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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대한민국 게임의 왕좌 40]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 

선택과 집중, 새로운 도전 

노유선 기자
지난해 넥슨코리아의 활약에 힘입어 넥슨 그룹이 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넥슨코리아가 그룹 전체 매출의 약 70%를 책임지는 만큼 이정헌 대표의 어깨는 무겁다. 이 대표는 포브스코리아 인터뷰에서 “서구권 스타일 신작 흥행과 함께 스토리텔링 IP 확보, 게임 NFT 대중화 등으로 그룹 매출 4조원을 달성해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미국의 스티브 잡스가 부모님 집에 딸린 자그마한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했듯이, 국내 대표적 게임회사 넥슨 그룹의 출발도 변변치 않았다. 강남구 역삼역 4번 출구에 있는 부친 소유의 10평(33㎡)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책상 두 개를 이어 붙인 작업대가 전부였다. 차세대 온라인 서비스(Next Generation Online Service)의 선두 주자가 되겠다는 창업주 고(故) 김정주 회장의 열망만 가득했다. 1994년 12월 넥슨 그룹은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결과는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속 진부한 구절은 이 기업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설립 29년 후 넥슨 그룹은 전체 연 매출 3조원을 가뿐히 넘어서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넥슨 그룹의 재계 자산 순위는 43위다. 괄목할 만한 성장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이정헌(44) 넥슨코리아 대표는 “많은 게임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결과”라며 자신의 공(功)에 대해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넥슨 그룹의 구원투수나 다름없었다.

일본에 본사를 둔 넥슨 그룹은 한국법인 넥슨코리아가 그룹 전체 매출의 약 70%를 차지하고 일본발(發) 매출은 약 3%밖에 되지 않는 특이한 구조다. 2009년 일본 법인 넥슨재팬이 넥슨으로 사명을 바꾸고 이후 기존 넥슨이 넥슨코리아로 변경된 탓이다. 이 대표는 넥슨코리아가 영업손실 128억원을 기록했던 2018년 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룹의 명운을 쥐고 있었던 그는 약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2003년 넥슨코리아에 입사해 15년 만에 대표직에 올랐다. 넥슨코리아는 설립 이래 대표이사가 10번가량 바뀔 만큼 부침이 심했다. 지금까지 김교창 초대 대표의 재임 기간(1994년 12월~1999년)을 넘어선 사람은 이 대표가 유일하다. 지난 4월 25일 경기 판교 넥슨코리아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첫사랑에게 찾아온 위기


▎올해 입사 21년 차인 이정헌 대표는 넥슨코리아를 두고 “첫사랑과 같다”고 말했다.
“넥슨코리아는 제게 그건 것 같아요. 첫사랑.”

넥슨코리아 장기근속자이자 6년 차 대표의 애사심은 상당했다. 대학 시절 넥슨코리아 게임을 “진짜 너무 좋아했다”는 그는 결국 준거집단이었던 넥슨코리아(당시 넥슨)에 게임 기획자로 입사했다. 소위 말하는 ‘게임충’이었던 이 대표는 특히 넥슨코리아의 ‘바람의나라’에 빠져 있었다. 1996년에 출시된 바람의나라는 최장수 그래픽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assive Multiuser Online Role Playing Game)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현재도 서비스 중이다.

“첫사랑은 이유 없이 갑작스레 다가온다고 하잖아요. 제겐 넥슨코리아가 그랬어요. 유독 넥슨코리아의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를 저조차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을 뿐이었죠.”

흔히 첫사랑은 이뤄지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넥슨 해바라기’ 이 대표는 첫사랑에 성공했다. 퍼블리싱 QM팀 팀장, 계열사 네오플 조종실 실장을 거쳐 사업본부 본부장, 사업총괄 부사장 등을 역임하며 다방면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축구게임 ‘피파(FIFA) 온라인 3’의 배급을 맡아 흥행에 성공하며 사내 입지를 다졌다. 사랑의 이유도 더욱 명확하고 정교해졌다.

“넥슨 그룹의 차별성은 ‘멀티 포트폴리오’와 ‘라이브 서비스’에 있어요. 현재 서비스 중인 게임 대다수가 출시된 지 10~15년가량 지난 장수 게임입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성공적인 멀티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온 게임업체는 전 세계에서 넥슨 그룹이 유일할 겁니다. 오는 6월에는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20주년 행사를 앞두고 있어요.”

