요. 1960년대 말 미국의 유니메이트가 개발에 나서 1970년대 초 처음 상용화했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 톱티어 중 세 곳이 화낙, 야스카와, 가와사키 같은 일본 회사예요. 일본과 미국, 유럽 등 톱5 회사들이 글로벌 마켓의 70%를 점하고 있죠. 한국은 현대로보틱스가 6~7위 정도인데, 시장점유율이 3%대 수준입니다. 산업용 로봇 시장에선 일본과 유럽이 프리미엄, 그 외에 중국의 저가 제품이 있고, 그 사이에서 한국산 제품이 갈팡질팡하는 형국입니다.”

이 대표는 산업 패권을 둔 글로벌 경쟁이 로봇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기계, 화학, 제약, 자동차 등 유럽, 미국 일본이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전통산업의 경쟁력이 기계 메커니즘이 기본인 로봇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돌파구는 없을까? 이 대표가 찾은 답은 ‘협동로봇(Collaborative Robot)’이다.

협동로봇의 핵심 개념은 로봇과 인간의 ‘공존’이다. 기존 산업용 로봇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람의 접근을 제한한 공간이나 격벽 안에서만 운용된다. 자동차 제조공장에서 용접이나 조립에 쓰는 로봇팔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육중한 쇳덩이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니 안전이 필수다. 반면 협동로봇은 사람과 로봇이 같은 공간에서 작업한다. 안전 펜스 없이 로봇과 인간이 한 공간에서 서로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선 고출력 구동 시스템을 갖춰야 하고 충돌감지를 위한 안전모듈 등이 필수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지난 2020년부터 ‘RB시리즈’라는 브랜드로 협동로봇 시장 공략에 나섰다. 휴보가 그랬듯 핵심 부품과 운용 소프트웨어 대부분을 자체 개발·조달한다.

“로봇에는 수많은 부품이 들어갑니다. 구동기(모터), 센서(엔코더), 브레이크, 제어기, 감속기 등이 핵심이죠. 여기에 실시간 제어를 위한 소프트웨어, 즉 운영체제도 필수입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 모든 걸 자체 제작해요. 로봇업계에선 ‘완제품 가격은 로봇 제조사가 아니라 부품업체가 결정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흔합니다. 자동차 회사가 엔진 같은 주요 부품을 아웃소싱한다면 그게 그들의 진짜 실력일까요?”

이 대표의 설명에 자신감이 묻어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로봇 제작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부품을 자체 제작·생산하는 RB시리즈의 원가율은 50% 남짓이다. 이에 비해 경쟁사 제품의 원가율은 80%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원가율이 낮을수록 이익률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핵심 부품을 자체 개발·생산하는 경쟁력 덕에 남들보다 싸게 팔면서 이윤은 더 많이 남기는 구조가 가능해졌다. 실제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2022년 매출액 136억원 중 약 90억원이 협동로봇에서 나왔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13억원, 당기순이익 57억원으로 흑자 전환도 이뤄냈다. 이 대표는 “현재 자체 집계에 따르면 국내 협동로봇 시장에선 RB시리즈의 점유율이 1위”라고 말했다.

사족보행 로봇 등 라인업 확대에 박차

협동로봇 시장의 확대는 레인보우로보틱스 같은 신생기업에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시장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과 미국, 일본이 독차지했던 첨단 기계산업의 패러다임은 로봇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브라운관이 LCD·OLED로, 아날로그 전화기가 스마트폰으로 진화한 전자산업 혁명에서 한국이 신흥 강자로 떠올랐듯, 산업용 로봇 산업에선 협동로봇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마켓을 만들어낼 거란 전망이다. 이 대표는 더불어 “로봇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최근 몰라보게 달라진 것도 협동로봇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로봇 기술이 몇 년 사이에 혁명적으로 발전한 건 아니에요. 대신 로봇을 바라보는 인식이 엄청나게 달라졌죠. ‘로봇이라더니 이거밖에 못해?’에서 ‘이것만 잘해도 쓴다’로 바뀌었어요. 가령 튀김 로봇을 보세요. 기름에 데어가며 치킨 튀길 사람을 구하기 어려우니, 로봇을 튀김 작업에 투입한 겁니다. 서빙 로봇, 청소 로봇 모두 비슷하죠. 로봇 본연의 기술이 발전했다기보다 사회가 로봇을 필요로 하는 시대로 변했다는 진단이 정확합니다.”