현재 넥슨 그룹은 아시아와 북미, 유럽 등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약 50종의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그중 던전앤파이터(2005년 출시)와 마비노기(2004년), 카트라이더(2004년), 서든어택(2005년) 등이 15년 이상 된 게임이다. 오랫동안 전 세계를 상대해온 넥슨 그룹은 실시간 서비스가 강점이다. 직원들이 ‘라이브’라고 부르는 실시간 서비스 퀄리티는 시대가 달라져도 변함이 없다. PC게임이 대세였던 시절, 업계 1인자로 군림했던 넥슨 그룹은 모바일 시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맹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넥슨 그룹 전체 실적에서 모바일게임은 31%를 차지했으며, 모바일게임 매출은 2017년과 비교해 113% 증가했다.

지난해 넥슨 그룹과 넥슨코리아는 각각 매출 3조3946억원, 매출 2조5040억원을 달성했다. 모두 역대 최고치다. 이 대표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부끄러운듯 말을 아꼈다. 그는 “온라인게임 서비스는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며 “회의에서 의사결정한 결과물로 콘텐트를 만들고 마케팅을 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CS(고객서비스·Customer Service) 문의와 서비스 장애에 대응하는 일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 취임 후 “더는 가지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말자”고 천명했다. 그는 “넥슨코리아를 비롯한 넥슨 그룹이 원래 잘하는 분야인 라이브 서비스를 더욱 잘하는 쪽으로 경영 방침을 세웠다”며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유무형의 리소스를 투자하는 데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2018년 당시 넥슨 그룹이 가지지 못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넥슨 그룹은 가지지 못한 것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한 회사였어요. 두 가지를 갖지 못했죠. 첫째, 해외에서의 성공이고 둘째, 새로운 작품의 성공입니다. 당시 넥슨 그룹은 글로벌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는 한편 신작(新作) 30종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두 마리 토끼를 쫓던 넥슨 그룹은 2010년 영업이익률 43.6%로 정점을 찍은 뒤 등락을 거듭했다. 이후 2016년 영업이익률은 22.2%로 반토막이 났으며 2018년 그룹의 캐시카우(수익창출원·cash cow)인 넥슨코리아마저 적자로 전환했다. 2019년에는 ‘탐나는 매물, 넥슨’이라는 기사에서 매각설(說)이 돌면서 그룹 내 분위기는 더욱 위축됐다. 신작 흥행은 비교적 저조했으며 넥슨 그룹은 네임밸류를 기반으로 M&A(인수합병)와 퍼블리싱 비즈니스로 버티고 있었다.

실패했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넥슨 그룹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실패하자 이 대표는 평소 자신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방식대로 경영 이슈를 해결해나갔다. 그는 “망각이 답”이라며 “스트레스가 쌓이면 여러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경영 이슈 역시 잠시 묵혀두면 사안의 또 다른 면이 보이면서 해결 방안이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대표 취임 1년 후 그는 해외시장에서의 성공과 신작 흥행이란 두 가지 목표를 잠시 접어두기로 결심했다. 준비 중인 신작 프로젝트 30종 중 무려 20종을 중단했으며 해외 법인운영 효율화를 꾀했다. 당시 한국의 8배에 달하는 서구권 마케팅 비용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도 신작 20종을 무위로 돌리기가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2006년 넥슨코리아는 신작 기획과 개발을 담당하는 사내 벤처, 이른바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했다. 개별 스튜디오가 정해진 예산과 약속된 기간 안에 신작 게임을 완성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대표는 “회사 내 회사인 스튜디오 체제에서 새로운 게임이 탄생하기를 꿈꿔왔다”고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는 2019년 그 꿈을 과감하게 내려놨다. 스튜디오 체제는 해체됐고 신작 프로젝트 중 10종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렇다고 해서 신작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 대표는 “향후 신작을 론칭할 때 기존 라이브 서비스와 시너지효과가 날 수 있도록 기초체력을 다지는 데 전념했다”며 “‘선택과 집중’이란 개념에 집중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프로젝트만 선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내진설계’라고 표현했다. 내진설계는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전 세계에서 PC게임과 모바일게임 서비스를 모두 잘하기 위해 내진설계를 재검토하고 서비스를 개선해나갔다는 설명이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력을 각 조직에서 차출해 작은 조직을 만들었어요. ‘조직의 태스크포스(task force·TF)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넥슨코리아는 짧은 기간 급성장했기 때문에 단일 조직이 비대해졌습니다. 부서 사이에 벽이 높아지면서 의사소통이 단절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프로젝트마다 TF를 구성해 각부서 담당자 간 물리적 거리를 좁혔더니 효율적인 의사 소통이 가능해졌어요. 이러한 이종 결합 작업이 넥슨코리아 성과에 직결됐다고 자부합니다.”

또 이 대표는 경쟁이 치열한 국내 게임업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 포괄임금제를 폐지(2019년)하고 전 직원 연봉을 800만원가량 일괄 인상(2021년)했다. IT(정보기술) 개발자 구인난이 극심했던 데다 넥슨코리아 직원을 향한 해외 기업의 러브콜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존심의 문제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시 IT업계에서 넥슨코리아의 총보상액(total compensation·기업이 구성원에게 제공하는 기본급 이외 각종 인센티브를 모두 포함한 금액)이 타사에 비해 낮았다”며 “넥슨코리아 창작물의 우수성에 비해 총보상액이 낮다는 지적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넥슨코리아에 내재된 수평적 조직문화를 더욱 강화했다. 넥슨코리아는 설립 초창기부터 특정 사안이 생기면 담당자들이 모두 모여 의견을 개진하는 토론 문화를 정착시켰다. 수직적 보고체계하에 정제된 의견만 상위 직책자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은 지양했다. 한편 이 대표의 토론문화 확산 방침은 직원뿐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준비되지 않은 CEO(최고경영자)라고 생각했어요. 그전까진 막연히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면 실적이 오르면서 더 나은 회사로 발전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산이었죠. 재무제표나 해외법인 운영 비용 통계 등을 수차례 검토하며 주주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직원들과 한자리에 앉아 현장의 생생한 얘기를 들으면서 계속 공부했어요. 날것, 다시 말해 로 데이터(raw data)는 경영 이해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스토리텔링 IP와 블록체인 게임의 선두 주자


“올해는 넥슨코리아의 변곡점이 될 거예요. ‘서구권 맞춤형 전략’에 따라 웨스턴스타일 신작 4종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그룹 내 서구권 계열사도 신작 출시를 준비 중이에요. 한국에서 서구권의 다양한 취향을 맞추기란 난도가 높은 작업이었어요.”

와신상담하던 시절은 끝났다. 넥슨코리아는 지난 5년간 서구권 게임 스타일을 면밀하게 분석해, 게임 디바이스와 선호하는 장르, 그래픽 스타일 등에서 뚜렷한 지역색을 발견했다. 홍보팀 관계자는 “서구권은 게임용 기기를 연결하는 데 익숙하고 아시아권은 모바일게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또 서구권은 캐릭터와 아이템, 배경 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된 화면에서 만족감을 얻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대표는 “경쟁 기반 RPG(롤플레잉 게임·Role-Playing Game) 쏠림 현상이 뚜렷한 아시아권과 달리, 서구권은 카지노, 퍼즐, PvP(플레이어 대 플레이어·Player vs Player) 게임 등 각양각색의 장르가 골고루 사랑받는다”고 덧붙였다.

또 넥슨코리아는 신작 흥행만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도 나선다.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AGBO 스튜디오의 최대주주에 오른 넥슨은 그룹의 게임 IP(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를 영화 속 캐릭터로 만들 수 있게 됐다. 넥슨코리아도 IP 사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스토리텔링 IP를 확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며 “하나의 IP가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무궁무진한 형태로 재탄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영화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가 나온 지 약 45년이 됐어요. 그동안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굿즈, 게임, TV 시리즈 등 다양한 창작물이 파생됐죠. 최근에는 한국의 스토리텔링 기반 웹툰·웹소설이 일본을 점령하고 유럽을 내다보며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만약 대작 영화의 개봉 시점에 맞춰 일제히 관련 게임이 출시되고 드라마가 방영된다면 대중 주목도와 파괴력은 상당할 겁니다.”

넥슨코리아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NFT(대체불가토큰·Non-Fungible Token) 사업도 지속해나갈 계획이다. 현재 대부분의 게임 약관에는 게임 운영·제작사가 ‘디지털 콘텐트’라 불리는 게임 아이템을 소유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 소유권을 게임 이용자에게 주겠다는 것이 넥슨코리아의 방침이다.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NFT는 미술품과 부동산, 게임 아이템 등의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게임 운영·제작사가 아이템 소유권을 포기하는 시대는 불가피하다”며 “최소 5년, 최대 10년 안에 이런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 NFT의 첫 번째 타자는 PC와 모바일로 검증된 메이플스토리다. 앞서 2021년 넥슨코리아는 메이플스토리 IP를 이용해 누구나 변형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 ‘메이플스토리월드’를 내놨다. 메이플스토리 NFT와 메이플스토리월드, 기존 메이플스토리 게임 등이 맞물리면 NFT 실효성과 함께 이용자의 재미가 극대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말미 이 대표에게 첫사랑은 불변하는지 물었다. 그는 “만약 직장이 넥슨코리아가 아니었더라면 이처럼 열정적으로 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다른 곳에서의 직장 생활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웃으며 말했다. “올해 목표는 그룹 전체 매출 4조원 돌파”라는 그의 말에서 애사심과 동시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306호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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