로봇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은 단순 반복 작업에 있다. 중공업 위주의 산업용 로봇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처럼 대규모 자본을 동원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협동로봇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준다. 이 대표는 제조 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머신 텐딩(Machine Tending) 공정을 예로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공작기계에 원소재를 집어넣고 가공하면 빼내는 단순 작업이 머신 텐딩입니다. 사람이 3교대로 일일이 하던 작업을 우리 협동로봇을 도입해 해결했어요. 사람이 다 빠져도 24시간 돌아갑니다. 사람은 관리자면 충분하죠. 협동로봇을 도입하면 생산성이 60% 정도 향상되고 원가는 30%가량 절감된다는 게 우리의 연구 결과입니다. 인간의 잡(job)을 로봇이 빼앗는 게 아니라, 산업현장의 인력 미스매칭을 로봇이 해결해주고 있다는 게 맞습니다. 달라진 시대를 협동로봇이라는 틈새시장이 파고든 거죠.”

‘돈 되는 시장’을 기존 강자들이 두고 보겠느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시장 선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체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협동로봇이 차지하는 비중은 5~6% 수준이다. 해당 시장이 아직은 글로벌 빅 메이커들의 사정권 밖에 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시장에 먼저 진입해 고객의 니즈를 빨리 캐치하고 이를 잘 만드는 게 먼저”라고 답했다. “트럭 잘 만드는 회사가 꼭 세단까지 잘 만드는 건 아니지 않냐”며 자신감도 드러냈다.

휴보에서 출발한 원천 기술력을 다양한 분야에 응용하는 것도 레인보우로보틱스의 강점이다. ‘레인보우 아스트로’라는 별도 브랜드를 사용하는 천문 마운트가 대표적이다. 천체 관측용 마운트(Mount)란 지상에서 지구 밖, 즉 천체에 있는 물체(행성·항성·인공위성)를 관측하기 위한 정밀 장치다. 얼마 전 발사된 누리호 항적 관측에도 이 장비가 활용됐다. 현재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천문 마운트는 스파이위성 탐지 등 군사 용도로도 쓰이고 있다.

이족보행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사족보행 로봇도 개발 완료가 코앞이다. 현대로템과 협업 중으로, 2023년 안에 개발을 끝내고 6대를 납품할 계획이다. 군 시스템과의 적용성 테스트를 마치면 정찰·패트롤·폭발물 감지 등 대테러용으로 활용된다. 이 대표는 “휴보의 근간인 모터식 기동에 더해 유압 시스템 등 다양한 컴포넌트(부품)를 개발 중”이라며 “새 모델의 프로젝트명은 ‘라이트(LIGHT)’”라고 귀띔했다.

협동로봇을 필두로 해외 진출도 착착 추진 중이다. 이 대표는 올 2월 내내 미국에 머물면서 현지법인 설립을 주도했다. 일리노이주 숌버그(Schaumburg)에 세운 미국법인은 현지 협동로봇 시장을 조직·관리하고, 제품 출시 후 발생할 다양한 문제에 대응할 전담 조직이다. 숌버그는 기계장치 분야의 글로벌 기업들이 모인 미국 내 대표적인 산업 클러스터다. 독일에도 대리점 두 곳을 여는 등 유럽 시장도 주목하고 있다. 이 밖에도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자율주행 기술과 협동로봇(로봇팔)을 접목한 자율이동 로봇(Mobile Manipulator), 레이저시술 등 의료용 로봇 등에 관한 연구개발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삼성이 투입한 자본은 철저하게 삼성과의 협업에만 활용할 계획입니다. 기존 사업에 재투자할 생각은 없어요. 단순히 운영자금이 필요해 투자를 끌어낸 건 아니니까요. 한두 달 사이에 새로운 게 뚝딱 나오긴 어렵지만, 새로운 아이템과 사업 기회를 삼성과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로봇이 열어준 새로운 기회를 우리가 먼저 잡아야죠.”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

202304호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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